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58화 (58/222)
  • 058화

    * * *

    눈은 떠 있다. 그러나 초점 없는 눈, 사내가 생명력이 부족하다는 것쯤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힐러라면 레니가 있었을 경우 진작 이 사내는 말끔히 회복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높은 상공에 부유선이 있기 때문에 중력 마법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 따라오지 않으면 부유선에 탑승할 수 없어요.”

    “모험가가 죽어가고 있다니까요.”

    “후, 말이 통하지 않는군. 그럼 알아서 오세요. 밧줄이라도 내려줄 테니까요. 끊어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부유선에서 하강할 때 중력 마법으로 안전한 착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마법사가 나에게 던진 말이었다. 여전히 경멸스러운 표정은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자신보다 랭크가 낮은 이들에게 하대하는 버릇이 있는 듯했다.

    과감하게 등을 돌린 채. 나머지 8명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하는 마법사였다. 그 와중에도 8인의 S랭크들은 고약한 문장을 뱉었다.

    “마법사님 얼른 갑시다. AA랭크가 어떻게 올라오겠다는 건지.”

    “어쩌나, 여기서 서대륙까지면 상당히 멀 텐데.”

    “알아서 하겠지요. 올라가서 쉬도록 합시다.”

    나는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서, 초점이 흐릿한 모험가 사내를 바닥에 눕힌다. 이런 행동을 하고 있지만 9인의 S랭크들은 뒤 한번 돌아보지 않는다. 중력 마법을 타고 부유선으로 향할 뿐.

    ‘아무래도 마안의 뭉치 말고는 답이 없겠어.’

    모험가 머리맡에 뜨는 스테이터스가 있다면 ‘부활 가능’ 표시는 나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상태창!’이라며 외쳐보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늘 생각했다. 절망을 토하는 구멍 안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으련만, 내가 가진 기적 덕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부활을 일삼아 따지고 보면 걸어 다니는 망자 수준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인 같은 경우는 워낙 강하다 보니 사용할 일이 거의… 아무튼 나도 혹여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저번 ‘발레포르’ 때처럼 안구를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시야를 확보하기도 했다.

    마침 이 사내는 [얘, 부활 가능하니까, 얼른 살려주세요] 라는 표시를 띄우고 있겠다. 실제로 상태창 같은 것이 보인다는 건 아니니까. 조크로 넘어가자.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안들의 묶음을 해당 장기(눈)에 결속]

    “시야에 포착된 ‘저주’ 제거하기 위한 마안을 결속한다.”

    [피해 카테고리 지정 : 제압 / 파괴 / 침묵.]

    “다 죽어 가는데 완전히 살려야지.”

    [해당 저주를 ‘침묵’시키기 위해 ‘EX랭크 : 성역을 비추는 시선’ 결속]

    과연, 내 예상이란 마야의 달력보다 적중률이 높다.

    성역을 비추는 시선이라는 마안을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일명 ‘장판 힐’ 같은 마안이었다.

    반경 100M가량 빛을 내뿜는 마법진이 바닥에 형성되더니 모험가의 저주를 씻어 내리기 시작했다.

    침식에 의한 검은 반점. 2차 감염으로 인한 피범벅. ‘안녕하세요, 빨간색이거나 검은색입니다.’라며 자신만의 데드 플래그를 마음껏 뽐내던 사내가 조금씩 심장 고동을 틔기 시작한다.

    “어째 살아났으니. 서대륙으로 오게 되면… 용사의 쉼터라도 한번 오쇼.”

    나는 성역이 모험가를 치유하는 동안 주변을 훑으며 전리품 할 만한 것이 없나 돌아다녔고. 반쯤 초토화되어버린 아벨기우스에게 접근한다.

    마물은 죽으면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지당한 사실인데, 어째서 아벨기우스의 형태가 남아있는 건가?

    보아하니 S등급들은 내 마안을 통한 능력 강화가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벨기우스의 심장을 완전히 꿰뚫지는 못한 듯했다.

    그러니까 아직 아벨기우스는 죽지 않았다는 것. 나는 ‘진짜 귀찮게 하네. 딱 급소를 제외한 쓸모없는 곳에다가 기술을 퍼부었잖아.’라며 심장을 맨손으로 뜯어냈다. 이어서 재처럼 사라지는 아벨기우스였다.

    ‘오, 전리품을 얻었잖아. 비싸게 팔리겠는데.’

    심장이 소멸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드래곤의 뿔처럼 마력이 오랫동안 농축된 ‘물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던 중 끝내 ‘아벨기우스 심장’을 깊게 잠들어 있는 사내의 호주머니에다가 넣어버린다.

    “이건 당신 몫이야.”

    “나 요즘 잘 버니까. 이 정돈 뭐.”

    이 모험가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악의로 아벨기우스를 깨운 것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녀석이 아벨기우스를 반쯤 깨워서 미리 주변 제국에 있는 피해를 줄인 것일지도 모르고. 최소한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미동 없는 아벨기우스를 후려친 것만 보면 나쁜 놈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마왕의 전리품 정도는 쥐고 돌아가야… 친구들한테 ‘야, 이게 말이야 인마, 아벨기우스를 때려잡고 얻은 거라고.’ 길면 약 3달 정도, S랭크들마냥 맘껏 허세를 부릴 절호의 찬스.

    흠, ‘아벨레스크의 심장’인지 뭔지 스스로 물어보면 아깝다고 대답할 것이 눈에 훤하다. 솔직히 비싼 물건인 거, 주고 나서 느꼈으니 그만 자리에서 바지를 털고 일어나자.

    상당히 좋은 아이템으로 값어치도 꽤 있는 편인 듯했으나, 남자가 줬다 뺏을 수 없으니 그만 일어나자!

    ‘여긴 당신네 고향이니 알아서 돌아가도록. 동대륙의 모험가여!’

    모험가는 기존에 받았던 정보대로 동대륙이 고향이라 돌아가는 것에 문제가 없겠다만, 본인의 경우 ‘동대륙에 있는 외딴 섬에서 서대륙까지’

    이 거리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다. 아니면 저 모험가가 타고 온 나룻배라도 뺏어 타는 수밖에.

    ‘진짜 나룻배를 뺏거나, 할 순 없으니까.’

    은근히 욕심 무겁던 다리를 양손으로 떼어내는 것을 반복한 뒤, 상공에 떠 있는 부유선을 바라본다. 이미 출발하고 있는 터라 구름을 뚫고 앞으로 한창 나아가고 있었다.

    * * *

    [ 아벨기우스 토벌대 부유선 ]

    아벨기우스 토벌을 마친 9인의 S랭크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개중 토벌대장으로 추측되는 S랭크의 전사가 입을 열었다.

    “저도 드래곤에게 도전해볼까 싶어요.”

    “드, 드래곤은 아직 무리지 싶은데요.”

    “그렇긴 한데, 뭔가 오늘 아벨기우스와 싸워보면서 느꼈어요. 잘하면 드래곤과의 전투에서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흠… 확실히 토벌대장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뭔가 마지막에 힘이 솟아오르는 느낌! S+랭크도 아닌 SS랭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다들 그렇죠?”

    “저희는 아무나 될 수 없는 S랭크니까. 하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유선의 함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했다. ‘너희는 그냥 미끼였을 뿐이었는데, 운 좋게 살아남아서는….’ 함장이 하고 있던 말은 100% 진실이었다.

    현 토벌대의 경우 아서라는 모험가를 제외한 전원 S랭크의 모험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실력보다는 가문의 원초적인 유전 덕에 얻은 재능으로 경험 없이 S랭크에 등단한 모험가들이나 귀족들이라는 점.

    동대륙의 각 제국이 전제국 통합정부에 구원요청을 통해 만들어진 첫 번째 작전. 일명 미끼.

    전자의 도구들이 현 토벌대였고, 반쯤 깨어있는 아벨기우스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것이 전부였다.

    결과는 두 가지였다. 아벨기우스의 먹이가 되거나. 용암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그래도 살아남은 이들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한 함장이었으나. 비단 이들의 태도를 보면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별안간 함장에게 달려오는 선원이 입을 열었다.

    “함, 함장님.”

    “무슨 일인가.”

    “알 수 없는 물체가 부유선에 접근합니다!”

    ―쿵!

    부유선에 느껴지는 엄청난 충돌음이 내부에 퍼졌고, 토벌대를 포함한 내부인원들은 얼굴이 굳어졌다. ‘혹, 혹시. 아벨기우스가 죽지 않은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

    부유선을 띄우는 부유석은 상당이 강력한 중력 파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부유석을 장착한 기체가 반쯤 기울어졌다가 세워졌다.

    “함장님… 하강 후문에 이상 반응이 있습니다.”

    “함선의 뒤편을 확인하라!”

    토벌대가 아벨기우스에게 접근하기 위해 뛰어내렸던 하강 후문, 모두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곳으로 향했다.

    굵직한 철문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철문 밖에 분명 무언가가 있다며 인기척을 느끼는 토벌대원들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집중하고 있다. 거대한 충차를 가지고 와서 때린다고 하여도 흠집 하나 날 것 같지 않은 두꺼운 철문이 알루미늄 포일 마냥 구겨지며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어, 뭐야. 다들 마중 나와 준 겁니까?”

    “다, 다, 당, 당신은!”

    “예. AA랭크 아서입니다만.”

    “여, 여긴 중력 마법으로도 오르기 힘든 높이인데.”

    “어떻게 여길 어, 어떻게! 포기하고 걸어간 줄 알았는데!”

    “그, 그러게요. 무슨 수로… 올라온 거죠?”

    “그냥 뛰었는데요.”

    “뛰었다니…?”

    “뛰었다고요. 점― 프해서, 왔다고요.”

    “말, 말도 안 돼.”

    “요즘 AA등급들은 이 정도 다합디다.”

    이후로 함장은 나에게 ‘자네가 박살 낸 철문은 어떻게든 청구할 생각이네.’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아벨기우스 토벌 보상으로 얻은 1,000골드의 절반을 줄 테니 그것으로 더 좋은 철문으로 교체하라고 했더니만 입이 귀에 걸리는 함장.

    나머지 500은 태양 새 용병단의 고향 부흥을 위해 후원해줄 것을 생각했고, 다른 방법으로는 앞으로 창설하게 될 길드에 대한 자금 마련이었다고 위안한다.

    .

    .

    .

    기상천외한 등장으로 인해 약간의 자존심이 꺾여 있었던 이들은 식사를 위해 부유선 외부 테라스로 향했다. 외부 테라스에 배치된 거대한 식탁에 함께 앉아 식사했다.

    “아, 생각해보니. 아서 님은 마지막에 내리셔야 합니다.”

    “이상하군요. 경로상으로 서대륙이 첫 번째 아닙니까.”

    “아서 님이 탑승하지 않는 줄 알고. 이미 북대륙으로 노선이 바뀌었으니까요.”

    “흠… 상관없습니다. 그럴 줄 알고 저도 자가용을 불렀으니.”

    “하하. 웃기는 양반이군. 함선이라도 보유하고 있나 봅니다.”

    “아무쪼록… 10분 뒤에는 알아서 갈 겁니다.”

    “이런, 농담도 참. 식사 도중에 간다는 말입니까?”

    “예. 함께 식사하기에는 제가 너무 불편해서요.”

    토벌대장은 나의 철문 파괴 등장 이후로 자꾸만 시비를 걸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토벌대 인원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높여 부를 줄도 알고.

    나는 다시 묵묵히 동대륙 요리사들이 해오는 음식들을 음미하고 있었다. ‘적당히 먹을 만하네.’ 우리 여관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라는 칭호를 가지신 해골님들 덕에 입맛이 높아진 것이 문제다.

    “AA랭크 분은 내버려 두고, 하시던 드래곤 이야기나 하시지요.”

    “아, 그래서. 저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토벌대장님은 충분히 가능하실 겁니다. 워낙 용맹스러….”

    “어, 어…!”

    “토, 토벌대장님?”

    “저, 저게 도대체!”

    음식을 먹으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토벌대장은 거대한 풍압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느꼈다.

    구름을 뚫고 나타나는 형상. 그것을 마주하고는 온몸을 떨며 쥐었던 숟가락을 식탁에 떨어뜨린다.

    엄청난 풍압에 의해 토벌대원들은 자신의 얼굴을 팔로 가로막기 바빴고, 이내 그 풍압이 줄어들자 구름을 가차 없이 흩트렸던 거대한 무언가를 마주한다.

    그것은 분명 붉고 단단한 비늘을 뒤덮고 있는 ‘레드드래곤.’과 푸르고 단단한 비늘을 뒤덮고 있는 ‘블루드래곤’이었다.

    온갖 고함 섞인 목소리로 S랭크의 토벌대원들은 ‘이곳에 드래곤이 어떻게!’라는 소리만 운운할 뿐이었다.

    전투태세를 취하려고 했으나 거대한 용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피부가 주뼛해질 정도의 흉흉한 마력.

    이들의 전의를 상실시키는 데 충분하다.

    『 마스터, 저 왔어용! 』

    『 짐이 임자를 데리러 왔노라! 』

    『 아 진짜, 나 혼자 간다고 했잖아요. 아이리스. 』

    『 시끄럽다! 짐도 같이 가고 싶다 했지 않았는가! 』

    이들은 멍하니 내가 드래곤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혹시 저 용들이 말하는 ‘임자’와 ‘마스터’는 ‘저 AA랭크라는 말인가?’라며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한다.

    토벌대장은 나를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렌이랑 아이리스를 마주하더니 전투는 개뿔 아무것도 못 하는구먼.

    “어, 어떻게.”

    “말했잖습니까. 자가‘용’이 있다고.”

    * * *

    서대륙 나의 쉼터. 나의 여관으로 향하는 길, 아이리스와 렌의 뒤를 번갈아 가면서 ‘태워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꾸 잡아서 자기 등에 태우거나 하는 행동을 벌써 40번이나 넘게 반복한 가운데 1시간씩 번갈아 가면서 타기로 한다.

    『 마스터, 낮 부엉이로 마중 오라고 하다니. 무슨 일이세요? 』

    “그냥.”

    『 임자는 드래곤 등에 타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

    “잘나가는 자영업자니까.”

    “나 좋은 차 탑니다. 허세 한번 부려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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