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36화 (36/222)
  • 036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 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로건 농장의 ‘발리아트 포도주’ 재입고 기간. ※ 생각보다 인기가 많은 관계로 해당 상품을 계약했습니다.

    ◈ 새로운 메뉴 : 로건 농장 치즈 ※ 케피탄 맥주와 근래 비슷한 판매량을 확보한 포도주에 의해 결정 ※ 숙성 강도 3단계 (1. 향이 적절함 2. 다소 그윽한 향 3. 살짝 매스꺼움)

    ◈ 용사의 쉼터 전 메뉴 포장 가능. ※ 전 메뉴를 포장 구매 하실 수 있습니다. ※ 상품 배달의 경우 조금 기간을 두고 결정하겠습니다.

    * * *

    북적한 홀에서 아이리스를 마중해주기 위해 렌과 함께 여관 밖으로 나섰다. 달빛이 차오른 하늘에서 내려오는 푸른 용, 외부의 있던 손님들은 아이리스가 인간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더니 ‘역시 용은 멋있어.’라고.

    ‘내 시야에서는 그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용 모양의 폭탄 같은데.’

    본래 시스템상(?) 드래곤에서 인간으로 변하는 과정 = 알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마법 소녀처럼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변화과정에서 전라를 피할 수 있게끔 ‘마법 처리’의 단계를 거친다.

    ‘마법 처리’ 과정에서 공격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물어본다면…. 용자 물에서 나오는 클리셰처럼 로봇들의 합체 실패와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임자, 다녀왔다.”

    “응, 수고했어. 잘 잡혔어?”

    “너무 많아서 대충 내 취향대로 담아 골랐다.”

    “그, 그래.”

    “어서 오세요. 아이리스.”

    거대한 그물을 걸치고 나타난 아이리스는 ‘아이리스 대양’에서 돌아온 것이다. 다름 아닌 남대륙에 있는 물고기들을 잡아 오기 위해서 그런 것, 일전에 홉스와 이야기했던 타 대륙의 식자재를 공수해 오는 방법이었다.

    ‘근데 그렇게 함부로 가지고 와도 되는 걸까?’라고 물었으나, 아이리스는 ‘아이리스 대양이 나의 것인데, 내 고향에서 내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것이 잘못된 것이더냐?’라는 대답으로 반문하기에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서 얼른 다녀오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너무 많이 잡아 오지 말고 그 그물에 채울 정도만 가져오라고 하였는데, 사실 그물에 전부 채우기만 해도 100마리는 넘을 듯하다. 실제로 아이리스가 가져온 그물 안에는 생각보다 거대한 물고기와 해산물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가져온 물고기들을 어떻게 무슨 수로 보관할까? 주류 창고에 플로우도 있으니 물고기를 거기다가 냉동 보관하면 될 것 같다며, 브라운 아저씨가 호탕한 웃음소리로 말했지만, 그건 플로우들을 비린내로 학대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서 근래에 ‘엑스칼리버’를 심어둔 울타리 옆자리에, 적당한 사이즈의 호수를 파서 일종의 양식장을 만들어 나름 최상의 보관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물이야 아이리스가 손가락으로 쏘면 그만이니까.

    호수를 만드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아이리스를 허공에서 내리치면 바닥에서 부딪치는 과정에서 구멍이 깊게 파이지 않을까요?’라고 렌이 말하기에 곧바로 당수를 꽂았다.

    그냥 드래곤으로 변한 렌이 거대한 손으로 모래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잔디를 덜어낸 땅에 몇 움큼을 파더니 완성되더라. 무려 우리 여관은 재질이 드래곤인 굴삭기도 있다.

    “마스터, 호수에다 옮길까요?”

    “응 부탁할게.”

    “아이리스 그물 가지고 오세요.”

    “알겠다. 반대쪽을 잡도록 해라.”

    두 여인이 거대한 그물 안을 뒤적거리며, 간혹 자기들보다 몸집이 큰 물고기들이 손에 잡혀도 손쉽게 호수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 과정에서 침을 줄줄 흘리는 것 이외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외부손님들에게 ‘이건 차력 쇼가 아니에요.’라고 이마를 누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이미 내부 손님들까지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입을 벌리며 구경하고 있다.

    “임자, 이참에 엑스칼리버에 물을 주겠다.”

    “그래, 강도 조절 잘해서 줘라.”

    “걱정하지 말도록.”

    “오, 생각보다 많이 자란 것 같기도.”

    “임자, 이제 이것은 묘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엑스칼리버가 이 초전박살 여관에서 꿋꿋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것인지,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었고 이러다가 이번 해가 지나가기 전에 나름 거대한 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우리들은 홀로 들어와 다시 각자 자리를 향해 움직였다. 각자 자리라고 하기보다는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NPC 같은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평소와는 다르게 비단 조용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치유 마법을 난무하고 있어야 할 ‘레니’가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쯤 바드 ‘웨라’ 씨의 연주를 더욱 빛내기 위해서, 그녀 옆에 앉아 공연 장비인 지팡이를 들고 녹색 빛을 쏘며 무대를 멋지게 만들어 주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주사 난동을 부리고 있어야 했다.

    “웨라, 오늘 레니가 오지 않았나 봐요?”

    “아서, 그녀는 오늘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함께 가자고 했는데, 레니가 오늘은 집에서 쉰다고 했어.”

    “쥬드, 최근 레니와 파티를 한 적이 있나요?”

    “아니? 레니가 은퇴했다는 건, 자네도 잘 알 텐데.”

    “최근 들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요, 벌이가 시원찮은지.”

    “그렇군… 근래에 잘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니까.”

    “브라운 아저씨는 최근에 레니를 본 적이 있나요?”

    “매일 같이 여관에 오는 게 이 몸인데, 자네가 본 것과 똑같네!”

    “틀린 말이 아니네요, 아저씨는 거의 직원이나 마찬가지니까.”

    “크하하, 암 그렇고말고, 내가 바로 이 가게의 맥주요정이 아닌가.”

    이내 쥬드가 ‘별일 없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라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을 앞서게 만드는 건 과거 파티를 함께 했던 그가 표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쥬드는 굳었던 표정을 풀고, 옆자리에 있던 브라운 아저씨와 ‘뭐든지 꿰뚫어버리는 창 VS 뭐든지 막을 수 있는 방패’에 대해 불타는 토론을 시작했다.

    웨라는 홀 중앙에 있는 작은 무대로 올라가 다시 기타 같은 것(?)을 연주하며 가볍게 목을 풀기 시작했고, 어느새 사람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아이리스는 ‘어떤 노래를 부를지 알 것 같군.’이라며 가볍게 흥얼거리던 웨라의 목소리를 듣고는 ‘신사 해골’들을 저번처럼 ‘7인의 영웅’들의 모습으로 변장 마법을 걸었다.

    정적의 가운데, 웨라의 악기 조율 소리가 들리고.

    모두는 숨죽여 그것을 지켜보며, 여관은 가장 조용한 순간을 맞이한다.

    ―당신은 이 재앙을 알고 있을까요.

    ―이 세계가 어둠으로 물들 때.

    ―아무것도 없는 암흑이 드리울 때.

    ―용감한 일곱 영웅은 길을 열었죠.

    ―다 같이 불러요, 이 희망의 글자를요.

    ―그들은 살아있어요, 돌아올 것이죠.

    ―다시 거대한 구멍이 생겨 재앙이 나타날 때.

    ―그들은 돌아올 것이죠, 살아있어요.

    ―당신은 이 고통을 알고 있을까요.

    ―이 모험이 절망으로 물들 때.

    ―수많은 마물에 둘러 공포가 드리울 때.

    ―희망을 품은 일곱의 영혼은 나아갔죠.

    ―다 같이 소망해요, 이들의 승리를요.

    ―그들은 끝나지 않은 모험을 하고 있어요.

    ―세계가 뒤틀리고, 부서질 때면.

    ―그들은 돌아올 것이죠, 우리가 불러요.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하나의 문장을 외친다.

    ―영원 하라, 우리의 터, 아칸이여!

    ‘레니아단의 노래’라는 7인의 영웅들을 위한 곡으로, 실제로 ‘베르히만’의 일기를 통해 만들어진 노래인데, 모험 중 그녀가 속삭이며 부르던 문장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가사였다.

    아칸이라는 세계에 사는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 노래. 끝이 나면 ‘영원 하라, 우리의 터, 아칸이여.’ 그러니까 기독교로 비유했을 때 ‘아멘’ 같은 것을 외쳐주는 게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하는 문화 중 하나였다.

    박수 세례가 떨어지고 ‘델타 최고의 바드는 웨라야!’라며 손님들의 칭찬이 줄을 놓았다. 그녀는 약간의 미소를 띠며, 다시금 조용히 악기를 연주했다.

    “웨라, 고생했어요, 조금 쉬었다 연주하시죠?”

    “잠시만 쉬도록 하죠, 오늘은 다른 바드분들이 부재중이라.”

    “이런, 웨라만 실력이 왕창 늘겠군요.”

    “고마워요, 실제로는 제가 제일 미숙하지만요. 아하하.”

    좋은 노래를 들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웨라에게 마실 것을 가져다주며, 앞으로도 여관에서 많은 연주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전했다.

    그녀의 노래로 인하여, 가게의 손님들은 오랜만에 들었던 ‘레니아단의 노래’를 계속해서 흥얼거렸고, 평소와는 다른 적적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평소의 양복을 입은 신사 해골들의 모습도 좋지만, 오늘은 7인의 영웅으로 내버려 두는 것은 어떻겠나, 모두가 그러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것 같으니. 하하.’라는 브라운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퍼플이 시내를 향해 마지막 손님들을 태워, 해골 마차를 운행했다.

    나를 포함한 용사의 쉼터 직원들은 여관 마감을 위해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고, 홉스는 현재 투숙객 상황과 금일 매출에 대한 부분을 내게 전달했다.

    “사장님, 렌과 아이리스 님을 제외. 금일 투숙객은 종합 8팀입니다.”

    “후방에 있는 투숙 시설이 렌과 아이리스가 머물다 보니 말이야.”

    “아마, 모험가 시즌이 다가올 때를 노려서 확장하는 것도.”

    “모험가 시즌이라… 얼마 정도 남았지?”

    “두 별(달)정도 남았어요, 그 시기엔 투숙객들이 적어질 테니.”

    “투숙 시설 확장에 대해 조만간 고민해 보는 걸로 하지.”

    ‘모험가 시즌’이라고 하는 것은 각 대륙에 존재하는 모험가들이 ‘고대 유적의 탑’으로 향하는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머나먼 이야기, 과거의 신들이 이곳에 인간과 함께 거주하는 시대가 있었고, 신들의 거처로 알려진 고대 유적에 지금의 모험가들이 숨겨진 보물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모험을 떠난다.

    ‘고대 유적의 탑’은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주위에 알 수 없는 미지의 결계가 풀려 일 년에 2별(달) 정도의 기간 동안 탑의 형태가 나타나, 접근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신들의 거처라는 식의 전설이지만, 그것도 사실 알 수 없는 부분이며 본인이 들은 바로는 ‘고대유적’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탑에는 그저 신의 기운이 남아있기에 유래가 그렇게 변질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험가 시즌’은 모험의 시즌이기도 하지만 연간 모험가들의 사망률도 가장 높은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행방불명이 되는 것은 기본이며 자칫 잘못하다간 결계가 풀리는 시기를 잘못 맞추어 고대유적에 갇히는 사례도 빈번했다.

    또한 괴물이라고 판단되는 ‘신의 파수꾼’들이 탑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과의 전투상황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고, 허공에 존재하는 마력 농도도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초급 모험가의 경우 마법을 구현하기도 쉽지 않다.

    비단 그런데도, 방랑벽이 도진 모험가들은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곳이 고대유적의 탑이었다.

    ‘고대 신들이 부렸던 기적이, 자연 마법에 의해 나타난 것이 고대유적.’이라는 세간의 정의가 내려지자 모험가들의 마음에 더욱이 불을 지필 수밖에.

    “렌, 짐이 설명했던 그림에 뭐라도 묻었는가.”

    “아니요, 그냥 이 뒤에 앉아 있는 정체 모를 사람이 궁금해서요.”

    “짐도 그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겠다만, 화가의 실책….”

    “이라기엔 굳이 여기다가 제8의 인물을 넣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다만….”

    “렌, 아이리스, 이제 마감하고 후방으로 넘어가자.”

    “네, 마스터!”

    “알겠다. 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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