067화
* * *
두 개의 조가 풀숲에 숨어 전진할 때, 그녀는 중앙으로 각개 이동했다. 이들에게 ‘내가 마법사로 추측되는 인원들을 전원 처치할 테니, 은폐 도중 적들의 기동을 제압하라.’는 것이었다.
프리실라는 실로 일당백이었다. 적들과의 거리. 400명과의 거리가 100m 남지 않았을 때 별안간 풀숲에서 일어난다.
그것을 보며 아랑곳하지 않고 진군하는 필스의 병사들이었지만, 프리실라는 ‘무서운 하나가 무섭지 않은 백을 무찌르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시야에 잡히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초원을 이동한다.
“먼저, 한 놈.”
“크, 크윽!!”
모의 공성전이라 사용할 검에 날을 죽이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프리실라의 검은 날이 있을 때보다, 둔기의 역할을 할 때 더욱 그 강함이 배가된다.
지팡이를 들고 있던 마법사들은 일제히 프리실라의 공격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다. ‘한 놈, 두 놈….’ 숫자를 세고 있던 그녀는 어느새 육안에 파악되는 30명의 마법사를 제압하여 아웃시켰다.
“젠장 이렇게 빨리 아웃될 줄이야. 일당은 주겠지.”
“쥐새끼 한 마리 잡지 못하는데, 뭘 하겠다고.”
“뭐, 뭣!”
“이 프리실라를 잡으려면 네놈이 최소 1,000명은 있어야 할 것이다.”
프리실라의 횡포를 보던 370명의 적은 이것을 막으려고 애썼으나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무자비한 속도를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쉽지 않다.
어느새 프리실라는 양치기견이 양을 몰아세우는 것처럼 둥그렇게 370명의 적을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길드원들은 ‘역시, 돌격대장.’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별히 기병의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지만, 프리실라가 초원을 이동하는 속도는 말을 타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이나 님, 저희도 슬….”
“아니, 아직 때가. 부단장님이 신호를 주실 겁니다.”
완전한 각개전투를 행하고 있던 프리실라. 그녀를 보고 놀란 것은 동료들뿐만이 아니었다. 상대 전력의 머릿속은 대부분은 당혹스럽고 놀라웠다. 검을 든 여인 하나를 370명에서 제압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황당한 일이었으니까.
“나를 향한 여관의 환호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프리실라는 상대 전력의 대부분이 C랭크 미만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가끔 보이는 B랭크들도 실력은 좋으나 원을 그리며 스치는 그녀에게 닿는 것이 불가하다. 그저 타격을 당하고 아웃하기 바빴다.
야금야금 프리실라는 원을 돌며 바깥에 있는 인원들을 또다시 하나둘 쓰러뜨린다. 그녀의 날을 죽인 검은 사람을 벨 수는 없으나, 둔기로 때린 것처럼 갑옷이 찌그러질 정도의 황당한 공격이었다.
“인해전술이라더니, C랭크들만 잔뜩.”
아이나를 포함한 두 개의 조는 지속해서 이동한다. 프리실라가 만든 원을 향해 상체를 세우지 않고 조용히 접근했다.
“대단해. 프리실라 님은 일당천도 가능할지 몰라.”
“조용히…! 소리를 죽이십시오.”
“네, 네! 아이나 님!”
“쉿!”
본격적으로 적들은 불안정한 탈출을 시작했다. 프리실라도 당연히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통제되지 않은 몇몇 적병들이 프리실라가 그리는 원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간신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100명 남짓의 적들, 그리고 프리실라가 그리는 원은 작게 줄어들고 그 원에는 여전히 200명의 인파가 남아있다. 프리실라는 진정 일당백을 수행한 것.
문제는 줄어드는 원, 그리고 인파가 줄어들수록 부대끼는 현상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적들은 조금씩 프리실라의 공격을 막아내며 그 원에서 어렵게 빠져나왔다.
“…지금!”
“아이나 님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프리실라가 그리는 원에서 대부분의 적이 빠져나왔을 때였다. 그들을 통제하는 지휘관 따위는 없었으니, 프리실라라는 폭풍이 몰아친 바람에 통제 불능이 되어버린다. 베이스캠프에서 떨어진 유일 명령 ‘각 맞춰서 진군만 해라.’를 완전히 벗어난다.
제각각 떨어져 숨을 고르고 있던 적들, 수풀에 숨어있던 드래곤 길드의 척후 진영으로부터 하나둘 아웃당하기 바빴다. 이를 빠르게 눈치채지 못한 수많은 적은 이들의 은폐 공격으로부터 대열이 완전히 무너진다.
“적, 적들이!”
“풀, 풀에 숨어있었어!”
두더지 잡기처럼, 드래곤 길드원들은 풀을 완전히 땅처럼 이용한다. 그리고 허우적거리는 적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며 적들의 대열을 완전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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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끝났군.”
“너무 쉽게 끝나버렸네요. 프리실라.”
“자, 그럼 필스의 멱을 따러 가볼까.”
드래곤 길드가 만든 원, 20명이 남지 않은 적들, 공격을 당하기 전에 손을 든다. 대부분이 자처하며 모의 공성전 필드에서 퇴장했다.
프리실라 때문에 골절을 당한 적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것은 프리실라가 작정하고 행한 것이다.
적들의 날을 죽이지 않은 검, ‘모의’라는 이름이 붙은 공성전에서 아주 무식하고 야만적인 태도였다. 그런 태도로 훈련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골절은 프리실라의 선처나 다름없다.
“필스라는 작자는 심히 쓰레기인가 보군. 아이나.”
“400명 전원, 쥐고 있던 검에 날이 서 있었죠.”
“길드 관리기관은 어째서 저것을 확인하지 않은 것인가.”
“현장 관계자들은 필스가 이미 손썼을 듯합니다.”
자칫하면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이 중상을 입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이것은 전쟁이지만 어디까지 길드 훈련을 위한 것이지, 서로를 죽고 죽이고 살기를 담아 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붕.
중력이 공간을 먹어 진공이 갖춰지는 소리가 퍼졌다. 그 소리는 1초를 넘기지 않는다.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은 일순 무거운 중력을 느끼며 무방비한 상태로 바닥에 고꾸라진다.
엄청난 압박감에 패닉이 찾아오기 시작했지만, 모두는 란베르크에게 훈련받았던 것처럼 ‘돌연 나타난 패닉에도 냉정함을 잃지 마라.’는 것을 생각했다.
“윽… 이, 이것은.”
프리실라도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중력이었다. 모두는 그 압박감 속에서도 바닥에 엎드려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 압박감과 함께 일어났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압력, 그것은 시야가 흐릿해질 정도의 무자비한 것이었다. 온몸에 있는 장기가 한 곳으로 뭉쳐질 것만 같은 고통에 뼈가 저릿하다.
“오호, 확실히 여간내기는 아닌가 보네. 너희들.”
흐릿한 시야에 잡히는 어느 여성,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목소리가 공기 중에 퍼지자 몸을 압박하던 중력이 사라졌다. ‘커억, 커억.’이라는 거친 숨을 뱉는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이다.
“지금까지 너희가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했겠지.”
“네놈도 필스의 일당인가!”
“지금은 그렇다고 해둘게. 아하하.”
복장은 갑옷이 아니다. 저 여자의 전투방식이 마법을 다루는 것으로 추측하는 프리실라였다. 하나 마법사라기엔 지팡이도 없다.
그렇다면 손목에 차고 있는 아티펙트가 적이 마법을 사용하는 기초 장치. 그녀는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숨을 들이마신다.
“하아아아압!”
“음.”
―!
상대에게 달려든 프리실라가 허공으로 돌연 떠오른다, 200미터가량 끊임없이 치솟는다. 이것은 프리실라가 허공으로 뛰어든 것이 아닌 상대방에 의한 강제적인 행위.
―쿵!
허공으로 치솟던 프리실라. 상당한 속도로 지면에 박혀버린다. 넓고 고르게 펴진 풀들이 방어 작용을 해줄 것만 같았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반경 50M 풀들은 중력에 의해서 넓적하게 눕혀졌다. 프리실라의 사지는 멀쩡했으나 피를 뱉으며 기절했다. 몸 내부에 장기들이 손상을 입고 내부출혈의 가능성이 높다.
“어머, 얘 바둑알 풀린 거 봐.”
프리실라에게 그 가벼운 신음조차 나지 않는다. 눈은 뜨고 있지만, 동공이 온데간데없는 것을 보아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했고, 길드원들은 이것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이 자식이!”
“부, 부단장님을!”
“돌격대장님 괜찮으십니까!”
49명의 인원은 프리실라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나 ‘어쭈, 너희 대장 아니랄까 봐 엄청나게 챙기네.’라는 말과 동시. 달려들던 드래곤 길드의 전원이 무자비하게 허공으로 치솟는다.
이것을 영상으로 지켜보고 있던 여관의 손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서운 속도로 내려 떨어지는 이들이 바닥에 닿기 직전이었다. 손님들이 간신히 터진 고함과 함께 눈을 세게 감는다.
“이래서 S랭크 미만들은.”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을 가지고 놀았던 저 여성은 분명 S랭크임이 틀림없었다. 가슴팍에 붙여 놓은 금강석의 별. 이것을 촬영하고 있던 마법 기자들도 그것을 확대했고 영상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 했다.
“뒤처리는 당신이 하시죠.”
“그렇게 하지.”
그리고 그 여성의 뒤에서 돌연 나타난 또 다른 S랭크의 사내. 필스가 두었던 ‘진짜’는 S랭크 전투력을 지닌 9명. 바로 이들이었다.
사내는 검은색 로브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 인상 때문인지 흉흉한 분위기가 허공에 남아 지켜보던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로브 사이에서 꺼낸 장검 두 개를 양손에 쥔다. 여전히 지면에 고꾸라진 프리실라를 포함한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살기를 뿜으며 다가오는 사내의 신발, 흐릿한 눈으로 시야에 담기는 것은 그저 다가오는 발걸음이 전부다.
그 살기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겠다는 느낌을 표출하는데 충분했다. 지켜보는 이들은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짐작했다. 용사의 쉼터에서 중개를 지켜보던 손님들도 식은땀을 흘리며 걱정한다.
“미안하지만 다들 죽어줘야겠다.”
첫 번째 목표는 프리실라. 여전히 동공은 소멸한 채로 백안만 남아있다. 자신을 죽이러 걸어오는 자가 있음에도 알 리가 없었다. 사내는 참수를 위해 지면에다 두 개의 검을 교차 시켜 박는다.
“특히, 자라나는 새싹들은 더욱 잘라야 해.”
S랭크를 의미하는 금강석의 별, 초원에 단연 독보적인 기운을 내뿜는 둘은 길드원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았다. 성장의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 했다.
그것이 필스의 지시이든 자기네들의 의사든, ‘모의’라는 단어는 일찌감치 머릿속에서 지운 이들이다. 단언컨대 길드원들의 죽음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쾅!
―!
예리한 두 개의 칼날이 프리실라의 목을 교차하려고 할 때. 지면을 울리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사방에 튄다.
교차하고 있는 두 개의 검을 완벽히 멈춰버린 어느 손아귀, 그 칼날을 손으로 잡아 프리실라의 목이 떨어지기 전, 움직임을 완벽하게 봉쇄한다.
“너희 정말 큰일 났어.”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서는 S랭크의 사내. 그리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을 깜빡거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S랭크의 여성.
그 가운데 유유히 자리에서 일어나, 호주머니에 있던 가죽장갑을 입에 문다. 물었던 장갑을 한 짝씩 착용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
B랭크를 의미하는 벨트, 그리고 A랭크를 의미하는 배지. 확실히 조화롭지 못하다. 이어서 금방이라도 불타오를 것만 같은 붉은 머리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 마스터가 너희 다리를 분질러버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