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48화 (48/222)
  • 048화

    * * *

    [ 서대륙 델타 / 던전 할머니 여관 ]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이다. 용사의 쉼터에도 ‘의뢰 게시판’이 생긴다면 이곳 ‘던전 할머니 여관’처럼 바바리안이 득실대는 엄청난 분위기로 바뀔까?

    민머리의 근육이 다부진 전사들이 많아서 그런지, 어쩌면 이곳이 전사들의 훈련소는 아닌지, 여러 차례 여관의 이름과 내부를 번갈아 가며 고개를 움직이기 바쁘다.

    나의 ‘길드 창설’, 아니 프리실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용병단’을 창설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그녀를 설득하여 ‘전쟁을 참가하지 않는.’이라는 항목을 거듭 강조했다.

    한때 ‘태양 새의 용병단’을 이끌던 최강의 길드 마스터는 의외로 빠른 수긍을 했다.

    어차피 용병단과 외곽마을(고향)의 경제적인 부분도 자리를 잡은 지 오래였고, 용병단 해체 지경까지 오게 했던 ‘숲의 권한 전장’이 마지막 ‘전쟁 의뢰’였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이것을 보며 한숨을 쉬던 ‘아네스’였다. ‘길드 하나를 말아먹고, 타인에게 길드까지 창설시켜 다시 활동하겠다는 그 어리석은 어리광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며, 프리실라에게 쉴 새 없이 으름장을 놓는다.

    솔직히 거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미와도 같은 아네스의 으름장 앞에 평소 같지 않은 프리실라의 어두운 표정이 괜스레 입을 다물게 만든다.

    “자네, 정말 괜찮겠는가.”

    “네, 타인이라고 설명하셨지만, 저의 원년 단골이니까요.”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이네.”

    “이런, 그건 아녜요, 그저 프리실라의 부탁이니까요.”

    “그래서, 저 애송이를 끌고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의뢰 게시판을 함께 운영하는 아네스에게는 물어볼 것이 너무나도 많다.

    ‘아서’라는 이름으로 모험가 등록이 먼저였으니, 의뢰를 통해 최단 시간으로 길드 마스터의 기본 자격을 갖추어야만 했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차례차례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어서 아네스의 말로는 ‘모험가 등록을 우선순위로 하지 않아도, 국가의뢰나 상급의뢰를 충족시키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면, 상급링크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 말은 즉, 내가 ‘A랭크 : 상급의뢰’ 정도를 해결하여 그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동시에 모험가 등록을 하면 ‘A랭크 : 모험가’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돈 많은 귀족이 사방팔방 검을 휘두르며 토끼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하는데도, 그들은 당당하게 ‘B랭크 : 모험가’ 자격을 돈으로 사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이중 의뢰를 하여, B랭크를 해결한 뒤, 더욱더 비싼 값어치로 그 의뢰를 해결한 모험가에게 ‘의뢰 완료 증명서류’를 사들이면 그만이라는 소리인데.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B랭크와 A랭크의 의뢰 수준은 갭이 크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S랭크의 의뢰는 말할 것도 없고.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7인의 원정대’들이 전제국으로부터 받은 의뢰의 난이도가 SS랭크였다. 사실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부분이고.

    전자의 이유로, A랭크 의뢰의 증명서류를 구매한다는 생각을 접어두었다. A랭크 수준의 상급의뢰를 해결할 수 있는 모험가들도 많이 없을뿐더러,

    대부분 상급의뢰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험가들은 S랭크가 되기 위해서 A랭크 의뢰를 절대 놓치지 않기 때문에.

    S랭크의 모험가들은 제국에게 있어 귀족보다 귀한 계급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일명 ‘영웅’이라는 두 울림에 가까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A랭크의 모험가들은 되려 A랭크의 의뢰를 사들일 사람들이다.

    “이거 참, 길드 마스터의 길은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네요.”

    “자네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다만, 우리 여관의 게시판을 이용하겠나?”

    “부탁하겠습니다. 그 이유로 이곳에 온 거니까요.”

    “저기에 있는 의뢰 게시판을 훑어보아도 좋고―”

    “무언가 또 있다는 듯이 말씀하시는데요.”

    “낮에 새로 들어온 의뢰가 있는데, 특수 의뢰란다.”

    “랭크는요?”

    “더블A(AA).”

    “한번 들어볼까요.”

    [연금술사 구출 작전 / 의뢰등급 : AA] 이라는 이름으로 의뢰의 서류를 작성하는 아네스였다.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아네스에게 ‘아네스 님이 의뢰자도 아닌데, 왜 의뢰의 대목을 아네스 님이 정하시는 거죠?’이라는 물음이 끝나자, 그녀의 주름진 입가 주위로 정보가 흘러나온다.

    낮 부엉이를 통해서 ‘던전 할머니 여관’에 ‘의뢰’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구출해 달라는 메시지가 왔고, 본래는 여관의 직원들이 그 의뢰를 해결하려 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내가 뺏은 것이 되어버렸다.

    아네스의 말로 부엉이를 보낸 연금술사는, 근래 여관에 몇 번 찾아왔었던 남대륙의 제국 연금술사라고 했다.

    델타산맥에 필요한 재료를 찾으러 갔다가, 델타산맥의 산적 무리를 조우하여 붙잡혀 있는 상태이다.

    델타산맥의 ‘거친 바위 사이’라고 불리는 ‘바위 산적’들의 소굴 속에 있는 것 같고, 아마도 산적들은 이러한 비상한 인재들을 납치하여 무리의 발전을 위한 강제노역을 시키거나, 필요 없어지면 개밥으로 줄 것이니….

    ‘개밥이 되기 전에 구해 와야, AA랭크의 의뢰 해결 증명서가 유효하다.’라는 아네스의 말이 고막을 때리자,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했다.

    “아네스, 의뢰 랭크도 길드 측에서 정하는 겁니까.”

    “그렇긴 하지만, 우리 여관의 의뢰 측정은 A랭크가 최상이네.”

    “그 말은.”

    “아무래도 연금술사의 소속된 제국과 관련이 있겠지.”

    델타 제국의 용맹스러운 전사들의 모임 ‘델타의 늑대들’이라는 길드 또한 S랭크 길드에 버금가는 최강의 용병단이었다.

    상급 용병단을 운영했던 ‘노튼 프리실라’도 과거에는 AAA랭크의 모험가로 S랭크를 코앞에 두고 있었던 거물이었다. 그런 아네스가 지정할 수 있는 의뢰 랭크도 A랭크가 최대였다.

    ‘그렇다면, 의뢰의 등급 지정은 누가 했단 말인가. 스스로?’

    조용히 생각에 빠진 나를 보며 아네스가 말하길, 이 연금술사가 소속된 제국에서 본 인물에 대한 기본 인적 사항이 고위 직책에 속해있기 때문에 의뢰 내용에 ‘구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만 해도 AA랭크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연금술사의 목에 걸린 등급은 AA.’

    남대륙 어느 제국 소속으로 중대한 역할을 하는 연금술사인 것은 확실했다. AA랭크의 의뢰라 가게 손님들도 쉽게 의뢰를 맡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네스 측에서 직원을 보내려고 했던 것.

    “제가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 의뢰.”

    “자네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네스, 뜬금없으나 저를 신뢰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흠, 저번에도 말했네.”

    “어려운 전장을 밟아왔을 것 같다는 그 추측을 말씀하시는 건지.”

    “이를테면, 지옥에서 돌아온 눈을 하고 있네. 자네는.”

    “사실, 제 삶의 원래 장르는 ‘다크’했거든요.”

    옆에서 멀뚱히 우리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프리실라가 사라졌고, 그녀는 주변에 있는 다른 모험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은 태양 새의 용병단원들이 이곳에서 ‘임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입원을 잃은 용병단원들은 돈은 벌어야 했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 곳에서 의뢰를 수령하고 있을 수 없었다.

    자매 용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델타의 늑대들’에게 당분간은 기생하고 있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고, 델타의 늑대들 측에서도 문제는 없을 터. 늑대들은 은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의뢰 게시판이 있다고 해서 아무 여관이나 찾아가 의뢰를 맡기에는 현재 이들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실추되어 있었다.

    ‘프리실라가 이끄는 용병단이 아크론이 주도한 전쟁에 참여했다.’ 변방제국의 동네 여관까지 전부 퍼져나갔을 것이 눈에 훤했다.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 ‘모험가는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직업’이라고.

    “오, 저자가 프리실라가 말한 사내인가!”

    “오오, 인물이 아주 훤하구먼!”

    “자네, 이름이 뭔가!”

    이미 던전 할머니 여관에서는 ‘아서’라는 이름이 프리실라에 의해 유명해지고 말았다.

    애당초 일전에 참여했던 ‘강한 팔’ 이벤트의 최종우승자이기도 했으니, ‘프리실라가 부탁할 만한 사내.’라는 이미지도 더욱 굳어진 듯했다.

    “아서입니다.”

    “자네가 프리실라를 위해 길드 마스터가 되어준다고!”

    “네, 뭐 겸사겸사, 제 여관의 창출을 위해서.”

    “크하하, 자네, 좋은 사람인데 뭘 숨기려고 그러나.”

    “아… 네.”

    턱수염이 더부룩한 어느 남성, 마치 브라운 아저씨가 아닌가? 라며 착각하게 할 정도로 흡사하게 생겼다. 혹시 형제가 있는 걸까.

    “혹시 브라운 아저씨를 아십니까?”

    “하, 또 그 이야기이구먼.”

    “오, 설마.”

    “아닐세, 그 대장장이 양반과는 형제가 아니야!”

    “아, 그렇군요.”

    “닮은 것은 인정하네, 하나 신장은 이쪽이 더 크다고.”

    “아하하, 그건 맞는 말이네요.”

    나를 향해 ‘아서’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이 여관의 손님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해주며, 안면을 트도록 했다. 사실 ‘델타 끝자락에 있는 용사의 쉼터 여관을 운영 중입니다.’라며 홍보를 위해서 말이다.

    이미 유명한 여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용사의 쉼터’라 그런지, ‘해골 직원들을 직접 보고 싶었네.’ ‘아서, 정말 그 아가씨들이 드래곤입니까?’라는 질문을 셀 수 없이 받았다.

    물론 ‘드래곤이라는 부분은 일종의 여관 설정입니다.’라고 언젠가 설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던져두는 말을 매크로처럼 활용했지만.

    라이벌 가게에서 홍보라니 무슨 짓이냐, 상도덕이 없는 것이 아니한가, 걱정하지 말도록. 아네스가 프리실라를 도와주는 대가로 내게 주는 작은 보상이라고 했다.

    홍보찬스, 사실 엄청나게 기쁘다 할 일은 아니었다. 아직도 단란한 여관이라는 문장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니.

    “아서, 덕분에 정말 감사하군.”

    “됐어요. 그러지 않아도 여관에 의뢰 게시판이 필요했고.”

    “의뢰를 위해, 내가 짐꾼이라도 되어주겠네.”

    “그건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네요. 프리실라.”

    현재 프리실라의 경우 의뢰를 수령 받지 못하는 근신 처분 상태, 앞으로 7일가량은 모험가로서의 직책을 사용하지 못한다.

    길드 마스터 기본소양 모험가 등급 A, 나는 전자의 기본을 충족시키기 위해 AA랭크의 의뢰를 수행하러 델타산맥까지 가야 했고, 전 태양 새의 용병 단장은 굳이 ‘짐꾼’이라는 역할을 맡으면서까지 나를 도우려고 하는 듯했다.

    “이동할 수 있는 마차는 내가 준비하도록 하지.”

    “그렇게 해주세요, 해골 마차는 바쁘거든요.”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프리실라, 아마 남은 금액을 전부 고향에 반환한 듯했다. 그래도 용병 단원들을 위해 고향에서 보내주는 음식들에 고마움을 느끼는 그녀.

    어제까지만 해도 비틀거리면서 걷던 프리실라였는데, 기색이 돌아와 그나마 이전보다 건강해 보였다. 물론 ‘단장’이었을 때보다 한참 부족했지만, 어제의 그녀는 수면 중에 돌연사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다행이다.

    “아무래도 짐꾼은 하지 맙시다.”

    “응? 왜 그러나.”

    ‘아, 아’를 운운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하루 만에 돌아온 기색이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말라비틀어진 프리실라에게 짐을 들게 했다간….

    또다시 내 여관에서 ‘아서의 취향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말동무 정도’로 프리실라의 포지션을 수정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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