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61화 (361/366)
  • 외전 23화

    “우와아…….”

    “코피샤, 너무 넋 놓고 보지는 마. 이쪽으로 시선이 끌리면 안 되니까.”

    가베쉬의 말에 코피샤는 화들짝 놀라며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시선은 센과 비스에게서 뗄 줄을 몰랐다.

    두 사람의 전투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비스가 칼리의 폭발적인 힘을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반면, 센은 광휘로 자잘한 공격을 막은 후에 급소에 해당하는 위치를 정확히 찔렀다.

    모든 공격이 몬스터에게 있어 치명상임에는 분명했다.

    ―콰드득!

    그때 물을 줄줄 흘리는 금잔화의 속에서 조그마한 금잔화가 민들레 홀씨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비스는 잠시 뒤로 물러난 후 크게 소리쳤다.

    “마지막 페이즈다! 이 작은 것들이 계속 날아다닐 테니 주변을 경계해!”

    “네!”

    가베쉬가 방어 스킬을 한 번 더 시전하는 동안 작은 금잔화들이 유도탄처럼 비스와 센을 쫓아다녔다.

    ‘엄청 끈질기군.’

    비스가 비행 궤도를 바꿔가며 금잔화를 파괴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지만, 그것들의 속력이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들고 있던 낫을 거두며 빠르게 하강했다.

    ―치지직.

    “칼리 님!”

    “좋은 선택이다, 비스.”

    ―퍼버벙!

    그러곤 곧바로 빙의를 풀었고 칼리는 기다렸다는 듯 비스에게서 튀어나와 수백 개의 팔로 금잔화들을 끌어안았다. 금잔화는 칼리의 손에 닿자마자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지만, 칼리의 피부만 살짝 태우곤 그대로 소멸했다.

    금잔화 본체도 잠자코 있지는 않았다. 전투의 흐름을 끊기 위해 땅속에서 가시덩굴을 뽑아냈고, 지면은 물론 허공을 향해서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센이 덩굴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뒤틀자 새하얀 궤적이 허공을 수놓았고, 빈틈을 발견한 그가 검날을 밑으로 향한 채로 쏜살같이 떨어졌다.

    ―쾅!

    땅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금잔화의 중앙이 꿰뚫렸다. 미처 베지 못한 가시덩굴이 센의 뒤를 노렸지만 대기하고 있던 칼리에 의해 무참히 찢겼다. A급 몬스터가 종이 조각처럼 뜯겨 나가는 모습은 맹수가 먹잇감을 파헤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센, 뒤!”

    “쯧……!”

    ―콰과광!

    갑자기 피어난 작은 금잔화들이 센의 등 뒤로 우수수 쏟아졌다. 비스의 경고에 센이 앞으로 굴렀고, 간발의 차로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 있던 가시덩굴이 기어코 그의 어깨를 찢어 놓았다.

    센이 인상을 찡그리며 어깨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금잔화의 계속된 공격을 광휘로 겨우 끊어낼 때쯤 칼리가 센을 안아 들고 코피샤의 앞으로 날아갔다.

    “방심한 것 같구나.”

    “꽃의 생성 주기가 빨라지고 있어요. 비스 씨에게도 전해 주세요.”

    “알겠다.”

    ―탁.

    칼리가 코피샤의 앞에 센을 살며시 내려주자 가베쉬가 방어 스킬을 해제하는 동시에 코피샤가 센에게 다가갔다.

    “조금만 참으세요……!”

    코피샤가 기도하듯 손을 모은 후 센의 어깨 위로 가져왔다

    ―후두둑.

    그러자 그의 손바닥 틈으로 새빨간 피가 떨어졌다. 찢어진 상처 위로 ‘시탈라의 피’가 스며들자 꿀렁거리며 흐르던 검붉은 피가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각성자의 건강 상태가 스킬 사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겠네.’

    상처가 치료되는 모습을 보며 센은 짧게 생각에 잠겼다.

    ―콰과광!

    그동안 비스는 칼리에 다시 빙의해 금잔화의 주의를 끌었다.

    “작은 꽃이 소환되는 시기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비스가 칼리의 말에 대답하며 더욱 요란하게 공격을 펼쳤고 금잔화가 코피샤 쪽을 의식하지 않게 노력했다. 그의 양손에 들린 대낫이 덩굴들을 토막 내고 등 뒤의 팔들이 날아다니는 금잔화를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필연적으로 놓치는 게 생기기 마련이었다. 서너 송이의 작은 금잔화가 비스를 피해 코피샤 쪽으로 날아가자 비스도 빠르게 뒤로 몸을 날려 그 금잔화를 붙잡으려 했다.

    ―우득.

    “윽!”

    그때 가시덩굴이 비스의 발목을 잡았다. 날카로운 가시가 피부를 뚫고 안으로 파고들자 비스가 억눌린 신음과 함께 밑으로 떨어졌다. 추락하는 시야 속 금잔화가 코피샤의 방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게 보였다.

    “센……!”

    ―탕!

    광휘의 폭발음보다 발포 음이 먼저 터졌다. 가장 위협적으로 날아오던 금잔화가 초록빛 탄환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저건…….”

    ―콰과광!

    곧이어 센의 광휘가 무섭게 내리꽂혔다. 금잔화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공중에서 터져버렸다.

    “비스 씨, 수고했어요.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치료가 끝난 센이 아마테라스를 다시 시전하며 금잔화 본체를 향해 도약했다. 비스의 몸에서 빠져나온 칼리 역시 공격을 보조하기 위해 무기를 잔뜩 들고 날아갔다. 비스는 발목의 고통도 잊은 채 바닥에 떨어진 금잔화 잔해만 바라보았다.

    “비스 님! 지금 바로 치료해 드릴게요!”

    코피샤가 허겁지겁 비스에게로 달려오고 나서야 비스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코피샤는 산탄총을 내려놓은 후 손을 맞잡았고 비스의 발목 위로 피를 흘려보냈다.

    망설임 없는 공격과 헌신적인 치료, 이제 막 헌터가 된 어린아이에게서 성인(聖人)의 모습이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일단 지금은 코피샤 양을 믿어줄 때예요.’

    센의 말이 다시금 비스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바뀌어야 하는 건 코피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코피샤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살아 있는 신으로서 존재하던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로 다시 인간이 되었고, 다른 인간을 위해 전장에 뛰어들었다.

    ‘내 보호가 필요한 녀석은 맞지만, 그렇다고 내 등 뒤를 맡기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야.’

    ―텁.

    비스가 코피샤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갑자기 느껴진 온기에 코피샤가 눈을 크게 뜨고 비스를 바라보자 비스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돌아가면 사격 훈련을 하지. 기초가 잘 닦여 있으니 실력이 금방 늘 거다.”

    “네, 네……!”

    코피샤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자신을 칭찬해준 비스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두 배로 더 집중했다.

    * * *

    카트만두 A급 게이트는 무사히 클리어됐다. 던전 내 몬스터 수치도 안정적으로 떨어져 폭발 시기를 늦출 수 있었다.

    “이봐, 센.”

    “네?”

    비스의 부름에 센이 카트만두 공항으로 향하는 헬리콥터에 올라타려다 뒤를 돌았다. 비스는 잠시 우물쭈물하다 천천히 입을 뗐다.

    “고맙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것도 고맙긴 한데…….”

    ―또각.

    센은 헬리콥터에서 내려와 비스의 앞에 섰다. 그러곤 비스가 말할 결심이 설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코피샤를 파트너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아이의 능력을 믿지 못했어. 그걸 깨닫게 해준 건 네 덕분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 누군가의 말에 의해 갑자기 튀어나올 린 없어요.”

    ―텁.

    센이 비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비스 씨의 무의식에 이미 저 아이에 대한 신뢰가 있는 거예요.”

    “…….”

    “당신과 코피샤 양이 만들어갈 희망적인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센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태양보다도 밝은 기운이 그의 주위를 맴도는 듯했다.

    “그럼 나중에 또 뵙죠!”

    “조만간 또 연락하겠다.”

    ―두두두.

    헬리콥터의 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위로 날아올라 공항으로 향했다. 비스는 헬리콥터가 시야 밖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비스 님!”

    그때 보고를 끝낸 코피샤가 비스에게 다가왔다. 비스는 그의 볼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며 무심하게 말을 뱉었다.

    “허기가 지는군. 같이 대충 때우고 가지.”

    “네, 네!”

    뜻밖의 제안에 코피샤가 기쁜 듯 대답했다. 비스는 시내 주변을 눈으로 훑으며 적당한 곳을 고르려 했지만 마땅치 않았다.

    “혹시 저기는 어떠세요?”

    코피샤가 골목 안쪽에 있는 음식점 간판을 가리켰다. 네온사인 간판은 다른 데보다 단연 눈에 띄었다. 비스가 간판에서 코피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코피샤가 말을 덧붙였다.

    “가족들이랑 카트만두로 여행 왔을 때 들렀던 데인데 맛있었어요.”

    “그래? 그럼 가지.”

    비스는 관리국 직원에게 간단한 보고를 마친 후 코피샤와 함께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간판에 비해 허름한 내부였지만 주방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새어 나와 침샘을 자극했다.

    “헙……!”

    가게 주인은 비스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비스 님을 알아봤나 봐요!”

    “방송에서 온갖 난리를 부려서 그럴 거다. 들어가는 곳마다 저러는군.”

    비스는 시큰둥한 태도로 메뉴판을 코피샤 앞으로 밀었다.

    “먹고 싶은 걸로 알아서 시켜.”

    “아, 네! 저, 저희 주문할게요!”

    코피샤가 메뉴를 손으로 일일이 짚어가며 또박또박 주문하는 동안 비스는 그런 코피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코피샤는 주문을 마치고 나서 비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가족들은 잘 지내나?”

    “네. 다들 괜찮으세요.”

    비스의 얼굴이 묘하게 풀어지다 곧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코피샤는 비스가 자신에게 일상적인 질문을 해준 것이 신기했는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었다. 비스가 곁눈질로 코피샤를 보는 동시에 말문을 텄다.

    “널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는군.”

    “아…….”

    “지금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는데 말이지.”

    비스가 픽 웃으며 1년 전의 코피샤를 떠올렸다. 그때의 코피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순수하고 자애로운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한 태도는 세상을 다 산 노인과 같았다.

    ‘쿠마리였던 자와 살면 부정을 탄다’라는 미신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버려질 것을 걱정하던 어린아이는 쿠마리라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제법 제 나이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코피샤.”

    “네.”

    “만약 1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넌 그때도 헌터의 길을 갔을 것이냐.”

    비스의 물음에 코피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곧 올곧은 눈으로 비스를 바라보았다.

    “네.”

    “왜?”

    “백날천날 기도해도 통하지 않는 기도보다는 제 피가 더 쓸데가 많으니까요.”

    “푸흡.”

    비스가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기대에 100% 부합하는 대답이기 때문이었다. 코피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스의 반응을 신기하게 여기다 그를 따라 싱긋 웃었다.

    “그래. 나도 아무리 기도해도 들리지 않는 탈레주의 응답보단 내 귓가에 대고 시시콜콜 떠들어대는 칼리 님이 쓸모가 많다고 생각한다.”

    “신에게 쓸모를 따지다니. 많이 컸구나, 비스.”

    비스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칼리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금잔화를 바라보았다. 샛노란 빛을 뿜어내는 작은 꽃이 신이었던 두 사람을 축복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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