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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사랑니 (7/8)
  • 외전 2. 사랑니

     요 며칠, 지인이가 이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낑낑 강아지 앓는 신음을 내었다가, 혹은 울상을 짓기도 하고... 근 한달째 같이 살면서 한번도 본 적 없었던 모습에 초조함이 일었다. 왜 그러냐 물어봐도 대답없이 절래절래 고개를 젓다가 뜨거운 태양 아래 지친 병아리처럼 초로록 쳐져서 내 등에 얼굴을 몇 번 문지르고 방으로 뽀 르르 들어가버리는게... 게다가 늘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던 밥도 한 두 숟갈 뜨는둥 마는둥 하면서 수저를 놓는 것이... 오늘로 4일째. 그리고 지금도 지인이는 수저를 내려놓고 있다.

     "왜 더 먹지?"

     "식욕이 없어요."

     "...가을 타니?"

     "그런 거 아닌데."

     "그럼 어디 아파?"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걸 아는 건지 잘레잘레 고개를 젓는 모습이 흡사 4~5살 먹은 꼬마 아이 같아서 저도 모르게 꼬옥 안아주고 싶어졌다.

     그래도 기운 없는걸 보고 있자니 더 아플까봐 그럴 수도 없고.

     "지인아, 어디 안 좋으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일이라도, 지인이의 일이라면 어떻게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말하고 싶고 더 많이 알아가고 싶은 내 마음을 몰라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초조함에 살짝 낯빛이 어두워졌다. 며칠은 이렇게 또 지인이 말을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길어질 수록 나는 또 불안해 하겠지. 예전에 이유도 모른채-이제는 알고 있지만- 지인이에게 무시를 당했던 때처럼. 어쩔 줄 몰라하고, 낯선 곳에 떨구어진 어린 아이 마냥.

     "형, 진짜진짜 별 거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듯 말한 지인이는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서는 새벽까지 단 한번도 깨지 않고 눈을 꼬옥 붙인채 일부러 잠이 들려는 마냥 입을 앙 다물고 있었다.

     "으으으읏...으응."

     새벽, 어설프게 살짝 들었던 잠이 낮게 깔리는 신음 소리에, 확 달아나버렸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 옆을 보자 베개 사이에 얼굴을 묻고 낑낑거리는 지인이. 심장이 덜컹거렸다.

     자면서까지 이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하는데, 왜 그냥 넘긴걸까? 차분히 앉혀두고 이야기를 들어줬어야 하는데... 괜찮다는 말에 왜 그냥 넘어갔던걸까...

     밀려오는 후회감에, 살짝 지인이의 몸을 흔들었더니, 이내 울먹울먹하며 눈을 뜨더니, 걱정스레 내려다 본 나를 보곤 정말 울상이 되어버린다.

     "지인아..."

     "혀엉..."

     "왜 그래? 말을 해야 알지."

     "........"

     "또 별 거 아니라고 할거야?"

     "아파요.."

     머리가 멍해졌다. 얼마나 아픈걸까? 많이 안 좋은 걸까? 아니 나는 대체 애를... 애가 이렇게 자다가 신음을 흘릴 정도로 아프다고 호소하는데... 평소보다 밥을 먹지 못하는데... 다른 때보다 말수가 훨씬 줄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었단 말인가...

     "어디가! 응? 많이 안 좋아? 병원갈래?!"

     "...그게..아니라아... 우욱. 쪽팔려... 나 사랑니나요. 씨발... 진짜 아파."

     정말, 상당히 아픈건지 온갖 인상을 다 쓰며 내 앞에서는 잘 쓰지도 않는 욕의 한토막이 굴러나오는게... 순간, 그러면 안되지만 웃음이 쿡하고 쏟아져 나왔다. 그걸보고 다시 찡그리는 얼굴이 되는 지인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말 안...욱, 욱신거려!"

     "그런건 미리 말했어야지. 난 걱정했잖아."

     안심되는 마음에 한숨을 한번 내쉬며 꼬옥 가슴에 끌어안자, 그게 싫은건지 팔을 뻐ㄸ어 날 밀어낸다.

     "쪽팔려."

     "...왜에... 귀여운데."

     사랑니 때문에 끙끙 앓다니...

     "얼음팩 가져다 줄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이런건줄 진작 알았으면 가게에서 지인이가 좋아하고 먹기 편한 죽 종류로 좀 가져오는 거였는데....

     후우... 그래도 사랑니가 나는 거라 다행이다. 아니, 그야 지인이가 아프다는 거에 대해서는 그닥 좋지않지만... 그래도 아까 '아프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 심장이 떨어진 거에 비한다면... 후우...

     "잠이 안 와?"

     얼음 주머니를 수건에 싸서 약간 열기가 오른 지인이의 오른쪽 뺨에 대어주고 나서 2~30분. 지인이는 잠이 안 오는건지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다.

     "아뇨.... 그런데요, 형."

     "왜?"

     "예전에 누가 그랬는데... 사랑니가 날 때 많이 아프면 사랑도 아프게 한대요..."

     "...응?"

     "나.. 지금 무지 아픈데."

     "....아...."

     정말, 사랑스러워져 버렸다. 말을 하면서 혹시 형하고 아픈 일이 있음 어쩌죠? 라고 묻듯이 걱정스런 눈으로 이렇게 밤잠도 못자면서... 쿡쿡.

     "하지만 지인아..."

     "응?"

     무의식 중에 가끔 나오는 반말. 그 편안한 친근감.

     "그렇지만 사랑니가 나오면서.."

     "아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심장이 떨리고 그러는게... 더 이상하지 않아?"

     "에엣? 푸...푸하하하하하, 그렇구나~"

     별 이야기 아닌 거 같은데 지인이는 뭘 생각했는지 몸을 들썩거리며 웃음을 뱉어낸다.

     "푸...큭큭큭. 맞아, 우하하하. 사랑니가.. 나서 가슴이 콩닥거려.. 아아~ 어쩜 좋아~..이러는거 무지하게 웃기겠다. 푸흐흐흐흐흐..."

     ..아 역시 우리 지인이는 웃는게 이쁘다.

     "그리고, 앞으로는 뭐든 어떠한 사소한 일이든 내게 말하기. 걱정하기 싫다, 나는."

     "......음...네."

     그리고 살짝 웃어보이는 얼굴에 가슴 안쪽에서 행복감이 차올랐다.

     "이제 잘래요."

     "그래."

     '쪽!'

     입술에 가볍게 닿는... 지인이의 입술.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혀를 넣어 살짝 쓸어보자, 움찔 몸을 떨었지만 밀어내지 않는다. 조심조심, 하나하나 치열을 더듬고 입 안 끝쪽에 다달았을 때 뾰족이 뭔가 올라오고 있는 단단함. 요 녀석 때문에 지인이가 아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저 픽 웃음이 나와버렸다. 몇 번이나 달래듯 그렇게 키스가 끝나갈 무렵 지인이는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그나저나... 내일은, 지인이를 데리고 치과부터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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