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50)

“……어나, 일어나 봐.”

“아, 좀만 더…….”

“일어나 보라고. 이 아가씨가 진짜 팔자 좋게 이러고 있어.”

싯카는 자신의 어깨를 흔드는 힘에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높은 천장에 서늘한 바닥이 잠 때문에 혼곤했던 그의 의식을 깨웠다. 

“……!”

압도당한다. 

싯카는 처음으로 사람이 만들어 놓은 무엇인가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나무와 흙으로 만든 보통의 집과는 차원이 다른 건축물이었다. 

싯카는 처음 접하는 발달된 문물에 넋이 나가 자신이 팔다리가 묶여 있는 채로 납치를 당해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확실히 데려왔겠지?”

“예. 확실합니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싯카는 턱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휘황찬란한 장신구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장식을 하고 있는 백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다부진 체격 때문에 머리가 온통 하얗게 새어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보이거나 노쇠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저놈이 나를 여기로 오게 한 원흉 야트렌의 족장 묵타르인가. 

“네가 마르케의 신부인가?”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싯카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베일을 벗겨보아라.”

묵타르가 주변에 서 있는 경비병에게 턱짓으로 지시했다. 싯카는 기겁을 하며 두 손으로 자신의 베일을 단단히 붙들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경비병은 무표정한 얼굴로 싯카에게 다가가 베일을 잡아끌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안 돼!”

싯카는 베일을 손으로 잡은 채, 팔꿈치로 경비병의 가슴을 내리찍었다. 경비병이 윽,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굽히자 싯카는 틈을 놓치지 않고 묶여있는 두 손으로 경비병의 얼굴을 후려 갈겼다.

경비병이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지자 싯카는 바로 그 옆에 엎드려 흑흑, 울음을 터트렸다.

오도람과 웅가룽은 잡아오라고 해서 잡아오긴 했지만 볼수록 해괴망측한 마르케의 신부 때문에 진땀이 흘렀다.

“대체 뭐하는 짓이냐! 여자의 얼굴에 쓰인 베일 하나 벗기지 못하고!”

예상대로 성미가 급한 묵타르가 불같이 화를 냈다. 싯카는 절박하지만 굵은 목소리가 나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안 됩니다.”

“뭐라고?”

“베일을 벗겨서는 안 됩니다. 마르케의 신부는 결혼식이 끝나기 전까지 베일을 벗으면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해야 합니다.”

싯카는 오도람과 웅가룽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내뱉었다. 그들도 속아 넘어갔으니 묵타르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야트렌의 족장이었다. 

“당장 저 여자의 베일을 벗겨 얼굴을 확인해 보도록 하여라!”

의심 많은 능구렁이 묵타르가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서너 명의 남자가 일제히 싯카에게 달려들었다. 싯카는 필사적으로 베일을 붙들었다. 

“안 됩니다!”

“이 무능한 놈들! 여자의 베일 하나 못 벗기냐?”

“여, 여자가 힘이 엄청 셉니다.”

“으악! 누가 내 손을 문 거야!”

“발 밟지 말라고!”

네 명이서 뒤엉켜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묵타르는 벌컥 화를 냈다.

“베일을 찢어버려!”

경비병 중 하나가 칼을 빼어들고 싯카가 붙들고 있는 베일을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싯카의 손에는 붉은 색 천조각의 끄트머리만 들려 있었다. 묵타르가 손짓을 하자 두 명의 병사가 싯카의 어깨를 눌러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리고자 했던 그의 얼굴이 묵타르 앞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점쟁이 노인을 들게 하라.”

묵타르가 외치자 구석에서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입은 노파가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쥐고 있는 노파의 손은 곰팡이가 핀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그대가 마르케 족장 딸의 얼굴을 안다고 했지?”

“예, 압니다.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심장이 발치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싯카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죽었다. 나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분명 저 노파가 내가 사란토야 누이가 아니라고 말할 테니, 묵타르 놈이 분명 나를 죽일 것이다.

“저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마르케의 딸인지를 내게 고하여라. 만약 마르케 부족장의 맏딸이 아니라면 저 목을 돌로 짓이겨 잘라내도록 하여라.”

싯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노파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싯카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이 그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노파가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싯카를 들여다보았다.

“흐음……,”

노파가 눈을 가늘게 좁히고 싯카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떠한가? 이번에 쟈뉴아와 혼례를 치르는 마르케 족장의 딸이 맞는가?”

묵타르가 물었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뭐라고?”

“제가 아는 마르케 족장의 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

싯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하지. 한배에서 태어난 남매니 얼굴이 닮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문제는 노파가 지적한 다른 점이다. 사란토야와 싯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나치게 예쁩니다.”

“뭐라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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