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6화 (26/222)
  • 026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 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망할 용 금지령.

    ※ 더는 내 여관이 부서지는 건 볼 수 없다.

    ※ 빨간색, 파란색까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참겠다.

    * * *

    『 מי גנב את הדג שלי! 』

    『 אני אהרוג אותך! 』

    렌은 미간을 찌푸리며 ‘블루드래곤’을 향해 ‘그르릉!’거리고 있었다. 통역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고블린 홉스에게 ‘저게 무슨 말이야?’라고 대신 묻는다.

    그러니까 ‘내가 널 죽여 버릴 거라는데요.’라는 번역이 돌아왔다. 어쩌다가 내 여관이 복수의 전장이 되었는가.

    “그럼, 그 전에 한 말은 무슨 말인데?”

    재차 물음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전투력으로는 한참 하위 개체인 홉스가 용의 실체를 마주한 바람에 공황 상태에 빠져있었다. 동료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무릇 렌에게는 겁을 먹지 않는 것이 신기하기도.

    “렌, 여관 주인은 나야, 네가 화낼 문제가 아니라고.”

    “아, 그렇군요. 마스터.”

    “얼른 저 파란 용에게 인간 말을 사용하라고 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마스터.”

    잡배들은 어느새 도망가 버린 것인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다. 더욱더 귀찮은 부분은 드레인 소드를 가지고 달아난 것. 바닥에 얼룩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이미 지려버린 뒤에 줄행랑을 친 듯하다.

    ‘그렇게 드래곤 슬레이어라 자칭하더니, 나타나자마자 도망을 치고 말이야.’라며 한숨을 내쉰다. 드레인 소드를 회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고민이 내 뇌를 샌드백 치듯 후려치기 시작했다.

    렌이 여관 밖으로 뛰어나가 허공에 떠 있는 블루드래곤에게 고대어로 육두문자를 던졌다. 알아듣지도 못할 고대어로 된 쌍욕이 가게 내부까지 퍼지자 손님들은 숨을 죽이며 바라본다. 나는 그저 깨진 유리와 함께 깨진 가슴을 움켜잡을 뿐이었다.

    “קיבלת הנחיה לדבר בשפה אנושית!”

    『 네놈은 무엇인데, 고대어를 사용하느냐! 』

    “너의 이름을 밝혀라, 블루드래곤!”

    『 짐의 존함은 ‘드래곤 오브 블루아르헨 블레아스 아이리스!’ 』

    “마스터가 있는 여관에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냐!”

    『 모르는 척 집어치워라, 죽음으로 대가를 받겠다. 하등생물들이여! 』

    “나의 마스터는 너와 대화를 하고 싶….”

    『 ברד קרח ענק (거대한 얼음 우박) 』

    하늘에서 푸른빛을 내뿜는 여러 개의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된다.

    캡틴은 주저앉아 공포를 느끼고 있는 홉스를 부축했다. 나머지 신사 해골들은 손님들을 안전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하여 녀석들에게 사전교육을 해둔 보람이 있었다.

    나름 우호적이었던 레드드래곤인 렌의 등장과는 사뭇 다르게, 아주 공격적인 성향과 그러한 기운을 내뿜으며 ‘죽음으로 대가를 받겠다.’는 둥.

    일반 모험가가 들었을 때 상당히 소름 돋을 법한 소리를 내뱉었기 때문에 단골들의 상태도 말이 아녔다. 전원 패닉에 빠져있다.

    ― 캉!

    ― 캉!

    ― 캉!

    ― 캉!

    ― 쾅!

    형성된 마법진에서 거대한 우박이 지속해서 튀어 오른다. 엄한 가게 잔디를 잔뜩 망치기 시작했고, 가게의 지붕 끝자락이나 그런 건물 외곽 언저리의 부분들이 우박에 의해서 파괴되고 만다.

    ‘아, 아’를 운운할 수밖에. 귓가에 들려온다. 여관을 파괴하는 이 무자비한 소리. 그 때문에 이미 내 얼굴은 뭉크의 절규였다. 심장이 멈출 것만 같다. 아니 이미 멈췄을지도!

    소리가 들리는가, 내 가게가 희망 한줄기 없이 무자비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마치 이미 '바뀌어버린 세계의 신'이 나를 시험하는 것 같은 무식한 파괴의 음성이었다.

    “마, 마스터?”

    “내, 내 꿈이 부서진다. 부서진다. 하하.”

    “네, 네 녀석… 마스터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밖으로 나와 침을 줄줄 흘리며 잔디를 어루만진다. ‘미안해, 잔디야.’라며 혼이 나간 사람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던 렌이 블루드래곤을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

    이윽고 손님들 앞에서는 되도록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본연의 모습을 스스로 들춰내기로 마음먹는다. ‘꿀렁, 꿀렁’ 같은 소리의 효과음을 내더니 거대한 레드드래곤으로 순식간 변해버린 녀석이었다.

    * * *

    『 어이, 블루 뭐시기. 』

    『 …네놈, 레드드래곤이렸다. 』

    자신보다 거대한 크기를 갖춘 레드드래곤의 모습을 직시한다. 두 배, 세 배는 큰 것 같다. 푸른 용은 금세 이성을 되찾고 렌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용들의 싸움에서는 기선이 중요하다.

    ‘이곳에 왜, 레드드래곤이 있는가?’

    의문점을 품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자신이 아껴두었던 아이리스 대양의 단 하나밖에 없는 물고기를 훔쳐 먹은 자. 그 마력을 추적해서 발견한 이곳을 파괴하는 것이 블루드래곤의 죽어도 여한 없는 목적이니까.

    무척이나 분개한 상태에서 찾아온 이곳. 인간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심지어 복수를 다짐하여 찾아온 푸른 용을 조롱하기까지. 증오를 품어버린 용은 눈에 뵈는 게 없으리다.

    『 …드래곤 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 이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 』

    『 암, 무자비하게 미친년이라던데. 』

    『 그 무자비하게 미친년에게 연간 패배한 개체들이 몇인지 알고 있나. 』

    『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죽어 나갔다고… 한데 짐과 무슨 상관이지?』

    『 네가 지금 우박을 떨군 이 여관이 그 미친년의 집이거든. 』

    『 짐을 놀리려는 건가, 레바테이나 렌은 레드드래… 곤이라고?』

    『 영역을 침범한 개체에 투쟁한다. 지고한 용들의 규율. 』

    『 하하, 하하… 이거 상당히 잘못되어버렸군…. 』

    『 어리석은 용이여, 살고 싶다면 내게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거대해진 레드드래곤이 잔디밭에서 뛰어올랐고, 그 거대한 풍압으로 인해 가게 외부에 있던 몇몇 손님들은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그 거대하고 빠른 움직임을 맨눈으로 쫓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푸른색의 빛과 붉은색의 빛이 수없이 부딪치고 나서야, 이들이 비로소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이 과연 용들의 싸움.’

    정신을 차리고 이를 지켜보던 쥬드도 용들의 투쟁에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공격이 이어진다.

    렌은 블루드래곤의 공격이 최대한 여관과 언덕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막아냈다. 허공에서 전투를 유도하려는 듯했으나, 전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여관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르는 일.

    점차 격양되는 상황에서 잔디의 피해를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된다. 벌써부터 아서에게 혼쭐이 나는 장면이 그려졌다.

    ― 콰앙!

    허공에서 렌이 블루드래곤의 목을 강하게 물어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흙이 사방으로 솟아오른다. 모래가 사람들 눈에 튀기며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이봐, 아서, 렌이….”

    “아하하, 아하하, 아하하….”

    “하, 아서가 완전히 맛이 가버린 모양이야.”

    퍼즐 맞추기라도 된 것처럼 바닥 속으로 깊게 내리꽂힌 푸른 용. 지대에 완전히 박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부스스 뜬 눈이 혼미한 상태임이 분명하다.

    광역 마법 한방이면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텐데, 렌은 전자처럼 생각했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자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푸른 용은 붉은 용 앞에 먹잇감처럼 놓였다. 마무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심장에 마력도 충분히 남아있다. 다만 이처럼 행동한다면 아서가 회귀 불능이 될지도 모르는 일.

    『 네 이놈, 어째서 인간의 편을 드는 것이냐! 』

    『 닥쳐라, 나는 그저 내 영역을 수호할 뿐이다. 』

    『 짐이 재로 멸하더라도 네놈을 능멸할 테다!! 』

    잔디의 마력을 통해 빠르게 회복을 성공한 블루드래곤은 푸른빛을 내뿜었고, 상당히 단단할 것이라 느껴지는 얼음의 표피를 두른다. 이어서 허공에 있는 붉은 용을 향해 강하게 쇄도했다.

    렌 또한 푸른 용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으나, 섬광과 유사할 정도로 빠른 그 움직임에는 방어가 전부였다. 속수무책으로 푸른 용에 이끌려 더 높은 허공으로 솟아오를 뿐이다.

    『 레바테이나, 네 녀석의 마력을 뺐겠다! 』

    『 좋을 대로! 』

    용들끼리의 마력 훔치기는 일종의 기 싸움, 허공으로 솟아올라 통제가 불가능한 렌보다 푸른 용이 정신적으로 우위에 놓인다. 그 말은 마력을 빼앗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렌은 극악무도한 크기를 자랑하는 송곳니로 블루드래곤의 왼쪽 날개를 강하게 물더니, 이어서 반대로 힘을 가했다. 포지션 선점을 위해 육탄전이 이루어진다.

    붉은 용의 눈에는 동공과 초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백안을 뜬 채 허공에서 블루드래곤의 뿔을 거대한 팔로 찍어 누를 뿐이다. 그 외의 모든 동작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거듭 반복했다.

    붉은 용은 오로지 ‘이 녀석의 뿔을 부숴버리겠다.’라는 생각이다. 이곳을 노리겠다는 집념이 타올랐다.

    ―콰지직!

    ―콰직! 콰직, 콰직!

    푸른 용의 거대한 뿔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마력흡수량이 현저히 줄어들어 상공에서 여관의 앞마당으로 서서히 내려간다. 붉은 용은 푸른 용의 뿔을 계속 내리쳤다.

    이들의 전투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탄성을 뱉었다. 허공에서 이루어지는 무지막지한 전투의 소음이 사방을 향해 터진다. 여관 사람들이 밟고 있던 바닥은 잠시도 쉬질 않았다. 전투의 진동을 그대로 느끼고 있던 것이다.

    “렌 양, 당신이 이길 수 있어요!”

    “렌, 우리에게 패배를 가지고 오지 마라!”

    “포기하지 마, 렌!”

    “네가 제일 강한 용이잖아!”

    두 마리의 용이 다시 잔디를 밟고 대치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경악하며 뒤쪽으로 쭉 빠지기 시작했다.

    블루드래곤은 계속해서 거대한 우박을 떨어뜨렸다. 그 우박이 잔디를 완전히 찌그러뜨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잔디는 속수무책으로 찢기고, 발겨진다.

    여관 지붕에 거대한 우박이 박혀 떨어졌는데, 그 잔재를 바라보는 아서의 얼굴은 도저히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표정을 실로 가관이라 생각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여관주인의 낙심한 표정, 실컷 구경할 좋은 기회!

    『 …레바테이나, 오래 살았더니 미친 짓을 다 하는구나. 』

    『 웃기는 소리, 드래곤은 본래 광란의 뱀이라는 소리가 있지. 』

    『 그 무자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미련 가득한 뱀이라니. 』

    『 미련 가득한 용에게 지금까지 흠씬 두들겨 맞은 용이 누구더라. 』

    『 네 영역이라는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니, 짐이 투쟁을 받아준 것! 』

    『 내 투쟁을 받아줬다… 요즘에는 그런 자살행위도 있는가? 』

    『 짐을 무시하다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상대해주겠다. 』

    『 블루드래곤, 네가 보통내기가 아니란 것은 인정하지, 그러나. 』

    『 …. 』

    『 이 여관의 웨이트리스는 상당히 강하니 조심하도록. 』

    어마어마한 마력이 충돌하며, 다시 두 마리의 용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이를 보고 있던 가게 단골들은 ‘마법 기자라도 있었으면 큰일’이라며 렌의 신상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강대한 마력 유동으로 봤을 때, 제국의 특별기관에서 발각될 만도 했다. 지금껏 찾아오지 않은 부분도 의문이다.

    주변을 둘러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여관 손님들. 여관은 제국 외곽에 있다. 웬만한 장치가 아니고선 이 가게에 무슨 일이 있으리라 추적하기 어려우니 다행이다.

    ‘……휴.’

    허공에서 굉음을 내며 부딪치는 두 개의 섬광. 가게의 손님들은 본 전투를 눈으로 따라갈 만큼 대단하지 않다. 누가 렌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최대한 큰 목소리로 렌을 응원했다. 아무도 여관에서 자리를 뜨거나 도망가지 않고 묵묵하게 렌의 싸움을 지켜봤다.

    『 인간들에게 꽤 사랑을 받는 모양이군. 』

    『 버릴 것이 없는 삶이다. 지루한 용들의 사회보단. 』

    『 그토록 잔혹했던 드래곤의 모양새가 지금 이것이라니. 』

    『 이봐… 다시 말하는데. 』

    '드래곤 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 뭔가 이야기로만 듣던 붉은 용과는 사뭇 달랐다. 의외로 물러터진 녀석이라 판단한 푸른 용은 서서히 긴장을 풀며 자기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으리라 판단한다.

    ― !

    별안간 느껴지는 붉은 용의 살기. 지금까지 애 장난에 불과한 것. 저 붉은 용으로부터 느껴지는 아득한 공포감은 형용 할 수 없었다. 마치 드래곤 하트의 박동이 멈출 것만 같다.

    『 네놈 말에 짐이… 쫄, 쫄 것 같으냐. 』

    『 이가 빠진 검이라도, 휘두르면 몽둥이란다. 이 몹쓸 애새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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