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화 (1/222)
  • 001화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규칙 사항 』

    ◈ ‘가게 내부에서 폭력 행위 일절 금지’ - 가게의 주인이 몹시 강하기 때문에, 골로 가는 수가 있음.

    ◈ ‘마법을 가장한 사기 행위 일절 금지’ - 가게의 주인이 상당한 마안의 능력자이니 들키고 난 후에 후회하지 말 것.

    ◈ ‘외상 가능, 무전취식 금지’ - 가게의 주인이 상당한 추적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타 차원으로 도망가더라도 쫓아감.

    ◈ ‘가게 내부 물건 훼손 금지’ - 가게의 주인 과거 이명이 ‘신의 폭력’이었으므로, 변상 대신 생명이 훼손될 수 있음을 예고.

    * * *

    은퇴를 하고, ‘용사의 쉼터’를 운영한 지 벌써 3년.

    창업 첫해까지 다들 그러듯 ‘아직은 저 말고 직원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를 입에 붙이고 다녔는데, 2년 차가 넘어가고 3년 차가 되어갈 때는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한 해가 지나니, 입소문을 타고 예상치도 못한 많은 인원들이 찾아오며, 거기서 또 입소문을 타고, 생각해보라 모험가들은 의외로 수다스러운 직업이다.

    이들은 원한다면 다른 대륙으로도 넘어가 ‘용사의 쉼터’를 언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장인 나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일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많은 손님이 찾아오리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현재로 넘어와서 모험가들이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을 보면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그저 ‘찾아온 모험가들에게 최선을 다하자’라는 소신이 모험가들에게 좋은 곳이라 인식을 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눈을 깜빡하니 어느새 매출이 높아져 있더라.

    이어서 단골들은 물어보지 않으나, 새롭게 찾아오는 손님들은 늘 나에게 물어보는 고정 멘트가 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물어본다.

    “사장님, 혼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려면 힘들지 않아요?”

    “아하하, 괜찮아요, 단련된 체력과 마력으로 버티고 있답니다.”

    과거에는 전투에만 사용하던 내 마력이 오로지 경영을 위한 체력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뜻밖에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육체의 피로감을 확연히 줄일 수 있었다.

    팁이라면 주문이 밀렸을 때 ‘헤이스트’ (Haste) 같은 가속 마법을 응용하여 빠르게 움직이면 그만이고, 하물며 바빠지는 만큼이나 또 마법을 중첩해서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오십 명은 거뜬히 만찬을 벌일 수 있는 라운지, 후방에는 10개로 이루어진 투숙객 시설, 이곳에 가속 마법을 사용하며 혼자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것은 사장 하나.

    워낙 모험가 손님들이 신기하게 보기도 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인해 직원 고용을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직원 공고를 ‘델타’ 시내에 붙인 적이 있었으나, 여관에서 서빙이나 요리를 하는 것보다는 대세라고 불리는 ‘모험가’가 되려는 자가 많은지, 여전히 감감무소식….

    한 달, 그간 수차례 비도 왔으니, 내가 붙여놓은 직원 공고문은 이미 젖어서 찢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구두쇠 사장이라는 오명이 붙는 건 싫은데.

    그래도 사장이 혼자 하는 여관이라 그런지, 아니면 워낙에 많은 단골들께서 즐비하여 그런지, 주문했던 음식이나 술이 늦게 나오는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손님들은 없었다. 아니면 여관의 컨셉이라 생각하는 걸지도.

    사실 가속 마법을 아무리 중첩해도 밀린 주문이 평소처럼 빨리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나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기획한 것이 바로, ‘바드의 연주’

    반응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굉장히 성공적이었어.’라며 단골 드워프 ‘브라운’ 씨가 그러더라. 얼굴이 달아오른 걸 보아, 사실 술기운에 얘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여관의 이름값을 하듯, 당연히 이곳에 오는 손님들도 모험가라는 사실, 이들은 피곤한 하루를 달래기 위해 용사의 쉼터에 찾아온다.

    누구는 거하게 한탕 했을 것이며, 누구는 허탕만 치고, 좋고 나쁘고, 좌우지간 가지각색의 다양한 감정으로 찾아오는데, 바드의 연주는 이들을 위해 축하와 위로의 연주로 전해졌다.

    나른한 표정으로 연주를 쭉 지켜보다가 바드에게 술값을 대신 내주는 손님들을 볼 때면 내가 더 흐뭇하기도 했다.

    사실 다른 것보다 가게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니, 분위기가 한층 더 좋아지는 부분은 사장인 나의 입장에서 대만족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바드의 연주 정도로 밀린 주문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는 것. 바드의 연주로 밀린 주문을 해결하려면 바드가 30명은 있어야 될 듯하다.

    어떻게 보면 은퇴까지 그렇게 착한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데, 어째서 내 가게가 ‘웨이팅’이 생길 만큼 인기가 많아졌는가?

    가끔 타 지역에서 넘어오는 자영업자들이 내게 ‘어떻게 하면 여관이 이렇게 잘될 수 있죠?’ ‘비결이 뭔가요?’라고 물어올 때 ‘그냥, 소신을 갖고….’라고 대답하기 바빴다.

    어쨌거나.

    문제는 ‘구할 수 없는 직원’이다. 망할 모험가라는 직업이 너무 유행해버려서 다들 방랑벽에 걸린 척 애쓰는 모습을 보면…. 직원을 애타게 찾는 나로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내일부터 용사의 쉼터는 임시 휴업’

    ‘1시간이든 2시간이든 하루 종일 음식을 기다려도 좋으니까 그냥 오픈해줘!’라는 손님들의 말에 ‘그 정도 기다림이 가능하시면 며칠만 참아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아니면, 정말 폐업해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미, 미안하네.”

    “더 이상 용사의 쉼터에 오고 싶지 않으신가 봅니다.”

    “내, 내가 죽을죄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라운’ 씨와 대화를 지켜보던 손님들은 배를 부여잡으며 폭소하기 바빴다, ‘이봐 아서, 그건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야, 하하!’라고.

    어찌 되었건 장사를 마무리 하고 나면 몽땅 떨어진 식재료와 술을 구매해야 했다.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직원 채용. 이에 대해서도 필히 머리를 굴려야 한다. 할 일이 많았다.

    “어머머, 아서, 표정이 어두워요.”

    “그게, 직원을 구할 수가 없어서.”

    “그럼, 제가 힐을 해드리겠 히끅, 겠습니다~”

    이미 꽤나 취했는지 가게 단골 ‘레니’의 ‘힐을 해드리겠습니다.’라는 주사를 구경할 수 있었다. 여전히 체력이 남아돌아서 팔팔한 나의 주위로 초록색 치유의 기운이 맴돌았고.

    정말 끝이 없다. 이러다가 레니의 마력이 다하는 것보다 내 눈이 실명하는 것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누가 레니 좀 말려줘요. 이 망할 초록빛 때문에 가게를 볼 수 없어요.”

    “아하하하, 아서. 그러게 체력관리를 잘하지 그랬나!”

    “밀린 주문도 없는데 왜 그러나 아서. 으하핫!”

    “봐, 레니도 휴업이라는 말에 화가 나버렸다고. 하하!”

    손님이 10명 정도는 앉아 있을 수 있는 길게 뻗은 칵테일 바, 겸 카운터에 턱을 괴고 가게 내부를 둘러본다.

    창을 열어 두어서 그런지 산산한 바람이 들어와 손님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그것보다 나에게 있어서는 외부에 있는 손님들이 걱정인데.

    나도 이렇게까지 장사가 잘될 줄 알았겠는가. 심지어 외부에 있는 손님들은 내가 직접 서빙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주문을 하고, 스스로 가지고 간 뒤에, 밖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것이다. 마치 공간만 있으면 된다는 느낌이다.

    과연, 별생각 없이 대충 외곽에 위치한 언덕 들판 위에 가게를 차렸더니…. ‘용사의 쉼터도 식후경이에요!’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그런 말을 들은 후에 외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외부에 테이블을 배치하려고 고민을 했으나…. 일단 보류. 왠지 가게가 더 잘될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선 나머지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 가게가 잘되는 것이 걱정거리로 남은 사장은 내가 유일하다고 본다.

    왜냐면 나는 이렇게까지 분주하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몇몇 손님들을 보며 단란한 분위기를 창출해내는 것이 목표였다.

    간단히 얘기해서 은퇴 이후에는 분주한 삶보다는 적적한 삶을 원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끔 농장이나 하는 거였는데, 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용사의 쉼터에 찾아와 이렇게 행복해하는 손님들을 보며 ‘장사 관둘게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찾아온 모험가들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나의 소신을 지키기로 한다. 일단은 말이다.

    ‘에크, 이러다가 바드의 손가락이 남아나질 않겠어.’

    가게에서 온종일 기타 같은 것(?)만 치고 있는 바드의 손가락이 헐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들도 좋아서 연주하는 것은 맞으나….

    호응을 멈추지 않는 손님들에 의해 영겁의 가까운 연주를 하는 바드가, 나의 시점으로 상당한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델타의 바드들은 실력이 좋다는 소문이 있는 것 같다.

    …연습은 잘 되겠네 그래.

    * * *

    멀리 보이는 이웃 농장의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산뜻한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은 가게의 지정된 휴무가 맞지만 무엇보다도 당분간 ‘임시 휴업’이라고 작정하며 쉰다 생각하니. 더욱 산뜻한 아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달이 한창 떠오를 때는 그 어떤 곳보다 사람이 붐비고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지만 해가 떠 있는 이 순간, 용사의 쉼터는 고요한 곳이 된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이 먼 곳에서 불어와 언덕의 들판을 지나는 소리. 그 바람이 살살 불어 가게 마당의 풀들을 스치는 소리. 소소한 행복이라 쓰고, 만세라 읽겠다.

    한참을 사색에 잠겨 침대에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게 뒷면에 널어두었던 빨래를 걷어야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가게를 작게 지을 걸 그랬나.”

    ‘용사의 쉼터’는 두 개의 구조물로 전방에 있는 건물과 후방에 있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들 자체가 입이 벌어지게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 여관의 크기로는 큰 편에 속했다.

    ‘전방에 있는 건물’은 어제 보았던 것처럼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하고 먹을 수 있는 2층 구조의 라운지로 되어 있다.

    ‘후방에 있는 건물’은 숙소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내가 숙식하는 2층의 마스터 룸을 제외하고 10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시 휴업 관계로 지금은 투숙객이 없다.

    “그나저나, 이건 뭐지.”

    널었던 빨래를 걷으러 왔더니만.

    일반 모험가는 구경하기 어렵다는 ‘레드드래곤’(Red Dragon).

    평지풍파를 겪은 표정으로 내 마당에 쓰러져 있었다.

    “흠.”

    뜻밖에 조우였으나 일단은 저 거대한 무언가 때문에 잘 관리해둔 잔디가 망가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급급했다. 무려 내가 아끼는 마력초였다.

    녀석의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가, 깔려버린 내 잔디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녀석의 숨소리가 고르게 트이는 것을 들었다.

    서서히 눈을 뜨긴 했으나 여전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 분명 녀석에게는 큰 문제가 있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이 상당히 옅게 느껴졌다. 죽을지도 모를 만큼 기력이 약해져 있다는 말인데, 보아하니 서열 싸움으로부터 밀려난 개체인 듯 했다.

    “너, 괜찮아?”

    『 배가…. 』

    “배에 상처를 입었니?”

    『 고파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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