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8화 (28/222)
  • 028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 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드래곤들의 전투로 인해, 용사의 쉼터 긴급 휴무 발령. ※ 최대한 빠르게 여관을 보강한 뒤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당분간 아서를 찾지 말아 주세요.

    ◈ 아서의 추천 여관 ‘던전 할머니 여관’ ※ 색다른 설정의 여관을 느껴볼 수 있을 겁니다. ※ ‘강한 팔’ 이벤트도 직접 즐겨보세요.

    ◈ 여관 보수에 대한 후원 금지.※ 여관의 직원들과 손님들이 무사하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주머니 사정 알고 있으니, 후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꾸준히 찾아오시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 * *

    완전히 혼절해 버린 ‘블루드래곤’이 신기하다며 가까이 다가와 만져보는 우리 가게 손님들이 간이 큰 건지 혹은 멍청한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바지에 실컷 지려버린 채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비슷한 상황이니 대수롭지 않은 듯하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언젠가는 다시 깨어날 푸른 용 앞에 동물원 관광처럼 구경시켜줄 수 없는 노릇이니, 여관에서 해골 마차를 통해 손님들을 귀가시키기로 한다.

    아쉽다며 조금만 더 구경하자는 손님들이 있었는데, 전원 내 여관의 단골들이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 드래곤 입에다가 넣어줄까요, 아주 위장까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시지 그래.”

    해골 마차를 통해 많고 많은 가게의 손님들을 시내까지 귀가시켜주느라 같은 행동을 여러 번 반복했던 퍼플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우리 여관의 스페셜리스트.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난 것이 분명한 마당,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이마를 꾹꾹 눌린다.

    “마스터, 저는 얘 몰라요, 진짜요.”

    “그래…. 그런 것 같더라고.”

    “사장님… 이 용 깨어나지 않겠습니까?”

    “당분간은 깨어나지 않을 거야. 홉스.”

    우리 가게의 빨간 용, 상처를 잔뜩 입은 상태여서 그런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생채기가 온몸에 남아 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야에 포착된 대상을 회복하기 위한 마안을 결속한다.”

    [해당 대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S랭크 : 자연의 시선’ 결속]

    황금빛이 녀석의 주변을 맴돌며 회복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흠집 하나 없이 깔끔한 몸으로 돌아온 렌이 ‘마스터, 너무 궁금한데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라며 물어온다.

    “그냥 여관 주인이라니까.”

    늘 같은 패턴으로, 똑같은 대답을 던졌다.

    EX랭크의 마안 1번, SS랭크의 마안 1번, S랭크의 마안 1번을 사용했더니 은퇴 전과 다르게 육체적으로 많은 보상 효과가 필요했다. 양쪽 눈이 번번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이내 불가시의 장막으로 권능을 가린다.

    “불가시의 장막(Invisibility Curtain)을 치겠다.”

    [고유 차원으로부터 권역 봉인 : 대상을 카테고리 무등급으로 지정]

    이것은 우연일까, 전혀 무사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델타산맥 꼭대기에서 가져온 식물은 아주 멀쩡했다. 요놈 이거 뭔가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사장님 멀리서 사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 하필 지금 오고 있다니.”

    “누가 말입니까?”

    “잡배들 때문에 던전 할머니 여관에서 부른 용병들 말이야.”

    “그럼 제가 가서 녀석들이 도망갔다고 전하겠습니다.”

    푸른 용이 기절해 있는 현재 상황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홉스는 부리나케 언덕 아래로 달려갔다. 출발 전에는 홉스 손에 3골드를 쥐여주었는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사과의 표시로 추신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여관의 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블루드래곤을 보며 줄행랑을 해버린 사기꾼 잡배 놈들은 기어코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드레인 웨폰을 어디서 구했는지, 그 출처를 조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그것을 들고 튀어버린 상태라 잡배들을 수색까지 해야 한다.

    물론 내가 사서 고생할 일은 아니지만, 범법자가 델타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의뢰 게시판을 사용할 수 있는 여관뿐만 아니라, 델타제국 검찰기관에 신고를 해야 한다.

    “마스터, 이 녀석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어요.”

    “위협적인 자세는 금물이야, 어차피 여력이 없을 거다.”

    “네, 마스터.”

    용이라는 종족 자체가 회복력이 뛰어난 것인지 미세하게 녀석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쩌면 남아있는 마력초 덕분일 수도 있다.

    언덕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던 용병들을 제지하고 다시 돌아온 홉스,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푸른 용의 모습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묵묵하게 손님들을 보내고, 여관의 깨진 유리를 청소하거나 어지럽혀진 홀을 정리하고 있던 신사 해골들마저 마당으로 나와 푸른 용을 구경한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이 용을 어떻게 한다.’

    * * *

    “짐의 이름은 ‘드래곤 오브 블루아르헨 블레아스 아이리스’다.”

    “후… 하여간 용들의 이름이란, 아이리스로 하자.”

    “짐의 이름을 함부로 줄이지 마라, 인간!”

    “이 녀석이 마스터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죠?”

    “아, 아프다 때리지 마라!”

    “마스터에게 사과하세요.”

    “미안하다….”

    빨간 머리의 여인이 자기보다 어려 보이는 푸른 머리의 여인 정수리에 꿀밤을 때렸다. 홉스도 이런 모습을 보며 인간으로 변한 ‘아이리스’에게 경계심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어제저녁. 몸을 움찔거리며 깨어날 듯 반응을 보이긴 했었으나, 결국 일어나진 못했다. 참고로 그 자리에 재웠다. 주리가 틀리는 것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

    다음 날 이른 아침, 주류 창고의 플로우들을 확인하고 델타산맥 꼭대기에서 가져온 식물 이름하여 ‘엑스칼리버’에 물을 주고 있을 때였다. 비로소 녀석은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여주더니 하늘로 뛰어올라 도망가려고 했던 것을 내가 똑같이 뛰어올라 잡아 온 것. 줄행랑은 잡배로 충분하다. 어디서.

    어쨌거나 현재로 돌아온다. 지붕이 반쯤 뚫려버린 전방 건물에 그나마 성한 테이블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하물며 어제 모습과는 다르게 순조로운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순조롭기보다는 그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대화가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 여관을 박살 내놓고 도망가려고 했겠다.”

    “짐은 그저 복수를 위해서, 너희들을 혼내려고 한 것뿐이다!”

    “이곳에서 용에 원수를 질만 한 사람은 없을 터인데.”

    “너희들이 ‘아이리스 대양’으로 찾아와 나의 물고기를 훔쳐 갔으니!”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아이리스 대양’이 무엇이더라, 고민하던 찰나였다.

    ‘마스터, 우리 거기에서 요리 삼인방들을 위한 물고기를 잡아 왔잖아요, 무멧티였나?’

    해답을 들춰내는 렌. 다시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우리가 훔쳐 온 것이 맞았다.

    “아니, 모멧티가 네 것이라는 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억지야 그건.”

    “무엄하다! 짐이 그것을 먹으려고 30년을 아껴두었다!”

    “그래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지.”

    “너무하다, 흑, 흑… 흐엉, 흐엉….”

    아무래도 그때 사용했던 내 힘으로 아이리스가 이곳까지 추적하는 데 도움을 준 듯했다. 마력 유동이 강하니 그만큼 쫓아오기도 편했을 것이다. 나도 추적할 만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조심했을 텐데.

    앞에서 서럽게 우는 녀석을 보며 렌 또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라고 내 입으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30년, 모멧티를 잡아먹으려고 기다렸던 시간. 인간이라는 기준에서 바라볼 때 위스키를 30년간 숙성시켰다가 아껴둔 것을 누군가 몰래 훔쳐 먹은 것이나 다름이 없긴 하다.

    “밥이나 먹자, 내가 해줄게.”

    “퉤, 인간이 먹는 음식 따위는 필요 없다!”

    “마스터의 음식을 먹어보고 이야기하시죠, 아이리스.”

    “이 붉은 용은 짐에게 갑자기 왜 잘해주는 것이냐.”

    “마스터 앞이기에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천하의 레드드래곤이 인간을 주인으로 삼다니, 웃기는군.”

    “אל תהיה שטויות אם אתה לא רוצה למות”

    “알, 알겠다.”

    렌이 아이리스에게 고대어로 뭐라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충 ‘뒤지기 싫음, 곱게 있어라.’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어제 사단이 일어나고, 여관을 정리하겠다며 해골 녀석들이 우리에게 먼저 취침을 권유했다. ‘너희들도 쉬어야지, 관에서 휴식해야 할 것 아니야.’라는 식으로.

    그러나 ‘달그락, 달그락’ 고개를 흔든다. 아마 ‘우리는 수면이란 개념이 딱히 없으니 청소를 하다가 관에 들어가겠다.’라는 뜻이 담긴 듯 했다.

    어떻게 그런 장문의 ‘달그락’을 이해하냐고 묻는다면, 이것 또한 마안의 힘이라고 대답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애당초 고대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런 이유로 상당히 오랫동안 작업을 하다가 관으로 들어간 모양이라, 어울리지 않게 늦잠(?)을 자는지 여전히 ‘달그락’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했고, 결국 이 중에 요리가 유일하게 가능한 내가 부엌칼을 대신 들기로 한다.

    “저 인간은 일반 개체와는 아득히 다른 힘을 가졌던데.”

    “저도 아직 마스터의 정체를 모릅니다.”

    “만나본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가진 강함보다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늘 말하길, 자신은 여관의 주인일 뿐이라고.”

    “그래서 부서진 여관을 어떻게 변상할 거죠?”

    “사기꾼아! 복수라고 하지 않았느냐!”

    “복수는 복수고, 모멧티는 애당초 아이리스의 것이 아니잖아요.”

    “그, 그렇지만.”

    “뿔 한쪽이라도 두고 가세요, 뭣하면 제가 잘라드리고.”

    “망할… 이 미쳐버린 던전에 오는 게 아녔는데!”

    “무식하게 던전이라뇨, 이곳은 여관입니다. 저는 웨이트리스이고요.”

    “으, 으!”

    달짝지근한 소스 냄새가 퍼졌다. 여관에 뚫려버린 망할 구멍들 탓에 녀석들의 코는 분주하게 킁킁거린다. 대화로 치고받고 있던 녀석들이 조용해지며 가지고 오는 음식들을 쳐다보기 바쁘다.

    괜찮다. 다음은 너희들의 뼈로 곰국, 아니 용국을 해버릴 계획이니까.

    홉스는 냄새를 맡으며 ‘사장님은 요리도 잘하시나 봐요’라고 묻기에 ‘잘하는 요리만 잘해.’라고 겸손을 떨었다. 모르게 한참 올라가 버린 어깨를 눌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척 다행스러운 부분.

    “아, 아니, 이렇게 맛있을 수가!”

    “어때, 블루드래곤이 느끼는 인간의 음식은 아직도 미천한가?”

    “짐, 짐이 그렇게 말한 것은 실수였다.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군….”

    아이리스는 렌의 첫 만남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포크나 수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어울리지 않은 귀족자녀 같은 모습에, 손으로 음식을 퍼먹기 바쁘다.

    렌은 ‘나도 이렇게 게걸스럽게 먹었을까.’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녀석과 함께 한참 동안 아이리스를 바라봤다.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나머지, 그녀 옆에 붙어 수저와 포크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은 다음 일이었다.

    “오, 역시 나약한 인간이라 그런지 사용하는 도구는 아주 편리하군.”

    “차라리 지혜로운 생명체라고 해주지 그래.”

    “물론 자네는 짐이 인정한 초월적인 존재다. 하하!”

    “허, 그거 고맙군그래.”

    마음 같아서는 녀석의 뿔을 통째로 잘라서 여관 수리 비용에 사용하고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도 녀석이 모멧티를 30년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잡아 왔으니 할 말이 없었다. 잘잘못을 따지기엔 머리가 아픈 사건이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건가. 역시 ‘아아’를 운운할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여관이 잘 된다 싶더니만, 이런 식으로 한 방에 무너질 줄이야. 모쪼록 손님들에겐 미안하지만 이 정도면 재기불능이지 싶다.

    비즈니스가 모험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더니… 뻥 뚫린 여관의 지붕을 보며 ‘실로 모험이 따로 없다.’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