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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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륙 델타 / 델타산맥 ]
녹색의 잎사귀들이 무수하게 이어져 있는 거대한 크기의 델타 산, 오랫동안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끝에 어느새 도착이라는 단어를 뱉는다.
도착하고 난 뒤, 의기양양한 프리실라 앞에 벌써 나타난 ‘바위 산적’들이었는데, 요즘 산적들이 산 밑으로 내려와 사방에 있는 마을로 쳐들어간 다음 농장을 약탈한다는 소리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던전 할머니를 포함한 여타 의뢰 게시판에 ‘잡배 처리’라는 항목도 늘어나는 추세였고.
농장을 약탈하는 것이 근래 ‘악인’들의 유행인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농장주의 심정이란 ‘악인’들의 횡포 때문에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마주한 바위 산적들의 졸개 정도로 판단되는 녀석들이 하던 몹쓸 짓은 ‘델타 산 근처로 다가오는 일반인들의 금품 갈취.’였다.
본의 아니게 우리는 다섯 명 정도 되는 산적들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다시 금품을 빼앗긴 마을주민에게 물건을 돌려주었다.
꼭 도와준 이유가 호의를 행하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사실상 바위 산적들의 주거지인 델타 산의 ‘거친 바위 사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산 아래로 내려온 녀석들에게 마력 흐름을 역추적했던 결과, ‘거친 바위 사이’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길드 마스터의 권한이 더욱 가까워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프리실라, 몸은 괜찮아요?”
“오랜만에 몸을 좀 풀었더니, 살 것 같군!”
“허, 참전사네요.”
오른쪽 팔을 빙빙 돌려 어깨를 푸는 그녀, 육체미를 뽐내던 ‘단장’ 시절의 프리실라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회복력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괜히 A랭크의 모험가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 듯.
‘요령이 부족한 탓에, 미친 듯이 노력만 했겠지.’
프리실라에게 부탁한 ‘강철 검’을 등에 걸린 칼집에 집어넣었다. 산적들을 나무에다가 묶고 있던 그녀가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서, 자네는 원래부터 검을 사용했나?”
“은퇴 전에 사용하던 무기가 검이었어요.”
“실력이 예사가 아니군.”
“실력이라니… 당신이 다 잡아놓고서.”
“하하, 그랬나.”
나는 검을 검집에서 뽑은 기억밖에 없다. 휘두르지도 공격을 막아보지도 못했다. 앙상했던 프리실라가 어느새 근육질 여인의 모습을 하고 바바리안마냥 산적들을 때려 패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올라가도록 하죠.”
“그러지.”
그녀와 함께 내가 찾은 추적경로를 통해 산을 타고 올라갔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프리실라와 잡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 ‘거친 바위 사이’라고 추측되는 곳이 나무 사이로 보였다.
“정말 ‘거친 바위 사이’처럼 되어 있네….”
“왠지 아네스 할매의 여관이 떠오르는걸.”
“그러게요, 보초병은 없는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단숨에 아는 건가?”
“특출한 능력 덕분이죠. 뭐.”
말 그대로 ‘거친 바위 사이’였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이리저리도 깎여있는 거대한 바위 두 개는 실제로 거칠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 앞으로 서대륙 전경이 쭉 하고 눈에 들어오는데, 문득 산적들이 생각보다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할지도? 라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감성이라는 말은 1도 모르는 산적들이겠지만.
마력의 흐름을 쫓아 산적들의 인원을 가늠했을 때, 약 20명 정도의 인원이 파악되었고, 전부 거대한 바위 사이에 있는 움막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보초라는 것이 필요 없을 수밖에.’
거친 바위 사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위치가 좀처럼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추적능력이 없었더라면 길 잃기에 십상이라는 델타 산에서 진즉 조난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서, 저 자식 오줌을 싸러 나왔다고.”
“윽, 더럽게.”
“제법 크….”
“조용히 해요. 그냥.”
산적 무리의 한 명, 호피 무늬 상의를 입은 사내가 움막에서 나왔고, 대충 두리번거리다가 나무 뒤에 숨어있는 우리 근방에서 소변을 누고 있었다.
그러자 프리실라는 대뜸 녀석의 뒤로 다가가 목을 꺾어버리고는 기절시킨다. ‘와, 묻을 뻔했다고.’라며 자신의 하의를 손으로 터는 시늉을 하던 그녀.
“굳이 기절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움막 안에 있는 놈들은 다 처리해야….”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두령!”
움막에서 이어 나오던 두 명의 산적이 프리실라가 동료의 목을 꺾어버리는 모습을 정확히 포착한 뒤, 움막 내부로 ‘침입자다!’라는 상당히 단역 같은 대사를 뱉었다. 이를테면 ‘누구냐!’도 있다.
이후 17명의 똑같은 호피 무늬 상의를 입은 산적들이 움막에서 이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거대한 몸집의 산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두령이라고 할 수 있는 ‘큰 바위’인 듯했다.
“흠… 프리실라.”
“수월해졌군, 하하!”
“하… 요령이 없다니까요.”
“내가 전부 상대하겠네.”
“프리실라, 당신 근신상태인 거….”
“그러나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아무도 모를 거다!”
“…당신이 악당인지, 저들이 악당인지 분간 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던 와중, 이미 프리실라는 산적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첫 격을 가했다.
쥬드처럼 거대한 양날 검을 사용하는 그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산적들의 손도끼가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
한 명, 두 명… 프리실라에게 달려드는 산적들이란 이를테면 롤플레잉 게임 속 초보 구역에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가 분명 악당이라고 판단할 것 같은데.
“이 여자, 보통내기가 아니야!”
“하하, 촌스러운 호피 무늬부터 벗어던지시지.”
“으, 으악!”
2명이 상대하기에 20이라는 숫자는 절대적으로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아직도 나는 검을 뽑지 않았다는 것, 싸울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프리실라가 쥐고 있는 검은 그저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녀가 불살주의도 아니었으나 손잡이 끝으로 코뼈가 부서져 바닥에 드러눕는 산적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산적들이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용케도 그녀는 산적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한다. 그리고 ‘큰 바위’만이 남아있다.
“네놈이 마지막인가.”
“계약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계약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큰 바위.”
“어째서, 시키는 일을 완수했는데도!”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군.”
“썩을 놈들… 살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큰 바위의 첫 격을 전투의 시작으로. 프리실라는 반격을 가했다. 신장이 2m가 넘어 보이는 ‘큰 바위’는 그 반격을 또다시 거대한 도끼로 막았다.
별안간이었다. 프리실라는 큰 바위를 가로질러 고속 횡 베기로 지나간다. 큰 바위의 복부에 피가 뿜어져 허공에 흩어진다.
“으윽!”
“가볍게 베었으니, 죽진 않을 거다.”
델타 산 내부에서 큰 바위의 고통스러운 음성이 퍼졌고, 이내 이가 잔뜩 나가버린 도끼를 목발 삼아 간신히 일어났다.
급작스럽게 큰 바위로부터 흉측한 마력 기운이 느껴지더니 눈이 붉게 타올랐다. 생각 이상으로 마력의 유동량이 크게 변질하는 것을 느꼈던 나는 황급히 마력을 읽는다.
‘저주 계열의 마법과 유사하다.’
구멍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끝에 얻은 절대적 감, 저것은 기분 나쁜 속성의 버프 매직.
공기가 저릿저릿해지는 묘한 긴장감과 계층의 사면이 검고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찼다.
무엇보다 적용 대상자인 큰 바위의 고통스러운 신음과 거친 호흡이 넓은 공간을 울린다.
“큰 바위… 그 불순한 기운은 무엇이냐.”
프리실라가 지면을 강하게 밟으며 큰 바위를 향해 고함쳤다. 돌아오는 건, 인간의 목소리로 낼 수 있는 고요한 괴성이 전부였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산적들은 큰 바위의 모습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큰 바위, 광전사의 모습으로 프리실라에게 단숨에 접근하더니 거대한 도끼를 휘두른다.
예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던 그녀는 방어태세를 취했지만, 큰 바위의 복잡한 공격에 의해서 조금씩 뒤로 밀린다.
지면을 찢는 강렬한 소리가 산에 울려 퍼지는 순간. 이전과 다르게 몹시 많은 격이 서로에게 오가기 시작했으며, 연속성을 띄는 철의 음성 때문에 모두의 귀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프리실라, 녀석에게 범상치 않은 기운이!”
“알고 있네, 그러나 자네는 끼어들지 말게.”
“지금 그게 할 소립니까.”
“전사의 고집이니, 누구도 꺾을 수 없다.”
일반인들의 시야로 포착하기 어려운 공격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처가 늘어나는 만큼, 허공에 흩뿌려지는 핏물들이 마치 잔비처럼 모두에게 튀기 시작했다.
큰 바위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급작스럽게 충격을 받은 쪽은 프리실라였다. 장비를 착용시키지 않았더라면 이미 큰 바위의 도끼에 육신이 찌그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좋은 행위가 맞으나,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둘의 모습을 어색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범상치 않은 어둠의 기운을 따라 눈을 굴렸더니, 큰 바위 목덜미에 작은 마석이 심겨 있다. 수상하다 싶을 정도로 큰 바위의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원인이었던 것.
“프리실라, 큰 바위의 목덜미에 마석이 있어요!”
내 명령에 프리실라가 바닥을 강하게 내려쳤다. 지면이 부서지는 동시에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거대한 검을 든 그녀가 발 닿을 곳 없는 허공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지더니, 허공에서 큰 바위 방향으로 쾌속 이동.
그것은 마치, 전차를 파괴하려는 자주포의 포탄 같은 묵직한 기세였다. 공기를 찢는 굉음이 터지는 동시, 그 속력마저 별안간 따라붙은 미쳐버린 큰 바위.
비유를 찾아서 이야기하자면, 미디어 플랫폼의 이런 식으로 검색을 한다. ‘델타 PK 하이라이트 10위’, ‘아칸 월드, 지리는 전투 하이라이트 모음.’ 뭐, 그런 영상 안에 등단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싸움이었다. 대충 화려하다는 뜻이다.
곧장 그녀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동하여 강렬한 공격과 큰 바위를 대상으로 공격과 방어를 오갔다. 그리고 한 번의 타이밍을 잡고는 다시금 거대한 도끼를 튕겨낸다.
일방적인 피지컬 싸움이다. 그러나 프리실라는 아직 모든 전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튕겨낸 큰 바위의 팔이 허공에 오르자. 10m 떨어진 거리, 단숨에 큰 바위에게 붙어 첫 격을 가한다.
양쪽 어깨―.
가슴과 연결되어 있는 사이 점을 베어낸다.
가슴, 이어서 가로로 크게 4번――.
허리, 우측부터 좌측,
그리고 등으로 이어지게 3번――.
이때 큰 바위의 후면이 그녀에게 노출된다.
양쪽 대퇴 후면을 십자로 2번.
다시 아래로 그으며 2번――.
마지막으로 발목을 가로로 크게 1번――.
다시 30초 안으로.
위의 패턴을 5번을 반복――.
온몸, 자신의 피를 적신 큰 바위. 프리실라는 녀석의 목덜미를 시야에 정확히 담아냈다.
이것으로 큰 바위는 마지막, 그녀는 강하게 쥐고 있던 거대한 검으로 빠르게 큰 바위의 목을 베어낸다. '동작이 곧 기술'이라는 그녀의 발언.
“죽일 생각은 없었으나.”
“광기에 지배당한 그대를 보아.”
“내가 거둬주는 것이 나은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