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66화 (외전 완결) (366/366)
  • 외전 28화

    <어떤 세계>

    “언니, 여기 너무 비싼 것 같은데……!”

    지유는 자리에 앉자마자 기겁하며 내게 소곤거렸다. 난 말없이 웃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레스토랑은 천천히 회전하고 있어서 식사하면서 서울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헌터가 되기 전엔 빚 때문에, 헌터가 된 이후엔 도저히 시간이 없어서 한 번도 오지 못했다.

    ‘실제로도 이렇게 생겼을지 궁금하네.’

    직원이 추천하는 코스를 주문한 후 지유를 흘긋 보았다. 지유가 여전히 넋이 나간 채로 야경을 바라본 탓에 빛을 가득 담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여기 오니까 좋지.”

    “응… 근데 엄마랑 아빠한테 혼날 것 같아.”

    “괜찮아. 그냥 햄버거 먹고 왔다고 하면 돼.”

    애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를 먹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자, 그제야 지유는 조심스럽게 포크로 방울토마토를 찍었다.

    ‘고급 레스토랑은 무슨, 단둘이서 밥 먹는 것도 처음인 것 같은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청소년이 된 지유와 대화를 나누는 건 정말 기묘한 일이었다. 원래 꿈은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던데, 내 무의식이 이 정도로 구체적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이 꿈속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유야.”

    “응?”

    “그동안 병원에서 너무 고생했어.”

    내 물음에 지유가 눈을 크게 뜨다 곧 내 시선을 피했다.

    “뭐, 그런 얘기를 해.”

    “새삼 기특해서.”

    “…오늘 진짜 이상하네.”

    지유가 숟가락으로 수프 위에 뿌려진 크루통을 괴롭히며 중얼거렸다. 그런 지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치료, 수술, 뭐 하나 안 힘든 일이 없었는데 넌 꿋꿋이 참았잖아.”

    “엄마랑 아빠, 그리고 언니도 참았으니까.”

    “…내가?”

    “응.”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지유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을 덧붙였다.

    “먹고 싶은 거, 놀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전부 참고 날 간호해 줬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나도 참아야지.”

    “……”

    “내 얼굴 그만 보고 밥이나 먹어.”

    지유는 일부러 고개를 푹 숙이고 수프를 해치웠다. 나도 수프를 입에 쑤셔 넣어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우린 그렇게 밀려오는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로 말없이 한참 식사에 열중했다.

    “마지막으로 디저트 올려드리겠습니다.”

    커다란 접시에 시럽과 초콜릿으로 장식한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아까까지 배부르다던 지유는 케이크를 보자마자 다시 눈을 빛냈다.

    “오늘 진짜 내 생일 같다. 아니, 생일보다 더한데?”

    “기왕 나온 김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들어가자.”

    “나 아직 수학여행 짐도 못 쌌는데.”

    “새벽에 싸면 되지.”

    “아, 그럼 나 인형 뽑기 할래.”

    “그래.”

    지유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하고 싶은 걸 줄줄이 이야기했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조명을 받고 붉어진 양 뺨이 더욱 상기되었다.

    테이블은 다시 우리가 처음 앉았던 위치로 돌아갔다. 마치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 * *

    “선생님 말 잘 듣고, 자기 전에 연락하고, 알았지?”

    “응.”

    “약 챙겼지?”

    “당연하지!”

    지유는 커다란 배낭을 멘 채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가방엔 어제 3만 원을 주고 뽑은 왕왕이 인형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새로 산 옷과 인형이 꼭 세트처럼 잘 어울렸다.

    “가방 줘. 데려다줄게.”

    “엥? 왜? 안 그래도 돼.”

    “아냐, 나도 나갈 일 있어서 그래.”

    “그래, 가방 무거우니까 언니한테 대신 들어달라고 해.”

    “내가 들 수 있는데…….”

    양손으로 지유의 가방을 들어 대신 멘 후 슬리퍼를 신었다. 현관문을 열자 엄마랑 아빠가 지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무 걱정 없이 웃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녀올게!”

    “재밌게 놀다 와~”

    지유와 함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다. 학교로 가는 내내 지유 또래로 보이는 애들이 저마다 배낭이나 캐리어를 끌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유를 흘긋 바라보자 곧바로 지유와 눈이 마주쳤다

    “아.”

    “나 보고 있었어?”

    “아니 그냥…….”

    지유는 멋쩍은 듯 괜히 머리끝을 손바닥으로 눌러 정리했다.

    “고마워.”

    “…….”

    “어제 진짜 재밌었어. 옷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인형 뽑기랑 네 컷 사진도 찍고.”

    지유가 배시시 웃을 때마다 가슴이 타는 것처럼 괴로웠다. 이별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꿈은 언젠가 깰 수밖에 없다. 아니, 깨야만 한다. 이 꿈속에 매달려 현실로부터 도망쳐선 안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은 욕심은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어느새 지유의 학교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이렇게 짧은 줄 몰랐다. 일부러 느리게 걷자 지유의 뒷모습을 보게 됐다.

    ―탁.

    “언니?!”

    그대로 지유를 끌어안자 지유의 온기와 심장 박동이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난 결국 눈물이 터졌고 지유의 어깨에 얼굴을 감춘 채 조용히 말을 뱉었다.

    “내가 더 고마워.”

    “언니, 울어……?”

    “내 삶에 나타나 줘서 고맙고, 네가 내 동생이어서 고마워.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힘겹게 토해냈다.

    “다음에도 네 언니로 태어나게 해줘.”

    “…….”

    “삶을 아무리 많이 반복해도 좋은 언니는 될 수 없었어. 세상이 날 구원자라고 불러도 난 여전히 네 부탁 하나 들어주지 못한 못난 언니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덜덜 떨렸다. 죄책감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다음엔 정말로 잘할 테니까. 그때도 난 네 언니로 살고 싶어.”

    두서없이 쏟아낸 진심을 넌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록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너지만, 그런 너에게라도 내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싫어!”

    “어?”

    ―탁.

    지유가 몸을 돌려 나를 끌어안았다. 마른 양팔이 나를 강하게 옭아매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언니의 언니로 태어날 거야.”

    “…….”

    “그래서 나도 언니한테 맛있는 거 먹이고, 사고 싶은 거 사주고, 또…….”

    지유의 어깨가 덜덜 떨렸다.

    “아껴줄 거야.”

    눈물이 또다시 터졌다. 교문 앞 아스팔트 바닥에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우리를 보며 수군거렸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언젠가 사라질 꿈이어도, 내 상상으로 만들어낸 존재일지라도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껴안고 시간이 멈추길 바랄 뿐이었다.

    “…이제 나 갈게.”

    내 품에서 빠져나온 지유가 말했다. 지유의 두 눈도 붉게 충혈된 채 퉁퉁 부어 있었다. 난 그런 지유의 눈가를 닦으며 괜히 웃어 보였다.

    “애들이 놀리겠네.”

    “언니가 이상한 소리 해서 그렇잖아. 그리고 언니도 눈 부었어.”

    “알았어. 가방이나 메.”

    지유는 배낭을 메며 입으로 ‘영차’하는 소리를 낸 후, 교문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럼 다녀올게!”

    “…응. 재밌게 놀아.”

    지유는 내게 등을 돌리려다 말고 갑자기 말을 덧붙였다.

    “기다릴게!”

    그러곤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기다리겠다는 말에 목이 멨다. 뭐라 대답을 해주고 싶었는데 입 밖으로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지유가 교문을 통과하고 내게서 서서히 멀어지자 주변 풍경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지유는 아주 긴 수학여행을 떠났다. 내가 던전에서 몬스터와 싸우고 동료들과 함께 할 동안 지유도 이 세상 어딘가를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나를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이 다하는 날, 날 기다리는 지유를 만나러 갈 테니까.

    “나중에 만나자, 지유야.”

    * * *

    “윽!”

    “지의야!”

    “신지의 헌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시야가 돌아오기 전에 동료들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고 누군가 내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키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

    “여기가 어딘지 알겠습니까?”

    “세빈아, 최민 헌터…….”

    “하아… 다행이다.”

    고개를 돌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세빈이와 최민 헌터의 얼굴이 보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중간 보스 몬스터한테 당한 거였지.’

    정체불명의 가스를 들이마신 게 이 던전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러다 그 말도 안 되는 꿈을 꾼 것이고, 거기서 지유와…….

    “지의야……?”

    “흡, 윽…….”

    서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에 결국 두 사람 앞에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좀처럼 참을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자 두 사람이 나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곤 등을 토닥였다.

    “무슨 일이야, 응? 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헉, 허엉… 읍.”

    “괜찮습니다, 신지의 헌터. 진정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걱정해주고 있었다. 얼른 울음을 그치고 싶었지만 꿈에서 본 지유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려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기운이 쭉 빠질 정도로 울고 나서야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따끔거리는 눈가를 닦으며 천천히 호흡을 고르자 최민 헌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서운 꿈을 꾸신 겁니까?”

    “…아니요. 오히려 너무 행복한 꿈을 꿨어요.”

    지유가 살아 있는 세계, 내가 염원한 세계였다. 창조자에게 처음 빌었던 소원이기도 했지. 또다시 그리운 마음이 들어 가슴 한구석이 아렸지만 이젠 어느 정도 내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됐다.

    ‘기다릴게!’

    지유의 목소리가 또다시 마음을 울렸다. 이번엔 정말로 지유와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이번 생을 잘 마감하고 지유의 곁으로 갈 것이다. 다시 재회한 우리는 서로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며 하루 종일 함께 있을 것이다.

    난 숙였던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유와 만나기 전까지는 눈앞의 동료들에게 충실해야지.’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싱긋 웃자 두 사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00번의 회귀, 그 속에서 범한 수백, 수천 번의 실수, 모든 것을 바로 잡는 동안 생긴 소중한 동료들.

    이번 생에선 그 어떤 미련과 후회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살다 갈 것이다. 비명(非命)의 구원자라는 이명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SS급 비명헌터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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