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50)

놀란 싯카가 왁, 하고 소리를 냈다가 재빨리 공손한 척 고개를 숙였다. 노파가 켕켕, 하고 기침을 한 후에 말을 이었다.

“제가 아는 마르케 족장의 딸 얼굴보다 예쁩니다. 지나치게 예쁜 감이 있습니다. 분명 얼굴도 더 큰 거 같고, 콧대도 좀 낮았는데, ……안 본 사이에 꽃이 피었나.”

노파가 싯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중얼중얼 거렸다. 

야! 이 망할 노인네야! 망령이 들었으면 곱게 죽어야지!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헉, 아니지. 

싯카는 속으로 욕을 퍼붓다가 생각의 노선을 변경했다. 

저 망령 난 노파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목이 짓이긴 시체가 되어 돼지 밥으로 던져졌을지도 모른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알아듣기 설명해라. 신부라는 뜻이냐? 아니라는 뜻이냐?”

묵타르의 질문에 싯카는 얼른 두손을 무릎위에 얹고 말을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혼례를 앞두고 열심히 꾸며서 그렇습니다.”

싯카는 두 손을 모으고 조신한 척, 말을 이었다.

“저희 마르케 부족에 대대로 내려오는 추녀도 미녀로 만들어주는 비법이 있습니다. 그 비법을 좀 빌렸을 뿐입니다.”

싯카의 한마디에 묵타르 근처에 있던 여자들의 눈이 희번뜩 빛나기 시작했다. 태양이 강렬한 지역에 사는 야트렌 족의 여성들은 대다수가 구릿빛 피부를 갖고 있었다. 잘 사는 집의 딸일수록 밭에서 노동을 하는 시간이 적었기에 피부가 희었기에, 흰 피부는 부의 상징이자 미의 상징이었다. 

갓 짜놓은 염소의 젖처럼 뿌연 피부를 가진 마르케족 신부의 입에서 비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여자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곤두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뻐지고 싶은 여자들의 시커먼 욕망이 들끓기 시작했다. 

저년이 혀가 잘리지 않으면 그 비법을 당장 알아내야겠어. 혀는 그 다음에 자르라고 하지. 

그 비법을 꼭 나에게만 말해달라고 해야겠군. 비법을 듣고 나면 다른 여자가 알지 못하게 죽이라고 해야겠다. 

그 비법은 나만 알아야겠군. 물론 저 계집은 쓸데없이 예쁘니 팔다리를 잘라 돼지먹이로 주자.

묵타르의 처첩들이 자신을 보며 어떤 끔찍한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싯카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줄줄 내뱉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의 도움을 받아 얼굴이 좀 화사해진 것입니다.”

싯카는 수줍은 척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성년을 훌쩍 넘은 나이의 남자로서 수치스러워 혀를 깨물고 싶었지만 일단은 살아야 한다. 살아나가야 사란토야 누이에게 가서 저주를 하든, 아버지에게 화를 내든, 뭐든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싯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노망난 노파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그럼 네가 마르케 족장의 딸, 사란토야란 말이지?”

“네.”

“쟈뉴아와 혼례가 예정된?”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대답한 싯카는 심장이 벌렁벌렁 떨렸다. 

야트렌 족은 사납고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닥치는 대로 전쟁을 벌여 다른 부족들을 침범하고 노예로 삼고, 약탈하고, 방화를 저질렀다. 야트렌이 자꾸 세력을 키워 산 너머의 지역까지 노린다는 얘기가 신빙성 있게 오고가는 이 시점에서, 이번 혼례의 성사가 마르케에게는 매우 중요한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너에게 악감정을 갖고 납치를 명한 것은 아니다.”

염소수염처럼 기른 턱 밑의 가느다란 수염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묵타르가 싯카의 얼굴을 눈으로 훑었다.

“예, 그러시군요.”

이미 납치를 명한 시점에서 충분한 악감정을 가진 거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싯카는 꾸욱 참아냈다. 

“그저, 혼례를 방해하고 싶었을 뿐. 이번 일로 두 부족 간에 오해가 생겨 다툼이 생긴다면 더더욱 좋고.”

“호호호, ……네.”

결국 묵타르가 원하는 것은 마르케와 쟈뉴아간의 반목이었다. 두 부족이 손을 잡으면 산 너머의 지역을 노리는 것이 힘들어지니, 이런 더러운 수작을 쓴 것이로군.

“좀 가두어뒀다가 적당히 불구로 만들어 부하에게 던져줄 생각이었는데, 흠……생각이 바뀌는구나. 불구로 만들기엔 아깝군.”

가느다랗게 벌어진 묵타르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유난히 자손 번창에 집착했다. 정식으로 들인 처만 일곱 명에 부족을 점령할 때마다 맘에 드는 여자를 강제로 데려와 첩으로 삼은 수는 손으로 셀 수도 없었다. 

마르케 부족장의 딸이 미인이라는 얘기는 전해 들었지만 이번 혼례의 주인공은 그중 외모가 좀 딸린다는 소문을 듣고 적당히 공을 세운 부하에게 인심 쓰는 척 하며 던져주려 했다. 그런데 마르케 부족에게 대체 어떤 비법이 내려오는 것인지 혼례복을 입은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보다보니 점점 더 구미가 당기는 여자였다. 

선이 고운 뽀얀 피부와 이국적인 푸른 눈매, 어깨를 훌쩍 넘기는 미색의 아름다운 머리카락,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선과 나무족쇄가 채워진 가느다란 발목까지. 

“흐흐…….”

오늘 밤 마르케의 신부를 데려와 밤새 맛볼 생각을 하니 묵타르의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역시 남의 신부를 강탈해와 안는 맛이 최고지. 여자는 처음부터 내 것이면 별로 재미가 없으니 말이다.

묵타르의 소름끼치는 눈빛의 의미를 알 리 없는 싯카는 자신을 불구로 만들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일단 안도했다. 

팔다리만 성하면 어떻게든 도망갈 수 있다. 단 한번의 기회만 주어지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망가겠다고 싯카는 다짐했다. 

“사란토야라고 했던가?”

“아, 네. 그렇습니다.”

누이의 이름으로 불리니 대단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너는 당연히 처녀일 테지.”

“네, ……네?”

“혼례를 아직 치루지 않았으니 처녀가 확실하겠구나.”

“그…….”

……엄밀히 말하자면 총각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혼례식을 치루지 못한 노총각. 

남자는 성인식만 치루면 거의 혼례를 치르는 마르케 부족 사이에서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남자는 거의 드물었다. 싯카가 아는 한 자신과 사촌인 이노아즈뿐이었다. 사촌형은 여자 사람보다는 다른 쪽에 성적 호기심을 두는 변태였기에 부족에서도 내놓은 족속이었고, 자신은……, ……여자보다는 농기구나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괴짜였다. 게다가 여자들은 나란히 서 있으면 자신의 미모가 확 죽어버리는 남자를 배우자로 맞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싯카는 남편으로 두기엔 지나치게, 쓸데없이 예쁜 외모였던 것이다. 

“그래. 오늘 내가 널 여자로 만들어주겠다.”

“네? 네?!”

어찌나 놀랐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싯카는 재빨리 목을 가다듬고, 차분한 척 눈웃음을 지었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자비롭고 공명정대하기로 소문이 나신 야트렌의 족장이신 묵타르님께서 서, 설마 아직 혼례도 치루지 못한 신부를 취하시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척 봐도 묵타르는 개돼지보다 못한 종자였다. 그런 놈에게 아부를 떨자니 혀가 썩어버릴 것 같았지만, 싯카는 진심으로 그를 존경한다는 눈빛을 하고 읍소했다.

“내가 자비롭고 공명정대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하하하하하!”

묵타르가 자신의 무릎을 치며 웃기 시작하자 싯카는 간신히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의 재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똑똑하다니. 여기서 살아 돌아간다면 우리 부족은 마을 입구에 내 석상을 세우고 매일 아침 절을 해야 한다. 암, 당연하지.

“아하하하하하, 그래. 그런 소문을 들었다? 소문을 대체 누가 냈을지 궁금하군.”

“그, 글쎄 그건 저도 모릅니다.”

“네가 소문을 냈느냐.”

묵타르가 자신의 오른 편에 서 있는 남자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전사로 보이는 남자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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