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rashi
Part 3. 연인이 생기다 편 최종회
다현은 눈을 크게 뜬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난 그런 녀석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했지……"
내 말에 흠칫, 하고 녀석의 몸이 작게 떨린다.
"나쁜 생각 같은 건 하나도 나지 않는다고 했지……"
녀석이 나에게 했던 말.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 난 입안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말하는 것을 멈출 순 없었다.
"행복한…… 행복한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지……."
다현은 이제 굉장히 기묘한 것을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난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현은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녀석의 주위만 시간이 정지한 듯 했다. 난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내 옆에 있어, 다현아."
"……."
"내가 책임지고, 바보로 만들어줄게."
"……."
풋- 하고 정적 속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크크큭 하고 고요한 가운데 맑은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다현이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점점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데, 뒤에서 웃고 있던 하늘이 어느새 웃음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욕심 좀 부려, 다현아."
다현이 다시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욕심 좀 부리라고. 니꺼라고. 그렇게 말하는데도 못 알아 듣겠냐?"
녀석은 천천히 얼굴을 돌려 하늘이를 보았다. 하늘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녀석을 마주보고 있었다.
"널 사랑한다잖냐. 내가 아니라. 엉?"
아니, 그 낯 뜨거운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다니!
잠시 당황하고 있는데, 그 말에 녀석의 경직된 몸이 다시 천천히 내 쪽을 향했다. 이, 이런. 난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녀석을 마주보았다. 어때, 다렁아. 느껴지니? 응?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눈동자에서 느껴지지 않아?
"푸하하!"
하늘은 웃음을 터트렸으나 다현이는 웃지 않았다. 녀석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나도 도저히 장난칠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난 온몸을 뻣뻣하게 긴장시키고 녀석을 보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녀석은 한동안 그 묘한 표정으로 날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가 어느 순간, 천천히 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욕심 부려, 다현아.'
하늘이의 말이 겹쳐 떠오른다. 난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걸 느꼈다. 녀석은 한발한발 나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은 마치 걸음마를 처음 배운 아기처럼 느리고 서툴러 보이는 모습이었다. 난 점점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뿌옇다. 가슴이 북받쳐올랐다. 하지만 난 나에게 다가오는 녀석을 똑바로 마주보려 애썼다. 어쩐지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마치 본래 동작의 몇 배는 느리게 만든 것 같은 걸음걸이로…… 마침내 내 앞까지 걸어온 녀석은 한발 짝 정도의 틈을 두고 걸음을 멈췄다. 녀석은 고개를 숙여 날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엔 아직도 망설임의 빛이 희미하게 어려있었다.
사랑해…… 사랑해, 다현아…….
난 속으로 녀석을 향해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한참 동안 날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던 녀석이 문득 내 쪽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흑."
난 기어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볼을 스치고, 귀 뒤를 지나 나를 감싸안으려는 녀석의 손가락이, 몹시 심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현아…… 다현아…….
녀석은 손을 덜덜 떨며 굉장히 애처로운 동작으로 나를 감싸안았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이. 너무나 안타깝고 조심스럽게. 나는 녀석이 나를 확실하게 끌어안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울음으로 인해 온몸이 들썩들썩 떨려왔지만 필사적으로 억누르려 애썼다.
녀석은 천천히 내 머리와 등을 감싸안았다. 그 엉거주춤한 동작이 평소라면 웃음을 터트리고도 남았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굉장히 안타깝고 슬프게까지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나는 녀석의 그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서 지금까지 녀석이 얼마나 힘들고 아파했을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
그러다 어느 순간, 녀석이 날 꽉 하고 강하게 끌어안아왔다. 난 눈을 크게 떴다. 숨이 막힐 것처럼 강한 힘이었다.
"정지후……"
"……."
"지후야…… 정지후……"
"……."
안타까울 만큼 애타는 목소리. 녀석이 고개를 파묻고 있는 내 어깨 위가 축축하게 젖어간다. 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다현아……. 다현아, 얼마나 힘들었냐…….
나도 손을 들어 녀석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날 끌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이 들어간다. 난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럼 제 3자는 여기서 이만 자리를 비켜줘야겠군."
그때 문득 하늘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현이를 끌어안은 채 녀석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하늘이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더 보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잘 마무리 지어놓으라구."
"……."
난 창피함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현이는 여전히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 잠깐, 하늘아…… 우리가……"
"낼 아침에 들어올 테니까 맛있는 거 해놔라. 정다현, 그러고 있어도 듣고 있는 거 다 아니까 알아서 해. 나 반찬 다섯가지 이상 아니면 밥 안 먹을 거다. 그럼 이만 나갔다 올게."
"하, 하늘아……"
난 난감함에 중얼거렸다. 방으로 들어와 대충 윗도리를 갈아입고 지갑을 챙겨들던 하늘이 내 부름에 고개를 돌린다.
"엉? 지후 넌 푹 쉬어도 돼. 걱정 마."
"……."
아니, 그런 걸 걱정한 게 아닌데.
잠깐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사이 하늘이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곧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걸음을 멈춘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
난 의아한 표정으로 녀석을 보았다. 하늘이 고개를 돌린다. 녀석은 어쩐지 굉장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참기 힘들면 내 침대 써두 된다. 내 특별히 허락하마."
"……."
난 입을 다물었다.
"침대 시트는 꼭 빨아놓고. 필요한 물건은 옆에 서랍에. 그럼 난 진짜 이만."
탕-
그리고 하늘이는 집을 나갔다.
잠시 짧은 정적이 흘렀다. 난 다현이의 등에 팔을 두른 채 넋이 나가있었다. 하늘아, 널 누가 말리겠냐. 진짜 강적이다. 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새삼 하늘이란 인물에 대해 존경을 표했다. 그때 다현이 조용히 입을 열어 정적을 깨트렸다.
"……지 마."
"엉?"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
"그만 둘거면 지금 그만둬."
"……."
─누군가에게 끌리기 시작하면 그 감정에 충실하기 이전에 공포심을 먼저 느끼거든. 그래서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고, 말도 안 되는 허세만 부려.
하늘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녀석은 또 한발짝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난 어쩐지 안쓰러운 느낌과 화가 나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내가 여기서 그만둔다고 하면? 그럼 정말로 그만 둘거냐? 응, 다렁아?
알고 있다. 그저 확인사살일 뿐이겠지. 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 난 손을 들어 녀석의 머리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귀여운 다렁아. 좋아한다는 말 하는 게 그렇게 힘드냐? 엉?"
"……."
녀석의 몸이 살짝 경직되는 게 느껴진다. 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말을 이었다.
"자자, 얼른 해봐. 막상 해보면 별 거 아냐. 사랑해? 좋아해? 취향 대로 고르세요. 어떤 거?"
"……해."
"응?"
난 순간 귀를 의심했다. 녀석이 정말 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뭐야,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그래, 그랬나 보다. 끝에 해가 들어가는 말이야 정말 무한하게 많다. 지랄해, 라든지. 조용히 해, 라든지. 어쩌면 미워해…… 일지도. 흑.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해보며 스스로 납득하고 있는데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랑…해."
"……."
허억─! 어떡해. 녹음기, 녹음기! 녹음기 없나?
난 녀석을 끌어안은 채 잠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큰 방황을 했다. 녀석은 열심히 허둥대고 있는 나에게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해?"
"……."
아니, 저기, 그게…… 녹음기가…… 핫! 그러고 보니 방황하는 사이에 녀석의 말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잖아! 이렇게 아까울데가! 난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다렁아, 한번만 더."
"……."
"엉? 한번만 더 말해라. 제발."
"……."
물론 녀석이 말해줄 리가 없었다. 여기서 한번 더 말해주면 그건 정다렁이 아니지. 쳇. 속으로 궁시렁 거리고 있는데 다현이 몸을 떼어내고 날 보았다. 응? 난 의아해하며 녀석을 마주보았다. 그때, 천천히 입술이 겹쳐졌다.
"……."
정다렁. 이런다고 내가 널 용서해줄 거 같아? 응? 응? 응? ……사랑해주마! 난 천천히, 달콤하게 얽혀드는 녀석의 혀에 금세 푹 빠져버렸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녀석의 목을 꽉 끌어안자, 녀석도 내 허리에 팔을 두른다. 천천히 몸이 침대에 눕혀졌다. 쪽, 쪽 하고 녀석은 듣기 민망한 소리를 내며 키스를 계속했다. 한참 만에 입술이 떨어져나가고 녀석이 날 보았다. 그 무언의 허락을 요구하는 표정에 난 어쩐지 장난기가 발동해 중얼거렸다.
"한판 할까?"
"……."
"어때요, 다렁씨. 모처럼 하늘이도 허락했는데. 한판 하실까요?"
"큭. 크크큭."
앗, 웃었다. 저렇게 웃는 얼굴을 대체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모르겠다. 난 감격에 차서 녀석을 보았다.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작게 크큭 거리며 웃다가 뒤늦게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작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런데 그게 더 웃긴 거 아냐, 다렁아.
"풋… 크크큭."
결국 나도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녀석이 왜 웃냐는 듯 노려본다. 그 표정 때문에 더 웃다가 난 갑자기 지난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민지야……'
잊을 수 없는 기억. 난 웃음을 멈추고 녀석을 보았다. 녀석이 난데없는 내 행동 변화에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난 녀석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민지가 누구야?"
"?"
"민지가 누구냐고. 엉?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냐?"
"……."
순간적으로 떠올린 이름이라고 해도 질투가 날 것 같은 걸. 하기 전에 이건 확실히 해둬야지. 한번만 더 그 여자 이름을 부르면……
그때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던 녀석이 문득 피식하고 웃었다. 아쭈, 웃어? 기분이 상해 인상을 확 쓰며 노려보자, 녀석은 내 목 언저리에 입술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너야. 민지후."
어……?
난 깜짝 놀라 녀석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녀석은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 표정을 잘 볼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볼에 닿아 간지럽다. 목에 닿는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의 감촉이 소름이 돋을 만큼 기분 좋았다. 이런……. 나도 잊어가고 있던 성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냐, 다렁아.
난 왠지 감동적이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내 목에 입술을 부비고 있던 녀석이 문득 이를 세운다. 헉. 아프다, 다렁아. 항의를 할 새도 없이 녀석의 손이 슬슬 웃옷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말이 많은데."
"엉?"
난 당황해서 되물었다. 무, 무슨 할말? 그러자 가슴 안을 슬슬 파고들던 손가락이 유두 근처에 가 움직임을 멎었다. 뭐, 뭐야. 뭘 하려구? 왠지 소름이 돋는다. 역시나 녀석은 내 유두를 꾹 붙잡더니 그대로 비틀어 버렸다.
"나랑 하면서, 진짜 하늘이 생각했어?"
"웃…!"
아, 아파! 아파, 다렁아……!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들어올리자 녀석의 어깨에 이마가 닿는다. 난 열심히 버둥거리며 아픔을 토로했다. 그러나 녀석은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더욱더 세게 비틀며 물었다.
"정지후. 대답 안 해?"
난 완전히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니, 니 생각만……"
"……."
"우웃, 니 생각만 했어, 다렁아……! 진짜야……!"
"……."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내뱉은 것 같다. 말을 마치자 가슴에서 느껴지던 통증은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다시 털썩 하고 베개 위로 쓰러져 내렸다. 으아아, 멍들었겠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녀석을 올려다보자, 녀석은 아직도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진짜 너밖에 생각 안 했는데, 나는."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녀석의 그 의심어린 시선이 왠지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난 싱글싱글 웃으며 중얼거렸다.
"난 하늘이 보면서 이러고 싶다고 생각한 적 한번도 없어."
"……."
"내가 이런 거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너 뿐이야."
"……."
"너 보면서는…… 음, 사실 야한 생각 좀 많이 했다. 처음 비디오 보고 그런 날은 제대로 잠도 못 잤……"
까지 말했을 때, 입이 틀어막혔다. 읍, 읍! 정다렁! 이 성급한 자식! 녀석은 숨이 막힐 정도로 정열적인 키스를 퍼부으며 내 셔츠를 가슴 위까지 말아올렸다. 천천히 손바닥이 가슴 위를 쓰다듬고, 미끄러져 내려간 입술은 조금 전에 녀석이 꼬집었던 유두에 가 닿는다. 녀석은 마치 조금 전의 일을 사과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그 부분을 핥았다. 혀가 질척이는 감각이 꼿꼿하게 선 유두 위로 생생하게 느껴진다. 난 예민한 부분이 혀로 쓸리는 감촉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후우……"
난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굉장히 기분이 좋다. 녀석은 천천히 혀를 미끄러트리며 정성스레 내 가슴 위를 핥고 애무했다. 난 눈을 내리깔고 그런 녀석을 내려다 보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일전에 녀석이 했던 그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전부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다현아…… 다현아, 좋아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서 내뱉고 말았다. 내 목소리에 배꼽 위로 혀를 대고 있던 녀석이 멈칫 하고 움직임을 멈춘다.
"니가 너무 좋아…… 어떡하지…… 정말 좋아해……"
이전까지 녀석과의 행위에서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욕구를 풀어준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확인한 뒤에 이루어지는 행위는 달랐다.
─넌 왜 내 동생으로 태어났냐.
동생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평범하게 만나서 평범하게 사랑에 빠졌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텐데.
"우리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냐."
눈시울이 조금 뜨거워졌다. 나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후회하는 건 아니다. 절대로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확인하고 나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너무나 달콤해서……
그 달콤함 만큼이나 깊은 죄책감이 날 옥죄어왔다.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어."
그때 문득 녀석의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다. 난 손을 내리고 녀석을 보았다. 녀석은 굉장히 짙은 눈동자를 하고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여전히 네 동생이고……"
"……."
"넌 여전히 내 형이야."
"……."
지익, 바지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가만히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날 뚫어지게 바라보는 녀석의 눈동자는 조용히 타오르는 것 같이 보였다.
금세 팬티가 벗겨지고 구멍 안으로 천천히 손가락이 밀어져 들어왔다.
"우린 너무 사이가 좋을 뿐이고……"
"……읏…"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래서 가끔 이런 짓도 하는 거지."
녀석이 귓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천천히 내부를 넓히던 손가락은 빠져나가고 뜨끈한 살덩이가 엉덩이 사이에 닿았다. 난 밭은 숨을 뱉어내며 녀석을 꽉 끌어안았다. 등이 땀으로 미끄러웠다.
"가끔이야……?"
난 숨쉬기 힘든 가운데서도 힘겹게 농담을 했다. 목소리에 물기와 웃음기가 함께 묻어났다. 내 질문에 녀석이 큭 하고 작게 웃었다. 그리고 내 등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꽉 하고 끌어안으며 천천히 하체를 밀고 들어왔다.
"한창 때엔 자주 해도 되겠지."
"아…! 으윽……"
뜨거운 이물감이 내부를 꽉 채웠다. 난 이를 악물며 녀석을 더욱더 꽉 끌어안았다. 끝까지 다 밀고 들어온 녀석은 내가 진정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완전히 발기한 내 하체는 녀석의 배를 꾹꾹 찌르고 있었다. 후우…… 내 호흡이 차츰 안정되어 가자 녀석은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도 서툴게나마 녀석의 움직임에 맞추려 애썼다.
"아…앗…흑……흐윽……!"
"윽……"
절정에 이르는 순간, 따스한 액체가 내부를 가득 채웠다. 난 베개 위로 풀썩 쓰러져 내리며 중얼거렸다.
"팔자에도 없는……후우…… 독신주의가 되게 생겼구만……."
녀석은 빙긋 웃으며 내 뺨 위로 키스했다.
또 콘돔을 안 썼다며 혀를 차는 녀석에게 관장을 받고 나는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꿈도 안 꾸고 푹 잤다. 눈을 떴을 땐 피로감 같은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기분 좋은 나른함에 푹 빠져 잠에서 깬 뒤에도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커다란 창에서는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등뒤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녀석은 날 꽉 끌어안고 잠이 들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하늘이가 아침에 온다고 했는데…… 슬슬 일어나야 하지 않나…….
그러한 생각에 내가 몸을 뒤척이려고 할 때였을 거다. 귀 뒤쪽으로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나는 깜짝 놀라 움직이려던 몸을 굳히고 눈을 크게 떴다.
"사랑해……"
"풋─"
나도 모르게 격렬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당황한 듯 나를 안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간다. 나는 온몸을 웅크리고 크크큭 하고 웃었다.
"그런 건……크크큭, 그런 건 내가 안 잘 때 하란 말이야……"
"……."
미친듯이 웃다가 머리를 한대 맞았다. 아니, 이놈이 형을 때리다니! 기가 막혀 노려보자 얼굴이 벌겋게 익어있다. 나는 다시 미친 듯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독신주의자인 나 정지후에게 평생의 연인이 생겼습니다.
─Part 3. 연인이 생기다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