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40화 (40/222)
  • 040화

    * * *

    『 발레포르의 탑 / 이퀴시아 제국 측 안내 사항 』

    ◈ 예상 계층의 수 / 3층

    ※ 탑의 높이 521M / 둘레 920M

    ◈ 마력 생성 및 마력 순환 ‘몹시 최하’ ※ 1계층 이상으로부터 유적 내부의 마력 ‘순환’ 40% 미만. ※ 2계층 이상으로부터 유적 내부의 마력 ‘생성’ 30% 미만.

    ◈ 원정대 종합 등급 S ~ SS 미만 입장 불가. ※ 위 사항을 어길 시에 이퀴시아 제국법 위반.

    * * *

    긴장한 탓에 밤을 꼬박 새운 것처럼 퀭한 눈을 하는 C랭크의 마법사 1명, 착용한 복장만 보아도 ‘상인’이나 ‘짐꾼’ 정도로 보이는 사내 한 명, 거대한 대검을 등에 차고 있는 A랭크의 강직한 남자. 당연히 쥬드가 파티의 원정대장이라 추측하는 이퀴시아 제국의 기사들이었다.

    ‘생각보다 경계가 철저하군.’

    1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이퀴시아 제국의 기사들이 대거 탑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우리들은 도착한 이곳에서 검문을 받는 중이다.

    애당초 발레포르의 탑 같은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고대유적의 경우 가까운 제국 측으로부터 엄격한 입장 조율이 있는 듯하다.

    우리들은 마차에서 내려 탑의 입장을 돕고 있는 기사들에게 ‘원정대 종합 등급’을 평가받는 중이었고, 당연히 우리들의 상태로 S ~ SS랭크의 원정대 기준을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쩌죠, 아서?”

    “아서, A랭크인 나도 입장이 불가능한 것 같군.”

    “맞아요, 지금 저희는 S랭크는커녕 A랭크의 원정대도 힘든걸요.”

    “기다려 봐, 그럴 줄 알고 내가 가져온 것이 있으니까.”

    은퇴 이후로 절대적으로 꺼낼 일이 없던, ‘특별등급지정자 : 증명배지’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챙겨온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다만 이 증명배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이들에게 보여주었다간, 그 반응이 워낙 피곤함과 동시에 끝없는 질문 때문에 곤란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전자의 이유로 인해 사업자증표 정도로 신원을 검사받아왔는데.

    나는 경비기사 중에 가장 높은 직위로 판단되는 기사에게 다가가 귀띔을 했다. ‘제가 이걸 보여주더라도, 놀라지 말고 그냥 넘어가세요.’라는 식.

    ‘설령 배지에 적혀있는 내 이름까지 육성으로 뱉었다간, 제국을 통째로 파괴해버릴 겁니다.’라며 강력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호주머니 깊은 곳에 있던 ‘검은색의 배지’를 꺼내어 기사에게 보여주는 동안, 그 기사는 ‘감히, 기사에게 이런 협박을 하다니, 도대체 네 정체가 뭔데.’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흠… 확인해보도록 하겠소.”

    기사는 배지를 열어 내부에 있는 활자들을 곰곰이 읽기 시작하면서, 안구가 흘러내릴 정도로 눈을 크게 뜬다. 나와 배지를 번갈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활자를 읽어 내리며, 정말 적힌 이 글자가 사실이 맞는지 눈을 비비며 반복을 거듭하여 읽기 바빴다. 가짜라고 판단하기엔 ‘페지르 정교, 전제국 통합정부’의 각인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어, 어… 랭, 랭크가 E… 읍!”

    “제가 놀라더라도 육성으로 뱉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죄, 죄송합니다.”

    기사의 입을 황급하게 막았던 손을 내려놓고, 그가 쥐고 있던 증표를 다시 받아 호주머니에 넣는 나를 보더니, 쥬드와 레니는 ‘뭔데, 그래?’라는 표정으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종합 등급 SS 이상의 원정대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아서의 신원을 확인했던 고위직으로 보이는 기사, 그리고 옆에 있던 후임 기사는 SS랭크 이상의 원정대가 발레포르의 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중앙기사단장님, 무엇을 보셨기에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으셨습니까?”

    “…나도 그것의 존재 여부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줄이야.”

    “단장님?”

    “어차피 말해도 믿지 못할 터이니, 그냥 넘어가세.”

    “흠… 단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이퀴시아의 중앙기사단장 ‘라이먼’은 젊었던 시절에 전제국 통합정부 고위직 권력자의 대리 수호 검사로 위치 한 적이었었다.

    그는 그때 들었던 ‘특별등급지정자’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정말 그것이 실체 했단 말인가.’라는 똑같은 혼잣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 * *

    [ 서대륙 고대유적 / 발레포르의 탑 1계층 ]

    거대한 돌덩이로 되어 있는 발레포르의 탑, 이거 탑이 맞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탑의 모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지구에서 보던 거리의 예술 조형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거대 조형물의 입구로 들어서기 시작하자 1계층부터 호흡이 무거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쥬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했으나, 레니의 경우는 다소 호흡에 불편함이 보였고, 가방에 있었던 정령의 호롱불을 깜빡하고 있다가 황급하게 꺼내어 레니의 마력 순환을 돕게 했다. 가지고 오길 정말 잘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오는 곳이지만, 여전히….”

    “쥬드 레니의 근처에 있어 주세요.”

    “알겠네, 아서.”

    레니는 좀처럼 수면도 바르게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분명 어제 발레포르의 탑으로 간다는 생각 때문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겠지.

    쥬드와는 차이가 날 정도로 호흡의 거칠어진 기색이 역력한 레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C급 모험가라고 한들 충분히 적응 가능한 탑 내의 마력 농도였지만, 그녀는 분명 ‘트라우마가 남긴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차오르는 것이다.

    “레니, 이겨낼 수 있어.”

    “고마워요… 아서.”

    “동료들은 레니를 분명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거라고.”

    “그래, 솔직히 레니의 치유 마법은 고위 성법사랑 비견할 정도라네.”

    “아하하… 너무 가버렸네요. 쥬드.”

    1계층은 특별하다 할 것이 없었다. 외벽에 파손된 부분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간신히 시야를 확보하는 정도였으나 정령의 호롱불 덕에 반경 20m 내 지형지물 형태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내부가 상당히 넓다 보니 어딘지 모를 저 끝까지 소리가 넘어가는 듯했다.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은 발목을 덮을 정도였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걸어서 벽면에 붙어있는 이어진 계단을 발견했고, 2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천천히 이동한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계단바닥에 붙어있는 이끼를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레니, 뭔가 집히는 거 좀 있는지 말해볼래.”

    “아뇨… 저번 공략 때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에요.”

    “그때랑 지금, 다른 점이 뭔데?”

    “…이렇게까지 음침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지.”

    “그 이후로 모험가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나 보군.”

    “레니, 아서, 위로 올라갈수록 빛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네.”

    1계층이라는 구간은 정말로 별것이 없었다. 외벽에 붙어있는 10명이 나란히 걸어도 족히 떨어지지 않을 거대한 계단을 올라가는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뚫려 있는 중앙, 2계층으로부터 길게 늘어져 있는 굵직한 덩굴과 웅장한 이 공간에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전부였다.

    그래서 중앙은 아무것도 없으니, 고개를 내려 우리가 왔던 계단을 되돌아보거나, 고개를 들어 멀리 있는 2계층의 바닥으로 보이는 것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그것도 사실 바닥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것이, 덩굴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풀들로 잔뜩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 때문에, 먼 곳에 있는 저것이 정확히 ‘식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정령의 호롱불을 들고 와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 레니의 호흡도 조금 편안해 보이는걸.”

    “맞아요, 덕분에 훨씬 편해졌어요.”

    “레니, 불편할 수 있겠지만 꼭 물어봐야 할 것이 있어.”

    “네, 얼마든지요.”

    “그래서 발레포르는 어디서 만났지, 당연히 3계층인가.”

    “계층이라는 개념을 그때는 생각하지 않아서, 분명 3계층일 거예요.”

    “그때도 1계층을 통과할 때 이렇게 수월했던 건 아닐 듯한데.”

    “그렇죠, 1계층에서도 파수꾼들을 조우했으니까요.”

    레니의 말을 들어보자면 1계층에서 2계층까지는 계단이 유일한 통로이며, 계층으로 올라가는 단계에서 지속해서 나타나는 파수꾼들과 전투상황에 대치되었다고 했다.

    즉 지금도 이렇다 할 몬스터와 조우한 적이 없으니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혹시, 발레포르가 소멸한 것인가?’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로 생각하다간, 레니의 복수는커녕 이곳에 온 이유가 없어지고 말겠지,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발레포르의 탑과 이곳은 너무나도 다르다.

    도입부터 마안의 뭉치를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개뿔 정령의 호롱불을 쥐고 있는 손만 쑤셔 올 뿐이다.

    “아서, 상당히 오래 걸었다는 생각이 드네만.”

    “일단은 높이만 521M라고 하니까요.”

    “문제는 우리가 이곳을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것 같네.”

    “나쁘지 않은 추측이에요, 그렇담 유명한 방법을 사용해볼까요?”

    “유명한 방법?”

    확실히 쥬드가 의심해본바, 틀린 말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체의 오감을 최대한 개방하여 마력 유동을 20분 전부터 체크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일정한 패턴으로 마력 유동이 반복되었기에 그러지 않아도 슬 의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판단했다. 지금 상황이 이를테면 함정일 가능성도 있다.

    나는 이런 순간에 많이들 사용하는 ‘유명한 방법’을 위해 상체를 숙여 바닥을 보았고, ‘흠, 이쯤이 좋을 것 같아요.’라며 손으로 이끼를 뽑아 주변의 먼지를 털어냈다.

    “쥬드 씨 검 좀 빌려주세요.”

    “응, 여기 있네.”

    “아니 그렇게 큰 검 말고, 작은 거로.”

    “미안하지만, 진정한 사내는 거대한 검 하나로 충분하지.”

    “…그럼 쥬드 씨가 와서 바닥에 흔적을 남겨주세요.”

    “오호, 그런 방법이 있었군.”

    “누구나 다 생각할 방법이에요.”

    그는 거대한 검을 이용하여 바닥을 여러 차례 긁어서 ‘용사의 쉼터’라는 글자의 흔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다시 ‘용사의 쉼터’라는 글자를 마주했고, 레니 원정대의 일원들은 온갖 욕을 퍼붓고는 진짜 똑같은 곳을 계속 걸었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불가시의 장막(Invisibility Curtain)을 걷어내겠다.”

    [ 고유 차원으로부터 연결 : 대상을 카테고리 EX로 지정 ]

    “마안의 뭉치(Bundle of Magical Eyes)를 개안한다.”

    [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안들의 묶음을 해당 장기(눈)에 결속 ]

    “시야에 포착된 공간에 적용된 모든 마법을 ‘파악’ 가능한 마안 결속.”

    [ 해당 마안의 결속상태 지정 : 지속형 / 일시형 ]

    “앞으로 뭐가 나올지 모르니, 지속가능한 마안이 나으려나.”

    [ 해당 장기(눈)에 ‘SSS랭크 : 셜록의 단서’ 지속형 마안 결속 ]

    바뀌어 버린 동공의 모양새 때문에 그런지, 적용된 마안을 구경하기 바쁜 쥬드와 레니, 두 얼굴이 시야를 가려 손으로 치우기 바쁘다.

    특별히 주변의 마력 유동도 달라진 것이 없었기에 더욱 신기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부담스럽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건 무슨 마법이야.’라며 질문해도 ‘영업 비밀입니다.’라는 대답밖에 해주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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