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57화 (57/222)
  • 057화

    * * *

    [ 아벨기우스 섬의 상공 ]

    아벨기우스 섬 위. 북적해진 부유선 내부에서 토벌대 인원들은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 토벌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S랭크의 사내가 토벌대 인원들을 차례대로 호명하며 인원 파악을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AA랭크 모험가, 아서 님.”

    “네, 준비 끝났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직결 루트’라는 것은 의뢰 내용보다 랭크가 높은 모험가들을 집결시켜 해결하는 것. 다르게 표현한다면 절체절명의 순간을 해결해줄 데우스 엑스 마키나들이 투입되는 현장을 얘기한다.

    물론 일 자체가 신속하게 끝나고 좋긴 하다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란 예외였다. 굳이 AA랭크라며 언급이 된 이후, 엄숙한 분위기 속에 문외한이 된 기분이다.

    ‘간달프 같은 강자들 사이에 도비가 끼어있는 격인가.’

    노력해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도륙을 내주마.’라고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는 힘을 풀어 아벨기우스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 렌이 말하는 나의 ‘쓱싹’은 없을 거라는 말이다.

    토벌대 대장은 모든 인원 파악이 끝나자 총총걸음으로 기관실에 이동하여 하강 허가를 받고, 후방에 있던 거대한 철문이 내려앉더니 강력한 풍압과 동시에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하강 준비를 위해 부유선 아래에 있는 용암이 들끓는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착지 기술이 없는데. 당황한 기색이 가득 담긴 나를 향해, 경멸을 가득 담은 9명의 표정.

    “…*&@#* 되기 싫으면, 빨리 내려요.”

    “아, 네 죄송합니다.”

    “어차피 제가 안정적으로 착지할 수 있게 해드릴 겁니다.”

    *&@#*, 태어나서 이런 욕을 처음 들었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육두문자였다. 좋은 말로 할 때 조용히 떨어지는 것이 저 녀석을 위해서 좋을 듯하다. 이미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너, 선 넘었어, 지금!’

    ‘확 그냥 하델의 마안으로 용암이고 뭐고 통째로 날려버리자.’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다. 왜냐면 나도 좋아서 AA등급을 달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닐뿐더러, 솔직히 B등급이라도 엄청난 베테랑이라는 소리를 듣는 가운데.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나머지 9명의 S등급들은 저 멀리서 나를 주제로 한 이야기들로 웃음꽃, 아니 웃음꽃밭을 만들어 냈다. 나만 다른 세상이구나. 고유결계 수준이구먼.

    나를 포함한 열 명의 토벌대 인원은 ‘아벨기우스 섬’의 허공으로부터 떨어진다.

    하강이라는 개념을 오랜만에 하게 되어 그런 것인지 얼굴에 느껴지는 맞바람이 무릇 어색하게 받아들여졌다.

    S랭크 중, 중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마법사 여인. 떨어지는 이들이 안전하게 지면에 닿을 수 있도록 마법을 사용했다. 태클이긴 한데 왜 나한테는 그 보랏빛의 마법진이 적용되지 않는 건데.

    그러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에 도착하는 9명의 S랭크들, 왜 나만 ‘쾅’ 하고 지면에 닿는 건데?!

    ‘너무하네. 내가 아니었으면 살아남지 못했다고.’

    용암 밭 주변에서 바지를 털고 일어난다. 그런 나를 기다리는 아홉 명.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조우했던 대절망들. 그것이 인간을 내려다보는 표정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경멸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윽!”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버린다.

    너희들 때문에 긴장한 나머지 넘어진 것뿐이잖아. 왜 다들 불쾌한 골짜기라도 본 것마냥 처참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건데!

    내가 이런 캐릭터였던가. 탄성을 운운한다. 전투태세를 갖추고는 아벨기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저기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마시고요.”

    “아, 예….”

    내 어깨를 일부러 강하게 부딪쳐 지나가는 S랭크의 말씀되시겠다.

    처음과 달리 신경 쓰지 않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나는 피곤한 존재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 AA랭크로 지정된 ‘아서’의 실력이나 능력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거지.

    공짜로 돈을 버는 것이라면 사양하지 않는다만, 정말 내가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일까, 그래도 S랭크의 영웅급이 집합한 10인 토벌대. 그러한 현장이라면 저 아벨기우스라는 녀석이 제법 강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어차피 먼치킨이 아홉 명이나 모여 있는데, 뭔들 못하겠니. 오늘은 공짜로 벌어가고, 편안하게 아벨기우스 섬의 관광이나 왔다는 생각으로 길드 마스터 권한을 얻어가자.

    “아벨기우스 발견!”

    “토벌대장님 바로 토벌 들어가시죠.”

    “전원 전투 준비하세요!”

    아벨기우스가 보였다. 거대한 몸집의 거인 형상, 자기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날개 한 쌍을 달고 있었다. 그 육중한 몸을 가지고 용암에서 반신욕을 하는 느낌이다. 풀린 눈은 녀석이 혼미한 상태임을 말해준다.

    ‘저 사람은 또 뭐야.’

    그 왼편. 자신의 몸집보다 거대한 아벨기우스의 손가락을 무작정 검으로 후려치던 신원불명의 사내가 포착된다. 아무래도 아벨기우스를 깨운 근원인 듯했다. 그러니까 그 뭣이냐, 동대륙 어느 제국의 모험가로 인하여 잠에서 반쯤 깨어버리게 만든 놈.

    “아벨기우스 옆에 사람이 있어요, 구해야 합니다!”

    “시끄러워요, 토벌이 우선이니까.”

    “허.”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 사내는 별안간 눈이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동안 이 녀석을 때려잡기 위해 저 무른 검으로 공격한 것 같다. 나는 녀석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간다.

    ‘이봐, 아벨기우스는 네가 때렸는지도 몰랐을 거라고.’

    그렇게 쓰러진 모험가에게 포션을 먹이려 들었지만, 체력이 회복되지 않는 걸 보아하니 상태가 좋다고 말하긴 글렀다. 이것은 단순한 체력고갈의 문제가 아녔다.

    ‘이 검은 반점은 뭐지?’

    ‘잠시만, 이건 저주의 흔적이잖아.’

    녀석은 아무래도 아벨기우스의 저주로 인해 지속적인 충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어서 빨리 아벨기우스를 공략하지 않으면 이 저주가 지속해서 모험가의 몸을 갉아 먹고 말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홉 명의 먼치킨들이 아벨기우스의 공략을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온갖 잡다한 말도 안 되는 개사기 같은 기술들이 난무하며 아벨기우스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그 굉음만 들어도 알 듯했다. 가엽구나.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성질 고약한 S랭크들에는 악당보단 일당이란다.

    웅장한 날개의 절반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것만 보아도…. 그래, 아벨기우스 입장에서는 저 아홉 명이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다. S랭크들은 조금도 봐주는 게 없다.

    아벨기우스가 조금씩 휘청거리더니 달려드는 S랭크들을 뿌리치고 발악을 시작했다. 체급으로 비교하면 인간 1명 VS 파리 9마리였는데, 아벨기우스에게 이 파리 아홉 마리는 벅찬 듯하다.

    “여러분, 마지막 페이즈예요!”

    “조금만 더 집중합시다!”

    “스위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보세요, 스위치라뇨 그냥 좋을 대로 패고 있는데 무슨 스위칩니까.

    화염으로 둘린 섬에 굵직한 비가 강렬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먼지 털듯 맞아본 적 있어?’ 아홉 명의 S랭크들은 사정없이 아벨기우스를 후리고 있었다.

    ‘아벨기우스의 최후의 발악’은 무슨. 여관 주인아, 저건 그냥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거란다.

    “조심해야… 합니다.”

    “상처가 깊으니, 움직이지 마세요.”

    “피해야… 합니다.”

    얼굴이 빨간색이라고 착각할 만큼 자신의 피로 뒤덮인 모험가. 그가 쉬어버린 목소리로 처음 내뱉은 소리였다.

    다리도 침식, 팔도 침식. 온몸이 저주에 침식된 상태에서 자꾸만 일어나려는 모험가. 무엇이 녀석을 이렇게까지 만든 것인가, 살아남는다면 다행이겠지만 마인드가 훌륭하구나.

    나는 녀석의 상체를 일으켜, 성질 고약한 S랭크들이 아벨기우스를 맛깔나게 패는 모습을 구경시켜 준다.

    그러나 분명 이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보통 랭크 9명이 사정없이 공격한다면야. 지금쯤 본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인 아벨기우스 현장 따위는 진작 종료로 이어져야 할 터.

    비단 영웅이라 불려도 못지않을 S랭크들이 지쳐가는 모습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찾아온다. 그래도 내가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고약한 S랭크들아.

    아벨기우스를 반쯤 깨워버린 망할 모험가를 살린 다음이었다. 별안간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든다.

    이 차갑고 예측이 어려운 섬뜩함이란, 내가 여러 번의 부활을 통해 간신히 무찔렀던 대절망들의 ‘예상하기 어려운 패턴의 공격’에서 느꼈던 것과 같다.

    강렬한 빛이 눈앞에 번지고, 시야가 가려지니 아홉 명의 먼치킨들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서로에게 자신의 공격을 명중시킨다. 그러니까 이름이 복잡하고 최대한 멋진 무언가를 명중시킨다.

    “이래서, 초짜들이 문제라고.”

    거대하고 날카로운 풍압이 아벨기우스 전방으로 퍼져나가더니 S랭크의 영웅들은 벽에 퍼즐 맞추기 놀이처럼 무자비하게 하나, 둘 꽂힌다.

    그래, 다들 그놈의 등급 타령을 하는데 전원 영웅이라 불리는 망할 S랭크들이니 전투 방법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었다만, 개판 5분 전이라는 말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아닐까 싶다.

    ‘경험은 없는데, 유전적인 요소가 이들을 S랭크로 만들었나 보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토벌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자신의 강함을 너무 믿고 심각하게 설친다는 점이었다. 지금 여기서 보여주는 장면이 ‘경험이 부족한 상위 랭크가 왜 똥이라고 불리는가?’라는 예로 아주 적합하다.

    눈앞을 볼 수 없다는 것. 고작 그것 하나로 공략에 균열을 가게 했다. 이를테면 나는 눈을 포기하면서 발레포르를 꺾었다. 물론 내 능력이 사기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그건 제외.

    먼치킨계의 원효대사 썩은 물 같은 나의 관점으로서 이 파티가 절망을 토하는 구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가정을 내려 본다.

    분명 이들에게 부활이라는 개념과 거리감이 적은 나와 똑같다는 예시를 주어도, 구멍 안에서 수만 번은 죽었다 깨어나야 할 것이다.

    * * *

    아벨기우스 공략에 간신히 성공한 아홉 명의 S랭크들은 ‘어째서 평소보다 우리가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우리가 S랭크이기 때문이죠. 하하.’라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것을 보라. 도저히 보다 못한 내가 마안의 뭉치를 개안하여 이들에게 평소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도록 몰래 도와준 것인데… 자만에 흠뻑 젖어있는 이들은 일명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이러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허언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말지.’

    나는 희미한 동공으로 잿빛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험가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저주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반점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분, 이 모험가에게 적용된 저주가 풀리지 않아요.”

    “예? 그냥 놔둬요.”

    “뭐, 뭐라고 하셨나요.”

    “그냥 죽게 놔두라고요. 어차피 그 사람 때문에 아벨기우스가 깨어난 거잖아. 다들 굳이 귀찮게 이 모험가를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까?”

    “아… 그래도.”

    그들은 거의 다 죽어가는 모험가를 보고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내 자신이 어떻게 아벨기우스를 공략했는지 영웅담을 만들어 내며. 상공에 있는 부유선으로 가기 위해 등을 돌린다.

    심지어 ‘그냥 나눠요.’라고 이야기했던 S랭크의 모험가는 내 여관 단골 ‘레니’와 같은 성질의 마법사였다. 그러니까 힐러였다.

    일반적인 등급의 모험가들과 S랭크인 이들이 능력 차이가 크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무엇이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우리 여관에 찾아왔던 잡배와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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