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8)
  • Campus Couple Cutting Club

    1

     "뭐라고?"

     살짝 미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살랑 살랑 부는 봄바람이 장난아니게 심장을 사정없이 두드리게 해서, 엄한 사람 잡은 거 아냐? 하고...

     사실 생판 모르는 남이면, 미치던 말던 신경 끄고 이 좋은 봄날 잠이나 자버릴 테지만 불행하게도 살짝 이상 기류 뇌 판정을 보이는 건, 학교에서는 선배요 혈연으로 '사촌' 그것도 '손위' 인 사람이라, 심히 걱정 되어버렸다.

     그래도 잘못 들었겠지 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되물었건만 반짝반짝이다 못해 번쩍번쩍이는 눈을 빛내는 사촌 형이란 작자가 또박또박 잘라 말하는 걸 들어봐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정신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거다.

     "C.C.C.C. 캠퍼스 커플 컷팅 클럽. 좋지 않아?"

    ***

     "야! 임마, 권지인. 어허! 어따 한눈을 파냐?"

     스매싱이라 테니스 부인가? 사진부도 있고 만화부. 에... 또 이건 자원봉사 부라?

     "쨔샤!!!"

     어허, 어디를 잡으시나? 아무리 사촌 형이라 그래도, 멋대로 어깨 비틀어 잡고 돌리면 쪼까 껄쩍지근한데?

     "넌 이미 찍혔다. 동생. 순순히 포기하고 대세에 따르지 그래?"

     미.치.겠.다. 우리 이모 아들. 그러니까 이종사촌.

     옛날부터 툭 하면 사람들 다 예상 못하는 걸로 사고치고, 일 저질러서 특이하다 특이하다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옆집에서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서 감 딴다고 쇼 하다가 개망신 당했을 때도-그때 옆에서 망봤다- 장사한답시고 지하철 안에서 앵벌이 하다가, 하필이면 이모부랑 딱 마주치는 정말 희박한 확률에 걸려 일주일하고도 주구리 장창 쿠사리에 옵션으로 타박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어이없다'라는 생각과 어느정도 최진희라는 인간에 대해, 그 본질을 파악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 말한 건 너무 예상 밖이라...원.

     "형, 형! 혀엉! 정신 차려라. 아파? 좋은 병원 소개 시켜 줘?"

     진심어린 충고에 콧방귀를 퉁 끼다니. 좋아, 좋다고! 병원 가기싫은 마음 백분 이해하지. 그래도 미치기 전에, 오매불망 아들 하나 믿고-딸은 둘 더 있지만- 사시는 이모와 이모부를 생각하고, 그래도 안 된다면 곱게 혼자 미쳐라. 대체 왜 날 끼게 하지못해 안달이냐?

     "좋아. 형 말대로 그게 돈이 된다 하자. 그렇다고 치자고!"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임마 진짜 돈이 된다니까? 한 건당 일이 성공할 때마다 가격은 가지각색이지만, 짭짤하게 용돈 벌이는 된단 말이다. 막말로 이 형이 사촌 동생 등 쳐 먹겠냐?"

     이봐요, 최씨. 최씨 고집 알아주고, 앉은자리에서 풀도 안 난다라는 말이 있지만, 될 때에서 고집을 피워야지!

     그래 따지고 따져서, 형 말이 다 맞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자고! 그래도 멀쩡히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커플 깨트리고 남의 눈에서 눈물 죽죽 뽑아내고 그러면 발 뻗고 잠 잘 수 있겠어? 사람이 말야 마음을 곱게 써야지.

     "됐어. 난 절대 안해."

     "야! 너 진짜!"

     슬슬 약이 올랐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안경 너머로 은근히 째려오는 눈빛이, 흡사 독 오른 살모사 새끼 같다. 

     그래봤자 거기에 넘어 갈 내가 아니지만. 내가 이리저리 한 두해 치이고 살았냐고. 위로는 천하 대장부 같은 누나에 아래로는 여우 새끼 저리가라인 남동생에, 둘째 설움 톡톡히 치르며 산 나다 이거다. 백 날을 째리고 백 날을 쫓아와 봐라, 내가 'OK'하나.

     들어봐라. 이게 말이나 될 소린지.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약 20일. 고삐리들 다 그렇듯 새 희망에 차서, 대학생은 자유! 라는 근거 없는 이빨에 넘어가 대학 문턱을 밟았는데... 말 그대로 그게 똥이었다. 제엔장. 대학생은 자율적? 웃기지 말라 그래라. 그래도 개기다가, 한대 맞는 걸로 끝나고, 수업 땡땡이 조금 쳐도 잔소리 한방으로 해결되는 고삐리 때가 훨 행복했다.

     이건 무슨, 고딩도 아니고 9시 수업 시작해서 풀인 날은 오후 6시에도 끝나니. 중간에 공강 시간이 있다 뿐이지 학교에 목메고 있는 건 변함 없고, 어디 교수 눈에 잘못 띄면 말없이 체크당하지, F로 협박당하지. 게다가 엠티 가서는 하늘같ㅇ느 선배에게 눈 부라린다고 지랄하는 미친 새끼가 있지를 않나... 이런 일들에 시름시름 지쳐가고 있는데, 나름대로 동아리 들면 재밌다고 주위에서 그러길래 학교 게시판과 담벼락에 붙여진 동아리 소개를 쭈욱 보던 중 이었다.

     그런 내게 슬금슬금 다가온 건 최진희. 나의 이종사촌 형.

     '뭘 보냐~?' 로 시작된 이야기의 물꼬. 그게 점점 이상 방향으로 흐른다 싶더니 히죽히죽 웃는 눈초리가 어딘지 정상이 아닌 것도 같았따.

     거기에 은근히 미심쩍은 눈길을 보낼 때쯤, 터억 내 어깨에 손을 오 ㄹ리고 은밀히 귓가에 속삭여 온 말은...

     '돈 되는, 동아리가 있는데 들 생각 없어?'

     흡사, 사기꾼들이 착한 사람 등 쳐먹듯 달콤하고 은은하게... 아! 정정한다. 느끼하게 버터와 마가린을 비빈 듯한 음성으로 꼬드기는게~ 영 불안하긴 했지만 사람 누구나 그렇듯 '돈'이라는 키워드 앞에서는 불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과 같은 것. 또 내가 혹했지! 혹했어.

     '뭔데? 그런 것도 있어?'

     지금 생각하면 대꾸해주는 게 아니었다. 저 인간과 얽혀서 좋았던 일이 하나라도 있었냐고. 꼬옥 마지막에 삼천포로 빠져서 삑사리나고, 어디 줘 터지기나 하고. 그런데도 그놈의 핏줄이 뭔지... 나름대로 진지하게 눈을 빛내는 형의 말을 꼭 들어줘야만 할 것같았따. 여하튼 순진하게 되묻는 내게 좀 더 가까이 내 귀를 입에 대더니만, 일급 국가 비밀이라도 말하는 양... 속삭였던 말은.

     'C.C.C.C. 이름하여 C4.'

     고백한다. 사실 나 맨 처음에 저 소리 들었을 때 화학 기호인줄 알았다. 유난히 약했던 물리, 화학의 이과 계열. 못 외웠던 화학기혼가? 그렇다면 과학 분야의 동아리? 그럼 곤란한데...라고 살짝 인상 긋는 내게, 뒤이어 들렸던 말은 '뭐라고?'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던 내용.

     '캠퍼스 커플 컷팅 클럽이라고... 애들 의뢰받고 커플 깨주는 동아리야.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그 소리를 듣자마자 뒤돌아서 와버렸다. 물론, 이런 내 행동에 오기가 발생했는지 최진희 이 인간 끝까지 날 따라붙어 지금처럼 등을 쏘아대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하아! 형! 셔터 마우스! 그 입 다물라! 다물라! 시끄럽다, 진짜. 정말로 형 머리를 해부해보고 싶단 나의 마음을 알아?"

     "매한가지다, 새꺄! 너 우리 클럽 들어오기가 얼마나 까다로운 줄 아냐? 넌 거기에 영광스럽게 스카웃씩이나 된거야."

     얼어죽었다, 스카웃이.

     "다른 건 몰라도, 임마 니가 이모닮아서 외모 빨은 좀 되잖냐."

     "칭찬 고맙네. 하지만 곧 죽어도 나 절대로 그런 얄딱구리한 곳에 들 마음은 없어. 그것만 알아둬."

     딱 잘라 말하고 깔끔하게 테두리를 넣어 만든 벽보(동아리 홍보)에 시선이 가서 쳐다보자, 꽤나 흥미가 땅긴다.

     [새로운 대학 생활을 원하십니까? 원하는 걸 아직 찾지 못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주저없이 학생회관 307로 오십시오. 07학번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K대 동.아.리.]

     "형, 이건 뭐야?"

     "그러니까 설라무네 우리 써클이 말이지.... 응? 뭐?"

     내 관심이 어디에 가있던 말던 끈질긴 마이페이스를 자랑하며, 여념없이 C4인지 누나가 미쳐보던 F4인지를 자랑하던 형이 내 말에 지긋이 인상을 쓰며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벽보를 바라본다.

     검은색 바탕에, 은박 테두리. 그리고 하얗게 또박또박 적혀있는 글자를 보자 어딘지 좀 고혹적이면서도 분위기 있고 긴 생머리를 찰랑이는 그런 여자의 센스가 묻어나는 거 같은 게... 형도 알잖수. 내가 또 첫사랑 이후로 때때로, 혹은 가아끔 긴 생머리의 청순한 그녀들에게 뻑뻑 가는 거-물론 기본적으로 매력이 좀 있어야겠지만-

     "이거언... 학교동아리야."

     "누가 그걸 몰라? 학교 안에 붙여져 있었으니 학교 동아리겠지. 뭐 하는 동아리냐고."

     "딱히 뭐 하는 거 없어."

     툭 내뱉듯 말을 던지고 팔짱을 낀 채로 '흐음' 콧소리를 내는 게 뭔가 있네~ 뭔가 있어. 그러지말고 말 좀 해보시지?

     "밥 달라는 개새끼마냥 뭐냐 그 초롱초롱한 눈은?"

     인상쓰지말고, 썰이나 풀어보쇼. 가십거리 좋아하고 어디 냄새나는 거 기똥차게 쫓아다니는 사람이 이거 모른다면야 되겠어? 당신 말마따나 스카웃씩이나 하는 사랑스런 동생 아니우. 비록 사촌이지만.

     "뭐랄까, 이쪽은 확실히 정말로 딱히 하는 거 없다니까."

     슬슬 머리를 긁적이곤 설명하기 귀찮다는 티를 팍팍내며 어깨를 으쓱여보이더니, 이내 내 얼굴을 한번 흘낏 쳐다보곤 한숨을 한번 내쉼다.

     "흥미있냐?"

     "들어봐야알지."

     "말 그대로야. 이 동아리는 뭐든 해."

     "뭐든 해드립니다? 무슨 심부름 센터야?"

    빡!

     "윽! 왜 때려?!!"

     "귀여워서 때렸다? 어쩔래?"

     요즘은 애정 표현이, 폭력이야? 어우, 젠장.

     "이 놈들은 하는 거 딱히 정해진 거 없어. 가끔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토론도 하고... 심리테스트? 뭐 그런 것도 봐주고. 무엇보다 지들끼리 노는 시간이 훨 많지. 뭐 어느 동아리가 아니 그렇겠냐만은."

     "에헤? 다양하네. 그런데 보통 사진이나 토론 뭐 그림같은 건 다 각 동아리가 있지않아? 용케 허가났네."

     "말도마라. 독종이야, 여기 있는 것들은. 내노라하는 학교 인재는 여기 다 모였다해도 과언이 아니지. 어떻게보면 수재모임 같기도 하고."

     "엑?"

     "관심끊어. 별로 너랑 맞지도 않는 거 같고. 아! 저번 학년에서는, 뭐였더라? 그래, 동아리 찾아오는 녀석들에게 다짜고짜 영어로 질문하고 영어로만 이야기해서 들어갔다가 말 한번 못하고 동방 나온 녀석들이 80%이상일걸?"

     두려운 동네였군. 영어로 다짜고짜라니;

     "그러니까, 돈도 되고 사람 좋고! 미모 빨있는 우리, C.C.C.C.에... 어때?"

     "됐네!"

     끈질기게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말에, 더 듣다가는 귀가 짓무를 거 같아서 휙 발길을 돌리자 후다다닥 따라온다.

     "형은 수업도 없냐?"

     "대출 다 심어놓고 하는 짓이니라. 좋아. 간다고!!! 드는 거 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한번 와보기라도 해라."

     "뭐야? C.C.C.C.라는 이런 어이없는 것도 학교에서 동방을 내줬어?"

     이거 학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는 인간들에게 역적모의(?)장소를 내주다니?

     "쨔샤, 좋은게 좋은거라고. 우리 동아리 그래도 겉포장은 토익, 토플 동아리다."

     "하아?"

     "이렇게 해두면 찾아오는 사람 별로 없걸랑. 여튼 학생회관 311호니까, 이따 2시쯤 와라."

     멋대로 약속까지 잡으시네~ 정말이지 최진희한텐 한번 물리면 끝장인데 말야.

     "어구구 이쁜 지인씨. 형 말 안들으면 4년간 재수없고, 여자친구랑 잘때~ 흐흐... 그거 안 선다~"

     "혀엉!"

     은근슬쩍, 그리 말하며 손으로 투욱 그곳을 두드리고 킬킬대는 인간을 바라보자니 열만 오른다. 뻔뻔하게 손까지 휘적휘적 흔들고 뒷걸음질을 치며 가버리는 모습을 보다, 툭툭 이마나 두드렸다. 하아. 2시라. 앞으로 쭈욱 공강이니까, 어디가서 한숨 자면서 시간이나 죽여야겠다.

     그나저나 어느 동아리에 들어야 잘 들었다고 소문이 날까?

    ***

     봄바람 불어 뛰어다니고 싶은 심정들은 이해하겠소.

     처녀 마음 울렁이게하고 만물이 소생한다는 생기넘치는 봄인데 오죽하겠냐만은, 그래도 당신들 너무 심한 거 아냐? 땃땃한 봄에 옆구리의 허전함을 느끼고, 외로이 벤치에 누워자는 불쌍한 신입생한테?

     "아잉~♡ 누가 보면 어떻게 해."

     눈 썩을까 보진않지만 맘껏 뚫린 귀라서 들리기는 합니다만?

     "볼테면 보라지. 뭐 어때, 이리와봐."

     "오빠도 차암. 쪽팔린단 말야."

     "쪽팔리기는, 여기 원래 우리 학교 커플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들 커플끼리 왔는데 뭐 어때."

     그랬던 거요? 그랬던 거였어? 하긴, 이렇게 살랑살랑 달콤한 바람까지 불고 시원하게 호수 앞에 자리잡고 나무 그늘까지 있는 곳이 연인들의 명당이 아니라면, 그것도 말이 안되지만... 그래도 여기에 무슨 '연인 사이 아니면 오지 말 것!'이라는 푯말이 없는 이상 나처럼 이상한 나라에 오듯 잘못 흘러 들어오는 케이스들도 생각해줘야지.

     "여기 혼자 온 놈이 병신이지."

    ...그래 나 병신이다.

     "오빠안~ 참! 나 도시락 싸왔다~ 맛은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꾸르륵. 그러고보니, 나도 점심 안 먹었는데... 누군 좋겠네~ 여자 친구가 손수 도시락도 싸오고.

     계속해서 등 뒤 너머 벤치에서 들려오는 쌍쌍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가뜩이나 처량맞아지고, 그 신체 부각시키듯 뱃속의 거지새끼도 밥 달라고 찡얼찡얼이다.

     "뭘 그런 걸 싸와. 그냥 나가서 사먹으면 되는데~"

     "그런 것도 하루이틀이지. 차암~ 나가서 사 먹는 거에 미원이니 뭐니 얼마나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는 줄 알아? 난 그런 거 하나도 안 쓴단 말야."

     조오케따~ 누군 몰라서 먹냐? 미원이 국자로 퍼져서 들어가는 거 나도 다 안다. 하지만 주린 배 생각하면 먹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

     투덜투덜거리다가, 슬슬 치밀어 오르는 애정 행각의 콧소리에, 심기가 불편해져 버렸다.

     잠이고 뭐고 도서관이나 갈까해서 벌떡 등을 일으키고 마지막으로, 어디 닭살 커플 얼굴이나 볼까해서,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는데...

     오 마이 갓갓갓!!! 하? 하아아? 커플들은 그렇게 뻔뻔해도 된다고 누가 정해줬냐? 야! 야! 인간적으로 니들은 밥 먹다가 주둥이 문대고 싶냐?

     어이없이 눈 안을 가득 채우는 딥키스 장면에 얼이 빠져 한참을 쳐다보는데...-더불어 얼굴도 찡그리면서-

     "꺄악! 뭘 쳐다봐요!"

     ...실, 실례했습니다만. 보고싶어서 본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마쇼."

     "너 뭐야!"

     지나가는 외로운 방랑자라 하겠소.

     "이거 변태아냐?"

     "변탠가봐! 우리가 한 말 다 엿듣고 있었을 거야!"

     이봐요. 두터운 파운데이션의 아가씨. 말이면 다 하는 줄 알아? 나처럼 깔쌈하게 생긴 변태 봤어? 아 물론 변태라고 다 바바리에 기름진 피부에 바코드 머리를 하고 있으란 법은 없지만... 아니 아니 그런거 다 제껴두고서라도 변태가 남 키스하는거 쳐다보면서 노골적으로 '싫~다'라는 표정을 격렬하게 표출하는 거 봤냐고!

     "무슨 말을 그렇게. 원래 저 여기 먼저 와 있었어요."

     억울함에 결백을 증명해 봤지만, 둘이 뭉쳐서 사람 하나 병신만드는거 순간이라고...

     "그럼 인기척을 냈어야지!"

     "맞아!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남 키스하는 거 그렇게 보고싶어? 보고 싶냐고."

     절대 보고 싶지 않은데... 그러니까 난 보려고 본 게 아니라니까? 아니 누가 공공장소에서 밥 먹다말고 뽀뽀하랫?!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고보니 날 음흉하게 쳐다보잖아?!"

     뭐뭐뭣?!!! 어디서 그런 쌩 구라를? 난 두터운 화장 빨에는 관심없어! 남자들 중요 표어가 뭔지 알아? 다시 보자, 화장빨, 속지말자! 조명 빨!

     그런데도 망할 녀석은 지 애인 말에 깜박 넘어가서 있는대로 날 부라리더니, 금세 주먹이라도 치켜올릴 모양을 잡는다. 최진희! 당신. 당신이 왜 그런 요상한 클럽에 들어있는지 나 지금 너무 이해가 가도 절절하게 넘쳐흘러! 암암! 이런 썩을 인간들이 학교에 넘쳐나면! 당연히 갈라놓고 싶지이!!!

     "그... 그게 아니라니까~ 아아악!!"

    ***

     큼직하게도 'TOEIC. TOEFL' 이라 쓰여진 문을 쳐다보다 약간 쓰라린 입가를 매만졌다.

     "읏."

     생각할수록 분하기 짝이 없다. 뭔 죄가 있다고 내가 날아오는 주먹에 얼굴을 내줘야 한단 말인가?

     때려놓고도 그제서야, 자기가 성급했던 걸 안 건지, 굽신굽신 허리 숙여 마구 사과하던 뽀글 머리 사내놈과 화장빨 마녀. 정말 맘 같아서는 진단서 확 떼다가 집어넣어 버리고 싶었지만, 같은 학교 학생이고, 또 사랑에 훼까닥 가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숙을 다스렸다. 따지고 보면, 그래 솔로인 내가 커플 노는데 낀 게 미친 짓이었지. 내가. 허이고.

     여튼 답답한 가슴을 쿵쿵 내려치고,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똑똑 두어번 정중히 동방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바로 뒤따라 들리는 음성은, 낭랑하고 부드러운 하이 톤.

     "들어오세요~"

     '꾀꼬리가 울고 가겠다~'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자, 차곡히 정리 잘된 동방 분위기가 드러나고, 그 가운데 있떤 여자가 날 향해 생긋 미소를 띄운다.

     "무슨 일로?"

     "에, 그러니까 진희 형 있나요. 진희 형 좀 만나러 왔는데."

     인간이 이럴 줄 알았지. 2시까지라고 자기가 정했지, 내가 정했나? 자리에 붙어있는 꼴을 못 봐, 아주.

     속으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진희 형을 씹으며 억지로 미소를 만드는 순간.

     "어머! 그럼 네가 진희 사촌 동생?"

     이쪽엔 관심도 없다는 듯 책을 읽고 있던 여자 한 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빠르게 다가와, 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한다. 아니 사람 처음 대면에 무안하게...

     이봐요, 적어도 '안녕'이라든가, '처음 봐'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쇼 윈도에 있는 옷 구경하듯 이리저리 뱅뱅 돌면서 '어머 어머' 연발이라니...

     "자랑할 만 하네."

     게다가 뜻 모를 소리까지.

     "네?"

     멍하니 되묻는 내게 찡긋 윙크까지 해오는 그녀.

     내 얼굴 앞에서 이제야 똑바로 서는 바람에, 제대로 얼굴을 살피자... 확실히 미인이다. 이 정도는.

     몸매도 곱게 빠지고... 뭐랄까, 처음 들어오라고 말했던 목소리 고운 쪽도 매력적이지만, 나라면 이쪽이 더 좋다고 할까? 물론 취향의 문제지만.

     "어머? 몰랐어? 진희 걔가 사촌 동생 자랑을 얼마나 했다고. 네가 권지인 맞지?"

     네. 제가 권지인은 맞습니다만 앞에 한 말이 자꾸 걸리네요. 거? '진희 걔가 사촌동생 자랑을 얼마나 했다고.' 라니. 차라리 익사사고 영순위 맥주병 최진희가 태평양을 헤엄쳐서 건넜다고 하지?

     "맞지만..."

     "잘생겼네. 아니 이쪽은 곱다고 해야하나? 확실히 전력에 도움이 되겠어. 만나서 반가워~ 난 한승희야."

     "아, 오렌지 쥬스. 자, 나는 이가영."

     정신없이 말을 던지는 한승희라는 여자에게 벙쪄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새 과방 한쪽에 구비된 작은 냉장고 안에서, 오렌지 쥬스를 따라내 온 가영이라는 여자.

     멀뚱히 서 있다가 컵을 받아들고 꾸벅 머리를 숙이자, 생긋 미소를 흘린다.

     "앉아. 앉아서 이야기하자."

     어어? 밀지 말아요. 손에 컵 들렸다고. 으앗, 쏟겠네! 거! 나도 서 있는 거보단 앉아있는게 헛배는 좋으니까, 밀면서 재촉 안해도 다 알아서 앉는다구요. 아아앗~~ 거봐! 결국 쏟았잖아!

     등을 떠밀리다시피 '어어?'하며 쇼파로 가는 사이, 결국 손 위로 오렌지 쥬스가 찰랑 넘쳐서...

     "어머, 의외로 덜렁거리네."

     취소다. 미인이고 어쩌고. 이 여자 은근히 사람 열받게 한다.

     "괜찮아~ 실수 할 수도 있지."

     농담해? 등 떠밀려서 쥬스 쏟은 게 실수야? 당신 눈 없어?

     "네."

     그래도 묘하게 연상의 박력에 눌려, 꼬박 존댓말하며 묵묵히 테이블 위에 티슈를 뽑아 손을 슥슥 닦자 나 하는 양을 양쪽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요?"

     그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자, 어깨를 으쓱이며 팔짱을 끼는 폼이.

     "한대 피울래?"

     그리고 눈 앞으로 내밀어지는, 말보로 레드. 켁, 저 독한 걸.

     "아니요."

     "괜찮아, 피워도."

     거기에 생긋 하고 웃어봤자, 하나도 안 예뻐...보이지는 않지만, 여하튼 사양이라고.

     "별로. 흡연을 즐긴느 편이 아니라."

     "어머~ 그 점도 나름대로 합격점이네."

     "네?"

     "술은? 주량이 얼마야?"

     "에? 그러니까 소주 두 병정도?"

     그 이상은 먹으면 괴로운 걸 아니까 안 마신다. 따악 두 병 까지가 알딸딸하고 기분 좋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게 내가 중심인 거 같고. 한 서너 번 2병 이상을 마셨는데, 한번은 기억이 군데군데 잘려버렸고 또 한번은 숙취로 엄청 고생했었다.

     "좋아좋아, 적당해."

     "......?"

     "키가 몇이야? 음... 175...? 177?"

     이 여자 보통 눈이 아니네. 딱이다. 176.5cm

     "그 정도요."

     "키도 뭐 나름대로 합격점. 외모도 준수하고 말야. 잘 왔어. C.C.C.C.에. 앞으로 자주 볼 건데 친하게 지내고. 말 놔도 돼."

     저기,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치고 사물놀이 하는 마당에, 초를 쳐서 미안한데, 나도 말 좀 합시다.

     남의 신상명세 쫘악 물어봐 놓고 평가하듯 '합격'운운 하더니만, 뭘 자주 본다는 거야? C.C.C.C.인지 뭔지에 내가 든다고 했어? 안했잖아. 멋대로 결정 내리면 섭하지.

     "저..."

     "응?"

     "저는 여기 들 생각이 없는데요?"

     싸아아아. 소리가 들렸다, 들렸어. 승희라는 여자야 그렇다고 치지만 조용한 성격철머 보이던 가영이라는 여자까지 움직이던 손을 그대로 딱 멈추고 날 빠안히 들여다본다.

     "뭐?"

     "그러니까, 전 여기 지...진희 형을 만나러 온건데?"

     "들 마음이 없다고오?!"

     "그...네."

     뭔가 말하기 힘든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대답은 해야 할 거 같아,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말을 하자, 이 승희라는 여자 전의에 불탄 전사처럼 화르륵 열기를 내뿜더니 급기야 내 얼굴 앞으로 고개를 바짝 들이민다.

     "너 어디서 일 하냐?"

     신입생이 그럴 정신이 어디있겠어. 당연히 놀고먹는 백수지.

     "아...뇨."

     "그럼 하루가 35시간이었음 좋겠다고 바랄 정도로 바빠?"

     35시간은 무슨. 24시간도 놀 때는 지루해서 '빨리 빨리 가라'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아니요."

     "그럼!! 무슨 똥배짱으로 이 좋은 자리를 걷어차!!"

     버럭 버럭 승질을 내듯 언성을 높이는 여자를 멍하니 쳐다보다, 어이없음에 입이 벌어질 때쯤, 스윽 동방 문이 열리더니 빌어먹을 문제의 원인인 최진희가 들어온다.

     "어? 먼저 와 있었네. 어라라, 그런데 이거 분위기가 왜이래?"

     잘 왔수다. 이런 무서운 싸이코가 있는 곳에 날 초대해 놓고 어디서 뺀질거리다가 이제 나타나?

     "야! 최진희!"

     "왜 소리를 질러!"

     "니 사촌동생 안 든다잖아!"

     "나도 귀 있네, 알고있다. 짜식이 더럽게 튕기잖아."

     이..봐요들. 보통 이런 건 튕기는 게 당연한거 아냐? 누가 남 잘 살고있는데 짱돌던져 파탄을 내고 싶어해! 누가?!

     "권지인! 잘 생각해봐. 잠깐의 방해공작으로 깨질 정도면, 애정이 그리 깊지도 않았다는 소리잖아. 안 그래? 만약 안 깨지면 애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서 좋은 거고!"

     상황에 맞게 갖다붙이기는, 그런다고 내가 거기에 홀랑홀랑 넘어갈 것 같아?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고. 남의 눈에서 눈물 뽑는 인간은 자기 눈에서는 피눈물나는 법이라고. 돈 때문에 쏠랑쏠랑 남의 커플 깨놓고 좋아하면 죽어서 지옥 장부에 다 남는 답디다!

     "그래, 지인아. 웬만하면~ 들어라. 요즘 인물이 없어서 건지기 어렵다고."

     "언제는 나보고 만들다가 만 얼굴이라며?"

     "야~ 그건 놀리려고 한 말이지. 짜식이."

     "여하튼 난 싫어. 이거 확실하게 거절하려고 온거야."

     "권지인~ 너 진짜 자꾸 튕길래?"

     "튕기는 게 아니라 싫다니까, 그러네?"

     "정 붙이고 하다보면 좋아."

     그러니까 설라무네! 누가 남 커플 깨트리는 일에 정을 붙이고 싶데? 그야! 아까 만났던 커플처럼 사람 승질 바락바락 받히게 하는 인간들만 있다면 뭐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난 기본적으로 나한테 피해 안 끼치면 한없이 너그러워 진다고. 나 안보는 곳에서 뽀뽀를 하던 탬버린을 흔들던 무슨 상관이야.

     "후회한다, 너."

     "형이야말로."

     이제 그만 정리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슬쩍 자리에서 일어서자, 가영이라는 여자와 승희라는 여자까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거참~ 아가씨들도, 예쁘게 생겨서 마음을 곱게 써야지, 남 커플 깨면서 놀고 싶수? 우리 집안 외계인 최진희야 백 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러니까, 형 앞으로는 나한테 그런 소리하지마."

     잘했다, 권지인! 물론 돈이 궁하고, 돈이 무지하게 좋지만, 그래도 힘내서 커플을 깨부수자! 는 웃기잖아?

     스스로에게 칭찬의 말을 하며 손을 흔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순간 무언가 발에 터억 걸린다 싶더니, 어라라...하는 사이에 휘익 발목에 감기는 느낌.

     그리고 뭐지? 하는 의문점을 가질 사이도 없이 휘청, 몸에 균형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순간에조차 스타일을 생각해 '쪽팔려!'따위를 떠올리는 장한 일도 함께! 그런데 얼얼하게 무릎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더 머리를 강타한 건 내가 바닥에 자빠지는 소리를 뒤이어 바로 뒤따르는 '쿠당탕!!' 소리.

     그리고...

     "이런."

     "헉!! 권지인!"

     "후읍."

     심적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을 떠안게하는 외마디 음성들...

     자빠진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시선 끝에 똑바로 와 박힌 건 처참하게 깨부서진, 노트북이라는 고가의 물건.

     "이...이거, 승호형이, 알바 뛰어서 산 그 꿈의... 노트북 아니냐? 3백을 거의 호가하는..."

     그리고 천천히 울리는 장송곡과 같은 대사들.

     "허억!"

     "맞아. 애지중지 했는데."

     "꿀꺽!!!"

     내... 내 통장에 얼마가 있더라? 그러니까... 그게... 으으윽!

     서서히 무릎의 통증대신 얼굴에서 빠져나가는 핏기에 눌려갈 무렵, 결정적으로 날아온 한 마디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거... 오빠가 대회에 낸다고 글 쓰던 거 아니었어?"

     완전히 핏기가 가셔버렸다...

    ***

     "하아..."

     미남이 인상쓰니 더 박력있...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죽여주세요.

     "하하하. 사람이 살다보면, 그래 실수 할 수도 있지. 있어, 암 있고 말고!!!"

     차라리 죽도록 맞으라고 해라. 그렇게 웃으면서 절규하니까 더 무섭잖아!

     "권지인이라고 했지?"

     "네."

     "아하하, 그렇게 얼지 않아도 된다. 내가 설마 너보고 장기팔아 노트북 갚으라고 하겠냐?"

     묘하게 박력있는 음성이십니다?

     정말이지, 재수가 없어도 어떻게 이리 없을까. 혹 떼러와서 혹 붙여간다는 소리가 이런 것? 정말이지 죽을 맛이다. 아까까지, 지겨운 사촌형의 권유에, 따악 밥맛떨어지게 하는 닭살 커플의 행패에 조금쯤 암흑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거다! 1~2만원하는 게임기도 아니고, 수백하는 노트북 전선이 내 발에 휘감길게 뭐냐고! 대체.

     꼼짝없이 사고 친 순간부터 '그대로 멈춰라!' 상태로 동방에 대기하기 어언 30분. 헐레벌떡 달려와, 고이 모아둔 노트북의 파편을 말없이 응시하던 남자는 이내 글썽글썽이는 눈을 해 보이더니, 천천히 내게 시선을 맞춰왔다. 그 불쌍해보이지만, 숨겨진 박력에 히끅거리며 사과조차 제대로 못하는 내게 뜻밖에도 남자가 웃어보인다 싶더니, 자세히 들여다보니, 맛이 가서 웃는 거였다. 비실비실..이렇게...

     "어...어떻게든 갚을게요. 정말 죄송해요."

     "당연한거고 그건."

     꿀꺽. 그, 그렇죠? 갚는 건 당연한 거죠?

     "노트북 값이야, 갚는다고 치자. 내 피와 땀과 눈물이 섞인 글은 어떻게 할래?"

     약간 정신이 나간 듯 추궁하는 태도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역시 아까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 하는 말은 제정신이 아니기에 나온 이야기인 듯-

     "죄, 죄송..."

     "나 백업해 둔 것도 없고, 원고 마감은 내일 모래인데... 하아, 정말이지. 물론 아슬아슬하게 놔둔 내 잘못이기도 하지만."

     끝없이 중얼중얼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말 나까지 울고 싶어졌다. 거의 300이 되는 돈과 이 사람의 그... 피와 땀 어쩌고 한 글까지.

     "좋아, 이렇게 하자."

     한참 아무도 말이 없는데, 겨우 타결책을 찾은 듯 남자가 크게 숨을 내뿜고는 턱 내 어깨를 짚어왔다.

     "네넷?"

     "너 우리 C.C.C.C에 들어라."

     컹컹컹! 멀리서 개가 짖는 줄 알았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웬 농담? 이라는 생각까지 들었고. 하지만 남자의 눈은 더없이 진지해보이기까지 했으니.

     "그, 그걸로 되요?"

     가입하는 것만이라면, 이 상황까지 와서 못 할게 없겠지만서도... 정말로? 그걸로? 모든 게? 땡?!!!

     "단!"

     그럼 그렇지. 가입하는 걸로 빚이 모두 청산되겠어. 세상살이가 얼마나 팍팍한데.

     "여기서 일해서 내 노트북 값을 갚을 것."

     "에엑?"

     "거의 한 커플 깨는데 평균으로 버는 돈이 십 만원이야. 수입은 그 일 맡았던 사람이랑 써클이 2:8로 나누고. 웬만한 아르바이트보다 낫잖아?"

     "그래도...양심상."

     "그럼 남의 노트북 부수고 나몰라라 내버려두는 건 양심에 안 찔리냐?"

     정공이다. 이거. 빼도박도 못하고 아예 밀어붙이는게, 아주 물 만난 물고기다.

     "네... 하...할게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학교 공인 커플을 깨는 거야. 나 졸업하기 전에 그것들 헤어지는 거 보는 게 소원이니까 잘하라고."

     웬 놀부 심보야? 공인 커플까지 깨라니? 자기가 직접 의뢰해도 되는 거야?

     속으로 새록새록 떠오르는 생각에 인상을 살풋 쓰는데, 터억 다시금 강하게 어깨를 죄어오는 손아귀 힘.

     "이.걸.로 내 사랑하는 써니와 헤어지게 한 건, 용서할 테니까. 아주 싼 편 아냐?"

     하아, 내 대학 생활은 초장부터 암흑이다, 흐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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