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50)

“아……, 진짜.”

베일을 벗어던지는 동작에 짜증이 묻어났다. 무거운 검을 들고 춤을 추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땀으로 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게다가 베일이 벗겨지는 불상사가 벌어질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춤을 추느라 평소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검무를 마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재빨리 해치우고 끝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몸을 움직였다. 

천막 안으로 들어온 싯카는 베일로 얼굴을 대충 닦아내고 자리에 앉았다. 밖에서는 한창 흥이 달아오른 사람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이리케.”

싯카는 자신의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분명히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수십 번 정도 거듭한 것 같은데, 이 모양이다.

“이리케! 이리케!”

싯카는 직접 여동생을 찾으러 옷도 갈아입지 않고 천막 밖으로 나섰다. 분명 혼례식 피로연 어딘가에서 눈을 빛내며 구경하고 있을 테지. 바로 잡아오지 않으면 오늘 밤 내내 자신이 그림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절대 사양하고 싶었다.

“대체 어디를 간 거야.”

싯카는 초조해졌다. 

모퉁이를 도니 저 멀리서 이노아즈가 그의 친구들과 걸어오고 있었다. 싯카는 얼른 챙겨들고 나온 베일을 뒤집어썼다. 뒤돌아 걷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어두운 밤이라고 해도 얼굴을 알아볼까 두려워 걸음이 빨라졌다. 다행히 사촌은 술에 취했는지 일행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걸어왔다.

싯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제발 말 걸지 마라, 제발!

“오늘 수고했어. 정말 멋졌다.”

그의 옆을 지나가던 이노아즈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싯카는 무시하고 지나가려다 그러면 더 의심을 살까봐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 거야?”

싯카는 오늘만큼 다정한 만큼 오지랖도 넓은 사촌의 성격이 밉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림자는 삼 일간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왜 저렇게 끈질기게 말을 건네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싯카는 고갯짓으로 대충 아무 방향이나 가리키고 몸을 돌렸다.

이노아즈가 그런데, 하고 말을 잇는다. 싯카는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베일을 벗어 던지고 이노아즈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차 주고 싶었다.

“계속 그 옷 입고 다닐 거야?”

“……?!”

“이리케가 입어야 하는 거 아니야?”

싯카는 대뜸 사촌의 어깨를 붙들고 구석으로 끌고 갔다. 

“어떻게 알았어?”

일행들과 충분히 거리가 멀어지자마자 싯카는 사촌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뭘?”

“지금 이게 나라는 걸.”

“뻔하지. 이리케가 그런 춤을 어떻게 춰? 사란토야 누이 성격에 그걸 이리케한테 맡길 리도 없고.”

싯카는 말없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렇다고 이게 나라는 즉답은 아니잖아.”

이노아즈가 그렇긴 하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싯카가 아니더라고 사란토야는 사촌 동생들에게 춤을 부탁할 수도 있었다. 물론 싯카가 마르케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추는 사람이라는 것은 암암리에 다들 인정하는 바였지만.

“네가 추는 게 가장 좋지 않겠어? 어쭙잖은 사촌 여동생들보다 네가 훨씬 춤 맵시도 좋고, 체구도 여자랑 별 다를 바 없으니까.”

“…….”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다.”

“뭐가 또 남아 있는데.”

베일 안에서 음산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이노아즈는 차마 너의 누이가 분명 너를 골려먹을 속셈으로 춤을 추게 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예쁘장한 자신의 사촌이 언젠가 등 뒤에서 잘 만들어진 화살로 정확하게 머리통을 날려버릴지 모르니.

“그, 그냥. 뭐. 하하하. 우리 부족의 평화를 위한 방법이다 이거지.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난 안 좋아.”

싯카가 손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이리케 어디 있는 줄 알아?”

“아까 전에 마을 뒤쪽으로 가는 거 같던데.”

“거길 또 왜 가!”

“글쎄. 라삥족이 타고 왔다는 기조를 구경하러 간 거 아닐까.”

기조는 사람이 탈 수 있는 커다란 새였다. 날개가 작아 날지는 못하지만 튼튼하고 강한 다리를 가져 사막에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동물이었다. 사납고 흉포한 기조를 탈 수 있는 종족은 라삥뿐이었다. 멀리서 온 손님들이 기조를 타고 왔다는 얘기가 아무래도 이리케의 귀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알겠어. 고맙다.”

싯카는 사촌의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했다. 몇 걸음 걷던 그가 뭔가 떠올랐는지 몸을 돌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게 나라는 사실은 너만 알고 있어줘. 부탁이다.”

이노아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뒤쪽을 향해 걸어가는 싯카의 뒷모습을 보며 이노아즈는 혀를 찼다. 

부족 사람들 중 눈치가 빠른 대다수는 달의 검무를 춘 사람이 누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텐데. 불쌍한 사촌동생 같으니, 쯧쯧. 하는 안타까움은 그의 웃음 뒤에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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