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32화 (32/222)
  • 032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 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로건 농장의 ‘발리아트 포도주’ 입수.

    ※원산지 : 발리아트 숲 / 숙성 : 로건 농장. ※첫 발주 여관으로 한 달간 발리아트 포도주 가격 인하(↓)

    ◈ ‘웨이트리스 아이리스’는 ‘드래곤이라는 설정.’

    ※‘웨이트리스 아이리스’는 고귀한 ‘블루드래곤이라는 설정’입니다. 말투가 상당히 거북할 수 있으나, 진심이 아니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추가로 아이리스가 착용한 목걸이는 제 의사가 아닌 ‘본인의 의사’입니다.

    * * *

    “아하하, 아하하!”

    “푸하하하! 역시 이렇게 되는군!”

    “아하하, 미쳤어 너무 웃기잖아.”

    “아서, 나는 자네의 속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네, 크하하!”

    사람들이 여관에 들어오자마자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이리스’를 보며 폭소하기 시작했고, ‘이 친구 저번에 자네 여관을 박살 냈던 블루드래곤이지?’라며 배꼽을 잡고 미친 듯이 웃어 재꼈다.

    “웃지 말도록, 짐은 그대들의 웃음거리가 아니다.”

    “아하하… 미, 미안하군. 하하.”

    “그대들은 어서 자리에 앉아 있게, 짐이 물을 가져올 테니.”

    “오… 생각보다 손님을 접대할 줄 알잖아, 아서.”

    “브라운 아저씨, 저도 녀석의 바뀐 태도를 보면 어색해요.”

    푸른 머리칼을 길게 내린 아이리스를 보며 사람들은 ‘이곳 드래곤들은 죄다 미인이네.’라며 탄성을 냈다. ‘사실 나는 아서가 부러울지도.’, ‘무려 저런 미인이 임자라고 불러주잖아.’라는 말도 뱉었다. 미친 건가.

    당연히 나는 팔짱을 끼며 ‘아저씨들 취향이 이상하다고요, 쟤네는 사람도 잡아먹는 용이라니까.’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차라리 해골들이 더 멋진데.’라고 조용히 말을 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네가 훨씬 더 이상해 보이거든 아서.’라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직시했다.

    아이리스는 브라운 아저씨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이동하여, 오는 길에 실컷 흘린 땀을 닦으라고 가게의 손수건을 내주었다.

    “어서 오시게, 무엇을 원하나.”

    “음… 오늘 질이 괜찮은 메뉴가 뭔가?”

    일전에도 브라운 아저씨는 렌에게 ‘오늘 질이 좋은 메뉴가 뭐지?’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고, 렌은 그 말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캡틴이 브라운 아저씨의 주문을 받았다.

    ‘질이 좋은 메뉴’라는 뜻은 근래에 들어온 식자재 중에 가장 상태가 신선하여 삼인방이 요리했을 때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말이었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렌이 불쑥 나타나 브라운 아저씨의 테이블로 향해 입을 열었다.

    “브라운 아저씨, 오늘은 고….”

    “고기는 2일 전에 A등급으로 입수한 식자재가 있다. 가져오자마자 최상의 상태로 냉동보관을 하고 있으니 식감이 평소보다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돼지고기 BBQ보다는 소금을 겸하여 먹을 수 있는 구이 계열이 풍미를 느끼기에 탁월할 것이다. 어떤가?”

    “오, 오… 대단해, 그걸로 주게.”

    “마실 것은 따로 필요하지 않은가.”

    “난 언제나 케피탄 맥주라네, 아이리스.”

    “그 얘기는 아득히 홉스를 통해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짐이 오늘만큼은 추천하는 메뉴가 하나 있으니 먹어보는 것이 어떤가, 바로 로건 농장에서 새로 입주한 ‘발리아트 숲’이 원산지인 포도주다. 일반 산포도주와 다르게 코와 목에 스며드는 향이 더욱더 그윽하니 새로운 음주를 체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럼 그걸로 가져다주게.”

    “짐은 그대의 주문을 받아들였다. 기다리도록.”

    “이, 이 친구… 대단하잖아. 아서.”

    “아, 그리고 저번에는 미안하네, 짐이 사과하도록 하지.”

    자신의 첫 근무와 무릇 비교가 되었던 아이리스의 대답을 보며 입이 삐죽 튀어나와 마커스가 앉아 있는 엄한 테이블을 발로 퉁퉁 차고 있다. ‘왜, 왜 그래 렌, 내 테이블에 그러지 마.’라고 난처한 얼굴을 하는 마커스였다.

    그는 이어서 ‘렌, 너도 충분히 잘하니까 화이팅이야!’라고 위로했다. 사실 마커스는 자신의 테이블을 차고 있던 렌 때문에 맥주가 쏟아질 것만 같아 말리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이 아이리스 님의 서빙이 정보전달이 잘되어서 좋다고 합니다.”

    “홉스여, 짐은 지혜로운 용이니라, 사실만 전달했을 뿐.”

    아이리스는 다음으로 레니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홉스에게 미리 전달받았던 ‘레니의 주사는 마력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힐을 해주는 것’이라며 혼잣말로 레니를 응시한다.

    돌연 아이리스는 호주머니에 있던 ‘액체가 들어 있는 작은 병’을 꺼낸 뒤에 레니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의구심을 잔뜩 품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술에 취해서 힐을 하고 다니면 독살시켜버리겠다는 뜻인가?

    “이, 이게 뭐죠?”

    “마력 포션이다.”

    “이걸 왜… 저에게?”

    “취기가 올라올 때쯤 복용하라는 것이다. 네 녀석이 임자의 가게 안에서 실컷 힐을 난무하다가 마력이 떨어져 뻗어버리면, 누가 너를 치워주나? 그래도 그 주사는 그렇게 나쁜 주사가 아니니, 짐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마력을 몽땅 소진해 버리면 다음 날 숙취가 상당할 테니까 포션을 챙겨 다니도록.”

    “감동이에요, 아이리스….”

    “그리고 저번 일은 짐이 사과하겠다.”

    여관을 박살 내고는 인간들에게 무자비하게 고통을 안겨 줄 것만 같던 그 블루드래곤이 맞는지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실제로 녀석이 서빙하는 것을 보며 ‘어디 나사가 풀렸나 보다. 내일이면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렌도 이런 아이리스의 모습을 보며 급작스러운 경쟁 욕구가 생기고 말았다. ‘선배로서 질 수 없어요!’ 급기야 열정 모드로 돌입하고야 마는데… 어떻게 각오를 했다는 것만으로 홀 내부의 마력 유동이 달라질 수 있을까.

    녀석은 첫마디마다 ‘짐은’이라는 말을 붙이며 밀렸던 주문을 조금씩 줄였고, 다음은 마커스의 테이블이었다.

    아이리스는 마커스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삼인방에게 음식을 받아 움직였고, 마커스는 옆자리 테이블에 있던 ‘아이단’과 ‘사냥’에 대한 토론을 하며 서로를 불태우는 중이다.

    “이봐, 마커스 그게 아니라고.”

    “아이단, 자네 방법으로 대형짐승을 잡는 것은 무리라네.”

    “어허, 그러니 마커스 네가 대형짐승을 잡지 못하는 거야.”

    “기사 출신 주제에 대형짐승을 언제 잡아봤다고!”

    “아하하, 우리도 가끔은 그런 임무를 받는다고, 마커스.”

    “으으, 두고 봐, 그래도 홉스 덕에 좋아졌으니, 조만간!”

    델타 기사 출신의 아이단과 사냥꾼인 마커스는 ‘대형짐승’을 잡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아이단은 브라운 아저씨처럼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은 아니었지만, 간혹 프리실라처럼 불쑥 찾아와 놀다가는 식이다.

    더욱이나 ‘그림자 기둥’ 출몰 이후로 특수임무를 부여받아 여관 순찰 겸 찾아왔다며 특이한 소리를 늘어놓기도 하는 웃긴 사내였다. 그는 실제로 실력이 좋은 기사가 아닌 남을 웃길 줄 아는 재주를 가진 평범한 기사일 뿐이다.

    아이리스는 마커스가 주문한 음식을 테이블에 가져다주었고, 토론 중이었던 이들에게 ‘실례지만 내가 한마디 해도 괜찮은가?’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러시게.”

    “자기보다 몸집이 큰 개체를 사냥할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첫 번째 과연 피지컬 이외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으로 대상을 제압할 수 있는가, 두 번째 주변이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엄폐물이 많은가.”

    “고, 고맙네, 아이리스.”

    “그러나 아이단이라는 자가 말한 부분에는 모순이 있다. 조금 전 ‘지형지물을 이용할 필요 없이.’라는 말은 자기보다 큰 대상을 사냥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매한 추측이라는 것이다.”

    “하하… 장, 장난으로 말해본 걸세.”

    “자신보다 크기가 큰 개체를 상대할 때는 주변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한 환경이라면 거리를 두고 ‘활이나 화기’ 같은 것, 혹은 ‘중거리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아이단, 받아 적을 것 좀 줘. 어서.”

    “일전에 렌과의 전투를 기억하는가? 나는 개체특징상 빨간색용보다 크기가 작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거리에서 녀석을 최대한 유도하여 근접전을 최대한 피하는 방법으로 전투를 실행했지.”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군.”

    “그러나 여기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어느 정도 도망갈 줄 알아야 자기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이 이야기를 빌미로 삼아 렌과의 전투에서 승산이 없었던 나머지 인간들을 미끼로 전투에 이용한 점에 대해 사과하도록 하지.”

    “하하… 괜찮아, 아이리스.”

    아이리스의 속사포 설명은 귀에 아주 잘 들어온다고 할 수 있었다. 나와 아이리스의 거리는 홀의 거의 끝과 끝이었는데도 들렸다.

    앙칼진 발음과 적당한 중저음, 정확하게 내뱉는 인간 언어가 듣는 사람의 전두엽에 고스란히 박히게 했다. 지구의 아나운서나 이곳의 마법 기자를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로.

    * * *

    금일 가게 영업이 종료되고, 용사의 쉼터 직원들은 마감 준비를 하거나, 여관 내부에 손님들이 흘리고 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홉스에게 발리아트 포도주를 마셨던 손님들에 반응이 어땠냐고 물었는데, 평소보다 케피탄 맥주의 판매율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

    그리고는 ‘더욱이나 아이리스 님이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라며 추가 사항을 말했다. ‘달그락, 달그락.’ 캡틴도 옆에서 엄지를 들었고, 렌은 볼에 바람을 집어넣다가 이내 테이블을 닦는 아이리스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이리스, 일은 어땠어.”

    “나쁘지 않았다. 임자.”

    “생각보다 손님들한테 인기가 많던데.”

    “그, 그렇지 않다.”

    “이전이랑 다르게 인간들에게 접대를 잘하더군.”

    “처음에는 붉은 용 녀석이 왜 이곳에 있는지 몰랐다.”

    “렌이 이곳에 있는 이유라….”

    “그러나 느껴보니, 나쁘지 않았다.”

    “혹시, 마음이 성숙해진 건가?”

    “짐, 짐은 늘 고결하고 성숙한 드래곤이다!”

    문득 아이리스가 ‘인간을 죽여본 적이 없는 용일 수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녀석이 언덕에서 정신을 차리고 도망가려고 했을 때부터 왠지 모를 촉과 비슷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렌이 필사적으로 손님들을 지키기 위해 막았다고 했으나, 초월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아이리스가 사람을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렌도 아이리스와의 전투에 대해 말했던바, ‘분명 제가 막지 못한 우박들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손님들을 피해서 떨어지더라고요. 마치 위협처럼?’이라고 말했다.

    그저 위협 정도로 떨어뜨린 우박이었던 것 같다며 렌과 나는 그렇게 결론을 지었고, 결과적으로는 나의 소중한 여관만 고통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래도 덕분에 블루드래곤이라는 ‘고성능 스프링클러’를 손에 넣었으니까!

    “임자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참고로 대답할 수 있는 것만 대답할 거야.”

    “그래서 모멧티의 맛은 어땠는지….”

    “나도 먹어보진 못했어, 삼인방에게 가서 물어보는 게 어때.”

    “다, 다음에 같이 먹어보는 것으로 하지.”

    “다시는 구하지 못하니까 빡친 거 아니었나.”

    “생각해보니… 또 열 받기 시작하는구나.”

    30년을 기다렸던 물고기가 아른거려, 다시 이마에 ‘빠직’이라는 소리와 함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는 듯했으나… 오렌지가 가져다준 음식으로 조용히 분노를 가라앉히는 블루드래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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