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싯카는 차분히 머릿속으로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우선 다행인 점은, 빽빽한 삼나무의 나뭇가지 때문에 충격도 완화되어 긁힌 정도의 상처만 입고 멀쩡하다는 것과 아래로 추락하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행한 부분은…….
“흐익!”
무심코 아래를 내려봤다가 싯카는 하마터면 저녁으로 먹은 빵을 모두 게워낼 뻔했다. 까마득하다. 아래가 까마득하게 이어졌다. 싯카는 사람이 왜 날개 없이 땅에서 걸어 다니며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땅에 발이 닿지 않은 채 공중에 떠있는 것은 이렇게나 무서우니까! 마르케의 어머니 리리스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은 모두 이유가 있건만, 굳이 그걸 거스르고 하늘을 날으려 했으니 이런 벌을 받는 것이다.
“거기 누구 없어요!”
싯카의 외침이 부질없는 메아리를 만들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몇 번이나 그렇게 소리 높여 외쳐봤지만 소용없었다. 이 밤중에 숲으로 들어오는 인간도 없을뿐더러 설사 기적적으로 한명 있다 하더라도 나무 꼭대기 옆을 지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여길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싯카는 삼나무 가지에 매달린 채, 사람은 살면서 세 번의 커다란 불행을 맞게 된다는 오래된 얘기를 떠올렸다.
야트렌에 납치당했을 때 한번, 숲 속에서 헤레라의 알을 집어 들었을 때 두 번, 그리고 지금이 그 세 번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입버릇처럼 싯카는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정말 좋아질 것 같았다. 이제 삶의 불행을 세 번 모두 썼으니 이제 자신에게는 좋은 일만 생겨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나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좀……!”
살려달라는 말을 하려던 그의 시야에 커다란 괴 생명체가 저 멀리서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싯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나블이었다. 나블 위에 커다란 남자가 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싯카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여기야! 여기, 여…….”
여기라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던 그는 잠시 멈칫했다. 지금 라다크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자신은 세 번이나 그에게 목숨을 빚지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무엇일지 모르는 그의 소원을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줘야 한다.
저놈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고? 혹시 평생 여자 옷을 입고 살면서 자신의 신부가 되어 달라는 개소리를 한다면? ……어디서 뭔가 이상한 약을 구해와 먹인 다음 애를 낳아달라고 하는 거 아냐? ……그런 약이 있던가? 몰라. 모른다. 아무튼 놈이 뭘 요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 목숨을 구하게 하는 것이 옳을 일일까.
싯카는 삼나무 가지에 매달려 끙끙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런 그의 고민과는 상관없이 멀리서 싯카의 목소리를 들은 라다크가 방향을 전환해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아, 안녕.”
싯카는 어색하지 않게 웃으며 인사말을 건넸다.
“뭐야.”
바로 옆으로 다가온 라다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예의상이라도 괜찮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날씨가 참 좋다.”
“…….”
“달이 매우 밝아. 여기서 엄청 잘 보이네. 쟈뉴아는 마을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참 아늑한 거 같다. 근처가 다 숲이네. 하하하.”
싯카는 활기차게 재잘거렸다. 누군가 들으면 한밤중의 오솔길에서 십년지기 친구를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그리고 평연하게.
“로아히. 오랜만이다.”
싯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나블에게도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넸다. 로아히는 털을 세우고 으르렁거렸다.
무안해진 싯카는 다시 라다크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이 밤중에 웬일이야.”
“…….”
“산책 중이었나? 하하, 로아히 산책시키나?”
떠들어댈수록 점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뿐이었다. 싯카는 상대가 먼저 도와주겠다는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그러나 라다크는 한참동안 싯카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로아히의 고삐를 손에 쥐고 방향을 틀었다.
“가자!”
로아히가 싯카가 매달려 있는 삼나무에서 멀어지려고 하자, 싯카가 절박하게 왁, 하고 소리쳤다.
“안 돼!!!!!!!!!”
라다크가 무심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안 돼. 가지 마. 가면 안 돼.”
“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