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8)
  • 3

     "야~ 너 어제 어떻게 된거야?"

     "응?"

     동방에 들어가자마자 날아오는 직격탄에 그대로 맞고 기절...까지는 아니고. 잠시 주춤해버렸다.

     "뭐...뭐가?"

     "뭐가? 뭐가아? 니가 지금 나한테 뭐가가 뭐가냐고 물었냐?!"

     형 말이 꼬여. 릴렉스~ 릴렉스으~ 몰라?

     "어제 양주희 꼬시라고 보내놨더니 튀어? 튀어?!!!"

     "튀긴 누가 튀어!"

     꼬시려던 찰나에.. 연우 형 때문에 방해받기는 했다만.

     "튄 거지! 그럼 그게 튄 거지."

     "튄 거 아냐!"

     "어제 하루종일 수업 째고 안 들어와 놓고는 튄 게 아냐? 설명 좀 해보시지? 앙?"

     "아니!! 그게 말야, 꼬시려던 찰나에 누가 방해를 해서."

     "누가?"

     "있어."

     그 남자랑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는 건 말 못하지만.

     "그래서?"

     "그 여자가 그 남자한테 막 댓쉬하다가 안 되니까 열내면서 가버렸..."

     "권지인~!! 그러니까 니 말은 실패했다 이거야?"

     아니, 또 무슨 실패씩이나 거창하게 갖다 붙이냐? 연우 형 오기 전까지 나도 잘 나갔다고. 씨이, 억울해.

     "다시 붙어!"

     "뭘 다시 붙어."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따아아악, 이번 주까지. 오늘도 가서 덤볏!"

     "형... 나 수업."

     "오호라~ 어제는 잘도 째더니. 일하라니까 못한다?"

     그게, 아니잖아. 게다가... 정말 어제는 피치못할 사정이라는 게 있었다고. 정상참작 정도는 해 줘도 되잖아?

     "어떻게든 오늘. 저녁 약속까지 받아둬."

     아니, 그건 형... 저녁 약속은 선약이 있는데... 음, 말이지. 연우형이 나 케이크 좋아한다니까 잘 아는 가게 데려가 준다고 했단 말야.

     사촌 형이 되가지고 한 번도 그렇게 안해줬음서. 연우 형 말로는 동생이 한 명 가지고 싶었다고 하더만.

     "형...그게 좀."

     "권지인. 노트북 생각해라. 노.트.북."

     아, 젠장 정말 그놈의 노트북 사람 발목 빡세게 잡네.

    ***

     "그래서?"

     무표정하게 물어보는 억양이라 화났나싶어 고개를 들어 시선을 살피자, 그건 아닌 거 같다. 단순히 이건 정말 어떻게 할 지에 대해 물어보는 표정.

     "중요한 약속이 있는 걸 깜박 했거든요."

     "오래 걸려?"

     "에?"

     "많이 늦냐고."

     아니, 뭐 그거야 가 봐야 알겠지만...?

     "그 내가 말했던 케이크 가게, 오늘 수요일 이벤트 하거든. 그래서 오늘 가면 좋겠다 싶었지."

     그...그런거야?

     "이벤트라뇨? 무슨?"

     "차 서비스."

     "에헤?"

     "케이크 가격만으로도 원하는 차를 마실 수 있어.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 타임으로."

     스토옵. 그러니까, 오늘 그 양주희인지 소주인지하는 여자랑 저녁 약속을 좀 일찍 땡겨서... 끄응. 끄응...

     "자...잘하면 시간이 될지도 몰라요."

     아니면 아예 약속을 내일로 잡아버려도 되는 거 아냐?! 에라 모르겠다.

     "그래? 그럼 기다릴게."

     "어디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보고 있을테니까, 볼일 끝나면 전화해."

     "네, 그렇게 할게요."

     시원하게 대답하고 머릿속으로 케이크, 케이크!!를 떠올리는데... 뭔가 스윽스윽 두어번 머리 위를 왔다갔다하는게...

     "에?"

     "응?"

     왜? 라는 듯 내려다보는 시선. 그리고 머리 위에 얹혀진 커다란 손.

     "손이요.."

     "손?"

     "머리..."

     "응?"

     모르고 있다, 모르고 있어. 아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하는 곳에서, 커다란 녀석 둘이서 머리 쓰다듬어 주기라니... 원숭이 털 골라주기보다 웃기잖아;

     "머리 쓰다듬는거..."

     "아? 동생한테 자주 하지 않아?"

     ...전혀... 옛날에 어쩌다가, 머리 한번 스윽 만졌더니, 머리 스타일 망가진다고 얼마나 구박하던지. 사내 놈 주제에 뭔 머리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 도통.

     "안 하지 않나요, 보통? 다 컸는데."

     라고 해도 어릴 때도 별로 안했지. 우리집 그닥 스킨쉽이 많은 편은 아니니까.

     "그런...가?"

     묘하게 이거 아까워하는 얼굴이잖아. 혹시 스킨쉽 좋아하는 건가?

     "사람 만지는 거 좋아해요?"

     "음, 그다지."

     앞뒤가 안 맞잖아!!

     "그럼 좋아하지도 않는데 머리는 왜 부비작거려요?"

     "만져보고 싶어서."

     역시... 이상한 생물이야, 역시.

     "왜, 싫어?"

     "뭐 아무 생각 없지만."

     "머리 직모?"

     "반곱슬. 거의 티는 안나지만요. 그런데 직모가 더 드물어요."

     "난 직모."

     으음? 그렇네, 역시. 찰랑찰랑, 한게 꼿꼿이 착... 떨어져 있다.

     "좋겠다."

     "음?"

     "만져봐도 되요?"

     궁금하잖아. 매직 파마한 여자들과, 그냥 원래 생머리 느낌의 차이가. 우리집 큰누나도 머리 쫙쫙 피고 오던 날 자랑하더만.

     "응."

     손을 뻗어 머리를 만지작거리자, 뭔가, 느낌이 묘하다. 손가락 사이에 사르륵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느낌. 게다가... 이건 말이지. 이렇게 머리를 예쁘다~ 예쁘다 하는 형식으로 만지작거리는데도 얌전히 내 손길을 받고 있는 게.. 꼭 커다란 강아지 같단 말이지. 털이 좀 긴...

     "이상한가...지금;"

     "응?"

     으으음. 뭔가 매끈매끈 기분 좋기는 하지만... 상황이... 애매모호하네. 괜스레 어색한 상태로 손을 떼고나자,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얼굴. 웃!웃!웃! 역시나 비슷하잖아. 멍멍이랑 말이지.

     "여하튼 이따가 전화할게요."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며 뒷걸음질치자 빙긋 웃으며 한 손을 들어보인다. 같이 손을 흔들어주고 두세발자국 걷다 힐끔 돌아보자, 다시 방긋. 마주보고 어색하게 웃다가 괜히 이상해져서 뛰듯이 걸어버렸다. 여하간 잘생긴 얼굴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매력있다니까.

    ***

     "어머~ 우연이네."

     미끼를 던지기도 전에 덥석 물어버렸다.

     음악을 들으면서 5시 경에 양주희 이 여자가 들린다는 학교 내 패스트푸드점 앞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어느 순간 내 어깨를 툭 쳐오는 손길. 뭐야? 하고 뒤를 돌아봤더니, 웬걸. 어제의 그 양.주.희.

     "아... 안녕하세요, 누나."

     "여기서 뭐해?"

     "누나 기다렸어요."

     속전속결! 내게는 케이크가 기다리고 있다!

     "오호호호. 농담도 차암~ 어제는 내가 급히 일어나는 바람에, 이름도 못 물어봐서 궁금했는데... 아, 앞에 앉아도 되니?"

     손 안대고 코 푸는구나~ 에헤라디야~

     "네, 그럼요."

     "다시 정식으로 인사하자. 나는 04학번 양주희야."

     "아아~! 저는 07학번 권지인입니다."

     "그래?"

     "네."

     "그런데 정말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누구 기다려?"

     라면서 내 주위를 힐끗힐끗 보는 게... 뭐가 보여?

     "아뇨."

     "아아~"

     실망한 표정이야? 왜? 뭐 찾았...으으음.

     "혹시..."

     설마, 아아~ 하지마라, 권지인. 존심 다친다. 어디가서도 외모 딸린다는 걸로 비교 대상 아니었다고, 친구 놈들도 하나같이 '부럽다'고 했지. '왜 그렇게 생겼냐' 고는 안했단 말이지.

     "연...우 형 찾아요?"

     "어머? 아...아냐."

     맞구만, 맞았어. 흐응, 하지만, 존심 상하긴 해도 말야. 사실 뭐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는 거 아냐?

     "그런데... 연우씨...랑 친해?"

     씨라... 씨이~ 뭐 사실 당신이나 별 다를 거 없을 정도로 아는 거 없지만, 적어도 그쪽보다야...

     "왜요?"

     "아니, 뭐어... 오호호홋."

     "그런데, 누나는 연우 형 어떻게 알아요?"

     "음? 아니 뭐어~ 안다기 보다는..."

     그냥 뒷조사했지?

     "그런데 오늘은 안 만나나봐?"

     어제도 그닥 만나자고해서 만난 게 아닌데...?

     "만나요, 이따가."

     "이따가 언제?"

     "한 시간 후쯤에."

     "어디서어?"

     이거 점점 싫어지는 기분이다. 진짜 뭐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 관심은 딴 데 있어.'하는 티 팍팍 내는 거 실례라는 거 아쇼?

     "왜요?"

     앗, 실수다. 말이 불퉁하게 나갔어. 난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주위에서 그러는데 난 말 좀만 퉁명스럽게 하면, 굉장히 무서워보인다고 하던데. 한마디로 싸가지 없어 뵌다는 걸까나.

     "아니... 뭐 그냥."

     아까부터 '아니 뭐어~' 이 대사 전세 냈수? 계속 말 돌리게. 확실히 말 안 해줄 바에야 물어보지나 말지.

     "누나, 연우 형한테 관심있어요?"

     스트레이트! 이렇게 상대가 질질 끌때는 몸소 핵심을 집어줘야한다구!

     "뭣? 아니, 뭐 관심이라기보다는 조금쯤의... 왜?"

     왜? 왜?? 으으음, '왜' 냐고 물어보는 눈빛이 아주 뭔가 기대에 반짝반짝 차있는데 말이지.

     "누나는 애.인.도. 없으니까 댓쉬해보는게 어떨까 해서요. 누나 정도면 정말 퀸카죠. 예.쁘.고. 연우 형도 애인 없는 거 같고."

     "뭣!?"

     뭘 과하게 놀래?

     "애인이 없어?"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아니 했으니 모를 일이지만, 설마 애인 있는 인간이 날 데리고 케이크 먹으러 가겠어? 상식적으로.

     옆에 곰실곰실 애교부리는 애인이 있다면,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 같아도 애인 있으면, 아까 그 사람하고 그 케이크 가게에 안...가지는 않았겠지...말야. 말하는게 무지 재미있고, 그 재미있다라는게 생긴 거랑 엄청난 갭의 차이를 두니까. 그래... 궁금해서라도 따라 갔을걸.

     "소문하고 다르잖아?"

     "소문...?"

     소문이라니? 하긴 저 정도 생긴 얼굴이면 동네에서 소문나겠지. 아, 그러고보니, 물어볼걸. 진희 형한테. 국문과의 이연우라고 아냐고. 저 정도 특이하고 저 정도 생긴 물건이면 입에 오르락내리락 안 하는게 이상할 정도겠지, 특히 여자들 소식통이 좀 빨라~?

     "아...아냐. 그보다 정말로 내가 댓쉬해도 괜찮은 걸까... 그게 좀 성격이...말야..."

     음음, 무슨 소리하는지 알겠시다. 성격에 좀 문제가 있어뵈긴 하지. 그렇지만 말야, 어제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참을성이 조금만 있고, 취향 쫌만 독특하고, 그리고 제.대.로. 된 사람 볼 줄 아는 안목만 가졌다면, 이연우랑! 기필코 친해지고 싶어 할 거 같아. 생긴 건 정도(定道)를 걷게 생겨서 소싯적 하고다녔던 일 들어보니 엄청 깨더만. 그 단적인 예로 미스 보명만 해도 그렇잖아.

     "양.다.리.만 아니면 상관없어요. 결국 열 여자 마다하는 사람 없으니까."

     묘하게 양.다.리.에 악센트를 줬건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여자들 참 대단하고 독하다. 아니면 이 여자만 그런가?

     "그럴까아?"

     "네."

     "저기, 그럼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이고 말야, 혹시, 애인있니? 넌?"

     "아뇨."

     뭐, 애인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지금 이 C.C.C.C.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애인'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아주 날 끝장내려 들걸. 생각을 해봐라. 애인이 싫어서! 커플이 싫어서, 클럽 만들어 멀쩡히 잘 유지되는 커플 깨고 다니는 인간들 사이에 '나 애인이 생겼어요~'라고 해보라고. 대뜸 나부터 죽이겠다고 달려들거나, 백보 양보해서 옆에서 쭈욱 솔로 예찬을 해댈게 분명하다. 그 지겨운 꼴을 당하느니 그냥 보고 있으면 슬슬 웃긴 이연우라는 인간하고 형 동생하고 지내는 게 훨 낫겠다 싶다, 아주.

     "그럼, 일 잘되면 내가 소개 시켜줄게. 응?"

     몸이 달았다, 몸이 달았어. 하지만, 또 이렇게 나오니까 직접적으로 상관도 없는 사람 끼어들게 해서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좀 찔린다. 적당히 미끼를 던졌으니, 나머지는 이 여자의 몫. 보아하니 지금 반쯤 물긴 했는데... 상황으로 봐선 곧 꿀꺽 해버릴 거 같다. 혹시 오늘이라도 당장 가서, 지금 애인한테 헤어지자고 할 지도.

     "아니, 그건 됐어요. 별로 남 연애사에 끼어들자는 타입이 아니라서."

     사실, 내가 어쩔 수 없이 지금 이 짓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 청춘 사업에 끼어드는 거만큼 사람 병신되기 딱 십상인 일이 없다.

     예전이 말이지, 우리 누나가 친구 애인하고 친구 사이 중재한다고 나섰다가, 밤마다 울고... 그 친구가 찾아와서 뭐라뭐라 해대고 스트레스 엄청 받고서 소주잔 기울이던데... 그거 보면서 결심했잖아. 내가 또.

     아! 남 연애 사업에 끼어드는 거 만큼 바보짓이 없구나! 하고...

     "그...래?"

     "네."

     "그렇구나. 근데, 오늘 연우 씨 만나서 뭐하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아주 궁금해죽겠다는 듯 눈을 빛내는 여자를 바라보다 괜히 머쓱해졌다. 사실, 뭐가 어찌 되었든 호의라는 건... 그러니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애인이 있던 없던. 물론 이 여자는 그 티내는 수준이 남들보다 좀 심하긴 하지만. 그러니까, 한편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염치없어질 정도로 연우 형이 좋다! 가 될 수도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요는.

     "케이크 가게 가기로 했어요."

     "케이크으?"

     "네."

     "누가 케이크 좋아해?"

     음, 그러니까. 어제 어떻게 연우 형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케이크 이야기가 나왔고. 그리고 나서 형이 잘 아는 케이크 가게가 있다면서 차 잘 마셨으니 오늘 사준다고 한 건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렇네. 가게를 잘 안다고 했지 케이크를 좋아한다고는 안했잖아. 아니아니, 가게를 잘 알고 있는 거 보면-수요일에 이벤트가 있다든지-나름대로 케이크를 좋아하는 걸까나? 그런건가? 아닌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놓쳤다! 라는 걸 떠올리고 고개를 들었을 무렵, 그래.... 눈앞의 여자는 꽤나 고잉 마이 웨이인지, 내 대답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듯 다시금 멋대로 입을 열고 있었다.

     "나도 케이크 좋아하는데~"

     음... 이건 동질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한 말일까, 아니면 나도 케이크를 좋아하니까 데려가 달란 말일까? 전자라 하기에는 너무 눈빛이 부담스럽고 후자라고 하기에는 좀 경우가 없는 쪽이 아닐까나? 말야, 서로 편하게 말 놓읍시다! 한 사이이고 또 '누나~'어쩌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린 딱 하루 만난 사이이고, 더 나아가 말하자면.. 남이란 말이지. 그런데 그런 남.이 가는 외출에, 눈독을 들인다는 건 상당히 이쪽도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벗어났거나...

     "정말 좋아해. 케이크."

     케이크를 진짜 좋아하거나...가 아니라 이연우라는 미끼를 매우 몹시 많이 노리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러세요. 요 앞에 있는 빵집 케이크 맛있대요."

     그래, 진희 형이 그래서 자기 생일 케이크는 그 가게에서 사달라고 했었지. 겨울에 태어나서 생일이라고는 한참 남은 사람이.

     아! 그거 혹시, 그냥 케이크 먹고 싶다는 어택이었나? 그래서 '생일 한참 남았잖아'라고 했더니 조금쯤 불퉁한 표정으로 '눈치없기는'이라고 까지... 으음, 그랬어. 그랬던거야. 먹고싶다는 뜻. 하지만 그 말을 돈 없는 사촌동생한테 하다니 비양심적이지않아?

     "아... 그...래."

     모르는 척 말 돌리고 천진난만하게 웃어줬더니 안면부터 굳힌다. 아까까지는 생긋생긋 잘 웃더니만.

     "주희야, 여기서 뭐해?"

     씨익 속으로 웃으며 상대방의 표정 변화를 체크해가며 다음은 무슨 말을 해야할까 생각하는 순간, 등 뒤에서 덮치듯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어딘지 불쾌감히 담겨진 톤. 뭐야? 하는 생각으로 뒤를 살짝 돌아보자...

     아라라? 좀 호쾌하게 생긴 스포츠맨 스타일의 남자가 한 명. 입은 옷 스타일도 그렇고 짧게 친 머리도 그렇고... 좀 까무잡잡하니, 탄 피부나, 오와, 팔뚝 근육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도 나쁘지는 않고.

     그렇지만, 날 내려다보는 눈빛은 왜 이 모양?

     "어, 혁민아~!"

     "뭐 하는 거야?"

     으으음, 그러니까 빠릿빠릿하니 돌아가는 나의 두뇌로 보자면 말이지, 이쪽이 그 우리에게 의뢰해왔던 여자 분의 오랜 남자친구이자, 지금은 눈 앞의 양주희씨 애인 아닐까나?

     "그냥 아는 동생이랑 말 좀 하고 있었어."

     "아는 동생?"

     이라고 말하면서 날 쏘아보는 눈빛이. 거 나름대로 호탕호쾌하게 생겼다고 점수 잘 주고 있는데, 그리 쏘아보면 기분 더럽지.

     "안녕하세요, 주희 누나 후배, 권지인이라고 합니다."

     "후배에?"

     나름대로 그래도 눈치는 칼이란 말씀. 여기서 괜히 묘한 뉘앙스로 그냥저냥 아는 사이라고 하면 문제가 생긴단 말이지... 음, 그렇군. 차라리 그럴걸 그랬나? 아니아니, 아니야. 지금 저 남자 주먹 봐라. 히엑, 잘못 맞으면 골로 가겠다. 괜히 저런 타입한테 찍혀봐야 좋을 거 없지. 게다가... 사냥감은 알아서 그물 안으로 뛰어들 거 같고 말야.

     "그럼 후배지. 넌 여기 왜 왔어."

     "아? 난... 그냥, 저기."

     "너 지금 이 시간에 수업 있는 거 아냐?"

     "수...수업 있지, 있어."

     "근데 여기 왜 있어?"

     왜일까아? 아아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머리의 시나리오는 책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나? 뒤를 밟았다고들 하지?

     생각을 해봐. 아무리 여자친구라고 해도 말야, 딴 남자랑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눈을 부라렸겠냐고. 초.면.에.

     분명히 어제 연우 형을 만나고-뭐 내 댓쉬도 있었고-나서 이 사람을 만났다면 이 양주희라는 여자 성격으로는 짜증이 났었을 법도 하다.

     뭐 나쁜 얼굴은 아니고 평균점을 돈다고는 해도 말이지... 연우 형과 비교하자면, 영 아니잖아? 뭐랄까 이쪽은 말 그대로 시원시원 저돌적 스포츠맨 타입이란 말씀. 연우 형은, 좀 인텔리한 분위기도 나고. 여튼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여자들이 또 무드와 분위기에 약한 생물 아니겠냐고. 이 양주희 이 여자의 맹반론과 추격에 밀려 쩔쩔매는 덩치의 남자를 보니, 따악 코트나 그라운드 위에서만 멋있을 타입이다. 흐음 괜히 여기 더 있으면, 불똥 튈 거 같고. 슬슬 정리하면서 일어나 볼까나?

     "누나... 남자친구?"

     "어어? 어머, 그게."

     아니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맞다고 하기에도 그렇겠지?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남자친구랑 쫑이자, 디엔드~ 게다가 남자친구도 길길이 날뛸테고, 그렇다고 맞다고 하자니 어제 나한테 애인이 없다고 한 것도 그렇고 연우 형 귀에 어찌 들어갈지도 걱정이겠지-물론 이 여자에 대해 절대 말할 입장이 아니면서도-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전 이만 일어서야겠네요."

     스윽 재주껏 눈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누나도 따라 일어서긴 했지만,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괜스레 표독스레 눈을 뜨고, 어느새 낑낑거리며 주눅 들어있는 남자친구에게 살벌한 표정을 보낸다. 아무래도 이거 오늘 내로 끝날 거 같지? 분위기가 딱 그거 아냐. '이제! 너랑 끝이야.'하는... 이렇게 쉽게 일이 해결될 줄은 몰랐는데 말야, 아니아니, 뭐 내 공도 반이지만 이건 연우형의 공도 반 일까나? 댓쉬한게 나였다면 아마도 나랑 저 사람이랑 손 안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주물주물 무게재고 했을 텐데... 뭐 확실히 연우 형, 남자인 내가 봐도 인물이 빠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 처음 버스에서 봤던 날에도 '잘생겼다!'라는 인상이 파악.

     사실 이 주희라는 여자의 입장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눈앞에서 커다란 물고기가 펄떡펄떡거리고. 뭐, 잡을 거라는 100%확신은 없어도 낚싯대 한번 던져볼 만한 기회가 왔는데, 피라미때문에 포기하려면 아깝겠지. 물론 좀 더 현명한 사람이라면, 혹은 그냥저냥 평범을 기초로 한 사람이라면 월척을 낚을 확률과 피라미를 그냥 유지하는 것.에 대한 플러스 알파,까지 다 계산해서 그냥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을텐데... 이 사람은 아마도 모험심이 굉장히 강한 타입일거다. 점보면... 아, 하긴 사람 감정이란게 계산을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가...게?"

     "네. 아무래도 일찍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럼 이만."

     "그...그래. 다음에 또 보자."

     다음에 당신한테는 날 꼭 봐야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일만 일단 해결되면, 끝이라고. 비록 양심의 가책이 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말야... 어쩔 수 없잖아. 다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고. 당신도 원래 그 남자 뺏은 거라며? 원래 남 피눈물나게하고 이어진 커플은 웬만한 각오와 사랑이 없으면 지속되기 어렵다구.

     꾸벅 인사를 하고 총총히 학생회관 건물을 벗어나며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러니까, 어제 까페에서 연우 형 번호를 몇 번에 저장해뒀더라... 에...음. 전화번호부... 음 전화번호 찾기+확인+단축번호찾기+에에에... 음... 82번째. 하. 생각해보면, 여기에 빽빽이 차 있는 사람들 말이지, 다 연락하고 사는 것도 아니다. 보통 전화하는 사람은 열명 안팎? 아무래도 요새는 습관처럼 사람 만나면 인사하고 이름 묻고나면 서로 핸드폰 들고 전화번호 교환하는 게 무슨 예의처럼 번져서 말이지. 사실 사용도 안하는 번호를 알아두는 것도 좀 부담스러운데... 그렇다고 삭제하자니 그것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관심없는 번호들은 나중에 까먹기까지 한다. '이름'과 '번호'를 같이 입력해둔다해도.

     봐라, 지금도 요거... 79번째. 이예림 011.3423.56**. 대체 이 이예림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딱 안 떠오른단 말이지. 으흠, 본 김에 한번 생각해보자. 이예림. 이름으로보면 여자인데 말이지. 여자...여자... 아아아! 그래그래, 오티 때 입술로 종이 옮기기 게임하다가 울어버린 그 파마머리. 그래그래, 정말 이때 황당했지. 물론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입술로 종이 옮기기 게임하다가, 자기 차례에서 앞의 녀석을 보더니 그대로 울음 터트리면서 주저앉고... 선배들이 달래주고 그러고 나서도 끝까지 징징거려서 다들 좀 짜증내다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총대를 건네줬었다. '니가 달래'라고. 정말 아무 생각없이 맥주 캔 따서 홀짝거리다가 봉변당했지. 가만... 그러고보니 대체 그때 왜 나였지? 나 남한테 만만하게 보이기 쉬운 얼굴인가?

     여하튼간 그때 괜히 찍혀가지고 말야, 구석에서 우는 애 옆에 가서 나도 쪼그려 앉아서 맥주 건넸다가 무시당하고. '술 못 마셔' 였던가?

     흐음. 그리고 그러고나서도 한참을 대학이란 원래 이런거다, 치사하고 아니꼽지만 학번 앞에 죽어지내야 한다, 일년만 참아라, 등등의 구라와 함께 기분을 풀어줬었다. 씨뎅, 말이야 바른 말로 대학에 대해 내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어? 나도 갓 들어온 삐약삐약이구만. 그래도, 그때 내 이미지가 좋았던지 막판에는 베시시 웃으면서 손 빼죽 내밀고 '난 이예림이야. 너 핸드폰 있어?'라고 했었다. 그리고 멋대로 핸드폰 뺏긴 채로 꾹꾹 번호 찍히고. 음, 그런데 얘는 도통 얼굴을 못보네? 설마, 또 어디서 선배한테 한 소리 듣고서 울면서 등교 거부하는 건 아닌가 몰라. 하긴 그렇다고 한들 나랑 무슨 상관이람 이제. 아아, 나는 전화나 해야... 음음... 그런데 전화해도 괜찮은 건가? 도서관에 있겠다고 했잖아. 도서관에서 괜히 벨 소리 울리면 눈치보이고. 끄응, 매너모드로 해뒀겠지? 아니 그래도... 역시나 문자가 나으려나? 쩝, 문자 보내기 싫은데. 보통 문자오면 전화로 답변해주고. 전화비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손바닥 안에 쏙들어오는 고 작은 핸드폰에 그것보다 더 작은. 정확히는 내 손톱의 크기도 안되는 자판을 들고 손가락으로 꿈실꿈실 글 쓸때는... 스스로가 답답하다. 그래서 핸드폰 사고 문자를 직접 썼던 건 정말이지 손에 꼽을 정도. 그러니까... 간만에 써보게 되는구나. 그런데 뭐라고 써야하나? 나름대로 이것도 편지라고 고민이 되다니. 으읏, 에라 모르겠다. 여튼 어디에 있냐고만 물음 되는 거잖아. 에... 그러니까...

     [형어디에요저지금볼일끝났어요]

     띄어쓰기 무시다. 핸드폰 문자에 그런 게 어딨냐. 쓴 거 중에 오타는 없는지 확인하고 전송. 그리고 도서관 쪽으로 좀 걷다보니 곧 돌아온 답신...

     [아, 일찍 끝났네? 나 지금 도서관 제2열람실. 내가 앞으로 나갈게.]

     쉼표에, 마침표에 물음표. 그리고 띄어쓰기까지냐. 이거 뭔가 자존심 상하는데. 물끄러미 묘하게도 잘 정돈된 목소리 톤마저 느껴질 법한 착각을 일으키는-말 더럽게 길다-문자를 보다가 좀 더 걸음을 빨리했다.

     "아, 볼일 생각보다 훨씬 일찍 끝났네?"

     "아, 네."

     중간에 예상치못한 복병의 등장이라.

     "책 읽고 있었어요?"

     "응."

     "어떤 거?"

     "걸리버 여행기."

     ......으으으음. 순진무구하게 웃는다. 첫인상으로는 절대 안 웃을거 같았는데... 그래 하긴 어제 까페에서 말할 때도 활짝까지는 아니더라도 싱긋 잘 웃는 거 보다가 움찔했는데...

     원래 잘 웃는 타입인가? 아니, 그건 아닐 거 같은데. 왜 처음 만난 날에도 무뚝뚝한 얼굴이었고. 하지만 또 자연스럽게 웃는걸 보면 말야...

     "걸리버 여행기요?"

     "응."

     "동화책?"

     "아? 동화...음, 어릴 때 동화책으로 많이 보지."

     "흐으음."

     "재미있어."

     "재미있어요?"

     "응."

     "에헤."

     "왜 걸리버가 처음 갔던 소인국 말야. 거기서 두 나라의 사이가 안 좋잖아."

     아?...아아아~ 음, 그런 내용을 본 것도 같다. 책이 아니라 만화 영화에서. 사촌동생이 하도 열심히 보길래, 같이 좀 봤더랬지.

     "네."

     "그 두 나라 사이가 왜 벌어졌었는지 알아?"

     "왜요?"

     "계란 때문이야."

     "계란?"

     "응. 원래 두 나라 모두 삶은 계란을 깰 때 넓은 쪽을 깼었는데 한 나라의 왕자가 넓은 쪽으로 계란을 깨다 손이 베인 거야."

     뭐? 그게 말이 돼? 계란을 깨다가 손이 베이다니. 아니아니, 뭐 가능 하려나? 나름대로 껍질 옆면으로 사악 베이면. 으으 상상하지 말자! 원래 무언가에 베이는건 얇으면 얇을수록 최악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종이가 짱이지.

     "그래서요?"

     "그때부터 그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거야."

     "뭘?"

     "계란은 좁은 면 쪽으로만 깰 것! 그런데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절대 그렇게 못하겠다고 난리 피우고 망명까지하고 해서 두 나라 사이가 벌어지게 되지."

     푸! 그거 뭐야? 웃기잖아. 으하하하하하.

     "웃기네요 그거? 나 그런 소리 처음 들어봐."

     "응. 그런데 이거 의미하는 바가, 우리가 보기에는 이 작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웃기잖아. 어이없고 별거 아닌 일이고."

     그렇지... 계란이야 어느 쪽으로 깨먹던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행하는 행동들 중에서도 그런 게 많다는 거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야."

     아...음...;; 으음 그런 거였어? 나름대로 내 사촌 동생 심오한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군!

     "원래 걸리버 여행기가, 18세기 영국의 정치와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들어있는 풍자 소설이잖아."

     그...그런거였습니까?; 그저 작은 사람과 큰 사람이 나오는 그런게 아...니었군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으으으음?

     "재미 없지? 역시."

     아? 뭐가?

     "풍자니, 뭐니 하면."

     "에....?"

     "그냥 신기하잖아."

     으으으음? 또 스무고개야? 그냥 풀어라. 그렇게 비비꼬지 말고.

     "십 몇센티밖에 안되는 사람들이라니.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잖아."

     아? 아아아아?

     "그래서... 걸리버 여행기 봐요?"

     "응."

     이 쌈박한 대답이라니. 역시 재미있다니까.

    ***

     푸흡. 웃으면 안돼. 웃으면 절대절대 안된다! 권지인.

     아아, 정말 사람이 웃음을 참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금 몸소 깨닫고 있으시다.

     그러니까 말이지, 인류의 적은 편견이요, 편견과 흑백논리가 얼마나 사람들 사이를 깨부수며 인식을 엉망으로 만드는지 누누이 들어왔지만 그래도 말야,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 아 저 사람은 까만색이 어울린다거나 어딘지 모르지만 선할 거 같다거나, 더러운 곳에는 가지않는 고고한 학자의 이미지라든가... 뭐 여러가지로.

     그런데... 지금 봐라.

    잘그랑~ 잘랑...잘랑~

     아 예쁘기도 하지. 목재로 문양이 파여있는 문을 여니까 또 이런 귀여워서 눈물 날 거 같은 소리가! 감동이다. 야~

     있지, 내 이제는 분명히 말하지만 이 사람 케이크 좋아한다. 암, 좋아하고 말고. '이연우!'정말 이 사람 놓치고 억울해서 어쩔 뻔했었냐 권지인? 재미있어도 이렇게 웃기고 깨도 이렇게 깨는 사람 흔치않다. 암암, 얼굴은 따악~ '쿨한 냉미남'으로 목소리 톤까지 쫘악 아래로 깔리는게 무게있더니.. 그래 그런 이미지로 커피를 마셔도 블랙밖에 안 마실 거 같아선... 푸후후후, 이렇게 달콤한 향내 진동하는 소녀 취향의 케이크 가게문을 열다니. 와하하하. 진짜 재미있어! 사실, 케이크 가게라고 했을 때만해도 분명히 그냥저냥한 까페에 케이크를 파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와전히 따라와보니, 들어오는 출입문서부터 천사모양의 도어벨, 더해서 테디베어 쇼파에 레이스풍의 커튼까지. 정말 죽이게도 케이크 하우스라는 분위기라 감탄사가 다 나온다.

     그런 아기자기 알콩달콩한 분위기에, 180대의 커다란 그것도 지금은 무.표.정.인 사람이 들어섰으니... 시선 집중은 껌이고, 나는 지금 입가가 경련을 일으키려고 한다. 웃겨서!

     "고르시면 불러주세요."

     적당히 창가 자리에 앉자 사뿐사뿐 걸어와서 리본으로 장식된 메뉴판을 주고 가는 알바생을 보다 결국 소리죽여 마구 웃어버렸다.

     아...정말 이건 예의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말이지. 쿡쿡쿡!!! 으하하하!

     "푸흡...흐흐흐...으흐흐흐."

     "??"

     "쿡쿡, 죄송해요."

     아, 얼굴이 굳었다, 굳었어. 하지만 이거 뭔가 화가 났다기보다, 곤란하다 쪽에 가깝지 않나?

     "아니..."

     "잘 안다는 가게가... 여기...?"

     "응."

     "예...쁘네요...풉...크크."

     "기분 좋은 일 있어?"

     아니, 이게 지금 기분 좋아서 웃는 걸로 보여? 그런 거라면 연우 형 처음에 생각했던거보다 훨씬 강적이고!

     "아뇨, 그냥."

     "그냥?"

     "그냥."

     "응."

     그래도 뭐 나름대로 가만보니 이 장소랑 연우 형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묘하게 무표정하면서도 입가가 풀린 거 같은 게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라는 느낌?

     "여기 케이크 맛있어."

     자랑하듯 그 이야기 몇 번했는지 알아요? 어린애처럼. 숨겨진 보물 보여주듯, 살그머니 웃으면서.

     "기대되네요."

     아, 정말이야. 이건. 메뉴판을 내 앞으로 펼쳐주면서 싱긋 웃는 게, 어째서 이 사람을 처음에 무뚝뚝하거나 장남으로 봤을까. 따악 막내 맞다. 애교 잘 부리고 사람 사귀기 좋아하고. 조금 고집스러워보이기는 하지만... 어디로보나, 이쪽은 사람 잘 딸는 그런 곰실곰실한 느낌인데 말야.

     "형, 첫인상이랑 만나고나면 다르다는 소리 자주 안 들어요?"

     "응?"

     "그러니까, 첫 이미지랑 원래 느낌이랑..."

     "사기 당했다는 소리는 가끔 들어."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명언이네요, 그거! 하긴 이 정도면 '다르다'정도가 아니라 '사기'수준이라고. 친해지기 어려운 느낌. 무뚝뚝함, 엉뚱하다, 에서 말 몇마디하고 표정 좀 익숙해졌다고 이런 살가운 느낌이 들다니 말야.

     "그보다 케이크랑 차 어떤 걸로?"

     "잠깐 보구요."

     에에, 또 그러니까, 호오~ 과연 케이크 전문점이구나. 종류가 많기도 하네, 이거.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라는 건 과연 이때 쓰는 말이구만.

     "우와, 장난 아니네요. 많기도 하지."

     "응."

     케이크 이름 옆에 설명이 딸려있긴 하지만, 이걸로는 좀 부족하고. 역시 먹어본 사람이 가장 정확하게 집어내주지 않을까?

     "에, 형이 좀 골라줘요. 괜찮은 걸로."

     "내가?"

     "형이."

     "...음."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적당히 찍어주면 되는 걸.

     "아, 저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아...응."

     "그동안 적당히 시켜주세요, 차도요."

     "응."

     뭔가 고민에 빠진 얼굴이 되어버리네? 여튼 재미있어♡

     화장실 문에 달린 인형과 화장실 안에까지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한참을 보다가,-그리고 그곳에서 볼일을 봤을 연우 형을 생각하며 좀 웃다가- 자리로 돌아오자, 뭔가... 참 많은 게 테이블 위를 점.령.하고 있다.

     "뭐...에요?"

     그래, 케이크 좋지. 좋지마안... 뭐냐 이 수많은 케이크는!

     "뭘 골라야 할지 몰라서."

     "네...?"

     당황.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이거 종류가 말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여덟.

     "형 고르는 거 못해요?"

     "응?"

     '응?'이 아니잖아, 응이! 이 많은 걸 다... 아니 물론 조각 케이크니까, 못 먹을거야 없다지만 보통 이런 곳에서는 케이크 한두 조각 시켜놓고 천천히 차 마시면서 이야기하거나 그러지 않아? 케이크로 배 채울 게 아니라면!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시켰어요?"

     자리에 앉으며 넋 나가듯 테이블을 쭈욱 바라보다 따악 얼굴을 마주보자, 인상이 딱딱하다.

     "연우...형?"

     "미안."

     미안이 아니잖아~ 이건.

     "저, 네 입맛 취향을 모르니까. 단 걸 좋아하는지, 단백한 걸 좋아하는지, 고소한 걸 좋아하는지... 실수 한 건가?"

     실수라기보다야 이거 감사해야 할 상황이지만. 하아, 그래 나도 나다. 나 위해서 이렇게 시켜준 사람한테 '황당하네' 쯤의 표정을 지으면 어쩌라는 거냐, 권지인. 뻔뻔한거라고 지금 이건. 그래도 물론 연우 형이 오버한 건 사실이지만.

     "여기 케이크 남는 거 포장 되요?"

     "응...? 응."

     "고마워요. 맛 다 보고, 남으면 싸가죠 뭐."

     "응."

     아, 웃는다. 싱긋, 미묘하게 살짝이긴 하지만, 눈이 휘어지는게...

     그나저나 참 맛나게도 생겼다, 이녀석들. 참 뭐랄까, '먹어줘요~ 나 맛있어요'라고 하는 깜찍함이 마구 풍긴달까. 그게 아니면 '찍지마요~ 이렇게 예쁜데에~'하는 애교가 흐른달까.

     "얘는 뭐에요?"

     정말이지 '이건'이 아니라 '얘'라고 사람 부르듯 할 만큼 깜찍한 케이크들이 많아서 말야... 자연스레 '얘'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연우 형 또한 아무렇지않게 대답한다.

     "알프스 케이크."

     알프스 케이크라... 그러고보니 새하얀 눈 같다. 알프스 산을 덮은. 거기 위에 포인트로 건포도 몇 개.

     "이 녀석은?"

     "필라델피아 치즈 케이크. 아이스야."

     "아이스?"

     "시원해."

     "아~!"

     "얜 쇼콜라 생크림. 이건 티라미스."

     진짜 좋아하나 보다. 얼굴이 폈어, 폈어~

     "진짜 케이크 좋아하나 봐요?"

     "싫어하지는 않아."

     "음? 진짜 무지 좋아하는게 아니라?"

     "응?"

     "얼굴이 막 폈는데? 보통 때보다 환해요."

     놀리듯 말하자 스윽 얼굴을 매만져 확인하더니 그저 씨익 웃는다.

     "그런데 여기는 누가 소개 시켜준거에요?"

     "아니, 그냥 어쩌다가 들린 이후로 종종 찾아와."

     "애인이랑?"

     "나 애인 없는데."

     "에에~ 예전에는 있었을 거 아녜요."

     지금은 없다고 해도. 솔직히 형만한 외모에 여자친구 하나 없었다면 그건 사기! 뭐 전에는 성격 장애쯤도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쪽은 사귀면 사귈수록 알게되는 면이 새록새록 마음에 드는 타입이니까, 그건 또 아닐 것 같고 말이지.

     "없었어."

     "진짜?"

     "응."

     "그럼 여기는 누구랑 와요?"

     이런 달달한 분위기 넘치는 곳에 혼자 와서 케이크를 먹는다..라.. 그건 이상하잖아?!

     "네가 처음인데?"

     "으으으음?"

     "다른 사람하고 같이 여기 온 거 처음이야."

     진짜?!! 으으으, 이거 뭔지 모르지만, 조금 으쓱해지는 기분은 뭐냐 권지인.

     "주변에 케이크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나 보죠?"

     쑥쓰러움에 슬쩍 말하고 웃고 넘기려 했떠니...

     "같이 오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어."

     라니... 으으으 그럼 나는 같이 오고 싶었던 사람? 음음, 케이크 이야기를 할 때 유난이 내 눈이 반짝였던 걸까? 저도 모르게, 케이크 먹여주고 싶다! 할 만큼?

     "영광이네요."

     "별로."

     "아, 차는 뭐 시켰어요? 설마 차도, 여러 잔 시킨 건 아니겠죠?"

     "아, 한 잔 시켰는데. 여러 잔 시켰어야 하나? 더 시킬까?"

     사람 말 의도를 파악 못하죠? 놀린 거잖아요. 에이... 재미없게.

     "아뇨, 충분해요. 뭐 시켰는데요?"

     "레몬 밤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돼."

     멍하다 싶으면 또 이다지 반격을 잘하나 몰라. 방심을 못하겠네.

     "차 나왔습니다. 닐기리(Nilgiri)는 어느 쪽 분?"

     타이밍도 적절하게 차에 대해 투닥투닥 말을 받고 있는데, 생긋이 웃으며 쟁반에 찻 잔 두 개를 받치고 나온 알바생.

     "이쪽."

     슬쩍 형이 날 향해 손짓을 하자 찻잔을 살짝 내려놓더니 남은 잔 한 잔도 연우 형 옆에 다소곳이 내려놓고 방긋 웃는다. 원래 여기 모토가 '스마일'인 걸까? 아니면 이건 근무 외 서비스인 걸까? 아무래도, 말이지. 손님 접대를 확실히 한다기로서니 눈까지 계속 맞추면서 웃는다는 건 좀... 오버 아냐?

     "저 여자 너무 좀 잘 웃죠?"

     "음."

     "평소에도 이 까페 모토에요? 손님 눈 마주치면서 화사하게 웃기?"

     "아마..."

     "아마?"

     "지인이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 아닐까?"

     "엑?"

     말 그대로 엑이다. 아니 계산이 나와도 어떻게 그렇게 나와? 이거 은근히 말 돌리는거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지? 허.

     못 봤어? 차를 내릴 때도 시선은 연우 형한테 고정. 말을 붙일 때도 연우 형한테 고정. 한 번 더 웃을 때도 연우 형한테 고정! 이였것만, 나한테 관심이라니, 그 무슨 망발이야?

     "지인이, 인기 많게 생겼잖아. 너야말로, 애인 없어?"

     아니, 그래요. 인기 많게 생겼다. 좋은 말이지, 좋은 말.

     "고등학교 때도 인기 많았지?"

     그 썩을 미스 보명 이전 까...지가 아니군. 그 뒤로 이상하게 더 인기가 올랐었다. 고백도 더 많이 듣고. 정말 우리 학교 학생들의 뇌구조를 의심하기 시작했지. 친구 놈들까지, 묘하게 색기가 흐르네 어쩌네 놀려대느라 정신 없었고. 아니, 스커트 자락 움켜쥐고 앞발차기한 상태가 색기냐?

     "그럭저럭이요."

     "애인은?"

     "없어요."

     "없어?"

     "네."

     "왜?"

     아니, 왜냐고 물어도. 생기지 않았으니까 없는 게 아닐까나? 물론 고등학교 때도 있었고, 우선 대학 와서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는게 정답이었겠지만.

     "그냥. 참, 형 이거 무슨 차에요? 닐...길라?"

     "닐기리."

     ...그렇군요. 아 씨, 웃지마요. 딱 한 번 들었는데 무슨 수로 기억해, 그걸?

     "홍차류 인가?"

     "응, 홍차."

     홍차는 그 뭐냐. 그 불그스름한 걸로만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이건 밝고 노오랗고 좀 갈색 빛도 띠고 있고... 맛 좀 볼까?

     음, 음. 나쁘지는 않네. 꽃향기가 좀 나는 거 같은데... 달달하기보다는 깔끔한 느낌?

     "괜찮아요."

     "그래?"

     "네."

     "다행이네."

     "형 건 뭐에요?"

     "응? 아... 실론(Ceylon)."

     "그것도 홍차죠?"

     "응, 마셔볼래?"

     에, 아니아니, 다음에 와서 마시면 되지. 남의 잔까지 탐내는 짓을 할 수야 없죠.

     "됐어요. 다음에 와서 마시죠, 또."

     "다음..에?"

     "네."

     뭘 그렇게 놀래는 얼굴을 해? 얼라? 웃기까지?

     "이제 케이크 먹자."

     "네, 그런데 이거 참 먹기 아깝네요. 포크로 푹 찌르기가."

     "그렇지?"

     응응, 여러모로 깜찍해서 포크로 푹푹해서 입에 떠넣기가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하는 거 같다. 그야, 역시 나는 불쌍하다, 보다는 입에 넣고싶다, 의 기분이 강하긴 하지만 말야.

     "그래서 처음엔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한 적도 있었어."

     "네?"

     "케이크 말야, 예뻐서."

     예뻐서, 먹기 뭐해서 가만히 앞에 두고 구경했다? 하!

     "먹어요, 먹어. 피가되고 살이 되는 걸 코 앞에 두고 눈 구경만 하면 뭐해요?"

     정말이지 나까지 '예뻐~ 이걸 어찌 먹냐'라는 지극히 소녀틱한 소리를 했다가는 정말이지 몇 시간 내내 마치 자식 자랑하듯 '그치? 예쁘지?'하고 손 안 댈 것 같아서 푸욱 포크로 쪼개서 입 안에 넣자, 그대로 시선을 내 손과 입에 고정시키는게... 음! 그나저나 이거 맛있잖아?! 확실히 맛있다! 그렇게 달지도 않고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이 일품인데다가 끝 맛도... 깔끔. 음음.

     "맛있다!"

     "그렇지?"

     아, 역시 이 말을 기다린 거였어? '맛있다'라는?

     "네, 이거 맛있다, 진짜. 형도 먹어요."

     "응."

     와, 정말 이거 너무 괜찮네? 그냥 제과점 생크림과는 비교할 게 못 되잖아? 이런 맛이라니... 이야, 이거 지훈이한테 알려주면 환장하겠다. 사실, 케이크는 여자들만 좋아한다, 라는 얼토당토않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집에서는 케이크 환영 예찬이 남자들 쪽에서 더 하다. 아버지, 나, 지훈이까지. 여튼 누구 생일이라서 케이크 사오면 거의 뽀작내는 건 아버지와 우리 둘. 누나와 엄마는 잠깐 입만 댄다는 것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지훈이 녀석. 나야, 케이크 있으면 아주 잘 먹지만... 지훈이는 한 달에 두 세번쯤은 커다란 케이크 하나를 사서 조각조각 잘라 은박지에 포장해서 냉판에 얼려두고 꺼내먹거나, 혹은 앉은 자리에서 초토화 시켜버리기도 하니까 말이지.

     음, 그나저나 정말 맛있다, 맛있어. 아, 딸기도 새콤달콤한게. 음음, 좋군 좋아. 정말 따악 떠오르잖아. '행복'이라는 단어가. 사실 행복이라는게 별거겠어? 파랑새라는 책에서도 그렇잖아.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행복의 파랑새는 바로 옆에 있었다! 라는. 원래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누가 그랬다고. 하긴, 그래도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욕심 많은 생물이라, 조금 더~ 조금 더~ 하고 욕심내게 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정말 맛있어요."

     "응."

     또 한번 내 칭찬에 더 이제는 정말 활짝 웃는 연우 형을 보니, 정말 웃음은 전염된다고 나까지 벙긋 웃어버렸다.

     "그나저나, 형... 젓가락질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포크도 그렇고. 먹는 거 진짜 깔끔하게 먹네요?"

     응, 사실 맛있는 케이크에 정신이 팔려있기도 했지만 사악 케이크를 깨끗이 가르고 먹는 포크질에도 나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실 케이크라는게 좀 무르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예쁘게 잘라먹는다고해도 막판에는 좀 뭉개지거나, 모양도 좀 깨지고 접시같은데 담으면 크림이 잔뜩 묻어버리고... 그런데, 별로 그런게 없다. 케이크 자르면서 접시에 묻힌건 내 쪽이고 형은 어떻게하면 저렇게 예쁘게 잘리지? 할 정도로 포크에 따악 알맞게 뜨는게...

     "그래?"

     "네."

     그때, 분명 집이 가게를 한다고 했떤가? 여하튼 그때까지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형네 집 가게 한다고 했죠."

     "응? 기억해?"

     물론, 그때 안 듣는 척, 관심없는 척 하고 있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죠, 네네.

     "네."

     "난, 어제, 네가 날 무척 불편해하는 줄 알아서..."

     불편해했었지; 과거형이지만, 하루가 끝나갈 때쯤에는 오히려 매우 마음에 들어했던 것도 기억해줘요. 사실 사람이란 동물은 감정적 동물이라서, 안 좋은건 빨리빨리 잊어버리는게 사람 사이에 좋다우.

     "내가 뭔가 실수했나 했어."

     ..음... 불쾌했어...가 아니라... 실수했나...했다라.

     "그런 거 없어요. 혼자서 사실.. 에이, 그게 그러니까 사실 형 만났을 때부터 내가 사고만 쳤잖아요. 보통 그런 상태면 쪽팔려서 피하고 싶어지죠. 그래서 그랬어요."

     "별로 쪽팔릴 일 아니었는데."

     그거야, 당신 생각이지. 버스에서 자빠질 뻔해. 가방 속 물건 후둑후둑 토해내고 돌아다녀, 책 뽑아주려던 사람 손에서 책 가로채고 튀어. 거기에 모자라 미스 보명 출신이란거 까지 눈치채게 해.

     내가 뭔 낯으로 얼굴 들고 형을 봤겠수.

     "아하하, 뭐 그렇게 봐주니까... 아! 그런데 형 그날에, 나 버스에서 넘어질 뻔하던 날에! 형은 왜 버스에 남아있었어요? 학교 가려고 버스 탔던거 맞죠?

     그래그래, 나 진짜 궁금했었다. 나야 조느라고 학교 지나친거라지만, 눈 멀쩡히 뜨고 있던 연우 형은 왜?

     "음..."

     눈뜨고 졸았나? 아니 그런거 치고는 위급상황에서 날 제대로 받쳐주지않았어? 아니 받쳐줬다기보다는 쿠션이 되어주었다, 가 더 맞는 표현이지만, 이건 둘째치고 말이지.

     "비밀."

     "으와~ 뭐에요."

     "가게해, 우리집."

     말 돌리지 말고! 뭔가 심오한 이유가 있었던거야? 그런거야?

     "그런데 그게 젓가락질하고 상관이 있나?"

     "왜 타고 있었어요? 네? 세 정거장이나 지나치면서~"

     대화가 어긋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 안해~ 라고 하니까, 오히려 더 궁금하잖아!

     "밥 먹는 거에 대해서 별로 특별히 신경 쓴 적은 없는데."

     "설마 서서 졸았어요? 에이, 그런 건 아니겠죠?"

     "다른 가족들도 다 젓가락은 바로 잡으니까, 보고 배워서 그런가?"

     "서서 졸았구나~ 서서!"

     .......남들이 보면 덤&더머인줄 알겠다. 각자 다른 말로 떠들어대고. 우, 연우 형 고집있다 이거죠? 지금.

     "꼭 들어야해?"

     "꼭!"

     결국 한숨 한 번 쉬고 되물을걸 뭘 버텨요, 버티긴.

     "좀 위태로워보였어."

     "위태?"

     "여기까지."

     "으아! 그거 내가 너무 격렬하게 졸고 있어서 자빠질까 걱정되었다 뭐 그런거에요?"

     웃지말고 말을 해요~ 말을.

     "지인이는 한식 좋아해?"

     으으! 말돌리기는!

     "왜요?"

     "우리집 가게 한식집하거든."

     음? 뭐 찌개백반 집 뭐 이런거? 잘 먹지. 당연히 한국 사람인데.

     "잘 먹어요. 한식집이면 어디에 있어요?"

     "서초동."

     땅값 비싼 동네구만.

     "서초동이라, 가게 이름이 뭔데요? 나중에 지나가게 될 일 있음 들려야지. 선배 이름대고 외상 그어도 되요?"

     장난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묻자, 같이 살짝 웃는 게.

     "연하각이라고..."

     연하각...? 백반집 이름치고는 꽤나, 분위기 있는...음...음...그런데 말야~ 나 어디선가, 연하각이라는 이름을 들은 거 같은데? 뭐였지, 뭐였더라? 아! 그래 얼마전에, 엄마가 텔레비전에서 최고의 맛집! 해서 나오는 한식집보고 자막에는 '연**'이렇게 떴지만 연하각이라고 말했다고! 엄마 아빠가 결혼기념일에 두 분이서 다녀온 곳이라고 하면서. 예약 없으면 들어가서 밥 먹기 어렵고, 그게 아니더라도 한정식 기본 한 끼에 일인당 드는 돈이 또 웬만한 월급쟁이 가서 밥 먹기 힘든데라고. 맞아, 맞아. 그래 그때에 그래도 연하각인지에서 밥 먹고 자식들 생각난다고 엄마가 '잣죽'을 포장해왔는데 정말 죽맛이 죽이게 맛있었다. 그 죽 포장해온 걸 봐도 아주 고풍스러운 하닞에 쌓여져서 포장 용기까지 분위기 있는게, 한자와 전통 문양으로 이름까지 새겨져 있고. 분명 방송 타면서도 엠씨들 하는 말이, 촬영하기 힘들었따고 했었지. 손님들한테 방해된다고 몇번 거절해서 말야. 분명 거기가 서울 강남 서초동...아니었나?

     "형~ 혹시 그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나온?"

     "응? 뭐가?"

     아, 가게 이름만 같은 건가? 하지마안, 누가 보통 백반집에 연하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냐고!

     "왜 얼마전에, 아니아니 잣죽 더럽게 맛있는 거기?!"

     "잣죽이 맛있었어? 전복죽도 괜찮아. 나중에 한 번 갈래?"

     .....그냥 식당집 아들이 아니잖아!!! 거기말야 손님들도 고위 간부층으로, 어지간한급 아니면 안된다며? 물론 일반 손님들도 찾고 거기에 어떤 기준이나 이런 게 있는 건 아니지만, 방이 다르다고 했다. 또... 자세히는 못들어봤어도.

     "형, 부잣집 아들이었구나."

     모르긴 몰라도, 그런 식당이라면, 식당이니 가게니 하기보다 식사업이겠다, 아주.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바른 식사 예절이 튀어나오겠지. 그런 곳에서 밥 먹으면서 질질 흘리고 젓가락질 제대로 못하고 삑사리나고 해봐라.

     "맛난 거 많이 먹고 좋겠다."

     "별로."

     별로는 무슨!

     "부러워라."

     "음...어차피 혼자 나와 살아서..."

     "어? 형 혼자 살아요?"

     "학교 근처 원룸에서."

     "진짜?"

     "응."

     우리집은 독립하고 싶다고 해도, 돈 니가 벌어 나가라라고 해서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건만, 그렇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지. 그냥저냥 대한민국 평범한 중산층이랄까? 하긴 울 아버지 말씀으로는 '집 있고, 빚 없는 것'만으로도 정말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했지만 말이지.

     "좋겠다아. 나도 독립하고 싶어."

     "그럼 우리집 들어올래?"

     ......웩....? 형 우리 지금 오래 만난 사람처럼 친하게 말 놓고 지내고 있긴하지만, 만난 지 얼마나 됬어요? -하긴 형이야 날 고등학교 때 봤다고 했지만- 사람 뭘 믿고 집에 들여요. 쩝,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나쁜 마음을 먹었따는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말이지. 기본적.

     "놀러는 갈게요, 나중에."

     시험기간이나. 흐흐흐. 술 마시고 차 끊기면.

     "밥은?"

     응? 웬 뜬금없이 밥이야?

     "잣죽이 맛있었다며?"

     "민폐잖아요."

     "괜찮아."

     괜찮기는. 형, 그렇게 이야기 나올 때마다 가게 데리고 가고 그랬으면, 부모님이 아무리 티 안낸다고 해도 말이죠, 아무래도 영업집인데...

     "괜찮긴요~"

     "한번쯤 데려와 보시라고 하시던걸."

     "응?"

     "애인이라던지, 후배든지... 선배든지."

     "으으으음? 사람 오는 거 좋아하세요?"

     "뭐, 그런 것도 있지만, 한번도 데리고 간 적이 없어서 아닐까?"

     "...한번도?"

     "응."

     "단 한번도?"

     "응."

     "가게에?"

     "집에도 거의 없었는데."

     뭘까나. 이건 그런데...

     "나한테는 왜 가보자고 해요? 그럼?"

     "잣죽이..."

     에이! 그놈의 잣죽 좀 때려치우고!

     "형, 나 마음에 들어요?"

     "매우."

     "어디가? 솔직히 난 별로 이해 못하겠는데. 내가 형 마음에 드는거야 그렇다고 쳐요. 난 형도 없었고, 형 무지 재미있으니까."

     "고마워."

     라면서 웃을 때냐? 생각해보니까 그렇잖아. 나 만나자마자 사고만 주르르륵 쳤는데. 내 어디가 마음에 든건데?

     "내 어디가 마음에 들어요? 형 취향 독특하다는 편이죠?"

     "음."

     "음??"

     "동생이 없다보니까, 동생이 생긴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게 한달까?"

     "에?"

     "나 집안에서 막내거든."

     "그건 알아요."

     "친가외가 통틀어 제일 막내."

     으으으으음!?

     "사촌 동생 없어요?"

     "딱 한 명. 여자."

     "아하?"

     "그 외엔 전부 형, 누나. 나 어릴 때 형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해서."

     아아, 원래 동생은 왕따가 되기 마련이지. 어디가도 안 데리고 가고. 솔직히 귀찮거든, 챙기기가.

     "그래서 나는 동생 생기면 정말 잘 해줘야지 했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컸구만. 만약 나였으면 동생 생기면 똑같이 스트레스 풀자!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걸... 아 이건 너무 삐딱한 건가?

     "그래서 나름대로 이런 분위기의 동생이면 좋겠다.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거든."

     "네."

     "너 같은 느낌의."

     "아...음."

     "기분 나쁘니...?"

     아니, 오히려 반가운데 이거. 그러니까 그렇게 고대하던 동생의 이상향이 나와 닮았따 이거 아냐?

     "그런 거에요?"

     "응."

     "좋은데, 나는."

     "응?"

     "나도 누나 한 마리에 동생 한 마리라서. 형이 있었으면 했어요. 왜 무슨 일 생기면 의논하고 의지하고 좋잖아요. 나 둘째기는 하지만 남자로는 장남이라서..."

     "으응."

     "그렇구나, 헤헤. 동생이라. 그럼 나 마음대로 어리광부려도 되는건가? 민폐끼치고."

     "민폐 아냐."

     부드럽게 웃는 게... 아 정말 형이라면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우리 철없는 진희 형말고, 말이지.

     "앞으로 진짜 잘 지내요, 우리. 아니,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뭔가 정말 이상적인 형제가 될 거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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