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38화 (38/222)
  • 038화

    * * *

    『 서대륙 : 델타 제국 검찰 집행기관 공고 』

    ◈ 범죄조직 ‘그림자 기둥’ 델타 제국 활동 일당 검거. ※ 활동지 : 델타 제국 ‘새끼 기둥’ 직책의 간부 체포. ※ 서대륙 ‘그림자 기둥’ 델타 활동지 조직원 전원 체포.

    ◈ 간부 ‘호거 로막스’ 외 18명. ※ 폭행. ※ 사기. ※ 살인미수. ※ 1급 마법 도구 복제법 위반. ※ 상급 직책 및 랭크 위조. ※ 마법 무기 사용법 위반. ※ 불법 주거침입.

    ◈ ‘그림자 기둥’ 관련 고발.

    ※ 포상금 : 50골드.

    * * *

    술버릇은 정신적인 질환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는 고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지구에 사는 만 20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빠삭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여관 손님들의 술버릇? ‘브라운 아저씨’의 대화 중 태클 걸기, ‘마커스’의 신세 한탄, ‘웨라’처럼 오히려 적당히 취했을 때 연주가 더욱 뛰어나 진다든지. 이를테면 취권처럼.

    다양한 술버릇이 있는 가운데,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있었어도 성질 고약한 사장에게 쫓겨났겠지만.

    늘 걱정이었던 것은 ‘레니’가 취하게 되면, 회복 마법을 서비스처럼 해주고 다니는 지극히 다정한 술버릇이 문제였다. 아니면 프로정신이 뛰어나다고 해주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더욱 문제는 도가 지나칠 때, 자신의 마력을 딱 ‘생존’만 가능하게끔 남겨두고 몽땅 사용해버린다는 것. 완전히 뻗어버리면 아인슈타인이 오더라도 이 답을 풀지 못할 것이다.

    용사의 쉼터에서 취할 때는 차라리 후방 건물에 투숙객으로 취급해서 방에다 던져놓으면 그만인데, 다른 여관에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 다니면 업주의 관점에서 밖으로 내쫓을 수밖에 없다.

    ‘아까 봤잖아, 바바리안들, 레니는 미인이라고, 눈길 한번 안 주더라.’

    근래 차가운 땅바닥에서 잠을 자다, 자칫 잘못되어 입이 돌아갈 뻔한 레니를 마주 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레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서.”

    “내가 왜 성질 개 더러운 여관 주인일까.”

    “아하하… 그건 술김에.”

    “세상에서 제일 안 좋은 김은, 술김에, 홧김에야.”

    “하하… 죄송합니다.”

    “아니야, 맞는 말 했는데 뭐.”

    “역시 아서는 정말 너그러운 분이에요.”

    “아니야, 나는 성질 고약하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인데.”

    ‘이 사람 생각보다 뒤끝이 심하잖아!’

    이미 굉장히 뒤끝 있어 보이네, 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레니였다. 옆에 있던 아이리스와 렌은 먼지도 없는 용사의 쉼터 가게 홀을 닦는 척하며 몰래 웃고 있다.

    탁자를 한없이 만지작거리는 레니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던전 할머니 여관에서 파티 퇴짜를 맞아 그런 것인지, 뭔가 방향성을 잃은 표정이다.

    “레니, 쥬드도 걱정했다고.”

    “다시는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서요.”

    “쥬드도 과거의 파티 동료와의 사이가 멀어졌다던데.”

    “네, 2년 전부터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며 여관에서 들었어요.”

    “발레포르의 탑에 가야만 하는 이유, 혹시 ‘그것’ 때문이야?”

    “…네.”

    “여전히 악몽 때문에 잠을 못 자나 보군.”

    “죄책감이랄까요… 마무리를 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기분이에요.”

    3년 전, 나는 델타라는 제국에 찾아와 외곽에 있는 조용한 언덕을 분양받고, 이곳에서 여관을 운영하려 했다.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언덕에 집을 지은 뒤, 여관경영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때가 엊그제인데.

    내게는 그 엊그제라는 시간 속에 ‘레니’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여관운영의 프롤로그와도 같은 것이다.

    여관 첫 오픈 날. 보기 좋은 언덕 위 경치도 좋겠다. 지구의 폭죽이 보고 싶어진다. 워낙 조용한 외곽이다 보니 사람들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마안을 남용하여 붉은빛이 터지는 하늘을 실컷 구경한다. 그 뒤로 사각사각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레니가 나타나, 내게 처음 던졌던 말이 ‘오늘 여관에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요?’였다.

    아직은 서투른 요리 실력에 며칠 연달아 찾아오는 레니로부터 ‘오늘도 맛이 별로네요, 분발하셔야겠어요. 사장님.’이라는 소리를 듣곤 ‘네 입에서 맛있다는 소리를 나오게 해주지.’라며 수 없이 웍을 쥐었던 것이 생각난다.

    첫해의 반이 넘어가기 전까진 ‘용사의 쉼터’가 ‘레니 전용’이라는 말이 과언을 넘어선다.

    그때쯤이었나, 어느 날 레니가 ‘여러 여관에 출입 금지를 받았어요.’라는 말을 했다. 왜 그런지 묻자 ‘술에 취하면 힐을 하고 다니는데, 그게 좀 과하대요.’라며 대답했었고. 기억이 꼬리를 물고 붙기 시작한다.

    그 이후 ‘레니가 술에 취해 힐을 하는 버릇이 어느 정도냐면…’ 이라는 말로 남들에게 설명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술버릇을 조금씩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언덕에 전신으로 깔린 마력초가 잘 자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레니의 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몇 달간 ‘레니 사모님’의 전용 여관이었던 용사의 쉼터에서, 여전히 취한 상태는 맞으나 평소와 다르게 ‘이크, 눈물로 여관 홀을 가득 채울지도 모르겠어.’라며 생각했던 때가 찾아온다. 그 시점을 맞이하며 레니가 가진 주사의 원천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만다.

    그때 레니는 마음이 술에 젖은 채로 ‘그때 살려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때 제가 회복을 제대로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때 내가 마력만 남아있었다면….’이라는 말을 반복했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동료가 여관 허공에 보였는지 목이 쉬어라 서럽게 울었다. 그 눈물이 너무 무거웠던 까닭에 엎드려서 울 수밖에 없었던 레니였다.

    ‘술버릇은 정신적인 질환이라는 것.’

    ‘사람마다 가슴에 묻고 있는 나약함이 있고.’

    ‘사람마다 가슴에 묻고 있는 아픔이 있다.’

    레니는 그것이 견디기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술에 취하면 반사적으로나 본능적으로나 누군가를 치유해서 살려내야만 하는 의지가 표출되는 것.

    “어째서 내게 부탁하지 않은 거지.”

    “아서는 여관을 운영해야 하니까요.”

    “지금은 도와주기 충분한 상황인데, 옆에 건장한 용들도 있고.”

    “그래도, 아서에게 도움을 받을 순 없어요.”

    “그렇게 가서 개죽음당하는 게, 옳은 치유 방법인가?”

    “그, 그건….”

    “발레포르에게 사망한 긍지 높은 동료들에게 옳지 못한 행동이군.”

    ‘고대유적 : 발레포르의 탑’

    10년 전 돌연 나타난 탑. 고대유적으로 일반 모험가들은 발도 닿지 말아야 할 1순위로 꼽히는 장소였다.

    이 탑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저 함정이 많아서, 파수꾼이 강해서.’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가지 않으면 그만인데.

    애당초 ‘파수꾼’이라는 존재 자체도, 전 제국 통합정부에서 자세한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고.

    대부분 ‘파수꾼’이라는 것 자체를 대중들이 듣고 정의하기를 ‘괴물’이나 ‘이계의 짐승’ 정도로 취급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파수꾼’은 ‘절망을 토하는 구멍’의 잔재가 부여되어 있는 ‘마물’이며 아득히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절대 신의 혼돈으로 인해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고대유적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아칸의 여러 불가사의를 풀기 위한 단서가 존재했고, 이와 연결이 되는 것도 ‘절망을 토하는 재앙’이었다.

    그래 방랑벽이 도진 ‘모험가’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미친 듯이 좋아했기에, 제 목숨 생각 못 하다가 결국엔 고대유적에서 존재 의미가 아득히 넘어선 것들을 마주하며 절망을 토하기 십상이었다.

    어쨌든 레니가 과거에 ‘발레포르의 탑’에 갔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5인으로 구성된 팀, 결과적으로는 1인이 되어 아주 간신히 살아남은 파티가 되었지만.

    이로부터 레니 파티의 사건이 유명해지기 시작하고, 더욱이 발레포르의 탑을 향하는 모험가를 제지한 시기가 그때쯤이었다.

    “내가 파티원 해줄게, 돈은 필요 없어.”

    “물론, 아서가 따라온다면 두려울 게 없겠지만….”

    “나도 옛날 같지가 않아서, 좀처럼 공략하기 어려울지도 몰라.”

    “그래도 사양하겠어요.”

    “왜지.”

    “아서에게 부탁할 수 없어요, 쥬드에게도 부탁하지 못했는데.”

    “미안하지만, 여관 원년 단골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면 곤란하다고.”

    “벌써 제 사망 플래그를 띄우지 말아요.”

    “여관 자리가 숭숭해진단 말이야, 그냥 여관에 힐이나 주고 있지 그랬어.”

    “…아서.”

    “됐어, 도와주기로 이미 마음먹었으니까.”

    “이렇게 귀찮은 짓은 사서 다하면서… 매일 심술궂은 소리나 하고.”

    “그게 한국인의 특징이거든.”

    “…한국인이 뭐죠?”

    “있어, 밥 많이 먹는 최강의 전투민족.”

    레니는 어렵사리 얼굴에 미소를 담기 시작했고, 지켜보던 렌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는지 이내 참았던 숨을 푹 내쉬는 듯했다.

    ‘72개의 절망’ 머나먼 과거로부터 존재했던, 초월적인 마물들의 이름을 일컫는 문장. ‘발레포르’는 그중 하나로 인간의 심장을 주식으로 삼는 잔혹한 마물이다. 그놈이 여태 먹은 인간들의 심장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오래된 과거, 그래 내 이름이 아직 ‘아서’가 아닐 때.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72개의 절반을 파멸시켰으나, 여전히 절망이라는 이름을 달고 ‘고대유적’에서 나타나니 황당할 노릇일 수밖에.

    7인의 원정대가 말하기를 ‘구멍을 막더라도, 고대유적에 혼돈이 숨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알려고 들지 않아서 그렇지, 단순한 영웅담에만 심취해 있으니 모험가들이 늘어나는 추세가 아니겠는가.

    왜 레니아단은 자신의 노래에 ‘고대유적에 가면 마물들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라고 가사에 적지 않았을까. 그것이야말로 꿀 같은 조언이 틀림없다.

    “아직 ‘모험가의 시즌’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간 준비하고.”

    “최대한 전투력을 높여 놓을게요, 아서.”

    “마음의 준비만 하고 있으면 돼, 버스 기사는 나니까.”

    “버스… 기사? 가끔 아서는 어려운 소리를 하는 것 같아요.”

    레니가 늘 퇴짜를 맞으며 결성되지 않았던 ‘발레포르 공략대’ 이를테면 ‘레니 원정대’가 탄생하고야 만다.

    그녀의 트라우마를 ‘발레포르의 탑’에서 극복하고, 그 시절 자신을 믿어주었던 동료들의 죽음을 갚기 위해, 엄청난 결심을 품은 그녀의 눈동자는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잔뜩 떨리는 몸이 근육의 피곤을 유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위태로운 레니의 상태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여전히 그 눈은 집념에 가득 차서 죽음을 불감하고 있는 불나방 같았다.

    ‘저런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도와줄 수밖에 없다고.’

    옆에 있던 신사 해골들이 나타나, 레니에게 ‘달그락’ 거리며 응원한다. 어쩌면 이 중 레니와 친한 ‘캡틴, 네이비, 블루’는 언제 한 번쯤은 그녀의 술버릇에 대한 이유를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레니가 가게 홀에서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 때면, 캡틴을 포함한 네이비와 블루가 그녀를 피하기는커녕 테이블을 치우다가도 숟가락을 들고는 ‘모험가’의 자세를 취해주었으니까.

    다 괜찮을 거라며, 레니를 토닥이던 렌도 공략을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으나, 아이리스와 함께 홉스의 지시를 들으며 여관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저는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마스터만큼 강한 생명체는 없을 거예요. 발레포르는 한 방일걸요?’라는 문장을 내뱉고는 허공에다 주먹을 쥐었다.

    옆에서 아이리스도 2절을 이어간다. ‘짐이 볼 땐, 이 세계에 남아있는 드래곤 개체 모두가 임자에게 덤벼도 승산이 없을 것이다. 레니.’라며 여관주인을 자꾸만 세계관최강으로 만들어가는 두 마리의 용이었다.

    “들었지, 각별히 복수를 위해서 막타는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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