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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47화 (47/222)
  • 047화

    * * *

    이렇다고 말할 방도가 없었다. 프리실라의 심히 초췌한 몰골이 대륙 저편에서 볼 수 있는 기아에 가까웠다.

    여성인 것 치고는 과할 정도로 단련된 몸을 가진 프리실라. 그러나 수분 보유율이 현저히 떨어진 탓에 근 선명도 외에는 말라비틀어진 남성과 다를 것이 없다.

    델타의 국문을 밟은 뒤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겠지, 분명하다.

    열정으로 가득한 눈동자에는 완전히 산화해버린 재만 그윽했다. 심각한 슬럼프?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구멍이 느껴졌다. 이를테면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었다.

    헛구역질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렌과 아이리스는 물론, 조금만 움직여도 ‘달그락’ 소리가 나는 해골들마저 아무 미동이 없다. 홉스는 차마 그 몰골을 자세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프리실라.”

    “아서… 내 돈은 없지만, 무언가를 먹을 수 있을까.”

    “물론이죠.”

    가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말라비틀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음성. 그 음성이 끝나기도 무섭게, 요리 담당 해골들은 주방으로 부리나케 뛰어가 식도를 들었다.

    “프리실라….”

    “렌, 여전히 얼굴이 좋아, 하하.”

    “당신이 지금 그렇게 말할 때가… 상태를 봐요.”

    “그저 미안한 마음에 아무것도 들지 못했네.”

    걷기 쉬워 보이지 않았다. 갑옷을 어딘가에 내팽개친 이유는 그것이냐며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으름장을 놓고 싶었지만, 고함을 지르는 야단 정도로도 목숨을 잃을 것 같다.

    이 와중에 케피탄 맥주를 바라보며 손짓하는 프리실라의 손목을 잡으며 ‘그쪽이 밀 냄새 나는 맥주를 좋아하든 말든, 따위는 신경 안 써요. 지금부터 10kg 이상 체중이 붇지 않으면, 당신에게 술은 절대 판매하지 않을 겁니다.’

    허탈하게 웃는다. 도저히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던 나머지 그녀의 치료를 위해 ‘불가시의 장막을 걷는다.’고 말했지만, 이내 내 옷자락을 잡더니 조용히 관두라며 입을 열었다.

    ‘아서가 치료해주면 기껏 자신의 속죄가 무뎌진다고.’ 너무 굶어서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냐며 옆에 있던 렌마저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호통 따윈 프리실라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굳건하다.

    ‘속죄가 끝났으니, 회복은 스스로.’ 그녀의 찢어진 입술에서 뱉어지는 문장들은 우리의 이마 핏줄을 바짝 세우기에 충분했다.

    다만, 저 고집의 눈동자에는 전부 타 버린 줄만 알았던 불꽃이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건 일종의 집념이었다.

    “아서.”

    “예, 말하세요, 황소고집 씨.”

    “부탁을 하나 해도 좋을까.”

    “암요, 저희 직원으로 들어오시게요?”

    “아니, 자네도 내가 그러길 바라는 건가?”

    “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요.”

    “자네는 내게 과거에도 이렇게 큰 도움을 주었지.”

    “됐어요, 단장님도 여관 보수에 큰 도움을 주었으니.”

    “하하… 그 빌미로 부탁하려는 거야.”

    “답답해 죽겠으니까, 얘기하세요.”

    “길드를 창단해 줘.”

    “이런….”

    그 말은 곧 ‘태양 새의 용병단’을 다시금 창단해달라는 말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그녀의 뜻을 다르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고, 뜻에 대한 정답은 그것이 전부임이 확실하다.

    십여 분이 지나고, 옐로우는 음식을 만들어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포크와 수저를 사용할 뿐, 렌을 처음 만났을 때 음식을 먹인 것과 별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허겁지겁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다.

    이 여자는 정말로 강한 영혼을 지녔다. 자신이 말 같지도 않은 범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일단 속죄를 하느라 집념 이외에는 아무것도 삼키지 않은 듯했다. 무려 열흘이 지나도록.

    “부탁하네.”

    “왜 하필 접니까.”

    “그대는 나의 꿈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니까.”

    “고향을 부흥시킨다는 꿈 말입니까.”

    “곧 잡힐 듯한 꿈같았는데, 사실은 모든 것이 허상이었어.”

    “당신에게 돌아오는 그 조건, 제국은 절대 이뤄주지 않을 겁니다.”

    “충분히 잘 알고 있네, 다만 고향이….”

    “그리고 제가 품더라도, 그 조건은 이뤄지지 않을 테죠.”

    “내 전우들, 고향 사람들… 모두의 사활이 걸렸어.”

    “단장님이 말하길 용병단이 먹여 살렸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전원 길드 마스터 자격을 잃었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창단할 수 없어.”

    “그 절망에 이마가 아프네요.”

    “할매도 마찬가지야, 유일한 희망은 자네밖에 없….”

    “열등한 인간이여, 짐의 임자에게 상당히 무례한 부탁을 하고 있군.”

    “아이리스!”

    “임자, 아서라. 그대에게 이 여자는 부담감만 안겨주고 있다.”

    “…그래 저자의 말이 옳아, 자네 아이리스라고 했던가.”

    “그렇다. 짐의 존함은 아이리스, 내 주인의 무디지 않은 송곳니.”

    프리실라의 표정과 대답은 이러했다. ‘그렇군, 그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지켜주는 가족이 있으니, 지금 나의 몰골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도둑밖에 되지 않는 것.’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것은 오로지 내 이기적인 마음, 그 하나뿐.’ 은인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며.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테이블에서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의자를 밀어내고선 천천히 일어나는 그녀. 이 과정에서도 영양결핍 상태로 인해 빈혈 증상이 겹쳐 휘청거리는 전사의 망명을 볼 수 있었다.

    “아서, 음식은 잘 먹었다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다.”

    “프리실라,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말씀하시는데요.”

    그 이상의 대답은 불허한다는 듯, 조용히 여관의 밖으로 나서는 그녀였다. 우리들은 그녀의 이름을 계속 불렀지만, 로브가 휘날리는 소리, 인사를 대신하는 손등의 움직임, 그리고 사라지는 프리실라였다.

    아무래도 ‘귀찮은 짓을 한다.’와 ‘내버려 둔다.’ 중에서 다음 밤이 찾아오기 전에 결정해야 할 듯했다.

    그녀의 뒷모습엔 아무런 미련이 남아있지 않았다. 방법이 없다면 위험한 수단을 통해 고향을 위한 돈을 벌어들인다는 결말이 뻔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임자.”

    “왜.”

    “어차피 도와줄 생각이라면, 빠른 판단이 좋을 것이다.”

    “마치, 내가 프리실라를 도와줄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마치, 임자는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아니, 보장 못 한다.”

    “지금 그대의 눈은, 나를 품었던 그때와 같다.”

    “젠장, 조용히 해.”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고양감, 돌아보니 슬며시 웃는 표정들이 한가득하다. 내가 그녀를 도와줄 것을 당연히 예상한다는 느낌으로.

    * * *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어 아침을 맞이하게 했다. 좀처럼 개운하지가 못한 이유는 전부 ‘프리실라’의 초췌한 몰골을 보았기 때문인가.

    침대에 누워있지만, 알 수 없는 긴장감, 심장의 두근거림, 내 모든 선택은 여차했을 때 그녀의 미래를 결정시켜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함부로 판단해서 되는 문제일까.’

    홉스도 말하길 내가 길드 마스터 권한을 얻어 조직을 창설하게 된다면, 여관의 ‘의뢰 게시판’ 또한 사용할 수 있을 터이니 여러 이득을 생각했을 때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홉스의 그 말은 곧 ‘프리실라’를 도와주자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여관에 ‘의뢰 게시판’이 들어온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시스템 도입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어떤 방식으로 ‘길드 마스터’의 권한을 얻느냐는 말이다.

    당연히 ‘아서’가 아니라 본래의 이름과 신상이라면 길드 마스터의 권한 따위를 얻는 데 문제가 전혀 없다. 그러나 본래의 신상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야 했다. 아니 불가하다고 볼 수 있었다.

    세간에 알려져서는 되지 않을, 내 이름.

    아득한 구멍 안, 희미한 빛.

    일곱 명의 대체품.

    아서라는 이름으로 길드 마스터의 권한을 얻어야만 했다. 문제는 그 권한을 얻기까지의 수단이다. 용병단을 창설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만 할 길드 마스터의 랭크는 A~B.

    내 이름 두 글자 ‘아서’는 모험가라는 신상이 전혀 없기에, 우선은 모험가 등록부터 해야만 했다. 그다음은 ‘랭크 업’을 통해 최단 시간으로 A~B에 도달, 한 달 내로 길드를 창설하는 것이 가능하다.

    먼저 프리실라를 찾아가 그녀에게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전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그녀를 한시라도 붙잡아서… 정말 귀찮은 일은 질색인데.

    지킬 필요가 없던 것을 억지로 지켜내느라 지친 나는, 정말 지켜야 할 것을 앞에 두고도 귀찮음을 호소하고 있었다.

    ―똑, 똑.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마스터, 들어가도 되나요?’라는 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평소에 붙어있을 눈곱이 없는 것을 보아 녀석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듯했다.

    “마스터, 프리실라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죠?”

    “그래, 그래야겠지. 아무래도.”

    “그렇담, 당분간 여관 운영은 확실하게 할게요. 걱정 없도록.”

    “고마워, 생각보다 든든한 소리를 할 줄 아네.”

    “아하하, 마스터 웨이트리스를 무시하면 곤란합니다만.”

    해골들이 차려놓은 아침 식사. 음식들은 먹음직스럽게 테이블 위에 있었다. 지금쯤이면 ‘임자, 잠은 잘 취했는가.’라며 물어올 아이리스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임무인 ‘언덕에다 물주기’를 수행하고 있다며 렌이 손가락으로 여관 밖을 가리켰다.

    “달그락.”

    “오, 캡틴, 뭔가 몸이 조금 바뀐 것 같은데.”

    “달그락, 달그락.”

    “다른 녀석들도 그렇다는 말인가.”

    “달그락.”

    확실히 전체적으로 우리 일곱 해골 신사들의 형태가 미세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보다 조금 굵직해졌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 강직해진 느낌이었다.

    혹시 마력을 계속 흡수하면서 신체적 특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지만, 내가 스테이터스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편하긴 하겠네, 소설 속에서 흔한 그 능력도.

    아이리스가 딸랑거리는 여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제는 녀석이 어깨의 짊어지고 있는 여자, 프리실라였다. 축 늘어진 것을 보니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보나 마나 집으로 돌아가는 척하며 여관 밖에서 죽치고 기다린 것이겠지.

    “임자, 이자가 여관 밖에 버려져 있더구나.”

    “그, 그래.”

    “인간은 어디에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가.”

    “분리수거라니, 그냥 내려놓으면 돼.”

    내 말에 곧장 자신보다 거대한 몸집의 프리실라를 여관 바닥에 내려놓았다. 용은 인간을 아득히 넘어선 존재라는 말을 완력으로 보여주는 아이리스였다.

    “으, 으….”

    “일어나셨나요, 프리실라.”

    “아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치고 기다리면 어떡해요.”

    “그, 그게… 하하.”

    “얼른 앉아서, 같이 식사하세요.”

    프리실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안쓰럽게 웃었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기색. 볼 때마다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입고 있던 로브도 본래 자기 것 같은데 앙상하게 살이 빠진 나머지 로브가 상당히 커 보인다. 아빠 옷을 입은 것처럼.

    “제 이름으로 길드를 창단할 겁니다. 도와주세요.”

    “아서….”

    “대신, 전쟁 따위는 참가하지 않는 길드예요. 혹여 하더라도 델타가 멸망한다는 전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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