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0화 (10/222)
  • 010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추가 사항’ 』

    ◈ ‘웨이트리스 렌’은 여관의 ‘드래곤이라는 설정’입니다. ※ ‘웨이트리스 렌’은 가장 포악하다는 ‘레드드래곤이라는 설정’입니다. ※ 이 용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특히 케피탄 맥주)

    * * *

    [ 델타 북쪽의 시내 : 의류 상점 ]

    『 의류 장인 : 기성복 / 맞춤 / 제작 가능 』

    가게의 휴일을 맞이하여, 렌과 함께 시내로 나왔다. 녀석의 유니폼을 맞추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니다 간신히 의류 상점에 도착했다. 그 놈의 ‘신기해요, 저건 뭐죠!’란.

    이 의류 상점의 주인은 ‘브레드’라는 이름의 기술이 아주 좋은 봉제사다. 이전 해골들의 정장을 제작해준 장본인이다.

    불철주야 작업물이 많은 나머지, 요즘 가게에 오는 것이 뜸해지긴 했는데. 최근 조수가 여러 명 들어와서 일이 수월해지고 있다며 웃는 얼굴로 식은땀을 닦았다.

    “오늘은 이분의 옷을 만드는 거군요!”

    “네, 브레드 씨 요즘 별일 없으시죠?”

    “하하, 용사의 쉼터만큼 너무 잘돼서 문제지요.”

    “다음에 놀러 오세요, 서비스 드릴게요.”

    형형색색의 다양한 원단들이 걸려있는 상점에는 천 냄새가 가득. 렌은 상점 내부에 있는 브레드 손에서 탄생한 근사한 옷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가죽으로 되어 있는 옷들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냄새를 맡더니 ‘이건 소가죽이군요.’라며 단숨에 알아채는 그녀였다.

    그런 렌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브레드도 나를 보며 ‘새로운 직원인가 봅니다.’라고 물었다. 저 빨간 용이 들리지 않도록 ‘아직은 견습입니다….’라는 대답을 건넨다.

    “렌 양에게 어울리는 옷….”

    “창조의 고통인가요.”

    “기성상품을 가져가도 문제는 없지만, 아무래도 렌 양이….”

    본래 종족은 드래곤인 주제. 인간이 착용하는 옷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상점 내부의 의류들을 굉장히 눈여겨보고 있었다.

    해골 신사들의 정장들을 보며 ‘로브도 괜찮은데, 저도 이런 게 가지고 싶긴 하네요.’라고 은근슬쩍 맞춤옷을 입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사실상 네가 입고 있는 내 로브가 더 좋은 건데.

    “녀석이 기대를 많이 하는 눈치네요.”

    “하하, 렌 양 어떤 스타일을 원하나요?”

    “저, 저는… 음.”

    렌은 고민에 빠진 듯, 마치 나의 버릇을 따라 했다. 관자를 엄지로 꾹꾹 눌러가며 앓는 시늉을 그대로 흉내 냈고, 귀엽긴 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꿀밤을 때렸다.

    일단은 드래곤이라 그냥 때린 꿀밤으로는 어림도 없었는지, 고통이 아닌 고뇌로 인해 앓는 소리가 더욱더 깊어졌다. 브레드와 나는 그저 대답이 나오길 기다렸고.

    “저는 마스터와 비슷한 느낌의 옷을 갖고 싶어요!”

    “뭐?”

    말이 끝나자 브레드는 현재 착용한 나의 옷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가게의 유니폼으로 입고 있었던 옷인지라 지긋이 바라보는 시선에 다소 쑥스러움을 느꼈다. 어쩌다 보니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사실 평상복이나 다를 것이 없지만.

    입고 있던 옷의 모양새를 설명하자면, 그저 검은색의 면바지, 그것의 밑단을 욱여넣은 워커, 흰색의 헤리티지 느낌이 물씬 나는 헨리넥의 긴 소매 상의였다. 여기서 명찰과 앞치마를 더하면 나의 유니폼이 되는 것이다.

    “흠, 알겠어요, 오늘 저녁까지 찾아오시죠!”

    “제 옷이 그렇게 빨리 완성되나요?!”

    “아하하, 지금은 작업물이 없거든요.”

    “아, 아… 모티브가 정말 제 옷은 아니겠죠.”

    “렌 양이 그것을 원하니 어쩔 수 없어요, 하하.”

    설레는 표정을 가득 안은 렌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할 말을 잃었다. 과연 인간과는 전혀 다른 의식주를 가진 드래곤이 맞춤 제작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저녁에는 유니폼을 바로 받아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필요한 식자재들을 사거나 델타 시내에서 렌과 함께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현재 여관의 경우 신사 해골들께서 외부환경을 작업 중이시다. 다름 아니라 이것은 내부의 테이블을 사수하지 못한 외부손님들을 위한 테라스 작업이었다. 별로 안하고 싶었는데 손님들의 잔소리가 워낙 심해야지.

    늘 외부에 있는 손님도 20명이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여, 지금의 인력으로는 외부 보강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사를 포함한 렌이 직원으로 들어온 덕에 시설공사에 착수하여도 문제가 없을 듯했다.

    직원이 없는 상황에 외부작업이 되어버리면, 도저히 그 손님들까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던 나머지 어림도 없었는데.

    “마스터, 이건 뭔가요?”

    “아, 그건”

    테이머가 운영하는 반려동물의 장난감이나 장비를 판매하는 곳. 그중에 렌이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초크였다. (ex : 강아지 목에 거는 하네스)

    “반려동물의 목걸이 같은 거라고 보면 돼.”

    “마치 드래곤 슬레이어가 사용하는 포박용 닻과 같은 거네요.”

    “그런 무식한 거랑은 틀리거든.”

    “오, 무언가 적혀 있어요.”

    반려동물을 진정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주소가 적힌 목줄은 필수. 반려동물이 어디선가 길을 잃을 때를 위한 것이었다.

    어느 대륙에 살고 있는지, 이 동물의 주인은 누구인지, 아무튼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들에 그런 신상들을 기록해두기 위함이다.

    “누군가 길을 잃은 반려동물을 보면, 주인에게 데려다주기 위함이야.”

    “오, 오….”

    “뭐야, 그 눈빛은, 설마….”

    “오, 오, 오….”

    “정신 나갔냐, 나를 도대체 무슨 인간으로 만들 셈이야.”

    “제발요….”

    “안 돼.”

    “제, 제발!”

    “말을 할 수 있는 생명에겐 필요 없는 거야.”

    아, 아 이대로 가다간 큰일이다. 이 빨간 드래곤은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분명 이걸 내가 사줘 버리면 가게 손님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눈에 훤하다. ‘아서가 드디어 미친 것 같아.’라고.

    그러나 이런 고민 따위를 아무리 깊게 하고, 그러지 않게끔 하려 해도, 이상하게 전개는 늘 그런 식의 빌어먹을 방향으로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 드래곤 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 / ♀ 》

    ※ 좌표 : 서대륙 델타 제국 외곽 : 용사의 쉼터 여관

    ※ 나이 : 2,000살 (추정)

    ※ 주인 : 아서

    얇은 가죽으로 되어 있는 초크에 은빛으로 된 동그란 판. ‘주인 : 아서’라는 빛나는 글자에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쪽은 후면. 그냥 착용하고 다녔을 때는 전방에 있는 네잎클로버 문양의 음각이 메인이었다.

    그래도 렌은 이것이 마음에 쏙 드는지, 자신의 목덜미에 있는 초크를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만지작거리기 바빴다.

    “차라리 목걸이가 가지고 싶었으면….”

    “아뇨, 저는 이게 가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야, 야 뒤집어 놓지 마라.”

    렌과 함께 이것저것 구경하듯 돌아다니며, 야시장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번에 먹으러 갔던 ‘화염 마법으로 구워드리는, 양고기 스테이크’라는 포장마차가 있는지 확인했다.

    오늘은 장사하지 않는지 아쉬워하고 있는 찰나에 사람이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어느 여성과 부딪치고 만다.

    “당신은?”

    “어, 아서 씨!”

    “메이, 오랜만이에요.”

    어깨에 부딪혀 바닥에 쓰러져버린 여성은 야시장 옆에 있던 숲에서 만난 메이.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내게 반갑다는 듯 인사를 했다.

    “그러지 않아도, 조만간 용사의 쉼터로 ‘취재’를 갈 생각이었어요!”

    “취재라니요?”

    “아, 저는 마법 기자거든요, 하하.”

    메이는 서대륙에서 유명한 신문 ‘월간, 세계의 모험’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였고, 서대륙에서 나름 널리 알려진 ‘용사의 쉼터’로 취재를 하러 온다고 했다. 그 이유로 가게를 더욱 깨끗하게 청소해야한다. 꼭!

    “네, 준비를 철저히 해둬야겠어요.”

    “너무 긴장하지는 마세요, 옆에 계신 분은?”

    “이 친구는 저희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드래곤 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그냥 녀석은 렌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하하… 이름이 상당히 기네요, 렌 씨.”

    메이에게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내일 취재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나저나 여기서 더 유명해져 버리면 곤란한데… 단란하고 조용한 나의 은퇴 삶이 점점 해야 할 게 많아지고 있다.

    자, 어쨌거나 눈앞에 보이는 ‘화염 마법으로 구워드리는, 양고기 스테이크’의 포장마차가 신기루가 아닌지 눈을 여러 번 비벼보았으나, 멀쩡히 자리하고 있으니.

    렌의 손목을 잡고 달려갔다.

    입에서 육즙이 튀는 동시에 코 안으로 스며드는 그 숯불 향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오?!”

    “하하, 저번에 먹었던 고기가 잊히지 않아서.”

    “환영합니다. 오늘은 몇 서클로 구워드릴까요?”

    “하하, 10서클이요.”

    “이 양반이, 3서클에서 넘어가질 못하고 있다오, 아하하!”

    렌은 갑자기 포장마차 사장의 손목을 잡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열더라.

    “마스터, 제가 10서클 화염 마법이 가능한데, 굳이.”

    “얌마, 어서 놔드려.”

    암, 명색에 레드드래곤님이신데. 10서클의 화염 마법 하나 구사하지 못할까. 장난을 이해하지 못한 녀석의 말은 내게 ‘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겠습니다.’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렌의 말을 듣고 있던 사장은 당황스러워했다가, 이내 진지한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을 냈다.

    ‘사계에서 10서클의 화염 마법을 구사할 인간이 몇이나 되겠어.’라는 그의 독백은 안 봐도 뻔하다.

    “어때, 맛있지.”

    “네, 마스터!”

    “나중에 보고, 비슷하게 만들어보자.”

    “네, 10서클로요!”

    “10서클로 구우려면, 최소 드래곤 정도는 구워야 해.”

    “제가 잡아 오죠 뭐.”

    “쿨럭… 그, 그래….”

    * * *

    [ 델타 북쪽의 시내 : 의류 상점 ]

    “오, 오…!”

    “하하, 마음에 드십니까, 렌 양.”

    “네, 정말 마음에 쏙 들어요!”

    브레드가 만들어 놓은 렌의 유니폼은 일품이었다. 그녀가 그것을 착용하고 우리 앞에 섰을 때 ‘오, 생각보다 잘 어울리잖아?’라는 감탄사가 나왔으니까. 어쩌면 렌이 옷 태를 살리는 것일지도?

    검은색의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에는 단추가 달린 주머니가 2개 정도 붙어있었다. 이것은 가게에 있을 때, 연필 같은 필수물품을 넣을 수 있도록 브레드가 고안한 것 같았다.

    상의는 카라가 달린 하얀색 블라우스였는데 팔을 걷을 때 팔꿈치에 고정될 수 있게끔 부가적으로 끈 같은 것을 묶을 수 있게 해두었다.

    마지막으로 블라우스 위에 걸칠 수 있는 ‘검은색의 숄더 케이프’가 어깨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길이라 일을 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제작한 듯했다.

    “그래도, 뭔가….”

    “왜 그러시죠, 마스터?”

    렌이 팔에 달라붙어 기쁨을 표시했지만, 정작 거울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약간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브레드가 렌의 유니폼을 내 유니폼을 보며 토대로 제작한 것이 당혹스러움의 주체였다.

    거울에 비친 렌과 나는. 연인들이 상당히 매치가 좋게 ‘시밀러룩’(두 명 이상이 전체적으로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다른 옷차림)을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저는 마음에 드는데요!”

    “암, 네가 좋을 대로 하자….”

    아, 아를 운운하면 뭐하나, 어차피 만들어졌는데 맞춤옷이라 반품도 안 돼. 녀석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다시 만들 수도 없으니까 그냥 입고 가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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