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50)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다크의 대답에 이번에 당황한 것은 싯카였다. 

“너 남자인데 나더러 어쩌라는 건데.”

“……알고 있으라고, 알아둬서 나쁠 거 없잖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싯카가 중얼거렸다. 라다크가 짧게 혀를 찼다. 싯카는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얼굴이 화끈 거렸다. 고개를 숙인 싯카의 눈에 라다크의 양 손가락이 들어왔다. 

“헉! 손!”

“찢어졌나 보군.”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헤레라의 위아래 턱을 잡고 벌릴 때 이빨이 손가락을 찔러 상처가 난 모양이었다. 뼈가 보일정도로 너덜너덜한데 그는 인상한번 쓰지 않았다.

“그렇게 폼 잡다가 죽는다.”

“뭐?”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세상에.”

헤레라의 발톱으로 찍힌 자신의 어깨도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는데 저 정도면 모르면 몰라도 비명을 내질러야 할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안 아파.”

“뭐?”

“안 아프다고.”

호박색 눈동자가 물끄러미 싯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싯카는 저게 자신 앞에서 개 폼을 잡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님 정말 아프지 않은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한참을 그를 물끄러미 바라봐야 했다.

“……진짜?”

그는 대답 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내밀어 다른 한 손으로 상처 난 손가락을 헤집어 보였다.

“――! 으학, 하지 마!”

싯카가 비명을 꽥 지르며 그를 말렸다. 무표정하게 자신의 상처를 헤집던 라다크가 행동을 멈추었다. 싯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을 본 라다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알았어. 믿을게요. 믿을 테니까, 다시는 그러지 마.”

절절한 싯카의 외침을 뒤로 하고 라다크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 사라졌다. 싯카는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싯카의 주변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걱정했다, 해가 떨어지면 숲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 목숨을 건져서 천만 다행이다, 그래, 공은 찾아 왔냐 등등.

“처남!”

소식을 전해들었는지 테난이 저 멀리서 달려왔다.

“처남. 다친 데는? 괜찮아? 피는 왜 이래? 누구 피야? 어디 안 다쳤어?”

테난이 싯카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바람에 싯카는 아야,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어깨 다쳤어?”

이노아즈가 싯카의 어깨를 살피며 물었다.

“조금.”

조금 긁힌 정도였다. 뼈가 보일정도로 너덜너덜하게 물어뜯긴 라다크에게 비한다면 상처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치료해.”

테난이 싯카의 손을 잡아끌었다.

“됐어요. 혼자 가서 약 바르면 되니까.”

“어떤 동물이든 독 때문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어. 이건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니까 가서 치료해!”

훈련시가 아니면 항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싯카의 주변에서 눈을 반짝이던 테난이 호되게 소리치자 싯카는 어깨를 움츠렸다.

“치료해.”

“……네.”

싯카는 순순히 테난의 뒤를 따랐다. 이노아즈가 잘 갔다 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누구야.”

“뭐?”

문득 자신이 고생을 자처한 이유가 떠오른 싯카는 이거는 알고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 한사람인데?”

“아아, 그거.”

이노아즈의 눈이 구부러졌다. 그는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눈을 그렇게 활처럼 구부리며 웃었다. 싯카는 사촌형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촌 형만큼 장난기가 많은 사람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도 아는 사람이야.”

“……누구.”

쟈뉴아 사람 중에서 싯카가 얼굴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부족장 워로드와 원로 몇 사람, 테난과 그와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전사 몇 명, 그리고 라다크.

“라다크.”

이노아즈의 대답에 싯카는 끄응, 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돌만 구해서 자신의 마을로 돌아간다는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처남, 괜찮아? 내가 업어줄까? 업혀, 업히라고.”

소년처럼 들떠 자기 등을 내미는 테난을 보며 싯카는 울고 싶어졌다. 싫다. 이놈도 싫고 저놈도 싫고, 모두 싫었다. 

……무엇보다 가장 싫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을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이었다.

“업혀! 업어줄게! 내가 업어줄게!”

속도 모르는 테난은 끊임없이 그렇게 외쳐댔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무심히, 서쪽 하늘 끝에 걸려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