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화
* * *
『 길드 마스터 실기시험 / 유의사항 』
◈ 길드 마스터 능력실기시험 09:00까지 길드 관리기관 콜로세움에 입장하여, 시험 관련 유의사항을 전달받는다.
◈ 실기는 2가지 과목으로 진행되며, 본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은 감독관의 본인 확인 절차에 따라야 한다.
◈ 배치된 시험관의 철저한 관리 및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마법이 적용되어 있으니 혹여 적발되는 수험생은 즉시 퇴장 조치.
* * *
‘필기시험은 가뿐히 통과할 것 같아요.’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관 내부에 들어선 내가 처음 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프리실라가 들었을 때부터 확정되지도 않은 ‘길드 창설’에 기대감을 품고는 곧바로 길드 건물에 대한 건축 준비를 진행했다.
이어서 가게 단골손님들도 ‘아서는 못하는 게 없군.’ ‘암, 생각해보면 우리가 공부하라고 그렇게 타일렀으니 당연한 결과야.’라며 떠들썩해지고 말았다.
이후에는 프리실라의 조언을 통해 10일가량 실기시험을 준비했다. 실기시험은 2가지 과목으로, 첫 번째 ‘광역범위의 피해 최소화’ 두 번째 ‘1대1 기본전투력’이 있다.
마지막 종합시험을 제외하고 나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구술로 프리실라의 설명을 들으며 필기시험처럼 가뿐히 통과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 델타 제국 : 길드 관리기관 콜로세움 ]
필기시험과 다를 것 없이 40명에 가까운 인원이 길드 관리기관 내부에 있는 콜로세움에 모이기 시작했다. 시험장 내부에서 옵저버 아티펙트를 사용하여 부정행위를 저질렀던 귀족의 자녀도 보인다.
이름까지는 알 필요가 없을 듯하여, ‘부정을 달고 다니는 남자’ 정도로 기억했는데, 귀족이라고 해서 특별히 명문가는 아닌 듯했다.
옵저버 아티펙트의 마력 유동을 추적하다 보면 분명 저 인간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쯤은 쉽게 간파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렇지 않은 듯이 콜로세움 내부에서 표독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아, 이 또한 돈으로 해결하지 않았나 싶다.
“실기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필기시험의 시험관들과는 다른 시험관들이 콜로세움 내부로 들어왔다. 콜로세움은 일전에 해골 녀석들이 요리 경연 대회를 치렀던 콜로세움보다 크기가 작은 편이었지만 ‘그것’을 하는데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것’은 실기시험을 뜻하는 것인데, 첫 번째 실기시험인 ‘광역범위의 피해 최소화’에 대한 평가였다. 주제만 보았을 때는 마법사들이 치르는 시험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마의 기둥.”
“오, 오….”
“굉장해.”
실기시험을 맡는 시험관들이 필기시험을 맡았던 시험관들과 다른 이유는 다름 아닌 ‘마법사’냐 아니냐의 차이인 듯해 보였다.
화마의 기둥은 광역범위를 자랑하는 ‘염계 상위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 정도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법에 특화된 시험관을 배치했을 것.
붉은 화염이 콜로세움 반을 가득 채우며, 여러 시험관을 포함한 수험생들은 타오르는 불꽃 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닥타닥 공기를 태워 가며 허공을 찢는 거대한 기둥은 ‘광역’이라는 말이 부단히 어울린다.
“1번 수험생은 나와 주십시오.”
부정을 달고 다니는 남자의 이름은 ‘하거먼 필스’이었다. 금발의 깔끔한 인상을 지녔지만, 자세히 보았을 때 표독스러운 느낌이 다분하다.
‘하거먼 가문’은 귀족 중 특출하다고 불리는 명문가는 아니었으나 그의 아버지 ‘하거먼 로이‘가 상당한 부호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까짓 별거 아니지. 후후.”
손날로 자신의 앞머리를 날리더니 재수 없는 소리를 하며 화마의 기둥 앞에 선다. 뒤에서 확 밀어버릴까 보다.
시험관이 처음 화마의 기둥을 콜로세움에 출력할 때. 녀석은 분명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화마의 기둥 앞에 서 있는 하거먼 필스의 겉모습만 볼 때 ‘저 녀석이 무슨 수로 화마의 기둥을 억제한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헛디뎠다가 화마의 기둥에 재가 될 것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니 필기시험 때는 보지 못했던 상당한 아티펙트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황금심안은 S랭크의 아티펙트도 아니라는 듯, 최상급 가락지를 손가락에 끼고 있네.
과연 부정행위를 멈추지 않는 녀석의 태도를 보며 당장이라도 ‘아티펙트를 사용해도 되는 부분입니까?’라고 시험관에게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넘어가기로 한다. 그 정도까지 불평자는 아니니까.
하거먼 필스는 화마의 기둥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히죽 웃으며 온몸에 두르고 있는 가지각색의 아티펙트들을 반응하게 했다.
“오오, 대단하잖아!”
“엄청난 마력 유동이 느껴져!”
이를 지켜보던 수험생들은 정말 A랭크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이 특별히 대단한 능력으로 A랭크를 갖춘 자들이 아니라, 귀족 자녀들을 제외한 모험가들은 이들의 반응을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다.
시험관도 뻔히 알고 있는 부분일 텐데,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걸 보아 사실상 아티펙트 사용 유무에 대한 규칙도 없었으니 그냥저냥 넘어가려는 듯했다.
“다들 잘 보라고… 흐앗!”
각종 아티펙트들의 역할은 다양한 듯했다. 왼쪽 손에 착용한 팔찌는 마력을 강제적으로 끌어다 주는 것 같고, 손가락에 위치한 다양한 반지들은 마력 유동을 제어해주거나 원소 변환 과정에서 연산 도움을 주는 듯했다.
하거먼 필스의 양손에 푸른 마력이 모여 에너지 응축체가 완성된다. 이후 지켜보고 있던 수험생들을 보며 히죽 웃은 뒤, 전방에 있는 화마의 기둥에 마력을 퍼뜨린다.
“화마의 기둥 화력이 약해졌어!”
“눈에 띌 정도라니, 필스는 역시 대단해!”
육안으로도 판별을 할 수 있을 만큼, 출제된 마법의 화력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었으나 완전히 무력화시키지는 못했다.
광역마법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시험이니 사실 저 정도면 만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화마의 기둥을 무력화하거나 온전히 침묵시키려면 더욱 강력한 상성 마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도 대단한 템빨이네… 따지고 보면 내 능력의 하위개념이잖아.’
지켜보고 있던 ‘귀족 수험생’들은 이를 향해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그도 그럴 게 화마의 기둥이라는 마법 자체가 아무개나 부릴 수 있는 술식도 아니었고, 그 마법의 화력을 낮추게 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충분히 손뼉을 칠만한 것이었다.
“후, 머리가 아프군. 시험관 그래서 나는 통과인가?”
“그렇습니다.”
“별것 없지. 하하!”
“다음 실기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시험관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았다. 하거먼 가문이 델타의 고위직 관료들과 친분이 있는 나머지 반말을 하는 필스에게 으름장을 놓을 수도 없는 것 같았다. 저 시험관은 이를테면 모가지를 피하는 중이다.
화마의 기둥으로부터 멀어지며,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는 하거먼 필스. 주변에 동료로 추측되는 귀족 수험생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돌아온다. 그 와중에도 근거 없는 자신감은 여전했다.
‘흠, 스스로 한계점을 정해버렸으니.’
S급 이상의 아티펙트가 분명히 뛰어나고 훌륭한 물건이라는 것은 명실상부. 그러나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의 한계점을 만들어버리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인데.
저렇게 가지각색 다양한 도움을 주는 아티펙트를 남발하며 사용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크다. 그와 관련된 마력 신경계가 굳어져서 성장이 더디어지거나 멈출지도 모르고.
“어쨌든 후회는 자신의 몫이니까.”
“네 녀석 뭐라고 했지?”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했을 뿐이에요.”
“너, 필기시험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혹시, 무슨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네놈이 내 황금심안…. 아니지, 쳇.”
“제대로 듣질 못했네요. 뭐라고 했나요.”
“별 재주도 없어 보이는 게, 귀도 먹었나 보군.”
주변 동료들과 함께 나를 비웃더니만 시험을 치를 수험생 뒤로 이동하여 수험생들을 지켜본다. 귀족이 아닌 이름 모를 수험생들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신경 쓰지 마.’라며 나지막이 말해주고는 자신들의 시험을 치른다.
‘딱히 신경도 안 쓰는데.’
이들은 콜로세움 중앙에 매서운 열기를 내뿜는 화마를 무난하게 약화했다. 하물며 단 하나의 아티펙트도 없이 본연이 가진 능력과 마법을 동원해 화마의 불길을 줄였다. 이를 지켜보던 시험관도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기에 십상이었고.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귀족 나리는 시험관에게 대뜸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내가 시험을 쳤을 때와 다르게 마력 공급을 약하게 하는 거지!’라고.
그러나 시험관은 ‘똑같이 마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라고 반문을 했고, 이어서 조용히 들려오는 ‘오히려 당신이 시험을 칠 때는 마력 공급을 하지도 않았다고요.’라는 소리를 들은 수험생들은 조용히 웃었다.
여전히 심술이 가득 찬 하거먼 필스. 발을 동동 구르며 그러지 않아도 얄밉게 생긴 얼굴을 더욱더 얄밉게 만들고는 성질을 낸다.
“제기랄, 제기랄….”
“필스, 저 불꽃은 원래 오랫동안 유지되는 거냐?”
“시험관들이 마력을 공급해주니까. …가만있어 보자.”
“필스?”
“재밌는 게 떠올랐다고. 저 녀석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야겠어.”
화마의 기둥은 나머지 몇몇 시험관들이 마력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시험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는 듯했다.
그러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불꽃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시험관을 포함한 수험생들은 땀에 젖어 피곤함을 느낀다.
“다음 40번 수험생 나와 주십시오.”
“네.”
하거먼 필스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화마의 기둥 앞에 선 나를 보며 비웃기 바빴다. 시험관은 참다못해 이들에게 시험 중에 과도한 잡담은 금물이라며 결국 으름장을 놓았고.
나를 위한 으름장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직책에 대한 아주 형식적인 것, 다시금 으름장을 놓던 시험관과 주변에 마력을 공급하던 시험관은 화마의 기둥에 집중했다.
히죽거리며 웃기 바쁜 귀족 나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더니, 아무래도 꿍꿍이가 있는 듯하다.
귀족 나리가 몸에 두르고 있던 각종의 아티펙트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챘는데, 아니나 다를까 화마의 기둥이 전과는 다른 마력 파장을 내뿜는다.
‘정말 귀찮은 짓을 골라서 하는구나.’
‘싸게, 싸게 떨어지고 다음 분기 시험이나 보시지.’라는 표정. 그와 관련되지 않은 수험생들도 이를 보며 혀를 찬다.
진즉 뇌물이라도 받아먹었는지 으름장을 놓던 시험관과는 다르게 마력 공급을 하던 시험관들은 전보다 더 많은 마력을 주입하고 있는 듯했다.
이를 지켜보던, 정당한 응시자들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하거먼 가문은 앞으로 무조건 걸러야겠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놈의 필기시험… 옵저버 아티펙트를 사용한 부정행위를 발각당한 것이 그렇게도 자존심이 상했을까. 미운털이라도 박힌 것인지 녀석은 나를 어떻게든 웃음거리로 만들 작정이었다.
‘하는 짓 하고는… 용들 밥으로 줄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