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65화 (65/222)
  • 065화

    * * *

    란베르크는 검술 명가 출신이라 길드원을 교육하는 내내 ‘검을 다루는 마음’에 얘기했다. 날붙이에 손잡이가 있는 도구를 쥘 때,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길드원들은 그저 란베르크가 악마 교관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녀석이 시행하는 훈련을 포함한 모든 교육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류 창고에 있는 오크통이 훈련에 쓰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이것을 등에 짊어지게 하고 1km 전력 질주를 강행시킨다. 위에서 쓴물이 올라올 정도로 반복하는 것이 기초체력단련이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악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았다. 제군들.’

    라고는 시간의 부족함을 거듭 강조했고, 이에 그들도 란베르크의 훈련을 악착같이 버티며 진정한 검사로 발전해 나갔다.

    이어서 그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프리실라도 이름 모를 산속에 잡검술을 훈련하러 떠났다. 이 또한 란베르크가 짜준 ‘프리실라의 S랭크를 위해,’라는 제목의 훈련과정이었다.

    “선생님. 생각보다 이들의 그릇이 크네요.”

    “태양 새의 용병단원들이었으니까.”

    “그랬군요. 그랬어. 프리실라도, 노튼의 성을 지닌.”

    “올라갈 단계가 높은 이들이야.”

    란베르크가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을 훈련시킬 때, ‘이들이 잘 따라오는 이유는 아이나의 이론교육 덕분입니까?’라며 의문을 던졌었다.

    길드원들이 가진 전투감각은 기사 교육생보다 월등했고, 끝없이 강행되는 검술 훈련에 대한 적응력은 일반 기사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가 의문을 가지는데 충분할 법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모의 공성전 기간, 란베르크는 이들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물며 녀석 자체가 남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저 이들이 ‘태양 새의 용병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유가 충분했다.’며 납득할 뿐.

    “그래도 열심이잖아. 대충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에게 무언가 배우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더 강한 선생들도 존재할 텐데.”

    ‘허, 인계 사대륙을 돌아다녔으나, 제 고속검을 아무것도 아닌 듯이 막아낸 건 당신밖에 없었다고요. 심지어 그때 하품까지 했잖아요.’라며 째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란베르크였다.

    여관 밖에서는 길드원들의 기합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자율훈련 시간이지만 란베르크는 자율이라는 말과 다르게 할당량을 주고 온 듯했다.

    란베르크는 길드원들의 기합 소리에 귀를 쫑긋하더니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 횡 베기 1,000회 남았다.’라며 혼잣말을 했다. 무서운 놈.

    “그런데 모의 공성전에 대상 조합은 누구입니까.”

    “하거먼 필스가 창설한 길드.”

    “이런, 이런….”

    이에 란베르크는 ‘대변보다 냄새나는 녀석을 상대해준다니, 사부의 생각을 알 수 없네요.’라며 아연실색을 했다. 녀석은 나에게 하거먼 필스와 엮이면 피곤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거먼이라는 가문 그 자체. 많은 귀족 사이에서도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식의 유명한 가문이었다. 남들을 밟고 올라섰던 이 가문의 이기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

    10년 전부터 하거먼 가문은 델타의 권력 중심지로 들어갔다. 명문이라는 단어에는 어울리지 않은 가문이었으나 재력으로 타 가문과 비교하자면 서 대륙에서 손꼽힌다고.

    필스가 하거먼 가문인 이상, 자신을 방해한 대상에게 돈을 얼마나 써야 하던 끝까지 쫓아,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피곤하게 굴 것이라 했다. 듣자마자 끔찍했다.

    게다가 필스는 외동으로 하거먼가에서 심히 아끼는 보석 같은 자식이기에, 어릴 적부터 오냐오냐 키운 것도 문제였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듯. 아직도 돈이면 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제가 당부하겠습니다. 확실히 하셔야 해요.”

    “그러니까 공성전에서 이겨야지.”

    “아니, 이겨서 될 문제는 아득히 지났습니다. 선생님.”

    “그럼?”

    “암살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면 제가 직접.”

    “블헤이드 메인 가문에서 파문당해도 몰라.”

    “파, 파문쯤은… 아버지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됐고, 일단 공성전부터 이겨 보자니까.”

    * * *

    엑스칼리버, 내가 델타산맥에 꼭대기에 있는 잡초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이 잡초를 복권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여관 마당에 심었고, 그 잡초는 지금 ‘거목’이 되어 있다.

    슬슬 이쯤이면 식물학자를 불러 엑스칼리버가 당첨인지 꽝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델타에서 유명한 식물연구가를 초청한다.

    “하하, 하거먼에 대적하는 길드가 이곳이었다니요.”

    “어떻게 아셨죠?”

    “이미 항간에 소문이 쫙 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머리가 아픈 소식이네요. 아, 아….”

    “그 가문을 혐오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겁니다.”

    “그 소식만큼은 기분 좋네요. 하하.”

    싫증 날 정도로 근래 이름이 많이 언급되었던 필스. 녀석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엑스칼리버에 대한 전격적인 조사가 실시된다.

    식물학자는 특이한 기계를 짊어 메고는 거목 주위를 움직이며 표면을 만져보더니 얇은 쇠를 나무에 박아서 기계와 연결했다. 일단은 너무 전문적인 부분이라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묘사는 여기까지인 듯하다.

    ‘제발, 당첨을 원한다!’

    위 행동을 반복한 지 40분째, 식물학자도 식은땀을 흘리며 나무에 대해 유심히 살펴보는 듯했다. 그리고 상당히 놀랐다는 반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복권이 당첨이라는 반응이라고 추측할 만했다.

    식물학자는 엑스칼리버에 박힌 얇은 쇠를 뽑아 들었고, 호주머니에 있는 메모장에 ‘음, 그러니까.’라는 혼잣말을 반복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쉽지 않네요.”

    “네?”

    “그, 그게….”

    “당, 당첨이라고 말해줘요!”

    “갑자기 당첨이라니요?!”

    “죄송합니다. 흥분했네요. 그래서요?”

    식물학자는 엑스칼리버를 섬세하게 살펴보며 판단한 사항들을 내게 전달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일단은 보통 나무가 아닙니다.’라는 도입부가 있었다.

    먼저 등에 짊어지고 있던 것은 해당 식물에 대한 마력 순환계를 확인하는 측정기였다. 보통 이 기계를 장치했을 때, 많으면 2번. 흐르고 있는 마력량을 포함하여 마력이 흐르는 신경회로를 단숨에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차례 위 행동을 반복했던 이유는 엑스칼리버에서 흐르는 엄청난 마력 유동 때문이었는데, 그가 가지고 있는 기계로는 측정이 불가했는지 계량기의 한계를 초과해버렸다.

    또한 엑스칼리버가 가지고 있는 마력 신경계의 수가 너무나도 많은 나머지, 그 개수를 측정하는 리터기도 끝자락에서 지속적인 떨림이 있었다.

    이것은 천 개까지의 신경계를 측정할 수 있는데, 그 말은 곧 1,000개를 넘는 마력 신경계가 엑스칼리버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허둥지둥 ‘그래서 가격은요?’라고 묻자, 식물학자의 돌아오는 대답은 ‘이건 박물관에 기증해야 할 정도입니다.’라고.

    “그래서 가격은요!”

    “하하하… 어느 정도 ‘당첨’이라는 말이 맞겠네요.”

    “야호!”

    “의뢰자님께서 좋아하시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군요.”

    길드의 모의 공성전에 의한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는 기분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엑스칼리버의 판매 방법을 홉스와 함께 의논할 생각이 드니 벌써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거 큰일이야, 1등 당첨이 되면 이런 느낌일까.’

    복권을 땀에 젖은 손으로 쥔 채 서울 향하는 기분을 이 세계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오늘 같은 날이 찾아온다면 나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 델타의 영주권을 가진 남자야, 으하하!”

    * * *

    [ 델타 : 던전 할머니 여관 ]

    “어때요, 굉장하지 않습니까?!”

    “하하, 자네가 이렇게 흥분한 건 처음이네.”

    “아네스도 다음에 꼭 보러오세요.”

    “그 작은 잡초가 거목이 되었다니.”

    “이게 전부 어렵게 모셔놓은 마력초 덕입니다.”

    본의 아니게 자랑하기가 되어버린 도입부와는 관계없이 프리실라의 ‘할매가 단장을 찾더군. 한 번 다녀오게.’라는 말을 전해 받았기에 황급히 ‘사장 외출’이라고 적힌 편지를 홉스에 남기고 던전 할머니 여관으로 왔다.

    따라온다던 렌과 아이리스에게 ‘너희는 직업정신도 없어? 오픈 준비 안 해?’라며 으름장을 놓자, 사신이 영혼을 데려가듯 일곱 명의 해골들이 나타나 두 여인을 여관 내부로 질질 끌고 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필스와 문제가 생겼다지.”

    “소문이 벌써 여기까지 났나 보군요.”

    “정보라면 이 노튼 아네스가 델타에서 1번일세.”

    “저를 부르신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까.”

    “조언해줄까 하고.”

    하거먼 필스와 엮였다는 소식을 듣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던전 할머니 여관의 손님들이었다.

    ‘뭐, 그 쓰레기들이랑 엮였다고?!’라는 소리와 함께 탄성이 자자하다. 제대로 결렸구나. 그때 탐정 놀이 하는 게 아니었다. 왜 안 하던 짓을 했을까.

    란베르크의 설명에서 살을 덧붙이는 아네스의 말들은 내 관자놀이를 더욱더 당기게 만들거나,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굳게 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정말 쓰레기였다. 블랙 조크로 우습게 넘어갈 만한 짓들이 아니라, 범법을 저지르는 행동은 기본이었고 하거먼 필스의 조부는 그림자 기둥과도 연관되어 있는 듯했다.

    아네스도 그것이 확실한 정보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으나, 분명 그녀의 정보원에 따르면 하거먼가의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 거래명세를 추적했더니 그림자 기둥과 접점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녀석의 버릇을 고치는 최고의 방법.”

    “그게 뭐죠.”

    철이 들지 않은 어른의 나쁜 버릇을 고치게 하는 것은 지독한 현실이다. 라는 명언을 운운한 아네스였다. 이를 지켜보던 손님들은 ‘크, 역시 할매.’라며 감탄했다.

    아네스가 했던 말에 의미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모의 공성전에서 하거먼가는 나름 총력을 기울인 상태의 길드를 준비해 올 것이니,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뭉개버리면 그만이라고.

    ‘그게 말처럼 쉽게도 가능한 상황은 아니지만.’

    * * *

    “으하하하!”

    “크하하, 복장이 터질 것 같군!”

    “하하, 아이리스!”

    ‘짐은 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라며 당당하게 여관 문을 박차고 나간 아이리스. 그렇게 녀석은 남대륙에 물고기를 잡으러 가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뒤로하고랭크 높은 모험가가 되기 위해 3일 동안 여행을 나섰다.

    그리고 돌아온 결과는.

    “D등급이라니, 풉!”

    “아하하!”

    “시끄럽다. 의뢰가 없는 것을 짐의 무능함이라 하다니.”

    “아이리스, 보세요. 쉽지 않죠?”

    “무엄한 녀석들. 초짜에게는 B등급 의뢰도 주지 않다더군.”

    이를 씹으며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리스, 유니폼에 D등급 배지를 부착하는 것을 보아 그래도 나름 만족을 하는 듯했다.

    오랫동안 란베르크의 훈련을 강행해온 길드원들도 모의 공성전을 앞두며 여관에서 휴식을 취했다.

    며칠.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어떤 무자비한 조합으로 우리를 압박해 올지 모르는 가짜 전쟁을 향해 모두는 자신이 단련한 검에 긍지를 불어넣는다.

    태양 새의 용병단. 수많은 전쟁을 거듭해왔다. 지금껏 치러왔던 전장에 비해 초라하고 작을지 모르는 전장이었지만, 어떤 전쟁터보다 긴장감을 가지며 시간을 죽이는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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