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50)

“……쪽팔려.”

풀밭에 누운 싯카가 중얼거렸다. 그의 이마 위에는 물을 적신 천이 놓여 있었다. 훈련을 하다 결국 현기증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쟈뉴아에 온 지 나흘 째, 다른 마르케 사람들은 힘들어하긴 해도 어느 정도 훈련에 따라가고 있었다. 결국 낙오된 것은 자신뿐이란 얘기였다.

“쪽팔려. 진짜 쪽팔려.”

싯카는 풀밭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래서 아버지에게 작업실 안에서 조용히 작업한다고 한 것인데. 

털썩하고 풀밭에 고꾸라져 쓰러지는 순간 싯카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집에 가고 싶어, 그것 봐 내 뭐라 했어, 어떻게 일어서지, 쪽팔려 죽겠어, ……대체 돌은 어디에 있는 거야. 

밤에는 일어나서 쟈뉴아의 작업장에 가볼까 생각하다가도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면 피곤해서 매번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돌을 찾아서 돌아가기는커녕 여기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 훈련을 받던 도중 쓰러져 죽을 수도 있었다. 

“……안 돼.”

  그는 결심했다. 오늘 훈련이 끝나면 쟈뉴아 부족장을 직접 찾아가서 푸른 돌과 움직이는 돌을 구할 수 있는 장소를 물어보기로.  

“싯카!”

누가 저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싯카는 벌떡 일어섰다. 이노아즈가 손을 흔들며 이곳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싯카는 비틀거리며 이노아즈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거 만들 수 있겠어?”

이노아즈가 바닥에 나뭇가지로 간단하게 뭔가를 그려나갔다. 

“산자이 하려고?”

산자이는 가죽과 등걸나무 줄기로 만든 공을 상대방의 진영에 넣는 놀이였다. 마르케의 남자들은 걸음을 걷기 시작하는 동시에 산자이를 시작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산자이를 좋아했다. 물론 싯카는 예외였다. 싯카는 다른 사람들이 산자이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공을 더 튼튼하고 둥글게 만들어 주거나, 공이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 주었다. 

“공은?”

“여기에 있지.”

누군가 불쑥 공을 꺼내 보였다. 전쟁을 준비하러 여기까지 훈련을 받으러 오면서 공을 챙겨온 모양이었다.    

“훈련은?”

“오늘은 다 끝났어. 좀 일찍 끝난대.”

그러고 보니 테난과 라다크가 보이지 않았다. 

“진짜?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싯카가 반색을 했다. 

“만들어 줄 거지?”

“당연하지!”

싯카가 콧노래를 부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적당한 돌을 찾아내 손에 쥐었다. 훈련장 근처에는 숲이 있어 나무를 구하기도 쉬웠다. 싯카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공이 들어가는 문을 만들 나무를 운반해 달라고 했다. 

싯카는 재빨리 그물을 만들 적당한 줄기 생물을 찾았다. 적당한 것을 찾아 그물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보통사람의 1/5도 되지 않았다. 양쪽 편의 그물을 만들고 나서 싯카는 문을 지지할 버팀목을 세웠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하니 그것도 금세 할 수 있었다.

싯카가 순식간에 공의 문을 만들어 주고 그물까지 달아주니 사람들의 입은 놀라움에 다물어지지 않았다.

“자, 다 됐다.”

싯카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는 뭔가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것이 희열을 느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차에 뭐라도 하나 만들어 놓고 나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에. 진짜 빠르네.”

“손에 뭐가 달리기라도 했나.”

사람들이 몰려들어 싯카의 손을 만져보며 감탄했다. 

“우리 마르케 사람들은 아이들이 태어나면 이 황금의 손에게 축복을 부탁하기도 한답니다.”

이노아즈가 으쓱거리며 싯카의 재능을 소개했다. 

“오오! 나 저번 달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축복 좀 내려주게!”

“난 다음달에 태어나는데 부탁해도 되겠지?”

사람들이 앞 다투어 싯카의 손을 붙잡고 축복을 부탁했다. 싯카는 이노아즈를 노려보았다. 싯카의 손에 축복을 받은 아이들이 무병 무탈하게 건강하게 자란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퍼져나간 후에 싯카는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불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근거 없는 얘기라고, 자기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봐도 사람들은 싯카의 손에 축복받는 것을 좋아했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싯카가 정색을 하며 손을 뺐다. 

“설마 이 손으로 병도 고치고 그러는 거 아니가?”

“하하하하. ……절대 아닙니다.”

그런 소문이 한차례 돌았던 적도 있었다. 싯카는 결국 집집마다 찾아가 자신은 그런 힘이 없다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동네 노인들 중에서는 아프면 싯카의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아픈 노인들을 매몰차게 돌려보낼 수도 없고 싯카는 그때마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의 이마를 한참이나 만져주곤 했다. 

……여기서 그런 취급을 받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아깝다. 혹시 그랬다면 라다크의 병을 고칠 수 있었더라면 좋을 텐데.”

누군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싯카가 고개를 들었다. 

“병이요?”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는 남자. 아니, 분명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 상처에도 그 먼 거리를 찾아 날아온 남자. ……몸에 구멍을 세 개나 만들고도 지금도 펄펄 날아다니는 남자가 바로 라다크였다. 그런 그가 병을 앓고 있다니 싯카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병에 걸렸다고요? 무슨 병이요?”

싯카가 다시 묻자 먼저 말문을 열었던 사람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신이 무심코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이런 건 본인 입에서 듣는 게 낫겠다. 막 말하면 안 되지.”

“맞아, 맞아.”

“말하면 안 돼. 자히즈 자네가 실수 했어.”

쟈뉴아 사람들이 먼저 말을 시작한 사람을 둘러싸고 그를 훈계했다. 남의 뒷얘기를 좋아하는 마르케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광경이었다.

“미안. 내가 실수했어요.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라다크에게 들어요.”

“……네.”

그런 기회를 올 것 같지 않았다. 싯카는 첫날 이후로 라다크와 말을 섞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훈련을 하는 도중에 똑바로 해! 내지는 정신 차려! ……혹은 그럴 거면 죽어버려! 등등의 욕설 섞인 외침만 몇 번 들었을 뿐.

“싯카. 심판 좀 봐라.”

이노아즈가 공을 차며 말했다.

“싫은데?”

싯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거절했다. 그는 지금 당장 쟈뉴아 부족장에게 찾아가 돌을 구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해 물을 생각이었다. 

“나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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