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뉴아를 만났다고? 그것도 같은 사냥감을 다투어?”
“다툰 게 아니라니까.”
싯카는 사촌인 이노아즈의 말을 정정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듯 이노아즈는 손사래를 쳤다.
“어쨌든 자뉴아가 노리던 사냥감에 네 화살이 꽂힌 거잖아.”
“……그렇지.”
“그의 칼이 이 멧돼지가 아니라 너를 반 동강 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라.”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싯카가 마을 어귀에 나타났을 때, 이노아즈는 기겁을 하며 뛰어갔다. 그것이 사촌동생의 피가 아니라 멧돼지의 피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를 했지만 뒤이어 듣게 된 이야기에 그는 방금 전보다 몇 배는 더 기겁했다.
쟈뉴아는 사냥터에서 만나게 되면 누구든 적으로 간주했다. 특히 같은 사냥감을 다툰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지금 쟈뉴아 부족장의 아들 테난과 마르케족의 부족장 딸인 사란토야의 혼인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쟈뉴아의 남자들에게 사냥은 삶과 직결된 전투였다. 거기에 타인이 끼어들려면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했다.
영민하고 실험정신이 강한 사촌동생이 새로 만든 무기를 실험하러간 것까지는 좋지만, 거기서 재수 없이 쟈누아를 만난 것은 아무리 봐도 끔찍한 사고였다.
“칼로 그런 게 아니야.”
“뭐?”
“칼로 그런 게 아니라, ……손으로.”
싯카는 제대로 말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본인의 입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믿기 힘든 표정이었다.
“맨손으로 이걸 반으로 찢었다고?”
“그래.”
자신의 앞에 툭 던져진 반 토막 난 고기조각을 들고 와야 하나 싯카는 숲에서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결국은 어깨에 멧돼지 반쪽을 지고 마을로 돌아왔다.
“너 배고프다고 숲에서 빨간 귀 버섯이라도 주워 먹은 거 아니야?”
이노아즈가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빨간 귀 버섯은 사람의 귀 모양처럼 생긴 독버섯인데, 식용으로 사용되는 다른 버섯과 생김새가 비슷하여 사람들이 잘못 집어먹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 치명적인 독은 아니라 며칠 설사를 하고나면 괜찮아지지만, 중독이 심하면 환각이나 환청에 시달리게 하는 버섯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걸 사람이 반으로 찢었다고? 불곰이나 세 발 적룡이 아니라?”
“그렇다니까. 두 눈으로 확실히 봤어.”
농담을 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노아즈는 아, 하고 두 손을 마주쳤다.
“그럼 쟈뉴아가 아니라 다른 부족인가 보다.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사람들인가 보지. 산 너머에는 어깨에 날개가 달린 인간도 있다더라.”
“어디 옛날얘기나 나올법한 날개인간 얘기를 꺼내…….”
“그럼 그게 인간이겠어?”
“확실히 인간이었어. 쟈누아 족이었고.”
싯카는 남자의 왼쪽 팔 부근에 새겨져 있던 매의 문양을 떠올렸다. 그것은 쟈뉴아의 남자가 성년이 되는 날 받을 수 있다는 몸에 새겨지는 문양이었다.
“누구였는데? 얼굴을 아는 상대였어?”
부족장의 딸 사란토야는 싯카의 누이였다. 사란토야의 혼인 문제로 부족장인 아버지와 함께 싯카는 몇 번 쟈뉴아 마을에 다녀왔다. 맨손으로 멧돼지를 찢어버릴 정도의 괴력을 가진 사내라면 분명 쟈뉴아 부족 사이에서도 유명할 터. 이노아즈는 싯카가 그를 알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설마. 아는 사람이라 봐준 게 아닐까. 네가 마르케 사람인 걸 알아서.”
싯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 없지. 그렇게 인상적인 얼굴을 잊을 리가 없다. 남자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싯카는 호박결정체 속에 갇혀 화석화된 기분을 맛보았다. 묘하게 거슬리는 인상이었다. 외모의 미추를 떠나, 굳이 미추를 따지자면 여성들이 좋아할 외모와 체격을 갖춘 사내였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기분 나빴다.
“하여튼 별일 없어 다행이다. 안 그래도 사란토야의 혼례문제 때문에 숙부님께서 가뜩이나 정신없으신데. 너까지 다쳤더라면, ……으으.”
“아마 내가 죽기라도 했으면, 아버지 손에 또 한번 죽었겠지.”
싯카도 암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부족장의 자식끼리 혼례를 한다는 것은 부족간의 결속을 뜻했다.
더 이상 평화의 시대가 아니었다. 산 너머의 야트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야트렌은 슈어를 타고 다니는 잔인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주변의 부족을 정벌하고 침략했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죽이고 여자들은 강간해 자신들의 첩으로 삼았다. 남자들은 노비로 부려 평생 허리 한번 세우지 못하고 일만 해야 하는 노역지로 보냈다. 야트렌의 침략 때문에 부족 간 결속과 동맹이 부족의 존폐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마르케는 농경과 목축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부족이었다. 부족민들의 성격은 대부분 온화하고 끈기가 있으며, 지혜로웠다. 다른 부족들보다 농경 기술이 뛰어나 수확량이 월등했다. 무기를 만드는 기술 또한 좋았다. 기본적으로 마르케 족은 손재주가 뛰어나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자뉴아가 마르케와 손을 잡은 이유도 모두 여기에 있었다.
사냥과 수렵만으로는 부족을 번성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그 한계의 돌파구를 마르케족의 기술에서 찾은 것이고 마르케는 최고의 후원자를 얻은 것이다.
두 부족간의 혼례가 말처럼 쉽고 간단하게 아니었다. 처음에 혼례에 관한 얘기가 오고갈 때, 마르케의 부족장은 자신을 아들을 염두에 두었다. 성년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까지 장가를 가지 못한 부족장의 아들은 그에게 크나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스무 살이면 여자로서는 한참 나이지만 남자로서는 몹시 늦은 나이였다. 여자들은 보통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남자를 배우자로 맞이하기 때문에 남녀의 결혼 적령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격이 특이하기로 소문이 난 부족장의 막내아들에게 시집을 오겠다는 처녀가 없었다. 결국 그는 사란토야를 쟈뉴아 부족에 시집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자뉴아 부족장의 아들과 사란토야의 혼례를 성사시키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만약 자신이 이번 혼례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사건을 일으켰다면 싯카는 아버지의 손에 직접 생매장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그래. 화살은 어땠어?”
“그럭저럭.”
싯카는 사냥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는 작업 공간에서 혼자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 종일 작업실에 처박혀 만들고 부수고 조립하고를 반복하는 것이 싯카의 일상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것이 마르케족의 특성이었지만 싯카는 유독 남달랐다. 걷기 전에 연장을 손에 쥐고 놀던 그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부족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만드는 것도 잘했지만 새로운 무엇인가를 고안해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특히 그는 화살이나 검을 만드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두고 광적으로 집착했다.
“조금 더 모양을 다듬어야 할 것 같아.”
싯카는 자신이 몇날 며칠 다듬어 만든 화살촉을 찾기 위해 멧돼지 반쪽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어라?”
“왜?”
“없어.”
“뭐가 없어?”
“화살이……, 거기로 갔나봐.”
아무래도 화살이 꽂힌 쪽을 그 짐승 같은 놈이 떠 매고 간 모양이었다. 싯카는 당혹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가 화살촉의 가치를 모르니 화살은 버려질 게 분명했다.
어떻게 구한 돌인데…….
“……가만 안 둘 거다.”
싯카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정말 어렵게 구한 귀한 돌이었다.
강도가 단단하여 연마가 불가능한 다른 돌과는 달리 움직이는 돌은 어느 정도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해 싯카는 움직이는 돌이 투명하게 변하기 직전까지 불에 달구고 나면 모양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그 모양을 최적화시키는 단계만 남았는데, 그걸 그놈에게 빼앗긴 것이다.
“그 자식, 내 다시 보면 가만 안 둘 거다. 숲의 저주와 땅의 저주가 온통 그놈에게 갈 거야.”
“아서라, 아서. 그런 무서운 놈은 적으로 두는 게 아니다.”
“내 돌을……, 내 돌을 그놈이…….”
“그냥 잊어. 잃어버린 셈 치라고.”
“그걸 어떻게 잃어버려! 그 귀한 돌을! 내 돌! 내 돌!”
이노아즈가 진지하게 말려보았지만 싯카의 머릿속엔 온통 빼앗겨버린 화살촉으로만 가득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상대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 사촌을 보며 이노아즈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만든 무기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싯카는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해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다시 만나면 그놈의 머리통에 화살을 꽂아버리겠노라 맹세했다.
사촌의 쓸데없는 집착을 잘 알고 있는 이노아즈는 뱀처럼 똬리를 튼 불길한 예감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