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화
* * *
“이미 항간에는 난리도 아니에요!”
“메이, 그러니까 최소 100명분의 기자들이… 하.”
“하거먼 필스가 소문을 쫙 내버렸어요. 사장님.”
금일 오픈 이후, ‘월간, 대륙의 모험!’ 출신 마법 기자 메이가 대뜸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케피탄 맥주를 주문하고 마른 목을 축인 뒤에 던진 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터라 모두에게 반가운 얼굴이었지만, 메이가 함께 들고 온 소식은 관자놀이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 충분하다. 때아닌 레니의 주사도, 악기를 켜던 웨라도. 이 말을 듣자 적막을 유지한다.
메이에게 들은 바로 하거먼 필스는 델타 출신 기자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여서 일방적으로 ‘드래곤 길드 모의 공성전’과 ‘여관’에 관련된 안 좋은 기사를 쓰게 만들 작정이었다.
물론 돈으로 전부 착수한 기자들이다. 메이가 근무하는 ‘월간의 모험’에서도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저는 듣자마자 콧방귀를 꼈지만요!’라며 팔짱을 낀다.
여관이라고 부르며 운영하는 상호의 특성을 떠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 어떤 가게일지라도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면 손님들에게 이미지상 결코 좋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단골손님들이야 여관에 꾸준히 얼굴도장을 찍겠지만, 사계절 내내 다양한 모험가들이 다녀가는 이곳에 ‘그닥 좋지 않은 여관.’이라는 평가가 한 번이라도 나온다면 지금 와서 용사의 쉼터에 막대한 투자를 한 점이 내게 상당한 손해로 돌아올 것이다.
‘사실, 손님들이야 적어지면 나야 좋지만.’
이런 기분 좋은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 단란한 여관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다만 용사의 쉼터 식구들과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최고의 여관으로 성장시키자’며 왕도다운 목적을 다시금 갖췄기 때문에.
‘아무래도 포기하긴 이르지.’
천하의 아서가, 아칸에 있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아서가, 고작 귀족 가문의 자녀 하나로 이런 걱정을 다 하다니? 할 수밖에 없다. 하거먼 필스는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골 때리는 가문이니까.
어떻게 보면 오매불망 잠도 못 자고 나를 생각하며 이를 아득바득 씹었을 녀석이 떠오르니 미안하기도 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으면 저렇게까지 하려는 걸까.
콧방귀를 뀌던 아이리스가 ‘임자, 그대의 힘으로 마계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거라. 그리고 거기서 만든 임자의 세력으로 인계를 지배하는 것이지.’라며 의견을 제시했다.
“지져스가 템플스테이에서 기적 일으키는 소리 하네.”
“나는 임자를 이해할 수 없다.”
“아이리스. 네 생각대로 했더라면 넌 이미 죽었어야 했어.”
“크흠….”
유일 동료와 몇 년간의 여행이 없었더라면 이를 아득바득 긁고는 ‘이렇게 귀찮게 살 바.’ ‘서대륙을 그냥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렌이건 아이리스건 애당초 여관을 지으며 단란한 생활을 보내지도 않았겠고.
나는 아연실색을 하며 아이리스의 발언을 묵살시킬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이 힘은 어떤 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맛다시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퇴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엔딩이라고 생각했던 종지부를 찍는 순간, 스스로에게도 힘에 대한 제약이 걸렸다. 말하지 않았으나 내 능력은 엄연히 영혼을 깎아 먹는 치명적인 것이다.
‘이것을 자주 쓴다는 것은, 몸을 해치는 악습관과 같다.’
이것이 기적이라고 불린 이유는 오명이며, 이것은 ‘신의 기계적 출현’일 뿐.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간단히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어쨌거나.
“그나저나 렌 씨가 보이지 않는걸요?”
“아, 모험가가 되기 위해….”
“마스터!”
여관 문을 열고 나타난 붉은 머리의 장발 여성. 단발에서 금방 장발이 되었다. 내가 장발이 취향이라고 해서 그런 것인가, 레드드래곤. 광란의 뱀. 드래곤 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의 등장. 웨이트리스의 복귀.
여관의 손님들은 ‘드디어 왔군!’이라며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를 맞이했다. 기쁨이 담긴 걸걸한 웃음소리들이 브라운 아저씨가 백 명이 모인 술자리 같다.
여관 내부에 있는 기둥에 몸을 기대며 그래도 동료랍시고 시선을 주는 아이리스. 홉스는 총총걸음으로 멀리서 렌을 반겼다. 물론 해골들의 두개골 회전시키기를 빼놓을 수 없었고.
“마스터. 복귀했습니다.”
“어째, 여관 주인보다 웨이트리스가 인기가 많네.”
“아하하, 붉은 머리 히로인이란 어딜 가나 인기가 많죠.”
“돌아온 것을 보니, 원하는 랭크의 모험가가 될 수 있었나 봐.”
두르고 있던 로브를 풀어제끼며, 겉옷 상단에 붙은 배지를 보란 듯이 여관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그것은 커다란 별 하나. A랭크를 의미했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A랭크에 단숨에 승격되다니 역시 렌이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리실라도 자신이 선물한 B랭크 벨트를 바라보며 흡족해한다.
“네놈… 드래곤의 수치구나. A랭크라니.”
“그, 그게 A랭크 의뢰도 정말 어렵게 구했다고요.”
“짐이었다면 7인의 나부랭이 등급은 아득히 넘었을 것이다!”
“아니, S랭크 의뢰를 주질 않는다고요!”
“그건 네 녀석이 약해 보였기 때문이거늘.”
“또 나사 돌게 하네. 오늘 A랭크한테 맞아봅시다.”
“장, 장난이다. 흠.”
* * *
[ 서대륙 블헤이드 메인가의 성 ]
‘블헤이드 메인’
‘블헤이드 메인가’는 귀족 가문 중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인 가문이었다. 일반적인 귀족들처럼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고 ‘검과 학문’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끝없이 탐구하는 가문이다.
세간에서 부르길 ‘뛰어난 검사들을 배출한 가문‘이나 ’이 가문의 종자들은 최상급 검사가 될 수 있는 그릇‘이라고, 이를테면 검의 제국을 잉태시킨 ’아젤 가문‘ 다음 가는 검술명가였다.
‘나, 란베르크. 진정한 검을 이해하기 위해.’
란베르크는 델타 제국 기사 출신 중에서도 명실상부 최강의 검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불리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왕실기사들과의 대련’ 때문이었다.
왕실기사단의 기사들은 일반적인 기사들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들이었고, 이러한 존재들에게 란베르크는 검이라는 기사들에게 있어 심히 상징적인 요소로 승리를 가져갔다.
그는 이로부터 최연소 왕실기사로 추천받게 된다. 서대륙 델타 제국의 심장을 수호하는 자들, 끝내 왕실기사단으로 임명받은 후. 델타 3세를 수호하는 충직한 검이 된다.
란베르크는 왕실기사단에 입성하기 전부터 상당히 엘리트 교육을 받아온 사내로 학업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재능은 당연히 검이었다.
“도, 도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내 아버지를 뵈러 왔다.”
“이리 황급하게 가시다니….”
란베르크는 ‘블헤이드 메인가’에 도착한 후, 웅장한 성의 내부를 황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와중에도 공손히 인사를 취하는 집사에게 보내는 안부 따위는 없었다. 란베르크는 집사와의 담소를 나누면서까지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그저 란베르크는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움직일 뿐. 이 사내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고는 상당한 결의와 의지로 가득하다.
란베르크가 사라지고 나서야 집사들은 마음속으로 말했다. ‘왕실기사단에서 퇴출당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또 사고를 치신 건 아니겠지?’
그는 유능한 블헤이드 메인가에서도 상당한 엘리트로 인정받아온 종자였다. 다만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격이었다.
왕실기사단에서 ‘베르히만의 버금가는 검사가 될지도.’라는 검사들에게 있어 최고의 칭찬을 듣기도 했으나, 권력이나 탐욕에 눈이 먼 왕실기사들, 무능한 왕실기사단장울 향해 중지를 날리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기사교육대’로 전입된다.
란베르크가 블헤이드 메인가의 가주 ‘블헤이드 메인 오’ 방 앞에 도착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주저 없이 문을 열며 들어간다. 노크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이것을 보고 있던 집사들은 아연실색을 하며 고개를 떨궜다.
“아버지!”
보통 블헤이드 메인가에 종자들은 차분하며 그 성향으로 이어져 상당히 냉소적인 인물들이다. 물론 란베르크도 상당히 냉소적이며 차분한 성격이긴 하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가문 따위는 방해물일 뿐이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란베르크… 오랜만에 찾아온 녀석이.”
“기사를 관두겠습니다.”
“면상을 마주하자마자 뱉는 소리가….”
란베르크가 왕실기사단에서 중지를 날리고 퇴출당한 시점에서 불명예 전역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를 딱하게 보았던 그의 아버지가 기사를 계속할 수 있게끔 뒤에서 적당히 손을 써준 것이다.
그때도 란베르크는 ‘세간은 더 이상 충직한 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라며 거부 의사를 표했다가, 자신에 의해 가문 정서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끝내 전입을 수긍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란베르크.”
“검을 보았습니다.”
“얘기해 보거라.”
“검을 보았습니다.”
“검은 우리가 늘 보는 것이지 않느냐.”
“그 검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란베르크… 마침내 정신이 나가고 말았구나.”
“아버지.”
“알겠다. 관두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란베르크가 말하고 싶은 ‘검을 보았다.’와 ‘그 검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알아차린 그의 아버지. 내 혈육이 가진 소신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욱 성장하겠다. 하물며….’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행해왔던 모든 것을 되짚었다. 그리고 다시금 처음부터 놓친 부분이 있다면 빼놓지 아니하고 가져가겠노라며 다짐했다.
‘그자가 보는 세상이 눈에 담길 때까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아젤 가문의 최고 검객들도 입을 모아 높게 평가했던 고속검. 그것은 란베르크 자신도 파훼법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지극히 대단한 것이었다.
지하에 있는 무기고로 향한 란베르크. 그곳에는 왕실기사단에서 강제 퇴임을 당한 이후 자신이 원래 사용했던 검이 보관되어 있었다.
‘가문의 의지.’ 폭이 얇다. 아주 날카로워 보이지만, 쉽게 휘두르려고 했다간 가볍게 파손될 것만 같다.
이것은 양날 검이었다. 찌르고 베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나 자칫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가문의 의지’라는 검의 이름이 상당히 어울렸다. 란베르크는 다시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고뇌했다.
당시 기사장교가 되면 지급되는 레이피어를 들고 있었다. 가문에서 하사받은 명검 ‘가문의 의지’를 착검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납득이 되질 않는다.
레이피어. 많은 검을 포함하여 빠른 공격에 가장 특화되어 있다. 게다가 고속검이라면 상대를 불문하고 무조건 우열에 설 수 있을 검이었다.
“그러나, 마치 보란 듯이 전부 막았다.”
란베르크는 말없이 가문의 거대한 성을 유유히 빠져나온다. 집사들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대화를 하거나 몇몇은 고개를 흔들며 마음속으로 걱정했다.
‘도련님… 무슨 짓을 꾸미고 계십니까.’
가문에게 자신이 가진 소신을 전달했다. 더욱 검을 탐구할 것이라며. 그는 오로지 그 행동에 대한 발걸음을 움직일 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