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50화 (50/222)

050화

* * *

우두커니, 그녀는 쓰러져 있는 큰 바위 앞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전투를 끝낸 그녀의 근육이 산발적으로 경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마력을 필사적으로 사용했던 격한 전투 이후, 찾아오는 신체적 보상 효과인 듯했다.

프리실라는 지속적인 근육의 이완수축으로부터 고통을 호소하다가, 이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거대한 무기를 칼집에 집어넣는다.

얼굴에 피가 잔뜩 튀어서 그런지 무자비한 혈투를 벌인 광전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아서, 끝났네.”

“피부터 닦고 얘기하시죠.”

“이 마석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제가 한번 살펴볼게요.”

잘려 나간 큰 바위의 목 뒤로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의 마석을 추출했다. 내가 해골들에 심어준 마석보다 크기가 큰 편에 속했는데.

마석의 크기로 모든 성능을 판단할 수 없지만, 크다는 자체만으로도 필요한 마력 양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었고.

흑색의 마석, ‘저주 계열’의 마석인 것은 틀림없으나,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육체와 이어지는 마력 신경을 분석했을 때, 시전자의 마력을 지속해서 갉아먹으며 신체적인 능력을 대폭 강화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망가져 버렸으니, 회수할 수도 없고.”

“그럼 그냥 버리는 것인가.”

“혹시 모르니….”

나는 바닥에 마석을 두고 신발로 강하게 밟았다. ‘파직’이라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튀기며 보라색 마석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된다.

“하하, 가차 없군.”

“아아… 가치가 없어서.”

“자, 그럼 연금술사를 구하러 가볼까.”

“돌아가면, 케피탄 맥주 드릴게요.”

“그것참 흥분되는군그래!”

요즘은 여관에 있는 일보다, 밖에서 남들 돕는 것에 시간을 할애 중인 여관 주인장, 이번 프리실라의 ‘도움 요청!’을 끝내고 나면, 여관의 안락한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을 즐길 것이다.

사실 모르겠다. 요즘 용사의 쉼터도 매출 증대로 인해 어지간히 바쁜 것이 아니라서, 길드 마스터의 권한을 얻고 의뢰 게시판까지 설치한다면 다른 모험가들의 유입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장사가 잘되면 좋지만, 이대로 가다간 또다시 손님들을 위해 영겁의 연주를 해야만 하는 바드의 손가락이 남아돌지 않고 말 것이다.

웬만한 전사와 견주어도 문제없을 웨라 씨의 손가락 굳은살을 굵게 만들 수는 없다.

“프리실라, 제가 길드를 설립하면 부탁이 하나 있어요.”

“무엇이든 들어주도록 하지.”

“의뢰 게시판이 생기면 분명 고객들이 늘어날 테죠.”

“아주 좋은 일이지, 암.”

“문제는 부족한 직원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제 휘하에 있는 단원들은 가끔 여관 일도 함께….”

“문제없네. 나도 렌처럼 유니폼을 입으면 되는가!”

“꽤 빠른 수긍이네요, 그런 거 싫어하실 줄 알았는데.”

“하하, 은인을 위해서라면 광대라도 되어줄 수 있어.”

나는 프리실라에게 용병의 직업을 내려놓고 용사의 쉼터 직원이 되는 것이 어떠냐며 자주 물어왔다. 그녀는 늘 ‘그런 것은 내게 맞지 않아.’라며 같은 대답을 했었는데.

지금의 경우 나를 통해 그나마 소생 가능성이 있는 ‘태양 새의 용병단,’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듯했다.

프리실라와 나는 거대한 크기의 거친 바위 사이로 자리를 잡고 있는 ‘움막’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손목과 발목이 밧줄로 묶여 땅바닥에 기절해 있던 연금술사를 발견했고, 프리실라는 허리춤에 걸려있던 단검을 꺼내어 포박을 풀어준다.

“기절을 해버렸군.”

“눈을 뜬 채로 기절해 있네요.”

“마력 고갈?”

“그냥, 피곤해서 기절한 듯합니다.”

프리실라에게 천천히 연금술사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린 후, 움막 내부에 있는 상자들을 뒤적거렸다.

절도라니, 아니다. 어차피 현상금이 걸려있는 바위 산적들인 데다가, 나는 던전을 왔으면 당연히 전리품을 얻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자의 말들은 그냥 우스갯소리로 던진 것이고, 큰 바위 목 뒤에 심겨 있던 마석의 여유분이 혹시라도 있을까 봐.

유독 눈에 띄는 낡은 상자가 있었는데, 그것도 찾는데 꽤 애먹은 느낌이다. 상자 위에 덮어둔 출처 모를 동물의 털가죽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손으로 몇 줌 쥐어질 양의 금화가 있었고, 양피지로 되어 있는 족자[Scroll]가 하나 있었다.

마석의 여유분은 개뿔, 바위 산적은 전리품이랄 것이 하나 없는 자연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금화. 기절해 있는 큰 바위의 부하들에게 우두머리 황천길 오르는 노잣돈 하라며 놔둘 것이고, 왠지 기운이 흉흉한 이 족자를 들고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런 마력이 내재하여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마법에 관련된 스크롤은 아닐 것이고, 그 말은 아주 일반적인 문서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오는 이 족자를 봉해둔 밀랍 도장의 문양이었는데, 기구하게도 ‘데크 에던’의 제국 문양이다.

“아서, 연금술사가 깨어났네!”

로브를 착용하고 있던 연금술사는 머리에 씌워져 있던 후드를 내렸고, 그 속에는 다름 아닌 남성의 ‘엘프’를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머리가 아픈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주위에 있는 아무개나 잡고 일어나는 것을 시도한다.

“감사합니다. 낮 부엉이가… 전달되었나 보군요.”

프리실라는 연금술사를 부축하여, 델타 산에서 내려가기 위해 움막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덩그러니 움막 내부에 혼자 남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까, 큰 바위가 급작스럽게 쳐들어온 우리들을 향해 언급한 ’계약‘, 큰 바위자리에 있던 나무 상자 속, 데크 에던 문양의 밀랍으로 봉해져 있던 족자.

조화롭지 못한 흔적들은 오히려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이 족자를 들고 여관으로 돌아간다면….

델타 제국에 본계약서를 제출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확인할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등허리에 있던 소형가방으로 족자를 집어넣는다.

* * *

[ 서대륙 델타 / 용사의 쉼터 ]

사지를 비틀거리며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연금술사를 어깨에 짊어진 프리실라, 그 이후로 산에서 내려와 마차에 실어다가 무사히 델타로 복귀했다.

연금술사의 정체는 ‘오스칼’이라는 이름의 ‘남대륙 템피드제국’ 연구원이라고 하였는데, 굳이 그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쉴 틈 없이 수다를 떠는 오스칼이 알아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던 것. 남대륙 엘프들은 생각보다 수다스럽다.

‘심지어는 리엔 보크의 이야기로 흘러가질 않나.’

오스칼은 자신에게 종속된 ‘정령’이 있었는데, 어느 날 주인과 정령을 묶어두는 계약이 무효가 되더니, 별안간 사라진 정령들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남대륙에서 자신의 정령들이 사라진 탓에 서운한 마음으로 끙끙 앓고 있다가, 간신히 계약 정령의 마력 흐름을 찾아 델타로 오게 되고, 이어서 산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정령을 찾았냐는 물음에, 고개를 떨궈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오스칼. 분명 ‘좋은 곳’에 있을 것이라며 위로해준 뒤, 혹시라도 필요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인 태풍의 탑 정령 마법 선생 ‘베로니카’를 소개해준다고 전달했다.

정령이 돌연사하는 상황이 근래에는 자주 속출되고 있었는데, 베로니카의 말로 의하면 그저 현세에 머물기보다는 정령계로 돌아가 온전한 생활을 되찾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도 성립시킨 계약은 좀처럼 파기하기가 어려워요.’, ‘계약자는 어느 정도 정령에게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베로니카가 ‘플로우’들을 개의치 않고 용사의 쉼터에 맡긴 이유에 대한 발언이었다. 물론 베로니카 입장에서 내가 믿을 만한 존재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마스터, 마실 거라도 가져다드릴까요?”

“고마워, 그나저나 평소보다 손님이 적은데.”

“홉스의 말로는 야시장이 있는 날이라고 했어요.”

“아, 그랬군.”

내게 델타의 야시장을 가지 못한다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지만, 우선은 이 족자에 대한 의문을 풀어야 했기 때문에, 여관 홀에 비어있는 자리를 향했다.

의문을 풀지 못한다면 관자놀이를 또한 누르고 눈을 찢은 채 홀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럼 또 레니가 와서 ‘아서, 표정을 보아하니, 또 뭔가를 꾸미고 있군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서, 표정이 좋지 않은데요?”

“레니, 호랑이도 자기 말하면 나타난다고.”

힐을 난무하지 않는 것을 보아, 아직은 취하지 못한 레니인 듯했다. 대충 어깨를 두드리며 ‘오늘은 잠시 독서를 하고 싶어서 그래.’라는 말을 전했고, 다시금 비어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족자의 밀랍이 그렇게 강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손가락으로 가볍게 뜯어내자 ‘툭’하는 소리와 함께 말려있던 양피지가 펼쳐졌다.

< 델타 제국 마을 습격을 위한 계약서 >

(1) 본 계약은 ‘데크 에던’ 제국과 ‘큰 바위’ 사이에 체결되었다.

(2) 데크 에던 제국 정부 기관을 ‘갑’ / 델타산맥에 위치한 거친 바위 사이의 거주하는 산적 우두머리 ‘큰 바위’를 ‘을’이라 한다.

(3) 큰 바위는 ‘데크 에던 제국 정부’를 위하여 ‘거친 바위 사이’에 위치한 뒤, 근방에 있는 마을을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습격 및 약탈을 강행한다.

숨죽이며 활자를 읽어 내려가는 중, 본 계약서가 별안간 불에 타기 시작했다. 놀란 나머지 족자를 테이블에 놓는 순간,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진다.

‘마법이 적용되어 있잖아.’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만한 공격성을 지닌 마법은 아니었다. 다만 이 계약서를 큰 바위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읽었을 시, 족자의 불이 붙어버리게끔 마법 장치가 적용된 듯했다.

뭐랄까 얼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 렌이 다가와서 ‘마스터, 어디서 타는 냄새가….’라고 말했다.

‘풀지 못한 궁금함이 완전히 산화되어버린 냄새야.’라고 대답했더니 물음표를 띄우며 ‘장난은, 마스터도 참.’

데크에덴이 무슨 이유로 바위 산적들에게 마을을 습격하라는 계약을 한 것인가, 그것도 남의 제국에다가. 생각해보니 데크 에던에게 있어 굳건한 동맹국은 델타가 아니던가.

수상하다. 수상해. 그래도 여관을 내팽개치고서 탐정 노릇이나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그냥 넘어가는 쪽으로 선택지를 두어야 할 듯했다.

각 제국의 정부들은 늘 국민들이 느끼기에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기적인 권력자들의 제국 데크 에던’

동맹국이긴 하다만은… 델타의 치안과 범죄, 약탈과 살인 등의 델타의 이미지를 적당히 실추시키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얻는 것이 무엇이냐.’

델타와 데크 에던에서 비롯된 동맹의 정의란, ‘서로 적절하게 성장을 돕자.’ 잘나가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델타.

데크 에던 측에서는 ‘함께 성장’이라는 대의에서 멀어진 느낌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대충 비유하자면 애인이 질투를 부리고 있다는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동맹제국인데 산적들에게 그런 계약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런 것이 적절한 외교 관계라고 하니까.

‘사실, 데크 에던도 한 번 참아주긴 했지.’

퉁 쳤다는 말이 맞는다. 우리 프리실라 단장 나리는 ‘아크론 제국’에게 힘을 실어 ‘데크 에던 제국’이 가지고 싶어 하는 숲을 뺏으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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