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화
* * *
“불가시의 장막(Invisibility Curtain)을 걷어내겠다.”
[ 고유 차원으로부터 연결 : 대상을 카테고리 EX로 지정 ]
“마안의 뭉치(Bundle of Magical Eyes)를 개안한다.”
[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안들의 묶음을 해당 장기(눈)에 결속 ]
“시야에 포착된 마법을 제거하기 위한 마안을 결속한다.”
[ 피해 카테고리 지정 : 제압 / 파괴 / 침묵 ]
“내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침묵시켜야겠지.”
[ 해당 마법을 ‘침묵’시키기 위해 ‘EX랭크 : 리카일의 불꽃’ 결속 ]
과거, 절망을 토하는 구멍 속, 마안을 응용한 수많은 전투. 곧 기억을 되짚는다. ‘하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리카일의 불꽃’, 여타 마안들과 달리 초월적인 힘을 내는 마안이었다.
토악질이 날 정도로 시야를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숫자의 절망 군단. 눈살을 찌푸리며 적어도 3번은 죽어야겠다고 기껏 각오했는데, 리카일은 이런 내 고충을 이해했던 것인지 녀석들을 일말의 아우성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소멸시켜버렸다.
원소 상성은 개나 줘버리는 ‘하델의 마안’과 동급이라고 부를 수 있는 ‘리카일의 불꽃’, 불이라고 간주하여지는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모조리 빨아 당기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화마의 기둥 따위가 최상급 마법이라고 불려도, 인간의 것이 아닌 기적 앞에서는 스치는 바람에 불과하다.
“여기서 대부분 나오는 대사는….”
“잘 먹겠습니다. 같은 느낌인가.”
의식을 따라 눈앞에 생성되는 황금빛의 기운은 별안간 마법 술식의 모양을 흉내 낸다. 모든 술식이 허공에 갖추어진다. 성스러운 빛과 함께 그 속에는 ‘리카일의 화염’이 자리했을 것이다.
마법 서클 전방에 있는 화마의 기둥 불꽃이 빠르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와 모든 마력은 온전히 본래의 주인으로 되돌아간다.
흡수하는 동시에 일어나는 풍압에 시험관들을 포함한 수험생들은 자신의 팔로 얼굴을 가리기 바빴고, 계속해서 리카일의 불꽃은 화마의 불꽃을 잡아먹는다.
시험관 여럿이 붙어 화마의 기둥에 마력 공급을 하고 있었으나, 어림도 없지. ‘화염’은 다시 자신의 불꽃을 회수할 뿐이었다.
강력한 마력 유동에 의해 하거먼 필스의 아티펙트도 과부하를 일으키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내 완전히 파손되어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한화로 5억 정도의 가치가 소멸해버린 것.
“이, 이… 무슨.”
이 무대는 단지 ‘하거먼 필스’를 위한 무대였으나, 너무 스케일을 크게 잡았던 탓인지 지켜보고 있던 전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험관은 눈앞에 화마의 기둥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탓에 급작스럽게 공허가 들어선 콜로세움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시험관님 통과입니까?”
“네? 네… 통, 통과입니다만….”
시험관은 40번 수험생이 ‘무언가’를 발현시켰을 때. 거센 풍압을 버티며 얼굴을 가린 양손 사이 또렷하게 보았던 것이 있었다. ‘저건, 마법이 아니야….’라고.
술식으로 지정되는 마법은 마법 서클이 생성되는데 그 속에 가끔 문장으로 이어진 글자들은 ‘고대어’나 ‘아칸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40번 수험생이 발현했던 것의 마법 서클로 간주하는 ‘무엇’의 글자는 ‘고대어’도 아닐뿐더러 ‘아칸어’는 더더욱 아니었다.
시험관은 의문점을 품은 가운데 어디선가 보았던 글자라며 혼잣말을 한다. 그가 어릴 적 우연히 발견한 ‘창세계’라는 신묘한 서적의 글자와 동일하다는 것.
‘저것은 분명 창조의 글자임이 틀림없다.’
* * *
[ 델타 : 제국 기사 교육대 콜로세움 ]
길드 관리기관 측의 마차를 타고 제국 기사 교육대로 도착하기까지 하거먼 필스를 포함한 그의 동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명은 족히 탈 수 있는 거대한 마차 2대로 이동했고 기구하게도 녀석과 나는 한 마차에 탑승했기 때문이었다.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군, 너무 겁을 줘버렸나.’
실기시험 두 번째 과목은 1대1 전투 평가였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멍한 표정의 1차 실기시험의 시험관들과 마주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두 번째 실기시험의 시험관들은 제국 기사 교육대의 교관들이었다. 40명의 교관이 콜로세움에 자리하고 있었고, 수험생들에게 지급되는 무기 중 자신이 가장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고르도록 했다.
제국 기사 교육대의 콜로세움 형태는 특이했는데, 거대한 콜로세움 내부로 들어서면 20개의 작은 콜로세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콜로세움 안에 콜로세움이다.
나는 적당히 과거에 가장 많이 사용했던, 어떻게 보면 내 손과 다를 것이 없었던 검을 한 자루 쥐고는 지정된 콜로세움 내부로 들어섰다.
과거에 검을 사용했다고 언급했었는데, 단순히 마안만 사용해서 다크판타지의 엔딩을 본 것이 아니라 엄연히 검과 함께한 전사라는 것을 잊지 말자.
마안은 그저 내게 특성일 뿐이었다. 더욱이나 내가 검사라는 것을 알려주는 ‘마검의 뭉치’ 또한 ‘마안의 뭉치’처럼 본래 나의 것이었다. 사정이 있어 떨어져 있는 중이니까. 어차피 다시 만날 필요도 없겠지만.
“당신이 40번 수험생입니까.”
콜로세움 내부에 들어서 있는 20개의 콜로세움도 ‘작다’라고 표현을 하긴 했지만, 둘이서 1대1 결투를 벌이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고, 그런 식으로 표현하자면 ‘넓다’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크다고 알려진 ‘브라운 아저씨’도 불가능할 법한데, 200m 이상의 콜로세움 끝자락에 있는 나.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시험관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이 들려왔다.
큰소리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기에는 부끄러우니까, 재빨리 뛰어가 그 목소리의 원천을 눈에 담는다.
“당신은, 란베르크?”
고속검의 란베르크였다.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과거 ‘란베르크의 고속검’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었다.
기억하는가, 그때는 몹쓸 인성을 가진 테이머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비유했는데, 그 고속검술의 주인 란베르크의 실체가 눈앞에 있다.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오호라, 제대로 하면 상대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시험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호오.”
눈살을 찌푸리며 히죽 웃고 있는 란베르크 교관은 재미있겠다는 표정과 함께 옆구리에 차고 있던 길고 가느다란 레이피어를 뽑아 든다.
“두 번째 실기시험 통과기준은 시험관이 정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40번 수험생은, 이 교관에게 유효타를 적중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험의 통과기준입니다. 이의 있습니까?”
“이의는 대단히 많은데, 결코 물러줄 것 같지는 않네요.”
“그렇다면 수긍의 의미로 받아들이지요.”
그냥저냥 느슨하게 쥐거나, 바닥에 끌거나 했던 검을 란베르크에게 겨눈다. 내가 전투태세를 갖추자 가느다란 란베르크의 레이피어가 빛을 받고는, 별안간 시야에서 사라진다.
―치잉!
손가락으로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의 레이피어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한 격에는 어림도 없는지 강력한 철 음성만 콜로세움 내부를 울렸다.
당연히 란베르크도 나를 진짜로 찌를 생각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유효타에 가까운 범위 내로 공격을 시도했을 터, 그 공격을 당연한 듯이 막아내는 나를 보며 동공이 커진다.
“당신 뭡니까?”
“저는… 여관 주인입니다만.”
“여관 주인이 나도 모르는 고속검의 파훼법을 안답니까?”
“교관님. 공격 한 번밖에 안 했잖아요.”
“귀찮아서 빨리 끝내고 퇴근하려 했다고요.”
“그 말씀은 곧 진심을 담은 공격이었다는 소리겠네요.”
“물론 ‘죽일’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이내 시야에서 또다시 사라지는 란베르크, 속도가 굉장하다. 패시브로 갖추고 있는 마안이 없었더라면 쉽게 따라가지 못했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전신을 속도로 무장한 날카로운 검. 란베르크 자체를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관이 움직이는 중에는 콜로세움 바닥에 있는 모래들이 흩어지거나 튀어 올랐다. 얼굴에 지속해서 튕기는 모래알 때문에 따가움이 느껴진다.
“와, 눈 한번 안 감네.”
“거깁니까.”
―칭!
―치잉――칭!
“와, 다 막았어.”
“생각보다 빠르진 않은데요.”
“뭐, 뭐라고요?”
“생각보다 빠르진 않다고요.”
“40번 수험생… 방금 교관의 역린을 건들었어요.”
“재밌겠네요.”
“다음은 ‘죽일’ 진심으로 들어갑니다.”
“저도 ‘죽을’ 진심으로 막아 보죠. 뭐.”
―칭!
―치――잉!
―칭, 치잉――치――징!
‘란베르크’ S랭크 이상의 전투 능력을 지닌 델타 제국 기사단 최강 중 한 명이었다. 이 사내로 말할 것 같으면, 음… 그러니까 내가 읽어본 마법 기사에 발췌된 것을 토대로 이야기해보겠다.
녀석은 전 대륙 최강의 검사로 알려진 인물 중 하나. 하물며 7인의 영웅 중 ‘베르히만’의 검술까지 구사할 줄 아는 천재라 주목받는 존재.
작년까지 ‘왕실기사단’에서 큰 역할을 맡았는데. 자기 성격에 이기지 못해 ‘왕실기사단장’을 무능하다며 욕했다가 좌천을 당해 제국 기사 교육대로 발령받은 것이었다.
성격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녀석은 천재인 만큼 상당한 자기애와 자신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 이를테면 아이리스와 동급이다.
“…인정할 수 없지만, 인정해야겠습니다.”
“뭐를요.”
“제국 최강의 검사가 고작 여관 주인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저는 아직 공격도 하지 않았는데요.”
“애당초 당신은 제대로 하지 않았잖아.”
“확실히 보는 눈은 있나 보네….”
란베르크는 자신을 무너지게 만든 나를 보며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현 상황에 대해 빠른 인정을 하고 있었다.
표현했던 것처럼 손가락으로도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레이피어를 다시금 허리에 차는 그였다. 이와 동시에 한숨을 쉬며 내게 묻는다.
“일개 여관 주인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용사의 쉼터로 오세요. 여관 주인이라는 걸 보여드리지.”
“그럼 세상 여관 주인들이 전부 소드마스터냐고요!”
“그, 그건 아니지만. 교관님 지금 너무 흥분했네요.”
“흥분을 안 하게 생겼습니까? 내 무패 신화를 당신이 방금 깨뜨렸는데!”
“교관님 세상에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 많답니다.”
“그도 그럴 게 눈앞에 여관 주인을 보니 납득이 가긴 하네요. 망할!”
고개를 돌려 콜로세움 밖으로 이동하는 란베르크. 온갖 육두문자를 뱉거나, 온갖 성을 내며 걸어간다. 하지만 아직 시험 통과의 기준 ‘교관에게 유효타를 적중시킬 것.’을 수행하지 못했는데.
“교관님, 저 아직 유효타 적중 못 시켰는데요!”
“젠장… 시험 통과라고요. 통과!”
“하지만 유효타….”
“내 검이 곧 내 몸입니다. 통과라고요!”
이미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성이 가득 찬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란베르크의 반응이 웃긴 나머지 피식하고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어, 뭐야.”
뺨에 미세한 생채기가 있다. 미세하지만 란베르크가 공격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처였다.
“이런… 확실히 대단한 녀석이긴 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