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62화 (62/222)
  • 062화

    * * *

    “그 결투를 받아들이지!”

    ‘우리 사장 나리는 그런 귀찮은 짓 따위는 하지 않아.’라고 손을 흔들던 쥬드가 얼이 나간 표정이었다. 물론 그를 제외한 여관 손님들, 렌, 아이리스, 홉스, 신사 해골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까지.

    …그래 ‘나를 포함’해서까지.

    “불쑥 나타나서는, 넌 뭐야.”

    “나는 드래곤 길드의 부단장.”

    “통성명이 중요한 게 아니… 뭐, 부단장?”

    “프리실라다.”

    그녀 뒤에서 아연실색하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덮는 아이나, 그리고 길드원들까지. 우리는 프리실라가 하거먼 필스의 결투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프리실라가 난데없이 나타나 녀석이 던진 승부에 당연하게도 반응할 것이라는 점은 뻔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단지 ‘승부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을 믿을 수 없을 뿐이다.

    “이봐요, 프리실라. 절대 안 됩니다. 이건 단장의….”

    “길드를 대표하는 단장이 무시를 당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

    “거… 누가 무시를 당했답니까.”

    별안간 등장한 프리실라와의 대화를 지켜보던 하거먼 필스는 묘한 기류를 풍기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길드 간의 명확한 승인인가?”

    “이 프리실라가 동의하지.”

    하거먼 필스는 자신이 원했던 그림이 펼쳐지자 대뜸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했고, 뒤에 있던 부하들은 눈치를 보며 따라 웃기 바빴다. 이어서 웃음을 멈추고 녀석은 우리를 향해 외쳤다.

    “공성전까지 기간은 한 별(달)!”

    “단장의 치욕을 갚아주마. 바라던 바다!”

    “내일 공성전 신청과 더불어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주지.”

    “바라던 바라니, 아니 잠깐만… 기다려요!”

    하거먼 필스가 데려온 그 많은 인파가 별안간 사라지고 나서야 ‘공성전은 없던 거로 합시다.’라는 내 외침이 여관을 울린다.

    이 모습을 보며 여관 손님들은 폭소하기 시작했고. ‘아서의 관자놀이를 자극하는 일이 또 생겨버렸군. 으하하!’라며 환호를 던진다.

    눈을 얇게 뜨고서, 아니 사백안에 불꽃이 이글거리는 분노를 표출하며 말없이 프리실라를 노려보았지만, 시선을 회피하며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무슨 생각으로!”

    “나, 나는 그저 아서가….”

    “거, 무시당한 적 없다니까!”

    “크흠, 흠….”

    “홉스, 설마 명확한 승인이냐는 말에….”

    “네… 프리실라 님의 대답은 저자의 도전에 유효합니다.”

    “아, 아….”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의 공성전’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보수단계인 우리 길드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미 사라져버린 하거먼 필스에게 달려가 없었던 것으로 치자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 결투를 받아들이지.’라는 프리실라의 대답은 계약서의 도장이나 사인 같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적어도 지구가 아닌 아칸이라는 세계라면 더욱.

    문제는 정말로 ‘하거먼 필스’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승부를 제시하는 쪽은 하거먼 필스였으니 공성전에 대한 전반적인 규칙 사항도 녀석이 정할 것이다.

    이것은 공부했던 길드 마스터 필기시험의 내용 중 하나였다. ‘모의 공성전에 경우, 결투를 신청하는 쪽에서 전반적인 준비를 행한다.’라고.

    여기서 전반적인 준비라는 것은 간단히 너에게 도전을 할 것이니, 필요한 것은 우리가 준비할게. 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녀석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준비할게.’ 따위의 좋은 의미가 적용될 리가 없다. 명실상부한 사실이다. ‘너희를 완전히 박살 낼 계획을 마련할게.’와 마찬가지였다.

    관자놀이가 이대로 터져버렸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으며 양손으로 누르는 것을 반복한다.

    “마, 마스터… 닳겠어요.”

    “이거 놔.”

    “임자, 연기가 피어오르는구나!”

    * * *

    『‘드래곤 길드’ 대 ‘필스 길드’ 모의 공성전』

    ※본 공성전은 조합의 각 대표에 의해 승인됨.

    ※모의 공성전에 대한 제한사항을 엄숙히 지켜줄 것.

    1) 조합의 각 대표는 ‘지시’ 이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또한 ‘전투적인 대응’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전투 지휘’만 가능하다.

    2) 길드원에게 제한된 랭크는 없음으로, 그 어떤 랭크가 모의 공성전에 출전하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한 인원도 없다.

    3) 승리의 조건은 조합대표에 의한 항복 의사 선언 시, 각각의 길드원들이 상대 조합대표에게 접촉 시. 두 가지의 방법으로 모의 공성전에서 승리를 할 수 있다.

    4) 조합대표는 이동이 불가하며 각 조합에서 지정한 ‘베이스캠프’ 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시에는 해당 조합이 패배한다.

    * * *

    며칠 후 여관으로 날아 온 낮 부엉이 편지에는 빌어먹을 공성전에 대한 안내표가 있었다. 물론 하거먼 필스가 보낸 것이다.

    ‘…퍽, 망할, 빌어먹을, 쿳쏘, 젠장!’

    첫 번째, 실기시험을 통해 녀석은 나의 힘을 어느 정도 간주했다. 그것을 고려하여 각 대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규칙을 선점했다.

    두 번째, 길드원에게 제한된 랭크를 걸어두지 않는다는 말은 녀석이 델타에 있을 최상급 강자들을 대거 고용하겠다는 의미였고, 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말은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염려해두겠다는 뜻.

    세 번째, 승리의 조건. 당연히 전자대로라면 드래곤 길드가 일방적으로 불리했다. 내가 움직이거나 상대 길드원들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녀석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막아두었다.

    네 번째, 베이스캠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말은 즉 녀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으로 고용한 부하들을 통해 편안하게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뜻이다.

    하물며 승리 요인이 될 수 있는 나의 움직임을 막을뿐더러. 귀족 자재이신 필스는 나에게 당한 굴욕을 전쟁놀이로 갚겠다는 것.

    “프리실라, 너무 경솔했어요.”

    “승리를 가져다주고 싶어.”

    “전쟁은 그만이라고 했잖아요.”

    “자네가 그렇게 당하고만 있는 모습을….”

    “사실상 시비는 제가 먼저 걸었다니까요.”

    “이, 이런.”

    “이, 이런 이라니! 아, 아….”

    프리실라는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열었고 ‘자네가 검술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니 길드원을 가르쳐보는 것은 어떤가?’라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나는 딱밤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이나는 교본으로 길드원들에게 기초교육을….”

    ‘제 전투방식은 프리실라처럼 누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꺼내자, 프리실라도 심각함을 조금씩 깨달았는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이겨 봐야죠.”

    프리실라가 여전히 얼굴을 숙인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라는 생각이 반복되더니 괜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태양 새의 용병단을 단련시켜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 위치만큼 끌고 갔던 용병, 애당초 교본 교육을 ‘아이나에게 맡겨보는 것이 어때요.’라며 발언했던 자체가 실수는 아니었을까.

    “으하하, 자네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역시 우리 단장이야, 내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라며 복부를 잡고 폭소하는 그녀였다. 나는 다시금 째진 눈을 만들어 프리실라를 아무 말 없이 노려볼 뿐이었다.

    그렇게 바바리안에게서 나올 법한 그녀의 웃음소리를 뒤로하며 여관 밖으로 나온다. 용사의 쉼터 언덕 반대편. 어느새 뚝딱하고 완성되어가는 건물을 바라봤다.

    ‘하여간, 귀족들은 돈이 많아요.’

    ‘나 같음 저 돈으로 여관을 짓겠다.’

    하거먼 필스의 공성전을 위한 건물. 그저 모의 공성전을 위해서였다. 어릴 적 전쟁놀이. 재미를 가미하려 사용했던 박스로 만든 성과 같은 것. 적어도 녀석에게는 저 건물이 그 정도의 가치라는 것이다.

    시끌벅적한 여관. 다시금 홀로 들어와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프리실라와 공성전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가게 홀을 두리번거리던 레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 나는 케피탄 맥주로 인해 회복 마법을 사용하려는 줄 알았다.

    “아서, 오늘 렌이 보이지 않네요?”

    “녀석, 의뢰 출전이야.”

    “엑, 갑자기요?”

    “드래곤 길드에 가입했거든.”

    “설마 모의 공성전에도 참여를….”

    “맞아.”

    렌은 프리실라의 포부에 이끌려 드래곤 길드에 가입하고자 했다. 핑계로는 ‘여관 산하의 길드이니, 당연히 여관의 마스코트를 대표하는 제가 빠질 수 없죠!’였다.

    길드에 정식적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나처럼 모험가등록증을 발부해야만 했고, 녀석은 최대한 높은 랭크의 모험가가 되고자 A랭크 이상의 의뢰를 찾으러 다녔다.

    ‘일단은 아네스 씨의 여관으로 간다고 했는데….’

    내 경우로는 아주 희박한 확률로 A랭크 미만의 의뢰가 특수인물로 인해 AA랭크의 의뢰로 상승 기재된 것이었다.

    근래 델타에는 A― 등급의뢰도 보기가 힘들 텐데… 녀석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프리실라가 자기가 끼던 벨트까지 줬다니까.’라고 말을 이으니 레니가 ‘설마, 프리실라가 B랭크가 되었을 때, 좋아서 야단법석이었던 그 벨트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거, B라고 적혀있는 그 벨트.”

    “아하하. 렌양의 반응이 불 보듯 훤하네요.”

    레니가 말한 것처럼 렌은 B라는 표시가 각인되어 있는 모험가 벨트를 보며 상당히 좋아했다. 눈 안에 도래한 별 무리. 도대체가 녀석의 취향이 뭔지 알 수가 없다.

    “암, 내가 아주 아끼는 벨트라고. 하하!”

    “A랭크가 되자마자, 벨트 바꿨으면서.”

    “하하! 그건 렌에게 비밀이네, 아서!”

    다른 용들과는 다른 취향을 가진 렌은 프리실라가 건네준 벨트를 곧바로 착용하고서 ‘모험가로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라는 발언을 했다.

    이때다 싶어서 녀석에게 ‘아주 좋은 생각인데, 웨이트리스 말고 모험가는 어때?’라며 황급히 의견을 제시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부업으로 하죠. 뭐.’라는 대답이 돌아오겠다.

    “짐은 녀석이 참으로 한심하구나.”

    “아이리스는 모험가나 랭크에 관심이 없으니까.”

    “임자도 같은 생각이 아니더냐.”

    “그렇지, 나도 관심 밖에 일이라. 나는 여관 일이 좋아.”

    ‘용이나 되어서 말이야. 하찮은 계급 구조 속의 무리가 되어 뭘 한다는 건지… 같이 열등해질 생각인가?’ 아이리스 발언에 곧바로 당수를 꽂는다. 적당하게 아플 정도로.

    “용은 중간이 없는 것 같아. 중간이.”

    “짐을 포함한 용들은 언제나 뜻한바 최선을 다하지.”

    “숭고한 푸른 용의 주인이 뜻한바, 가서 물을 주고 오거라.”

    “크윽, 알겠다. 임자의 부탁이니.”

    아이리스는 표정을 구기며 밖에 있는 엑스칼리버를 포함한 마당에 심어진 마력초에 물을 주었다. 손가락에서 물을 뿜어서 그런지 대형 소방차가 다름이 없다. 하물며 아침에는 무지개도 만들어진다.

    제품명 ‘블루드래곤’, 고성능 스프링클러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손님들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용사의 쉼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여유를 즐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