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8화 (8/222)
  • 008화

    * * *

    『 태풍의 마탑 : 마법 학교 강의실 이용 사항 』

    ◈ ‘강의실 내부에서 폭력 행위 일절 금지’

    ◈ ‘마법을 가장한 부정행위 일절 금지’

    ◈ ‘수업 간의 취침 및 취식 금지’

    ◈ ‘강의실 내부 물건 훼손 금지’

    * * *

    베로니카는 강의실로 들어와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에 수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서적을 펼쳐 그녀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한다.

    ‘속성 : 정령’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수업은 내가 플로우를 데리고 있을 때, 주의해야 할 점과 필요한 사항들을 콕 집어 알려줬다.

    ‘첫 번째, 하위계급의 정령에게 상반되는 기운을 가까이에 두게 되면 하위계급의 정령에게 피해가 올 수 있다.’라는 부분은 확실히 우리 가게 드래곤 아가씨 덕에 아주 잘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하위 정령에게 보호 공예품을 착용시켜주는 것도 좋답니다.”

    그렇다. 나 또한 해골들에게 상성 마법을 사용하는 레니라는 마법사가 단골손님이었고, 홀에서 레니에게 유출이 많이 되는 캡틴한테 암흑 마석을 심어줬다. 혹시라도 레니가 또 신성 회복 스킬을 사용하면 곤란하니까.

    ‘두 번째, 실체화되어 현세에 정령이 머무를 때는 마력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도록 해라.’라는 부분은 우리 집 언덕에 잔디가 고급 마력초로 이루어져 있어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을 것이라고 베로니카도 말했다.

    “집 안에 마력 순환을 위한 식물들을 키우는 것을 추천합니다.”

    ‘세 번째, 정령도 성장한다.’ 정령계와 현세를 자주 오가면 생기는 성장률. 이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으나 하급에서 중급 정령으로 성장하는 것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다.

    “자, 그럼 만들기로 했던 호롱불을 만들어볼까요?”

    ‘정령의 호롱불’은 베로니카가 강의하는 오늘 수업의 메인 포인트. 정령이 실체화했을 때, 주거하는 공간에다 ‘정령계와 비슷한 무드를 느낄 수 있게끔’하는 아이템인 호롱불을 제작하는 수업이다.

    내 진심은 사실 호롱불 쪽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만들어서 가게 홀에 둔다면 플로우들이 굳이 주류 창고에만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손님들의 눈요기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

    점점 용사의 쉼터가 아닌, 해골의 쉼터, 용의 쉼터, 정령의 쉼터가 되어가는 내 가게를 상상한 나머지 기분 좋은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너희들도 가게에 들어와 보고 싶지?”

    “플로, 플로!”

    “그래, 그래.”

    “자, 여러분. 준비한 호롱을 꺼내주세요. 아서 님은 제가 드릴게요.”

    “아, 네.”

    적막한 강의실.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란 베로니카의 가르침이었으나, 점차 학생들이 가방에서 호롱을 꺼내는 소리로 가득 찼다.

    마치 음악 시간에 리코더를 나만 챙겨오지 않아서, 친구들이 리코더를 꺼내는 행동을 바라만 보고 있다가 ‘너, 리코더 안 챙겨왔어?’라는 물음에 ‘응, 까, 까먹었어.’라고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기분이었다. 참고로 지구에서 유아기를 보낸 나의 실제 경험담이다.

    말이 길었다. 어쨌거나 베로니카는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은 학생인 나에게 미리 준비했던 호롱을 가져다줬다. 파란색으로 도색된 철 프레임의 호롱이었다.

    “좋은 건 아니지만, 이걸 사용하세요.”

    “감사합니다. 베로니카.”

    “아하하, 플로우들을 위한 건데요!”

    “그러네요, 생각해보니까, 하하.”

    그렇게 내 눈앞에 있는 호롱을 보며, 베로니카가 다음은 어떻게 진행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플로우 4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졸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앉아 있던 학생들의 실체화 되어 있는 정령들도 꾸벅 졸고 있었다.

    계약자의 책상에서 전원 취침 중인 정령들과 호롱불을 만들기 위해 경청하는 계약자들. 이런 풍경이 상당히 따스하게 시야에 다가왔다.

    “자, 먼저 주어진 호롱에 자신의 마력을 담아보세요.”

    “베로니카 선생님, 마력을 얼마나 담아야 하나요?”

    “최대한 많이 담아보세요, 어려울 걸요~”

    “네! 흐읍!”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자신이 가져온 호롱에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학생들도 같은 행동을 했다.

    그런데 호롱에 자신의 마력을 담는 것이 어려운가? 라는 생각과 동시에 옆자리의 학생이 상당히 노력했으나 희미한 마력 기운만 순환되는 것을 알게 되자 ‘생각보다 어려운가 보다.’라며 다시 내 호롱을 바라봤다.

    “저번 시간에는 호롱의 유리관을 강력하게 코팅했었죠?”

    “네, 너무 견고해서 마력이 유리관 안으로 들어가질 않아요.”

    “마력으로 코팅했기 때문에, 마력을 담기가 어렵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흐읍!”

    “정령의 호롱은 만들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리관을 마력으로 코팅시켰다.’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예를 들어 기사의 경우 전투에서 사용되는 마법이 다양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인 거 안다. 좌우지간 ‘마력 중첩으로 인한 견고함’을 표현하는 마법이 있다.

    이것을 호롱의 유리관에다 접목한 것. 아무래도 유리관 내에 주입한 마력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가, 이건 전문가가 아니라 모르겠다.

    베로니카에게 지속적인 질문을 하며 자신의 호롱에다 마력을 주입하는 옆자리 학생에게 미안해서라도 슬 마력을 집어넣어 봐야겠다. 흐읍.

    ― 쨍!

    기합을 넣는 소리와 동시에 파편이 튀었고, 놓여 있던 호롱의 유리가 깨져버린 나머지 모든 사람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베로니카 씨 저는 코팅이 안 됐나 봐요….”

    “네… 네?!”

    “깨져버렸어요.”

    “그건 마력을 30번이나 중첩 코팅한 호롱인데요?!”

    “예?”

    마력을 주입한 나의 호롱이 박살 나자 아직 남아있는 호롱이 있는 듯이 박스를 뒤적거리며 같은 모양새로 색만 다른 호롱을 가지고 오는 그녀. 그리고 내게 귓속말을 했다.

    “아서 님, 도대체 정체가 뭐죠….”

    “그냥, 여관 주인이요….”

    “그, 그런가요.”

    “네… 다음에 꼭 놀러 오세요.”

    “마, 마지막 호롱이라 깨지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네….”

    “코팅된 호롱 때문에 이런 말을 해보는 건 처음이에요, 아하하.”

    베로니카는 웃으며 돌아갔지만, 옆자리의 노력 소년이 짓고 있는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마치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이번에는 호롱이 깨지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마력을 담았고. 호롱 안에서 푸른 불빛이 은은하게 자리 잡힌다.

    그리고 얼굴 옆이 따가울 정도로 소년의 지긋한 시선이 느껴지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소년을 마주 봤다.

    “아저씨… 제 것도 도와줘요.”

    “아저씨라니?”

    “아, 형.”

    “아저씨라니!”

    “형, 형이요.”

    나는 자신의 마력을 넣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아저씨라고 부르는 망할 소년의 마력 순환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러자 소년의 마력이 호롱의 유리관으로 들어가더니, 내 것과 똑같이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채워졌다.

    “우와, 감사합니다. 아저씨.”

    “야.”

    베로니카가 이어서 마지막 단계에 대한 것을 설명했고. 학생들은 귀를 기울여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리관 안에 마력으로 정령계의 기운을 가져온다.’라며 쉽게 설명했지만, 예사가 아닌 일. 어떻게 보면 ‘작은 고유 결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거대한 칠판에 그려진 마법진을 따라 허공에 그린 뒤, 정령계에 존재하는 상위 정령들에게 그 기운을 빌려오면 된다고 했다.

    말은 쉬우나 이곳 학생들처럼 조기교육을 받아오지 않았는데? 하물며 정령 마법 서적의 활자는 본 적도 없었다.

    “유리관에 저장된 마력이 정령계로 넘어간답니다.”

    “오, 저희의 마력이요?”

    “네, 그럼 상위 정령이 정령계의 기운을 담아 다시 보내주죠.”

    베로니카가 칠판에 그려준 마법진은 ‘정령을 위한 손길’이라 불린다고 했다. 정령들은 이 마법진을 사용하는 인간이 정령과 계약한 마법사라는 사실을 안다고.

    그렇게 정령계에서 형제자매 하는 고위 정령들이 자기보다 계급이 낮은 아기 정령들을 위해 좋은 곳에 쓰라며, 정령계의 기운을 보내준다는 것.

    손가락 끝에 마력을 집중하여 칠판에 그려진 마법진을 똑같이 그렸다. 손끝에 마력으로 인하여 희미하게 만들어지는 마법진이 허공에 자리 잡힌다.

    “아서 님은 벌써 그리셨군요!”

    “이다음은….”

    “너희들의 기운을 이곳에 보내줘! 라고 하면 됩니다.”

    “그걸 하라고요?”

    “마음이 중요해요.”

    나만 저 대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이어서 마법진을 따라 그린 옆자리 소년과 학생들은 ‘너희들의 기운을… 아무튼 그런 대사’를 거리낌 없이 남발했다.

    “음, 너희들의 기운을 이곳에… 하, 젠장!”

    ‘안 해, 아니 못 해, 할 수 없어.’라고 마음속의 외침이 플로우들을 깨웠는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나를 향해 방긋 웃기 시작했다. 베로니카의 말이 떠올랐다. ‘플로우들은 아서 님을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너, 너희들의 기운을 이곳에 보내라!”

    마법진으로부터 강력한 힘이 요동치며 강의실 내부를 울렸고. 이내 태풍의 탑 전체에 지진이라도 난 듯, 엄청난 진동에 학생들이 공포감을 느꼈다.

    “뭐, 뭐야 혹시, ‘보내 줘’라고 안 해서 이런 거야?!”

    “아서 님! 무슨 일… 흐악!”

    이내 진동이 멈추고 내 호롱에는 레니의 힐처럼 눈부신 초록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 빛이 어두워진 강의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 학생들의 눈을 피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이었고.

    오자마자 태풍의 탑 : 블랙리스트 1순위에 오를 것만 같은.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미워질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일인가요!”

    “어머, 교장 선생님!”

    상당히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교장의 등장까지. 나는 지금 등록비도 안 내고 도강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도망갈까!

    ‘정령계가 노했다!’라며 학생들이 심각한 표정과 함께 자신의 정령들을 품에 안으며 경악했다. 옆자리 소년도 ‘아저씨… 무슨 짓을 한 거요?’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베로니카, 방금 그 기운은 ‘정령왕’의 기운이었어요!”

    “정, 정령왕!”

    교장과 함께 베로니카는 멀리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실체화되어 있던 정령들. 우리 플로우들까지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이없다는 듯. 떠다니는 얼굴이 가득했고.

    강의실 내부는 아주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정령왕’의 기운을 빌려 이 망할 호롱을 완성한 것이다….

    * * *

    수업이 끝난 뒤, 나는 학생도 아니지만, 교장실에 불려가 대화를 해야 했고….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라는 질문이 여러 차례 떨어졌지만, 나는 ‘모르겠어요.’ ‘그냥 했는데.’라며 전자의 대답만 무한 반복.

    베로니카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정령왕의 기운을 느낀 것은 처음이라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으며, 내가 만든 이 호롱은 평생을 써도 고장이 나지 않을 거라며 칭찬해주더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마법 학교 태풍의 탑.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오며 가게로 향하는 길에 오른다.

    플로우들도 정령왕의 기운이 느껴지는 호롱불이 좋은지 가방에서 은근슬쩍 나와 공기를 맡으며 함께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호주머니에 있던 구겨진 종이를 꺼내 메모를 했다. ‘다음에 태풍의 탑에 근무하는 분들이 놀러 오면 서비스….’

    “자, 이제 주류 창고의 문제도 끝났으니 돌아가 볼까.”

    “플로, 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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