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6화 (6/222)
  • 006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규칙 사항 추가 』

    ◈ ‘대형 탈것’은 가게 입구 앞에 있는 ‘주차 구역’에 둘 것.

    ※ ‘레드드래곤’인 ‘렌’만 각별히 조심하면 됨.

    * * *

    레드드래곤, 렌이 가게 상공에서 거센 날갯짓을 하며 떠 있었다.

    이 와중에 조련사가 길들인 ‘잿빛 이리’를 보며 ‘맛있게 생겼다. 주인님 저거 먹어도 돼요?’라고 말하자, 깨갱거리는 소리와 함께 ‘란베르크’의 ‘음속검’보다 빠른 속도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먹이사슬은 어디서나 통한다. 그것이 드래곤이 있는 이세계라면 더더욱.

    이어서 온데간데없어진 자신의 늑대를 보며 부리나케 도망가는 조련사, 손님들은 그 모습을 보며 ‘너희 대륙으로 썩 꺼져’라는 말과 함께, 기가 찬다며 배를 잡고 또다시 웃기 시작한다.

    “캡틴, 내 방으로 가서 로브를 가져와.”

    “달그락!”

    로브를 가져올 때까지 잠시 상공에서 떠 있으라는 말에 렌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앙탈을 부렸다. 그 부분에서 ‘이 여관주인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라는 손님들의 의구심만 대폭 증가시켜버렸다.

    최단 시간으로 내 방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로브를 가지고 온 캡틴, 나는 로브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왜 이렇게까지, 라는 말이 나왔다. 저 상태로 인간화를 하면 전라일 수밖에 없는데도.

    “후, 주인님.”

    “야, 너 돌았냐?”

    “아하하, 드래곤은 광란의 뱀이라고도 하죠.”

    나는 렌에게 로브를 덮어준 후, 함께 가게 내부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외부에 있는 손님은 없었기에, 내부로 들어오는 단계까진 괜찮았다.

    내부가 문제였다. 손님들이 가득한 곳에 드래곤이 인간의 모습으로 들어왔다. 전자 같은 상황에서 드래곤이 이목을 받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렌의 태도를 보아하니 ‘을’인 것 같고, 내 태도를 보아하니 ‘갑’이라 생각한 손님들은, 느끼고 있던 공포감을 가볍게 털어내는데 성공한다. 다음은 야유와 질책이 쏟아진다. 만만한 게 나네.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비친 렌, 외모적인 부분에서 감탄과 탄성이 절로 나오기에 십상이었고, 대부분의 손님은 ‘오, 오’라는 입 모양으로 넋을 놓으며 우릴 바라볼 뿐이었다.

    “아서, 얼른 설명해보게.”

    “브라운 아저씨, 머리가 아프니까 기다려줘요.”

    “뭐야, 아서 여자라니?!”

    “레니, 여자가 아니라 여자 드래곤이라고.”

    레니가 왜 질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렌은 이런 레니에게 시선을 준 뒤, 인간이 이렇게 북적이는 곳이 신기한 모양이라 동공이 커진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이 마주친 인간을 향해 군침을 삼키는데, 그 손님들은 웃다가도 갑자기 흠칫하며 놀라기 바쁘다. 채식만 하는 드래곤이라는 말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네.

    대화를 위해 렌을 테이블 끝자락에 앉혔고, 캡틴은 물을 가져다 놓았다.

    “그래서, 다시 온 이유가 뭐지?”

    “주인님이 배가 고프면 언제든 오라고….”

    “후,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때 오면 어떡해.”

    “죄송해요….”

    “그리고 창문이 모조리 깨져버렸잖아.”

    “흑….”

    “이봐, 아서! 말이 심한 것 같군!”

    “여긴 내 가게라고요, 브라운 아저씨!”

    “하하, 나도 참….”

    “그래도, 여성의 눈물을 훔칠 것까진….”

    “그녀 때문에 아저씨 바지가 젖어버렸네요.”

    “아, 아이고!”

    사람들은 지려버린 자신의 바지를 확인하기 급급했다. 여관에 앉아있던 대부분의 손님들이 얼굴을 붉히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딱 보니까 다 지렸어.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먹이사슬의 최상위 생명체. 그 아래 인류를 포함한 짐승은 일방적으로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자칭 모험가라고 일삼는 우리 손님 중에 드래곤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을 터이니 더더욱.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약육강식 먹이사슬의 제일 끝 최강의 포식자, 이 붉은 머리 여자는 마을 하나를 휩쓸어 버리는 것이 일도 아니다.

    “자, 얼른 먹어.”

    “넵.”

    맨손으로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야만스러운 것이다. 수저 및 포크 사용법을 알려 주기 위해 그녀 옆에 앉았다. 엄연히 손님들의 비위를 지켜주기 위함이다.

    “이렇게, 사용하면 돼.”

    “아…. 음, 이렇게요?”

    “그렇지, 잘하네.”

    “이봐, 아서”

    “또 이상한 소릴 하시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아하하, 미안하네, 둘이 보기가 좋아서.”

    렌은 예상외로 인간 문화에 대해 습득이 빨랐다. 처음이 아닌 것처럼, 어느새 수저와 포크를 능숙하게 다루며 식사를 했다. 단지 오랜만에 써보는 느낌이었다.

    이를 신기하게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고, 여전히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문제는 뒤통수가 따가울 정도로 노려보는 레니가 힘들다.

    “그래서, 다 먹으면 돌아갈 거지?”

    “주, 주인님….”

    “뭐야, 그리고 주인님이라고 그만 좀 해.”

    “주인님이 제게 이름도 알려주시지 않았잖아요.”

    “후, 길고양이 정도로 생각한다고 했어, 분명!”

    내 바지 깃을 강하게 잡으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 징조는 예사가 아니다, 분명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을 부탁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저… 주인님이랑 살고 싶어요.”

    “….”

    “다들… 왜 그렇게 나를 쳐다보는 건데?”

    * * *

    ‘아, 아’를 운운할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이 많은 가운데. 그것도 오지랖 장난 아닌 단골들이 있는 가운데. 렌이 ‘그때 해 준 음식이 너무 맛있었던 나머지, 이 음식을 안 먹으면 인간을 먹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의미심장하게 뱉어버렸기 때문이다.

    “주인님?”

    “차라리 마스터라고 부르자….”

    “마스터?”

    가게에 창문도 깨져버렸고, 이 드래곤이 너무 강렬하게 등장한 나머지 손님들의 바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가게를 급하게 닫았다. 당연하게도 마차를 통해 귀가 서비스까지 제공해줬다.

    테이블 위에 양손을 모아, 눈에서 거대한 별이 반짝거리는 렌을 바라본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이 빨간 용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돌아갈 곳은 없어?”

    “네.”

    “왜 그렇게 당연한 듯이 말하는 걸까.”

    “돌아갈 곳이 있다면, 가족이 있는 곳이죠.”

    “그럼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되잖아.”

    “마스터가 가족인걸요.”

    “아, 아….”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누르며 고민에 빠졌다. 렌을 우리 가게에 먹여 살리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만, 평화로운 델타에 드래곤을 데리고 산다는 말이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손님들이 귀가하기 직전이었다.

    그들을 모아 ‘어디 가서 우리 가게에 드래곤이 있다고 말해버리면, 제가 대륙 끝까지 찾아가서…’ 이하 중략으로 전부 식은땀을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거렸으니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모험가들은 대게 수다가 많은 직업이다. 언제 어디서 렌이 우리 가게에 있다는 말이 새어나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우리 가게에서 직원이 되는 건 어때.”

    “직원이라면… 저 망자들처럼 말인가요?”

    “그래, 나도 무상으로 너를 먹여 살려줄 생각은 없으니까.”

    “네, 해보고 싶어요.”

    렌이 본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단골이 아닌 경우에는 의심을 받을 이유는 없을 것이고, 가게 단골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렌이 일을 하게 되면 더 좋아할 것 같기도 했다.

    일단은 형형색색의 정장들을 입은 나비넥타이의 귀여운 해골들이 마스코트이긴 하지만, 웨이트리스도 생긴다면 가게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캡틴.”

    “달그락.”

    “나중에, 렌에게 요리를 제외한 일들을 알려줘.”

    “달그락!”

    “렌, 인간 모습으로 있어도 불편한 점은 없어?”

    “문제없어요, 가끔 가볍게 풀어주면 되거든요!”

    “풀어주면 된다니.”

    “가끔 드래곤으로 변해서, 몸을 풀어주면 된다는 말이에요.”

    “몸을 어떻게 푸는데.”

    “그냥 뭐… 다른 드래곤이랑 싸운다거나?”

    “거하게도 푸는구나….”

    내가 원하던 것은 이런(?) 직원들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불사가 아님’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없음’ 같은 직원을 원했다.

    신사 해골에게 미안한 부분이었지만, 아무튼 바라던 직원들은 그저 ‘인간’이었는데, 언데드부터 시작해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드래곤이 직원으로 들어오게 된다니.

    여러분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레드드래곤’이 드래곤 개체 중에서 ‘가장 포악하고 잔인하다.’라고 알려져 있다는 것을 이제야 전한다.

    “거참… 나도 이제 직원 부자네.”

    “마스터?”

    “아니야….”

    렌을 데리고 후방 건물로 이동하여, 2층에 마스터 룸 옆에 있는 방을 내주었고, 드래곤 주제에 침대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방에 있는 건물은 벽돌과 목조로 이루어졌는데, 북대륙에 있는 마력 순환에 아주 좋은 ‘푸른 거목’의 뿌리로 된 목조를 사용했고, 벽돌 또한 구하기 어렵다는 서대륙 델타산맥의 암반으로 되어 있다.

    고급화된 사양 덕에 그 어떤 생명이든 이곳에서 잠을 자게 된다면 평소보다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니, 렌도 인간 모습으로 지내는 데는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아주, 좋은 향기로군요.”

    “암, 아주 많이 공들여서 만든 가게라고.”

    “달그락.”

    “무슨 일이지 캡틴, 후방까지 찾아오다니.”

    “달그락.”

    “무슨 소리야, 잠시 와보라고?”

    후방 건물로 이동하기 전, 신사 해골들에게 렌으로 인하여 난장판이 되어버린 가게의 뒷정리를 맡겼다. 그러나 아무리 해골들이라도 벌써 끝나지 않았을 터, 캡틴이 급하게 나를 부르러 온 듯했다.

    몇 걸음 되지 않는 전방 건물로 이동했더니, 일사천리로 가게의 정리가 끝나가는 듯했으나… 캡틴이 ‘오렌지’에게 나를 데리고 갔다.

    ‘오렌지’는 ‘옐로’와 ‘그린’이 뚜껑을 열어,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던 것을 지목했는데, 다름 아닌 케피탄 맥주의 오크통이었다.

    “뭐라도 있어?”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응?”

    녀석들은 두 개의 오크통을 비교하던 중이었다. 확실히 두 개를 비교해보니 맥주의 색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맥주가 떨어질 때쯤, 주류 창고에서 빼 온 게 이거지?”

    “달그락.”

    마지막에 빼 온 맥주의 색상이 이전 것들과는 다르게 많이 탁해져 있다. 로건의 말에 따르면 케피탄 맥주의 보관이 잘못되면 이렇게 된다고 들었는데….

    “잠시만, 캡틴 아까 조련사가 마시던 맥주를 가져와 줘.”

    “달그락.”

    “꿀꺽.”

    “달그락?”

    “흠, 정말 맛이 없잖아, 화날 만도 했군.”

    갑자기 조련사에게 미안해지는 이 기분은 뭘까, 새 오크통을 꺼내서 유일하게 이 괴상한 맥주 맛을 본 건 그 조련사밖에 없었을 텐데.

    ‘혹시, 다음에 오면 서비스를 주도록 하자.’

    어쨌거나.

    지금의 상황을 정리했을 때, 맥주의 상태가 이상한 것은, 내 주류 창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네이비나 블루가 주류 창고에서 오크통을 꺼냈을 것이다.

    “블루, 네이비 중에 이 오크통을 가지고 온 게 누구지.”

    “달, 달그락.”

    네이비가 우물쭈물하며 손을 들었다.

    “주류 창고에 문제는 없었어?”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세 번이나 달그락거리다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봐.”

    “달그락, 달, 달그락, 달그락!”

    “아까 조련사 때문에 바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달그락.”

    “그래서, 뭐가 문제였어.”

    “달그락.”

    네이비는 종이를 가져와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 해골들을 화가로 데뷔시키는 게 성공의 지름길일지도 모르겠다.

    “…………뭣!”

    아주 급박하게 그려나가는 네이비, 종이에는 4마리의 작은 요정들이 X 눈을 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얼음 정령들이 아프다고?!”

    “달, 달그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