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50)

“한발 올려.”

“……윽.”

“똑바로 해.”

옆을 지나가던 라다크가 발로 싯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바닥에 얼굴이 처박히자 흙 알갱이가 씹혔다. 

“네가 똑바로 안 했으니, 네 주변 사람들 모두 10회 추가다.”

싯카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소리 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싯카는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테난이 화를 버럭버럭 내며 사람을 닦달하는 타입이라면 라다크는 조용히 사람을 미치게 하는 타입이었다. 라다크는 오늘 훈련이 시작되자마자 싯카를 자신의 바로 앞에 세우더니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를 감시했다.

싯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팔굽혀펴기를 마쳤다. 이 듣도 보도 못한 동작은 라다크가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혼자 만들었다는 운동이었다. 이 토할 것 같은 운동을 마치고 나면, 나무를 깎아 만든 창으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훈련의 효율성을 위해 테난과 라다크가 사람들을 활을 쏘는 사람과 창을 다루는 사람, 검을 다루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그동안 사람들의 특성과 자질을 살펴보고 오늘에서야 분류를 한 것이다. 사실 싯카는 어느 곳에 들어가도 상관없었다. 이런 쪽으로는 자질도 재능도, 노력도 하지 않으니. 

테난이 싯카를 자신의 밑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으나 라다크가 약속은 약속이라며 싯카를 자신의 밑으로 끌고 왔다. 사실 싯카는 은근 화살을 다루는 궁사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나마 활은 무기 시험을 위해 간간히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다크가 맡고 있는 병사들은 창을 다루는 쪽이었다. 이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았다. 당연히 바람불면 날아갈 듯, 낭창낭창한 싯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싯카는 폐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풀밭에 아예 드러누웠다.  

“싯카라고 했지? 괜찮아?”

쟈뉴아 병사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다는 하밧이었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라는 하밧은 흰머리가 희끗희끗 나기 시작한 나이였지만 힘으로는 병사들 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장수였다.

“……안……안 괜찮아요.”

싯카가 늙은 개처럼 헐떡거리자 보다 못한 한 사람이 자신의 물을 꺼내 나누어주었다. 싯카는 사막에서 삼일 간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처럼 물을 받아들고 허겁지겁 마셨다.

“너 같은 꼬마가 무슨 창술 훈련을 받는다고. 차라리 궁술 쪽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제 말이요.”

싯카가 남은 물을 자신의 얼굴 위에 뿌리며 대답했다.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몸 위의 열기를 어느 정도 식혀주었다. 

“네가 그거지? 라다크의 청혼을 받았다는 녀석.”

“크크크크. 맞을걸.”

사람들이 싯카를 둘러싸고 큭큭거렸다. 싯카가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입이 싼 이노아즈가 어디까지 소문을 퍼트렸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소문을 차단할 수 있으니까. 

“이미 마을에 소문이 파다했지. 너희 마르케 사람들 들어오기 전에 소문이 다 났어.”

“…….”

“동네 처녀들도 대체 누구냐고 이를 갈면서 기다렸다고. 크크.”

“동네 처녀들이 왜요?”

싯카는 처음 쟈뉴아 마을에 온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그들을 맞이했다. 젊은 여자들도 많이 나와 있어 싯카는 약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뭐, 다들 어쩔 수 없지, 하고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솔직히 우리 마누라보다 예쁘게 생겼는걸 뭐.”

“하하하하하.”

다들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싯카는 웃을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마르케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쟈뉴아에서도 남자가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절대 칭찬이 아니었다.

“그런데 라다크는 싯카를 처음엔 맘에 들어 했던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지금은 못 잡아먹어 안달이래?”

하밧이 나무 등걸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제가 남자라서 화가 났나보죠.”

“주술사라도 찾아가서 여자로 바꿔달라고 해봐. 크하하하.”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고 땀 냄새가 나는 우락부락한 아저씨들 사이에서 싯카는 길을 잃을 꼬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됐어요. 제가 라다크 마음에 들어서 좋을 게 뭐가 있어요.”

“왜? 라다크는 쟈뉴아의 유력한 차기 부족장인데. 밉보여서 좋을 건 없지.”

“……저도 마르케 부족장 아들이에요.”

“아, 맞다. 맞다. 몇 번째 아들이라고 했지?”

“……네 번째요.”

싯카의 형들은 모두 능력이 좋았다. 혼례도 성인식을 치르자마자 했을 정도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으며 키도 크고 머리도 비상했다. 셋 중 누굴 후계자로 삼을 것인지 원로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치열하게 논의가 오고갈 정도였다. 파오반의 아들 중 유일하게 후계자로 지목되지 않는 것은 싯카뿐이었다. 

“네번 째면, 이건 뭐 부족장 아들이라고 어디에 말도 못하겠는데.”

“하하하하. 그러게나 말이다.”

“됐어요. 라다크 놈 따위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 저는 없어요. 그놈이 설사 쟈뉴아의 부족장이 된다고 해도. 쳇.”

  싯카가 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며 투덜거렸다. 햇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다리에 눈을 홀리는 사내들이 여러 명이라는 것을 싯카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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