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64화 (64/222)
  • 064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 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드래곤 길드’의 제휴 여관.

    ◈ ‘필스 길드’와 ‘드래곤 길드’의 모의 공성전. ※ 여관에서 직관 가능합니다. 많이들 오세요. ※ 사실 여관 주인은 탐탁지 못한 상태입니다.

    ◈ 발리아트 포도주 / 마지막 입고. ※ 로건의 농장에 남은 모든 발리아트 포도주를 입고했습니다. ※ 아크론과 데크 에던의 휴전상태로 완전히 수출통로가 봉쇄되었습니다.

    * * *

    이른 아침, 목검으로 허수아비를 내려치는 소리가 훨씬 길어졌다. 남은 시간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으나, 아무래도 상대방은 A랭크 이상의 실력자들이 대거 포함된 길드였기 때문이었다.

    태양 새의 용병단도, 아니 드래곤 길드는 충분히 강한 용병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누구에게 무시 받을 약한 조합이 아니었다. 이들은 그저 모의 공성전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대의 없는 길드를 향해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작정한 것.

    “확실히 자세가 좋아지긴 했네요.”

    “전부 아이나 덕이네, 자네의 교본 지원도 포함해서.”

    “아이나가 직접 검만 쥘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 생각도 그러하지만, 아이나는 완고해서….”

    “억지로 시킬 수도 없으니까요.”

    아이나는 다시는 검을 쥐지 않겠노라, 기사단에서 기사의 직위를 포기했을 때 다짐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기사로 지내오면서 지금까지 배웠던 검술과 다양한 전술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아이나는 ‘제국 기사 교육대’ 출신의 교관기사였다.

    검을 쥐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길드원들을 내버려 둘 그녀는 아니기에 교본을 통해 길드 건물 내에서 직접적인 구두 교육을 실시했다.

    나머지는 프리실라의 몫이었고, 평소와 달리 검을 다루는 방법이 차이가 있었던 탓인지 기사단의 제국 검술을 시범하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긴 했다.

    “그로부터, 오히려 잘된 일이네.”

    “어떤 점이요?”

    “모두가 검에 신념을 담고 있는 것.”

    “나쁘지 않은 생각이에요. 프리실라.”

    * * *

    뙤약볕 아래에서 열심히 수련 중인 길드원들. 땀을 잔뜩 흘리며 온 정신을 칼날의 끝에 집중했다. 단절된 공격 하나, 하나. 허공을 절단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전체적으로 잡검술에서 벗어나 엄연히 족보가 있는 검술을 사용하는 모습. 상당히 흡족하고 있는 프리실라였다. 아이나도 참관을 위해 언덕에 서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다. 자세가 좋아지고 있다. 적을 죽이기 위한 위력과 수법만을 생각하는 잡검술에 비해 체력관리가 월등히 수월해 보였다.

    오랫동안 전투를 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잡검술을 사용하며 단련된 체력과 피지컬은 더욱더 시너지를 불러일으킨다.

    ‘정말 좋아지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프리실라 또한 시범을 위해 자신에게는 맞지 않던 제국 검술을 익히며 자신의 ‘잡검술’을 더욱더 확실하게 성립하게 된다.

    모두의 손바닥. 두껍게 남은 굳은살이 얼마나 노력했는가. 스스로 물어도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개판에 난장판에 자세는 아주 범법 재판이네.”

    훈련에 집중하던 길드원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어느 사내. 해가 지지 않은 것을 보아 여관에서 케피탄 맥주나 마시며 담소를 띄울 목적은 아닌 듯했다.

    남색의 긴 로브를 감싸고 있었기에 어떻게 생겨 먹은 줄 알아보기가 힘들다. 확실한 것은 이 사내가 했던 발언이 프리실라를 포함한 길드원들의 분노를 사게 했다는 것.

    “자네는 누구지.”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자네,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 볼일이라고 하진 않겠지.”

    “기인을 찾으러 왔다.”

    “우리에게 그런 발언을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다 큰 어른들이 언덕에서 칼 놀이나 하고 있으니, 기가 차기에.”

    별안간 프리실라는 쥐고 있던 검으로 그 사내를 향해 공격한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살기 담긴 공격.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죽을 작정으로 휘둘렀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똑같은 곳에 똑같은 자세로 서 있던 로브의 사내. 프리실라의 공격이 너무나도 빨라 시간을 초월한 나머지 저 사내가 한 박자 늦게 반으로 조각나거나 한다는 블랙 조크가 아녔다.

    시간을 재지 못할 만큼 빠르게 피했다가 원자세로 돌아온 것은 그 사내였으니. 이렇게 판단할 수 있었던 자들도 프리실라와 아이나 밖에 없었다.

    “뭔가 ‘느려’라는 대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로브의 사내가 말하는 도중에 프리실라는 다시금 공격을 가했다. 이것이 치졸한 공격이라며 누가 으름장을 놓을 문제가 아니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한 그녀.

    “너무 느려 터져서 잠이 올 정돈데.”

    ‘대충 50명 정도 되는 거 같은데. 다 같이 덤벼 봐. 쪽팔리는 게 아니라. 살아야지 너희들.’이라고 아무런 감정 없이 뱉는 사내의 말이 언덕 위에 있는 전원의 등을 오싹하게 했다.

    사내가 말한 것처럼, 부끄러워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던 길드원들은 건물에 있는 진검을 빼 올 시간도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쥐고 있던 목검을 들고 사내에게 냅다 뛰어든다.

    * * *

    아이나는 계산했다. 하나, 둘… 그리고 오십까지, 프리실라를 제외한 모든 길드원이 단 한 명에게 박살 나는 데까지 2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 명당 0.5초.

    첫 격을 가한 길드원에게 뺐든 목검. 50명을 잔디밭에 기도록 만들었다. 프리실라는 감상에 젖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악착같이 쌓아 올린 검의 업. 그리고 야생에 근접한 초월적인 감각에 의존하여 로브의 사내를 공격한다. 그저. 딱 한 번만 닿아보길 원했다.

    ‘이 여자, 반응이 짐승 수준이다.’

    생각보다 엄청난 감각을 지닌 프리실라의 공격을 마주하며 발전의 가능성을 느꼈다. 하지만 사내는 이 정도 감각을 꺾었다고 한들, 자신이 도달할 경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와중에 급작스럽게 고뇌에 빠진 사내. 프리실라의 공격을 피하면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 고뇌가 프리실라의 짐승 같은 감각이 볼 수 있는 허점으로 희미하게 자리 잡힐 때.

    ―!

    프리실라가 첫 격에 성공했다. 그것도 깊게, 프리실라는 저 사내를 정말 죽일 작정으로 공격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mm도 닿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깊다고 생각한 정도는 로브의 후드 부분을 찢는 정도였다. 프리실라는 분명 생채기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라 느꼈으나 아쉽게 그 바람은 닿지 않았다.

    후드가 찢겨나가자, 로브 안의 정체가 드러난다.

    20대 중후반, 사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예쁘장하게 생긴 미남이다. 여기서 갑자기 ‘오’라며 탄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대거 있었다.

    프리실라도 ‘아서보다는 아니지만, 매력적인 미모군.’ ‘아, 지금은 이게 아니지.’라며 다시 검을 쥐었다.

    “란베르크 님!”

    누군가의 부름을 신경 쓰기도 이전, ‘망할, 이제 하다못해 야만인한테까지 공격을 허용하다니.’라며 엄한 잔디를 차기 시작한 란베르크였다.

    “그거 차면 사장님한테 죽어요.”

    “크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니 자네는, 아이나?”

    ‘기사를 관두었다니 사실인가 보군.’이라는 물음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나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뭐야, 아이나 님의 지인.’ ‘실전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고용한 사람인가?’라는 추측을 하였지만 프리실라는 달랐다.

    분명 저 사내가 품고 있던 살기는 일반적인 검사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아득히 머나먼 것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고속검의 란베르크. 프리실라는 무릇 결투를 통해 그가 더욱이 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사내가 ‘하거먼 필스’에 의해서 아서를 죽이기 위해 고용된 엄청난 실력을 지닌 암살자가 아니라는 것에.

    .

    .

    .

    “밖이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야.”

    “달그락?”

    “아이리스나 렌은 자고 있어 캡틴.”

    내 의문이 담긴 혼잣말 때문에 창밖을 바라보던 캡틴은 ‘달, 달그락!’이라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허공에 떴다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황급히 여관 문을 열고 밖을 나섰고, 잇따라 캡틴과 함께 해골들은 여관 밖으로 나왔다.

    신음을 앓으며 잔디밭에 쓰러져 있는 길드원들, 거친 호흡으로 검을 지면에 박고서 몸을 지탱하는 프리실라,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아이나까지.

    그리고 여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리는 사내. 다름 아닌 란베르크가 이곳에 와있었다.

    바람결, 머리칼을 휘날리며 유유히 걸어오던 란베르크.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낮춘다.

    이어서 란베르크의 발언.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제게 검을 알려주십시오.”

    * * *

    “그러니까… 계약을 통해 스승이 되어주겠다?”

    “그래, 내게 검을 배우고 싶다면.”

    란베르크는 스승이 되어달라며 내게 부탁했고, 나는 아연실색을 하며 다리에 매달린 녀석을 떼어내는 데 집중했었다.

    울상인 상태로 다리에 매달린 란베르크. 옆에 있던 아이나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길드원들. 아차! 싶어서 란베르크에게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나가 손가락으로 길드원들을 가리킨 것은 ‘쟤가 우리 길드원들 이렇게 만들어 놨어요.’가 아니라 ‘쟤로 우리 길드원들 훈련하죠.’라는 의미였다.

    “…계약서의 긴 항목을 읽어보았습니다만.”

    “읽어보았는데?”

    ‘제가 가르침을 받고 싶은 상황에, 왜 이들을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발언하는 란베르크에게 호탕한 웃음을 보이며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가르침을 통해 얻는 것이다.”

    “…가르침.”

    “그렇다. 가르침을 통해 얻지 못한다면….”

    “못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영영 네가 원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없다.”

    “명,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미안하지만 네 선생님은 사기꾼이란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일단 급한 불을 끄면 어떻게든 성장시켜 준다는 마음은 먹고 있으니까.

    기나긴 계약서의 활자들. 기대감을 부푼 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동의 항목에 체크를 하는 란베르크.

    녀석에게 가르쳐줄 것이 있을까 고민이 될 정도로, 검을 쥔 란베르크는 완벽에 가까운 검사였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지금부터 조금은 머나먼 과거,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7인의 영웅 중 하나가 되었을 거라고.

    “선생님, 전부 동의했습니다!”

    “확실히 읽어봤어?”

    “읽어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후회해도 몰라, 계약서는 아이나가 썼다고.”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아이나와 나는 제 약속이 비슷한 편이었다. 아이나는 전투를 위해 검을 쥐지 않는 것, 나는 내 ‘날개라고 일컫는’ 검을 쥐지 않는 것. 그래서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제약이 걸린 부분은 없었다.

    이 이상 발전할 수 있는 레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란베르크라고 추측했지만, 녀석의 표정을 보니 프리실라와 다를 것이 없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저 표정. 영원히 나를 괴롭힐 생각이다.

    녀석도 나를 보며 희망을 품는 듯하니, 우리 서로 돕고 살자. 란베르크가 공성전에 출전까지 해준다면 좋겠다만 길드원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그것만은 제외해준다.

    ‘경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뉘우치고 나면.’

    ‘하드웨어가 달랐다며 뭐라 하지 마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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