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3화 (23/222)
  • 023화

    * * *

    “마스터가 패배하면 저에게 정체를 밝히세요.”

    “무슨 소릴까, 그게.”

    “마스터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눈에 별 무리를 담았다. 그 시선은 나에게 아주 지독했고 그윽한 눈빛에 ‘도대체 내 정체가 왜 궁금한 건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알려준다 한들 믿지도 않을 테니, 말해주지 않는 건데.

    프리실라는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로 흐뭇하게 웃고 있지만, 주변에서 ‘글쎄, 저 남자의 정체가 뭔데?’라는 식의 대화가 오가고 있다.

    “좋아, 그럼 네가 패배한다면?”

    “마스터의 말대로 목걸이를 뒤집어 놓겠습니다.”

    “승부를 받아들이지, 빨간 용!”

    * * *

    [ 여관의 강한 팔 : 랭킹 ]

    ― 1위 아서 / 용사의 쉼터 : 사장님

    ― 2위 드래곤 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 / 용사의 쉼터 : 직원

    ― 3위 노튼 프리실라 / 태양 새의 용병단 : 단장

    렌의 표정은 ‘어째서?…’라는 느낌의 그림자가 그윽하게 진 상태였다. 이전과 달리 화사한 목소리보다는 혼란에 빠진 목소리로 ‘어째서죠?’라며 패배에 대한 물음을 반복했다.

    ‘넌 내 상대가 될 수 없단다.’라며 렌을 비웃었다. 현실을 납득하지 못한 렌이 고개를 내려 땅을 직시한다. 작은 음성으로 혼잣말을 반복했다. 정확히 ‘이건 말도 안 돼.’를 백번쯤 읊은 듯하다.

    “마스터, 어떻게 저를 힘으로 이긴 거죠?”

    “너무 그러지 마, 너는 총력이었겠지만 난 여유가 있었거든.”

    “마법인가요?”

    “아니, 내가 원래 센 건데.”

    “생각해보니, 인간치고는 오크통을 너무 쉽게 든다거나….”

    “그 정도는 로건 동생 아곤도 가능하다고.”

    인류가 가진 사회성과는 사뭇 다른 생명체, 전투가 곧 삶의 중심인 생명체, 레드드래곤. 무패신화를 쌓아왔던 자신에게 일어난 ‘첫 패배’에 대해서 납득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마법, 렌이 인간 상태에서 드래곤의 체중과 괴력을 들고 온 것은 엄연히 편법으로 마법을 사용한 것이니, 나도 ‘원래 있던 것’을 가지고와서 상대했을 뿐이다.

    딱히 ‘근력 상승’이라던가 ‘근육 강화’라던가 그런 버프를 사용하지 않고 본연의 힘으로 렌의 손등을 차가운 철 탁자에 닿게 했다는 것. 물론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알이 빠져나올 것만 같아서 ‘마법을 조금 사용할 줄 압니다.’라며 대충 넘기긴 했다만.

    특별히 엄청난 마법을 사용했다거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힘을 안 숨김’이라는 문장의 먼치킨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클리셰를 따랐을 뿐이다.

    파이어볼을 만드는 것보다 마력이 소모가 적은 마법이 엄청난 마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불쌍한 렌이 어쩔 수 없지만, 아무튼 목걸이를 뒤집어 놓는 것은 지켜야 하는 부분이다.

    “렌, 앞으로는 목걸이를 뒤집어 놓지 말라고, 하하.”

    “으으… 두고 보세요.”

    “하하하, 너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

    “패배라는 단어가 이렇게 고통스럽다니!”

    “세상에는 강한 존재 위에 또 다른 강한 존재가 있기 마련이지!”

    “으으… 마스터의 말씀이니, 인정하겠어요.”

    인간이라는 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생물의 제일 강력한 존재인 드래곤에게 두는 훈수. 녀석은 내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렴 상관없나 우리는 여관을 운영할 뿐이니.”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마스터, 아하하.”

    “슬슬, 퍼플 녀석이 올 때가 되었는데.”

    “사장님, 구경은 잘하셨습니까?”

    “홉스, 이제 나오는군.”

    “하하, 여관에 도움 될 법한 것들을 메모했습니다.”

    “고생했어.”

    “그나저나, 렌 님과 사장님의 이름이 강한 팔에 기록되었던데.”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렌의 표정이 좋지 않아, 하하.”

    고블린 홉스는 자신이 기록해둔 메모를 다시금 상의 주머니에 넣어둔다. 렌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봤다. 렌은 얼굴을 찌푸리며 조용히 입을 벙긋거렸다.

    “사장님의 정체가 마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왕은 아니거든.”

    마침 약속 시각에 맞춰서 던전 할머니 여관으로 찾아온 퍼플이 끄는 마차가 도착했다. 홉스는 우리에게 가벼운 인사를 던지며 유유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퍼플, 고마워 데리러 와줘서.”

    “달그락, 달그락.”

    “아, 그리고 기회가 될 때 20인 이중마차 면허를 따보자.”

    “달그락!”

    “홉스가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달그락, 달그락.”

    나무로 된 마차에는 ‘용사의 쉼터, 여관 마차’라는 표시가 있었고, 직접 이 마차를 타보는 것은 또한 오늘이 처음이었다. 필요로 의해서 사두긴 했으나, 대부분 직원이 없을 때는 걸어서 시내로 나가기에 십상이었으니.

    최대 인원 10명이 탈 수 있는 거대한 마차를 이끄는 2마리의 말. 퍼플은 살점 없는 손으로 두 마리의 말을 듬뿍 쓰다듬는다. 건초를 먹이는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늘어난 직원들 탓에 여관의 분주함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더욱더 바빠지는 일상에서 단란한 여관을 창출하자는 생각은 진즉 접어두기로 했다. 이미 엄청난 사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지레 느꼈기 때문에.

    조금 시끄럽고, 누구 때문에 다소 깨지는 것이 많아 가슴이 아프지만, 이런 내 여관에서 느낀 고찰이었다.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과 이곳으로 오는 손님들에게 즐거운 순간을 제공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내 모습은 옛날과 사뭇 다르다.

    다른 여관은 어떤 컨셉의 인테리어를 고유하는지, 또한 무슨 음식이 잘나가는지, 어느새 나는 손님들과 직원들을 위해 이러한 것들을 메모하고 있었다.

    칼을 든 사내가 은퇴를 위하여 의미 없이 여관운영을 외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아, 아.’

    “를 운운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도 있나요, 마스터?”

    “하하,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항상 골똘히 생각하실 때마다, 끝에 붙는 말이니까요.”

    “내가 혼잣말을 생각보다 많이 하나 보군.”

    “혼잣말하는 마스터도 멋지세요.”

    “그렇게 얘기하면서 목걸이 뒤집어 놓지 마라.”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 사항’ 』

    ※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자격의 여관.

    ◈ ‘드래곤 슬레이어’로 위장한 사기꾼 조심

    ※ 모험가들을 포함한 여관에 사기를 친다고 합니다.

    (특히 마커스는 왠지 사기당할 것 같으니 조심)

    ◈ 던전 할머니 여관 이벤트 ‘아서 ‘강한 팔’ 우승‘

    ※ 본 여관에도 ‘강한 팔’ 이벤트를 도입하겠습니다.

    (무려 우승자에게는 케피탄 맥주 1일 무료!)

    홉스는 일에 익숙해지고 말 것도 없이, 본격적인 첫 출근부터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직책을 가볍게 소화해 냈다.

    ‘전에 있던 여관보다 바쁜 점이 힘들긴 하지만, 뿌듯함도 두 배입니다.’

    역시 타 여관에서 일했던 경력은 무시 할 수 없다. 고단한 사회생활을 무척이나 오래해본 직장인처럼 숙련된 느낌을 보였다.

    손님들과의 티키타카도 렌 못지않을 만큼 좋았으며, 근래에는 마커스가 주업으로 일삼는 사냥에 대한 방법을 토론했다. 실제로 그가 사냥 성공률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다음은 브라운 아저씨였다. 좋은 장비를 만드는 대장장이인 만큼 장인의 입지를 세워 고유 브랜드를 창업하라는 홉스의 조언을 듣는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겠다는 야망을 세웠다. 이른바 상호명은 ‘드워프의 수염 털’이었다.

    “꽤 인기가 많은 걸, 홉스.”

    “하하, 다 사장님 덕분인걸요.”

    “일은 할 만해?”

    “저번에도 말했듯, 바쁜 만큼 뿌듯해서 좋습니다.”

    “네가 사장해라.”

    “아하하, 마음만 받겠습니다.”

    가게 홀에서 어느 정도 상황을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온다. 주류 창고의 있는 플로우들을 잠시 보러 갔다가, 외부를 어슬렁거리며 여관에 보수할 만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했다.

    외부시설도 내부 못지않게, 20개 이상의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고 차양 대를 설치하여 날씨 변화에 의한 문제도 해결한 상태였다. 비가 올 때는 외부손님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근래에 들어 ‘외부손님이 없는 날’이 도리어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오, 아서.”

    “쥬드 씨 오셨군요.”

    “요즘 늦게 오는 나머지, 내부에는 못 들어가고 있다네 하하.”

    “밖은 나쁘지 않으세요?”

    “암, 분위기도 좋고, 자네가 아끼는 마력 초가 한몫하는군.”

    ‘쥬드’는 근래에 단골이 된 손님 중 한 명으로, 이 또한 ‘모험가’라는 업을 종사하고 있는 남성이었다.

    큼지막한 체격으로 거대한 검을 등 뒤에 매고 다닌다. 얼굴을 제외하고 착용한 무거운 플레이트 갑옷으로 인해 ‘탱커’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데, 착용하고 있는 갑옷의 대부분이 브라운 아저씨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과거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라는 재앙이 벌어졌을 때, 마물들을 퇴치하며 재앙을 멈추기 위해 ‘구멍 막기’에 참여한 모험가이기도 하다. 과거에 모험가였던 ‘레니’와의 파티도 여러 번 있었다고.

    “입구에서 여관 추가 사항을 보았네.”

    “드래곤 슬레이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들이 어떤 사기를 친다는 건가.”

    “의뢰 먹고 튀기를 하는 것 같더군요.”

    “이런, 몹쓸 놈들이군.”

    “그러고 보니, 쥬드 씨도 드래곤 슬레이어 자격에 도전하신 적이.”

    “하하, 그렇지, 한데 렌 양을 보니 생각이 없어지는군.”

    “우리 직원이 꿈을 뭉개버렸군요.”

    “그런 건 아니네만, 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네!”

    어느새 나타난 렌이 쥬드 씨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드래곤을 잡으려면 최소한 10시간을 싸울 수 있는 마력이 있어야 해야 해요.’ 라거나 ‘드래곤의 약점은 뿔이니까, 참고하세요!’라는 말을 건넸다. 쥬드가 드래곤 슬레이어를 포기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아하하, 저렇게까지 조언을 해주니 말이네.”

    “후, 녀석은 용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일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호칭을 모험가 이름 앞에 붙이려면 자격이 필요했고, 그 자격의 기본 조건이 S랭크 이상의 모험가였다.

    실상 S랭크 이상의 모험가는 ‘영웅’급으로 카테고리가 지정되니, ‘용을 잡는 모험가’라는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프리실라도 이렇게 말했다. ‘현재 실력을 갖춘 채로 다시 태어난다면,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단어를 이름 앞에 붙일 수 있을 확률이 약 1% 정도 늘어날 듯하다.’ 그만큼 용살자의 장벽이 높음을 은유한 것이다.

    쥬드도 프리실라와 비견될 만큼 어마어마한 실력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이름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멋대로 붙이고 다니며 사기를 치고 다니는 잡배들이 신경 쓰인 듯했다.

    “많은 곳에서 잡배들을 조사 중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잡배들이니까 델타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나 보군.”

    “근래 동맹국이 전쟁하고 있으니, 신경 쓸 여유가 없나 보죠.”

    “델타는 좋은 곳 같으면서도, 좋지 않은 것 같네.”

    “저도 어느 정도 그 부분에 동감합니다.”

    “하하, 맥주나 마셔야겠어.”

    “좋은 시간 보내세요. 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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