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화 (2/222)
  • 002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규칙 사항 추가 』

    ◈ ‘대형 탈것’은 가게 입구 앞에 있는 ‘주차 구역’에 둘 것.

    * * *

    “빨간 용, 네 이름이 뭐지.”

    “저는 드래곤 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이에요.”

    “…장문의 성을 가진, 렌의 나이는.”

    “한… 2000살 조금 안 될 거예요.”

    “…할머니를 넘어서 암모나이트 수준이잖아.”

    아침을 맞이하고 빨래를 걷으러 가는 길에 마주친 무언가. 마당에 자리하고 있던 녀석의 정체는 진짜 ‘레드드래곤’(Red Dragon)이었다.

    처음에는 배가 고픈 정도로 마당에 쓰러져있었다는 말을 믿지 못했지만 막상 인간의 음식을 만들어서 주었더니….

    이름이 몹시 길었던 여자(드래곤)는 ‘폴리모프(인간 모습으로의 변신)’ 마법을 사용하여 숟가락도 들지 않은 채, 양손을 사용하며 음식을 먹기 바빴다.

    “그 정도 양이면 충분하니.”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 맛있어요. 조금만 더 주시면….”

    “물론. 생각보다 예의 바른 드래곤인데.”

    “제가 무섭지 않은가요?”

    드래곤. 은퇴 이전에는 자주 보았던 개체이기도 하다. 지금은 인간형으로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도리어 사람이랑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글쎄, 붉은 머리칼을 가진 단발의 여자가 있군그래.”

    “아…. 감동의 물결이.”

    “몇 명이나 잡아먹었어.”

    “뭐, 뭐를요?”

    “인간 말이야, 인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는데요.”

    물론 드래곤에 대한 설이 그렇게 좋은 평은 아니었다. 워낙 용사들이랑 티격태격. 그렇다고 몬스터들과 친한 것도 아니며. 상당히 인간이라는 종족을 무시하는 경향이 크다고 알려져 있으니.

    다만 눈앞에 보이는 ‘렌’이라는 레드드래곤은 성질이 좀 달라 보인다. 착하다고 하면 또 그런 것 같긴 한데, 내가 봤을 때는 아무리 봐도 ‘멍청하다.’라는 쪽이 더 가까운 듯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 가게 마당으로 오게 된 거지?”

    “저는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어요.”

    “그렇군, 무려 아칸(세계를 크게 부르는 이름)을.”

    “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력이 고갈되어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잔디로 회복하면서 뻗으셨다.”

    “네… A급 품질의 마력초들이라, 변상이라면 어떻게든….”

    녀석이 우리 가게 마당에 있는 잔디의 정체를 알고, 잔디 스스로 마력 순환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력을 몽땅 빨아 먹어버렸다.

    저 잔디들의 정체는 A급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풀로, 가게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마력을 회복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풍경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녀석은 이것이 꽤나 값진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드래곤은 보물도 많이 가지고 있을뿐더러, 인간의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갑부에 가까운 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있으나.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라는 것을 이 여자를 보며 알게 되었다.

    그래. 다른 드래곤들은 모르겠으나 일단 이 여자는 아니다. 이 여자는 주머니를 털어도 돈 한 푼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마력도 소진해서 거의 죽을 뻔했는데…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많은 마력이라도, 아칸을 전부 날아다니기엔 문제가 있었겠지.”

    “네, 그리고 다른 드래곤 개체들과의 싸움도… 피할 수 없었어요.”

    “드래곤끼리의 싸움은 대개 결판이 나지 않는다고 들었다만.”

    “아니요?”

    “그럼 네가 싸운 게네는.”

    “지금쯤 아마, 드래곤 본….”

    “오케이, 거기까지.”

    멍청해 보이는 드래곤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전투 부분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허언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음식은 어땠어?”

    “엄, 엄청 맛있었어요. 잊지 못할 정도로.”

    “됐어, 그럼”

    “네?”

    “그 정도로 충분해.”

    “너무 큰 은혜를…. 제 뿔이라도 잘라서 드릴게요.”

    드래곤의 뿔은 상당한 마력이 깃든 것으로, 어떠한 아이템으로도 효과가 좋다. 그러니 뼈만큼이나 상당히 값어치가 있는 물건. 어쩌면 녀석의 뿔 한 짝으로 내 가게를 하나 더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얘기했듯이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며 지금의 생활로도 감개무량할 정도로 만족하고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다. 또 저 뿔을 잘랐다간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녀석이 또 추락하고 말 것이다.

    “쓸모없어.”

    “너, 너무해!”

    “뿔을 잘랐다간 집에 도착하기 전에 또 떨어진다.”

    “그, 그렇긴 하지만.”

    “얼른 가, 기껏 살려놨더니.”

    “그럼 존함이라도….”

    “됐어.”

    “명색의 드래곤이 빚을 졌는데 그건 좀….”

    “그러니까, 다시는 오지 말라는 얘기야.”

    “아하하, 네….”

    렌과 함께 전방 건물에서 나와 마당으로 위치하여, 레드드래곤의 모습을 다시금 갖추기 시작하는 것을 구경한다.

    『 실은… 배가 고파서 이러다 또 죽겠다, 싶으면 어쩌죠. 』

    “아니, 너는 사냥을 안 해?”

    『 할 줄 몰라요. 』

    “2000년 동안 풀만 먹고 살았니.”

    『 네. 』

    “이런, 비건(Vegan) 드래곤 같은.”

    『 비건이 뭐죠? 』

    “길고양이로 기억할 테니까, 가끔 오는 건 봐줄게.”

    『 사랑합니다. 주인님. 』

    “대신 내릴 때는 가게 정문 앞 ‘주차 구역’에서 내려.”

    『 주차 구역…. 』

    * * *

    마당을 망쳐버린 레드드래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잔디를 고치는 데다 임시 휴업을 몽땅 써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사방팔방 튀어나온 흙이라도 정리하라고 할걸….”

    생각해보면 정말 멍청한 드래곤이 아닐 수가 없다. 2000년 동안 풀만 먹고 살았다고? 그 말은 인간이라고 치면 20년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버텼다는 소리인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지식을 얻게 될 줄이야, 논문을 써도 될 듯하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으로 풀만 처먹고 살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000년이라고.

    어쨌거나.

    ‘용사의 쉼터’에 빠질 수 없는 주류. 오전에는 이 주류를 만드는 ‘로건’이 주류마차를 끌고 오기로 했다.

    가게를 처음 오픈할 때부터, 로건과의 관계는 필수였고. 지금까지 꾸준히 그와 계약하여 손님들에게 ‘로건 농장의 마실 것’들을 제공했다.

    단순히 정이 쌓인 계약관계라는 것을 예외로, 실제로 로건 농장의 마실 것들은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맛있게 관리하는 방법이 다소 어렵다는 것이 문제지만. 고로 냉동 및 냉장 비법은 다음에 공개하겠다.

    시원하고 맛있게 관리하는 방법은 내가 특별히 고수하는 기술적 요인이 있는데, 늘 주류를 운반하는 로건이 가게의 주류 창고를 구경할 때면 ‘이건 아서 님밖에 할 수 없어요.’라며 부럽다는 듯 얘기했었다.

    “아서 사장님!”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는 중에 로건의 목소리가 들렸고, 창을 열어 확인하니 그가 마차를 끌고 와 주차 구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말이 좋아 주차구역인데, 사실 잔디가 없는 곳에다 대기 중이었다.

    “내려갈게, 잠시만.”

    로건 옆에는 ‘아곤’이라고 하여 늘 데리고 다니는 부사수 한 명이 있다. 녀석은 싸움을 못하는 덩치였다. 힘은 잘 쓰는 편으로 로건이 배송 서비스를 할 때 필히 데리고 다닌다.

    “한번 확인해 주시겠어요?”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나, 우리 사이에.”

    “신뢰도 중요하지만, 혹시 제가 실수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하.”

    “그래, 줘봐.”

    < 로건 농장 : 상품 계약서 / 용사의 쉼터 >

    1. 델타산맥 : 산포도 와인 / 오크 225L X 5

    2. 케피탄(A급 숙성 보리) 맥주 / 오크 225L X 10

    3. 과일 탄산수 / 박스(20EA) X 7

    “완벽해.”

    “하하, 그럼 아곤과 함께 창고로 옮겨드리겠습니다.”

    “내가 할게, 잠이 덜 깼는지 아곤이 피곤하나 보군.”

    “아, 아닙니다! 아, 아곤!”

    아곤은 코 고는 소리를 내며 ‘서서’ 잠들어 있었다. 요즘 로건이 다른 지역에 있는 업자들과의 계약이 많아지다 보니, 아곤 또한 그와 함께 바빠지기 시작해서 그런 듯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드래곤에게 흙을 정리하고 옮기는 일까지 시키고 보내는 것이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아쉬워지는 기분이다.

    “얌마, 아곤!”

    “드르렁…. 예, 예 형님!”

    “하하, 괜찮으니까 돌아가도록 해.”

    나는 오크통 하나를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진 뒤, 남은 손으로 그들을 마차로 쉬쉬하며 밀어 보냈다.

    마지못해 로건과 아곤은 마차에 다시 올라타기 시작했고, 나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옷의 매무새를 다시 잡기 시작했다.

    “맞다, 사장님 이번에 델타에서 떠도는 소문… 들으셨습니까.”

    “어떤 소문?”

    “델타 북쪽에 위치한 숲이요, 거기서 계속 망자들이 떠돌아다닌다고.”

    “이 세계에서 그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데….”

    “어느 네크로맨서가 숲속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대요.”

    “네크로맨서(Necromancer)라….”

    “네, 그래서 델타시장이 아무래도 북쪽 숲 바로 옆에….”

    “있으니까 온갖 소문이 퍼진 거겠지, 잘 가.”

    “역, 역시 관심이 없으시군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 * *

    [ 델타 북쪽 시내의 시장 ]

    북쪽에 있는 시장은 지역 중에서도 2번째로 큰 시장이라고 불리는 곳, 대륙 너머의 상인들과 그들이 가져온 외제품을 잔뜩 볼 수 있다.

    그 밖에 ‘야시장’이라고 하여 밤에 시장이 열리는 날이 있다. 이런 날에는 주로 먹을 것들을 판매하는 포장마차가 줄을 지은다음, 마치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무려 그날이 오늘이다.

    “오, 아서!”

    “브라운 아저씨.”

    “용사의 쉼터가 아닌 곳에서 보니, 색다르군그래.”

    “저는 브라운 아저씨가 취해있지 않은 모습을 보니 신기하네요.”

    “역시, 자네는 개그를 아는군, 아하핫!”

    브라운의 앞에는 다양한 무기들이 바닥에 놓여있었는데 그는 대장장이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무기를 야시장에서 판매하러 나온 듯했다. 실제로 실력도 좋은 편이다.

    “자네는 무슨 일로 야시장에 나왔는가.”

    “아,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어서요.”

    “오, 드디어 새로운 메뉴 개발에 착수한 것인가?”

    “아하하… 아직 거기까진.”

    새로운 메뉴 개발을 위해서라.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그냥 야시장의 음식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휴무니까, 즐기고 싶으니까!

    엄청난 실력을 숨기고 있다가 야시장이 열리면 포장 가게를 여는 요리사가 많다. 대부분 가정의 주부인 듯 했다. 힘을 숨긴 주부이다.

    대충 브라운 아저씨와의 대화를 끝내고. 눈앞에 보이는 ‘화염 마법으로 구워드리는 양고기 스테이크’라는 포장마차로 향했다.

    “양고기 스테이크 하나만 주세요.”

    “어떤 서클의 화염 마법으로 구워드릴까요.”

    “레어, 미디움, 웰던이 아니라요?”

    “네, 몇 서클 화염 마법으로 구워드리길 원하십니까!”

    “10서클, 헬 파이어….”

    “그게 가능했다면 제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손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화염 마법으로 구워드리는 양고기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뭐랄까 마법으로 구워볼 생각을 전혀 안 했던 탓인지, 뭔가 3서클 정도로 구운 내 고기에 숯 향이 올라오는 것이 신기했다.

    그 부분에서는 요리사가 ‘제가 샐러맨더의 화염을 사용하거든요.’라며 숯 향이 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연탄 불고기를 연탄 없이 해먹을 수 있다니, 어쩜 이렇게 부러울 수가.

    마법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고 난 후, 야시장 거리를 배회하며 가지각색의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보기 바빴다.

    개중 디저트로 먹었던 ‘산딸기 아이스크림’은 마력 농축이 꽤나 잘되어 있었는지 얼음과 함께 매우 싱그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벤치마킹으로 비슷한 디저트를 가게에 추가해야 될 듯.

    어디선가 원숭이가 울다 만 소리가 들렸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시장 바로 옆에 위치한 숲에서 나는 소리더라.

    ― 끼….

    ‘끼?’

    ― 꺅!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비명.

    시끄러운 탓에 주변 사람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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