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7화 (27/222)
  • 027화

    * * *

    『 크윽, 전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가. 』

    『 미안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용들에게 패배한 적이 없다. 』

    별 무리 가득한 허공에 살아 움직이는 유성이 한없이 부딪치며 싸우는 것처럼. 빛의 화려한 움직임에 사람들은 예술을 보고 있는 듯이 넋을 놓고 있었다.

    블루드래곤은 여러 차례 바닥에 박혔다. 다시 일어서서 허공으로 뛰어올라 렌에게 덤벼들었으나. 무자비하게 또다시 바닥으로 내리꽂힐 뿐이었다.

    거의 울상인 상태로 무언가 홀린 것처럼 미친 듯이 렌에게 달려는 푸른 용. 끝내 가게 손님들은 연민을 느꼈다.

    ‘이쯤 되면 그, 푸른 용의 말도 들어봐야….’

    ‘렌, 블루드래곤이 불쌍해지려고 해….’

    이어서 블루드래곤이 바닥에 내리박히는 그 충돌. 흩날리는 잔디의 파편과 흙이 아서의 얼굴에 튄다. 사람들은 ‘이런, 지금 아서는 회복 불능이야….’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브라운 아저씨, 아서의 상태가 말이 아니에요.”

    “크하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사람 같군.”

    “웃을 때가 아니라고요, 여관이 문을 닫으면 어떡해요?”

    “그, 그건….”

    사람들은 어느새 ‘어차피 렌이 이길 싸움인 듯하네.’라며 한숨을 돌렸다. 사실 여관에 대한 걱정으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어버버…’거리며 동공에 초점이 없는 아서를 보고 있자 하니 더욱 그랬다. 마치 여관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언덕, 그리고 그 위에 잔디, 그리고 그 위의 여관, 성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지금. 사람들이 이곳을 보며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언덕 위에 아서가 아끼던 잔디는 반할 이상이 망가져 있었고, 마당 곳곳에 산발적으로 용 모양의 구멍이 뚫려있다. 렌이 최대한 비슷한 곳에 던지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긴 했으나 용이 박힌 구멍의 크기는 절대 작지 않다.

    여관은 더욱더 문제였다. 후방 건물은 다행히 흠집조차 나지 않았지만, 전방에 있는 건물은 ‘지붕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있거나 ‘창문은 모조리 깨져서’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통풍이 상당히 잘될 법했다.

    바닥에 박혀있던 블루드래곤의 목을 잡아들어 올리는 렌. 블루드래곤은 전신에 힘이 빠져 몸이 축 늘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렌이 던지는 말을 들었던 가게 손님들, ‘렌, 너 지금 캐릭터 갭 차이가 너무 심하다니까!’라며 부서진 가게 안에 숨어 고개만 슬쩍 내밀고는 태클을 걸고 있다.

    『 네놈 뼈를 팔아, 여관 수리의 비용으로 써야겠어. 』

    『 짐에게… 이런 능욕을 겪게 하다니. 』

    ‘드래곤 본의 손가락 마디 하나가 1,000골드 이상이니 저 드래곤을 팔면 여관 수리 비용으로 쓰고도 남겠다.’고 가게 손님들은 머릿속에서 여관의 주인도 아니지만, 어디를 통해 판매하면 수요가 좋을지 계산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대장장이 브라운의 경우 ‘단검 하나 만들 수 있는 뼈만 남겨 주면 고맙겠네!’라며 장난을 담아 렌을 향해 외치기도 했다.

    『 썩을 인간들아, 짐은 너희들의 재료가 아니다! 』

    블루드래곤은 양손으로 목에 있던 용의 팔을 아래로 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한다. 렌의 뿔을 잡아 바닥으로 강력하게 찍어 눌렸다.

    힘이 다한 줄만 알았던 블루드래곤이 별안간 움직이자 렌은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박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진 않고, 넘어진 정도의 느낌이었다.

    짓눌린 상태에서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기 시작하니, 블루드래곤의 힘이 현저히 부족했던 탓에 가볍게 풀려난 렌이다.

    『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이지? 』

    『 네놈이… 짐이 아끼는 것을 훔쳐 갔기 때문이다! 』

    『 그렇다고, 내 영역을 파괴하려 들다니 괘씸하군. 』

    『 내 영역에 들어온 것은 이곳에 있는 너희들도 마찬가지였다! 』

    『 마지막 기회다. 지금 돌아가면 살려주겠어. 』

    『 짐에게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닥쳐라! 』

    블루드래곤이 렌을 뿌리치고 허공으로 빠르게 뛰어올랐다. ‘어차피 다시 바닥에 내려 박힐 텐데. 사서 고생이네, 저 용은!’, 손님들은 이런 식의 야유를 던지기도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푸른 용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을 생각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려주는 푸른 용의 태도.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고 만다.

    아직도 힘이 남았는지 푸른빛의 마법진이 여러 개가 생성된다. 그곳에서 날카로운 얼음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사람들은 고개를 낮추며 경악한다.

    렌은 떨어지는 검처럼 날카로운 얼음덩어리들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몸으로 막아낸다. 이어서 다수의 마법진을 산발적으로 펼친 다음 떨어지는 우박을 깨트리는 데 급급하다.

    『 인간들이 소중한가 보군, 이제 곧 귀찮은 짐이 될 것이다. 』

    『 네 녀석 고위 생명체라고 불릴 수 없는 행동을 하는구나. 』

    『 우린 그저 먹이사슬 최상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 』

    지속해서 생성되는 푸른빛의 마법진. 거대한 우박이 여러 차례 떨어지고, 렌이 사람들을 지키는 것에 점점 무리가 왔다. 급기야 사람들은 공황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초당 떨어지는 반경 30m 크기의 우박이 백 개를 웃돌았고, 블루드래곤은 자신의 마력이 죄다 소모될 때까지 알 수 없는 복수를 이어가려는 듯했다.

    렌 또한 가속 마법을 최대한계치까지 중첩하여 빠른 속도로 우박을 막아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 점점 늘어나는 상처를 보며 사람들은 렌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 마력이 부족… 하다니. 』

    『 누군가를 지켜보면서 싸워본 적이 없겠지, 붉은 용이여. 』

    『 네 녀석은 지킬 것이 없다는 게 문제야. 』

    『 …지금 이 상황을 두고, 네놈이 미련하다는 것이다. 』

    점점 몸을 보호하고 있던 마력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우박이 등 뒤에 우두두 박히며 움직임이 상당히 둔해져 버린 렌이었다. 사람들에게는 ‘괜찮아요, 마스터의 상태는 괜찮나요?’라며 여유를 표한다. 사실 전혀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실상 모르는 사람들이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던 렌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물며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불꽃처럼 느껴진다.

    레니는 최선을 다해서 렌의 회복을 돕고 있다. 다만 쉽지 않다. 혹은 의미가 없었다.

    인간을 아득히 웃도는 마력 보유량을 지닌 드래곤. 이를 회복한다는 전제, 다수의 치유술사가 한곳에 모여도 쉽지 않은 일이다. 레니 혼자서는 너무나도 터무니없다.

    블루드래곤은 자신의 심장으로부터 생성되는 마력을 마법진에 보급했다. 어느덧 거대한 크기의 마법진이 구축되고 있었다. 용사의 쉼터가 있는 언덕을 아득히 넘은 거대한 크기의 마법 원형이 상공에 그려진다.

    『 …대가는 너희들의 목숨이라고 말했거늘. 』

    『 초월 마법을 사용하려 하다니, 정말 죽을 작정인가! 』

    『 네년만 없었으면 짐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 터. 』

    그 거대한 마법진에서 생성되는 것. 그곳을 가득 채운 거대한 얼음 운석이 있었다. 천체를 둘러싼 그것이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준다.

    깊고, 깊었던 새벽이라 밤하늘의 별 무리로는 이 거대한 얼음의 그림자를 비추는데 한참 무리다. 아무래도 저것을 막으려면 렌이 열 명은 있어야 할 것 같다.

    『 짐의 복수는 이것으로 끝이다. 』

    * * *

    정신을 차려보니 여관에 거대한 재앙이라도 휩쓸고 갔는지 사태가 말이 아니었다. 망할 파란 용이 나타나고 창문이 깨질 때부터 나는 이미 서서 기절해 있었다.

    “내가, 서서 기절하다니!”

    마치 내면의 심상이 너무 강렬하여 몸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 두 마리의 썩을 용들이 투덕거리며 싸우는 바람에 내 여관이 부서질 때는 더욱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잠깐만 눈물 좀 닦고.

    이 이상 얼이 나간 채로 서 있을 수 없다. 꼴을 보아하니 렌도 엉망진창에, 하늘에 만들어진 거대한 마법진은 최소 10서클을 아득히 넘는 SS등급 이상의 ‘초월 마법’이 분명하다.

    ‘저게 떨어졌다간, 정말로 여관이 회귀 불능해진다고. 아니, 근방이 날아가 버릴지도.’

    ‘아, 아’를 운운할 수밖에 없었다. 전방 건물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정말 내 심장이 뚫려버린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서 찢어져 날린 마력초 파편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허공에 떠 있는 푸른 용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어, 아서가 깨어났어!”

    “살, 살았다. 아서가 정신을 차렸어!”

    『 마, 마스터! 저 용이 초월 마법을 사용하려고 해요! 』

    “지금부터 드래곤이라든가, 용이라는 단어는 금지다.”

    『 넵. 』

    허공에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 그것을 가득 채운 얼음덩어리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거의 반쯤 나온 것이 조만간 이 바닥으로 떨어질 듯했다.

    문제는 우리 여관뿐만이 아니라 이 근방에 위치한 자택들이다. 외곽이라고 하여도 여관 주변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 저런 무식한 얼음덩어리가 떨어졌다간 그들의 인명피해는 물론 주변의 환경마저 꺼림칙하게 뒤틀려버릴지도 모른다.

    은퇴 이후로 다시는 사용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 지금의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단정 짓는다.

    “불가시의 장막(Invisibility Curtain)을 걷어내겠다.”

    [고유 차원으로부터 연결 : 대상을 카테고리 EX로 지정.]

    “마안의 뭉치(Bundle of Magical Eyes)를 개안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안들의 묶음을 해당 장기(눈)에 결속]

    “시야에 포착된 마법을 제거하기 위한 마안을 결속한다.”

    [피해 카테고리 지정 : 제압 / 파괴 / 침묵]

    “티끌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

    [해당 마법을 ‘침묵’시키기 위해 ‘EX랭크 : 하델의 마안’ 결속]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막 떨어지기 시작한 언덕을 아득히 가리는 거대한 얼음에 손가락 을 조준한다.

    눈으로부터 유기체의 형상이 피어오른다. 그 형상은 천사의 깃털. 눈가로 무수히 흩어지기 시작한다. 가게 손님들은 지금의 상황을 넋 놓고 바라보기 바빴다.

    “떨어져라. 파란모기.”

    손가락 끝으로 얇고 긴 빛이 허공에 닿는다. 폭음이 들리기 이전 ‘삐’ 소리와 같은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찰나가 일정 시간 유지된다.

    쏘아 올린 빛이 거대한 얼음을 뚫고 지나. 마법진까지 무자비하게 뚫는다.

    상공에 있는 구름이 주변을 향해 넓게 펴졌다. 용사의 쉼터 위에 떠 있던 재앙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별안간 무가 되어 말끔히 사라진다.

    말 그대로 파괴라는 흔적도 없이 침묵해버린다.

    “너, 내려와.”

    『 네,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

    “좋은 말로 할 때, 내려와라.”

    『 썩을, 그래 가주마, 짐의 최후의 일격을 막아봐라! 』

    심장에 있던 마력을 보급하며 상당한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던 거대 마법진이 없어지자, 블루드래곤은 남아있던 모든 마력을 쏟아내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시야에 포착된 대상을 제압하기 위한 마안을 결속한다.”

    [해당 대상을 ‘제압’시키기 위해 ‘SS랭크 : 참격왕’ 결속]

    사람들이 입을 벙긋거렸다. 허공으로부터 달려드는 블루드래곤의 살기 가득한 움직임에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분명 그들도 그 기세가 푸른 용의 목숨 값이 포함된 공격이라는 것을 예상한 것이다.

    * * *

    사람들은 입을 벌리며 ‘억’ 소리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블루드래곤의 전력을 다한 마지막 공격을 ‘뺨 한방으로 바닥에 그대로 꽂아서 혼절시켜버린’ 아서. 이 인간을 보며 무슨 말을 이어 갈 수 있단 말인가. 일찌감치 이들은 감탄조차 나오지 않았다.

    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역시 세계관 최강은 아서가 분명해.’를 운운했다. 이어서 전원이 다리에 힘이 풀리자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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