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66화 (66/222)
  • 066화

    * * *

    공성전 당일.

    드래곤 길드의 인원들은 여관마당에 서서 모의 공성전이 시작되는 웅장한 나팔 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한참 밝은 오전이지만 손님들이 찾아와 여관 외부 시설에 앉아 이를 구경했다.

    모의 공성전의 경우이니 인명피해가 없을 일종의 훈련이었고, 이에 홉스의 의견을 토대로 외부의 있는 테이블을 여관과 최대한 밀착 시켜 손님들이 공성전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노을 지기 전, 마감하는 날이 올 줄이야.’

    노을이 지기 직전에 오픈을 하는 용사의 쉼터였기에 공성전으로 인한 조기 마감 시간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무엇보다 단골손님들이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해가 중천임을 안주 삼아 케피탄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크하하, 갑옷 때깔 결딴나는군.”

    “길드원들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네요.”

    모의 공성전이지만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은 비 바잔 드래곤의 장인 브라운 아저씨가 재탄생시킨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이어서 모의 공성전 소식을 전해 들은 의류 장인 브레드 씨는 드래곤 길드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깃발을 선물로 주었다.

    붉은 원단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천에 꼼꼼하게 정성 들여 수놓은 용 모양의 자수. 바람이 불어오니 용이 하늘을 날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

    왕좌에 앉아 있는 거룩한 지배자처럼. 엑스칼리버가 만든 그림자 밑에 앉아, 빌어먹을 필스의 애 장난이 빨리 끝나길 고대했다. 의식 삼아 관자놀이를 몇 차례 누른다.

    “그나저나, 넌 왜 내 옆에 있는 거지.”

    “저는 마스터의 보좌관이니까요.”

    “차라리 네가 전선에 들어가는 것이 내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어째서 굳이 필요할 때는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하하,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마스터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대편의 특공대를 저지해야 하기 때문이죠.”

    “특공대가 쳐들어오기 전에 네가 다 부숴버리면 될 것 아니야.”

    싱글벙글, ‘전선에 들어가 줬으면 좋겠는데.’ 싱글벙글. ‘저는 마스터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를 30번 이상 반복을 하자 어느새 전선 중앙에서 대기 중이던 길드 관리기관의 관계자들이 나팔을 울렸다.

    “란베르크, 너는 왜 여기에 있지.”

    “저도 선생님 곁에 있는 편이 좋을 듯하여.”

    “그래… 말을 말자. 너희가 빠져야 길드원들이 훈련한 보람이 있지.”

    우리 여관에 초소 따위는 전방 건물과 후방 건물, 길드 건물과 신축투숙객 건물, 어느 날 프리실라와 함께 길드원들이 황급히 쌓아 올린 나무 벽이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다. 이 나무 벽도 사실상 가축들을 보호하는 울타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반면에 언덕 맞은편 용사의 쉼터보다 거대한 건물, 10km 되지 않는 곳에 있다. 모의 공성전을 위해서 이전부터 짓기 시작하더니… 굳이 여기까지 와서 ‘모의’ 공성전을 위해 저렇게까지 해주니까.

    언덕을 내려오면 초원에 가까운 들판이 펼쳐진다. 그 거대한 들판의 소유주는 일단은 ‘아서’로 되어 있었으나, 주인 없는 아무개의 땅이라고 생각한 필스가 저곳에다 건물을 지었던 것.

    ‘여관이 박살 나던 그 아픔, 네놈의 건물로 대신하겠다. 하하.’

    ‘분명 짐은 물과 얼음에 용… 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스산한 기운은 뭘까.’라며 자신의 어깨를 쓰다듬는 아이리스.

    녀석은 아무래도 증오 가득한 내 심상을 느낀 듯하다. 자기가 박살 냈던 이력이 있어서 반응하기 쉬웠던 거다. 분명하다.

    프리실라가 대열을 정리한 뒤에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 쓰지 않은 투구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놓은 채로 앉아 있는 내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단장, 진군 명령을 내려주게.”

    “가서 마음껏 실력을 보여주고 오세요.”

    “받아들였다. 승리를 가져오도록 하지.”

    “멋지다. 우리 장군.”

    뒤 돌아 투구를 장착한 뒤, 50명이 되지 않는 길드원들에게 ‘단장의 수치를 갚아주고 오자.’며 웅장한 발언을 던지고는 넓은 언덕으로부터 빠져나갔다.

    뒤이어 ‘그러니까 나는 수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니까….’라고 말했지만, 전투원들이 지면을 구르는 소리로 인해 내 대답은 닿지 않은 듯하다.

    언덕 외곽을 두르고 있는 나무 벽은 사실 방어의 기능을 가졌다기에 한참 초라하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여관언덕이 넓은 관계로 50명은 물론이고, 500명까지도 부대끼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정도다.

    50명이 저 끝에 있는 나무 벽을 오가며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라던가 ‘적들이 충차를 몰고 옵니다.’라는 발언을 할 때마다 스스로 기초체력단련을 받기 잘했다며 생각할지도 모르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거리 때문에 전시상황을 보고하는데 무리가 있다.

    그래서 그냥 여관 주위로 반경 50m. 나무 벽도 아닌 울타리 정도(심지어 성인 남성 기준 복부 높이)를 둘러 ‘공성전’에 대한 예의 정도만 갖춘 것이었다.

    “메이, 그럼 부탁할게.”

    “옙, 벌써 설치 끝났어요.”

    메이는 여관에 찾아와 용사의 쉼터 손님들이 공성전을 직관할 수 있도록 ‘월간, 세계의 모험’ 후배 기자들과 함께 마법 촬영을 통해 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마치 호프집에서 올림픽 직관하는 기분이네.’

    손님들이 ‘용사의 쉼터는 정말 볼거리가 넘친다니까.’라며 메이가 설치하는 마법 기기를 보더니, 환호를 쏟는다.

    필스 길드의 급조된 건물과 용사의 쉼터에는 많은 기자들이 대기 중이었다. 또한 모의 공성전의 심의를 위한 길드 관리기관 관계자뿐만 아니라 ‘월간, 세계의 모험’ 같은 잡지사나, 신문사의 특파원들도 위치해있다.

    ‘드래곤 길드가 패배하는 모습을 적절하게 담아 비굴하게 기사를 쓸 것이다.’며 메이는 기자들의 뻔한 여론조작을 조심하라고 했다.

    렌은 ‘그냥 우리가 이기면 되잖아요.’라고 이야기했는데 이에 아이리스는 ‘단순히 이긴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 멍청한 붉은 용아.’라고 반문하고 말았다.

    “뭐, 멍청한 붉은 용?”

    “그래, 너희 선조들은 싸움밖에 할 줄 모르니.”

    “너희 선조들도 지혜랍시고 머리에 똥밖에 없잖아.”

    “하! 짐의 선조들을 욕보이게 하다니.”

    “응~ 너희 선조 지나가던 드래곤 슬레이어한테 맞고 뒤짐.”

    “뭐, 뭣!… 너희 선조는….”

    아이리스의 말을 끊고는 ‘그만해라! 좀, 너희들이 싸워서 어떻게 할 건데.’라며 이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차단했다.

    녀석은 울상인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임자야! 짐은 아직 저 녀석의 선조를 욕하지 아니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겠다. 잘못 뱉었다가, 쟤한테 죽을까 봐서 살려줘도 그러네.

    의자에서 일어나 나무상자에 들어 있는 포션을 정리하던 레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특제 회복 포션을 명당 2개씩 길드원들에게 지급했고, 또한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이들에게 치료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제가 치료할 사람들이 없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모의 공성전이니까. 그렇게 다치진 않을 거야.”

    “그래야 할 텐데 말이죠.”

    * * *

    [ 드래곤 길드 / 프리실라 진영 (50명) ]

    ‘공성 마차를 끌고 나온다면 50명의 인원이 단숨에 끝날 수 있을 터.’라며 연신 신음을 앓는 프리실라를 향해 ‘부단장님, 모의 공성전이라 공성 무기는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아이나가 고민을 덜어주었다.

    “아이나, 정말 괜찮겠어?”

    “네, 동료들이 싸우는데 길드 건물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자네는 검을 들지 않기로….”

    “어차피 모의 공성전이라 인명피해는 없을….”

    “프리실라 부단장, 적들이 건물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출현인가, 어디 면상 한번 볼까.”

    “규모는 중대… 아니, 대대…. 아니.”

    모든 길드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필스 길드의 건물에서 나오는 인원들은 분명 100명 정도였는데. 300명가량이 허리 높이만큼 올라온 잡초 밑에서 일제히 일어서는 모습이 포착된다. 마치 이 수를 보며 겁을 먹으라는 듯하다.

    400명의 길드원, 특별히 전술은 없었다. 그저 일렬로 나아갈 뿐. 그야말로 인해전술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압박이었다.

    “겁먹지 마라. 우리가 언제 전장에서 400명의 규모를 본 적이 없었던가.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는 과거에 태양 새의 용병단이었으나, 지금은 드래곤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걸고 있는 불명예의 전사!”

    “드래곤 길드의 첫 전장을 패배로 이끄는 일 따위는 용납하지 못한다. 전부 준비되었는가.”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 분명히 상대 전력은 우리가 가진 전력을 아득히 초월할 것이라고. 란베르크의 조언도 그러했다. 공성전 준비과정에서 수집한 필스에 대한 정보도 그러했다.

    이미 일당백을 각오한 이들에게는 뒤로 물러설 것이 없다. 무엇보다 여관에 앉아 있는 아서라는 존재 덕에 더욱이 확정된 승리라는 것을 예상하는 드래곤 길드.

    그러나 예상된 승리 속에서 이를 바득 긁으며 필스의 난장질에 휘말린 이유는 무엇이냐, 그저 이들은 자신을 대표하는 이가 조금이라도 무시당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우리 태양 새의 용병단은 한 명이 맞고 오면 전원이 가서 때려준다. 그리고 한 명이 무시당하면 전원이 가서 무시해준다.’는 것이 당연했던 드래곤 길드.

    ‘네 장난질이 한낱 애새끼가 부리는 객기라면, 도리어 말도 안 되는 객기를 부리는 것이 우리 쪽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

    길드원들은 훈련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동기부여를 떠올린다. 모두는 하나가 된다.

    “전원 포복, 두 중대로 나뉘어 중앙에서 급습한다.”

    프리실라의 명령이 떨어지자, 허리까지 오는 풀숲에 파고들어 은폐하는 길드원, 25명씩 두 중대로 나뉘어 이동했다.

    ‘이러한 이유로 란베르크 교관이 기초훈련을 시킨 것이었군.’

    모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방어구는 경갑이라고 하더라도 몸을 숙인 채 이동한다는 것은 상당한 체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 * *

    [ 필스 길드 / 필스 진영 (11명) ]

    우악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필스. 그리고 그의 친구, 나머지 9명이 구성된 인원들이 있었다. 나머지 9명의 인원은 필스를 지키기 위해 비싼 값에 고용된 특례 중의 특례였다. 사실상 고용이라기보다는 계약에 가까운 거래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쳐들어가면 되지?”

    “적당히 희망 좀 심어주다가….”

    “필스, 뭔가 말이 짧다.”

    “녀석들이 승리에 대한 희망을 품을 때 들어가 주세요….”

    40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초원을 뚫고 지나가는 인해전술 따위는 그저 미끼일 뿐이었다. 필스도 상대에 대한 전력을 조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기에.

    ‘태양 새의 용병단.’ 아크론의 산하로 들어가는 불명예 이전. 특별하게 군사교육이나 검사교육을 받지 않았던 자들이지만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했다.

    일당백이라는 소리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는 상대 전력이었기에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했다. 거금을 들여서 ‘진짜’를 따로 준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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