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57화 (357/366)
  • 외전 19화

    미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 그 말을 들은 진우가 눈을 벅벅 닦고 미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진짜로요?”

    “네!”

    미나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이야기하자 무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제 쌍둥이 동생을 바라보았다.

    “미나, 너 그냥 막 뱉는 거 아니지?”

    “으, 아니거든? 사람 말을 못 믿네.”

    자신을 의심하는 무하를 향해 인상을 구긴 후, 미나는 곧바로 진우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최근에 소장님이 진행하는 연구가 있거든요. 근데 재료 하나가 도저히 안 구해져서 잔뜩 예민해지셨어요.”

    “아, 그 면역 촉진제 연구?”

    “응.”

    미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어 나갔다.

    “해외 부산물 마켓에서도 지금 그 재료 물량이 없어서 난리래요. 소장님 연구는 막바지라서 진짜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여러모로 골치 아프게 됐죠.”

    “그럼 그걸 제가 구해다 드리면 미래 씨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거네요!”

    “사, 사랑받는 것까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호감은 살 수 있겠죠.”

    미나가 갑자기 기운을 차린 진우를 진정시켰다.

    ―타닥.

    대화를 듣고 있던 무하가 품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화면을 두드리기 시작하더니, 곧 무언가를 찾아낸 듯 손가락을 튕겼다.

    “한국 내에선 수원 A급 던전에서 구할 수 있겠네요.”

    “수원 A급 던전이요?”

    “네. 성곽의 파편이라는 상급 던전 부산물인데 여기서 그 재료를 추출할 수 있어요.”

    진우는 곧바로 헌터넷을 켜 던전 공략 상황을 살폈다. 수원 A급 던전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의 눈동자가 의지로 불타기 시작했다. 비록 두 눈은 여전히 퉁퉁 부어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 바로 다녀와야겠어요! 더 오해가 쌓이면 안 되잖아요!”

    “마음은 알겠지만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자디바르 남매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몸을 들썩이던 진우를 진정시켰다.

    ‘소장님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무하는 진우의 적극적인 모습에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탄하곤 그에게 태블릿 PC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엔 '성곽의 파편'에 대한 설명이 빼곡히 나와 있었다.

    “이렇게 생긴 부산물이에요. 평균적인 공략 속도로 던전을 돌았을 때 공략 한 번 당 부산물 세 개가 나오니까, 한 번만 공략하고 나오셔도 충분할 거예요.”

    “알겠어요! 지금 바로 공략팀을 꾸려서 들어가야겠어요!”

    ―드르륵.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남매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한진우 헌터 파이팅!”

    “힘내세요!”

    남매는 진우의 뒷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잘 되겠지?”

    “잘 돼야지…….”

    여전히 걱정스럽긴 했지만 지금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미래에게 진우의 좋은 점을 조용히 설파하는 것밖엔 없었다. 두 사람은 테이블을 정리하며 다시 연구실 쪽으로 발을 돌렸다.

    * * *

    “…이 조합은 좀 색다르군요.”

    “아하하하… 그러게요.”

    진우는 자신이 모은 공략팀원들을 바라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A급 소환계 헌터인 김민숙, S급 최민, 그리고 진우 본인.

    지금 당장 시간이 되고 자신과 어느 정도 안면을 튼 사람들로 부르다 보니 한 번도 같이 던전에 들어가 본 적 없는 사람들로 모였다.

    가장 어른인 민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텄다.

    “신지의 헌터 집들이 때 보고 나서 처음이네요. 이렇게 셋이서 던전을 도는 건 처음이니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세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게이트 앞으로 발을 옮겼다. 늘 그렇듯 아이템 스캔을 마친 후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매섭게 부는 바람이 그들의 피부를 스쳤다.

    수원 A급 던전은 상급 던전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던전이었다. 적당히 수준이 있는 일반 몬스터와 지능이 높은 중간 보스 몬스터, 그리고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 해치울 수 있는 최종 보스 몬스터까지, 가장 정석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다.

    더군다나 던전의 난도도 크게 높지 않으니, 실력 좋은 B급 헌터들이 A급 이상의 헌터들과 함께 공략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략법은 오는 내내 질리도록 외웠어!’

    진우는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두 사람에게 던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략법을 머릿속에 조용히 새겼다.

    “그럼 공략 시작하겠습니다!”

    진우가 제 몸보다 커진 행운의 토끼발 위에 올라타며 공략의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민숙이 두심을 소환하고 민이 불을 몸에 두르며 날아올랐다.

    ―쿵, 쿵, 쿵.

    성곽을 따라 한참 날아가자 인간형 일반 몬스터인 ‘충직스러운 보병’이 떼를 지어서 나타났다. 강철로 된 둔기와 방패를 양손에 쥔 채

    ‘움직임을 묶는 것부터 시작하자.’

    ―쿠구궁.

    진우가 보병들의 발밑으로 진흙을 시전했다. 돌길이 순식간에 흐물흐물한 진흙으로 변해 그들의 발을 묶어 두었다.

    “윽! 다, 다리가 안 움직입니다……!”

    “전원 방어 태세 돌입!”

    보병 중 우두머리 격인 몬스터가 크게 외치자 다른 몬스터들이 방패를 높이 들어 머리를 가렸다.

    “휘요오오!”

    ―콰과광!

    두심이 허공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날갯짓하자 칼바람이 녀석들을 덮쳤다. 방어벽을 무너트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두꺼운 방패에 제법 커다란 금이 생겼다.

    -쾅!!

    그때 민이 방패 위로 운석처럼 떨어졌다.

    “크아악!”

    엄청난 속력으로 떨어진 덕에 겹겹이 쌓인 방패들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고 주위로 번진 불꽃이 보병들을 집어삼켰다. 민은 유유히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온 후 보병들의 머리에 폭발을 일으켰다.

    ―후두둑.

    까만 재가 되어 폭삭 주저앉은 녀석들의 잔해 위로 바스러진 벽돌이 뚝 떨어졌다. 무하가 보여 주었던 ‘성곽의 파편’과 똑같이 생긴 벽돌이었다.

    “아!”

    진우가 빠르게 지면으로 내려가 벽돌에 손을 대자 아이템 획득 창이 눈앞에 떴다.

    [아이템 획득]

    [성곽의 파편 / 상급 부산물]

    ‘하나 찾았다!’

    진우는 성곽의 파편을 든 채 활짝 웃었고, 획득 창이 사라지고 나서야 민과 민숙이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그… 혹시 부산물은 안 팔고 제가 수거해도 될까요? 판매 수익 계산해서 제가 따로 청구…….”

    “저는 괜찮아요.”

    “저도 상관없습니다.”

    민숙과 민이 차례로 고개를 젓자 진우는 안심한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데 그건 왜 챙기는 거예요? 아이템도 아니고 부산물인데…….”

    “아, 이게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요!”

    “이, 이걸요?”

    민숙이 의아한 얼굴로 성곽의 파편을 내려다보자 그의 팔 위에 앉은 두심도 그것과 진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에 당황한 진우가 양손을 허우적거리며 횡설수설 설명을 시작했다.

    “그, 그 연구직에 있는 사람이거든요~ 실험 때문에 필요하다는데 이게 물량이 전혀 없어서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설마 안 소장이에요?”

    “헙.”

    진우는 잘못을 들킨 사람마냥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더니 자기 행동이 부자연스러웠음을 깨달았는지 잽싸게 손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래 씨가 필요하시다고 해서요~ 딱히 치, 친한 건 아닌데 그래도 곤란해하시는 것 같아서…….”

    “흐음, 그랬군요.”

    민숙은 던전 안쪽으로 발을 옮기며 지의의 집들이 파티 때 보았던 미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기억 속 미래는 열심히 음식을 먹으며 이따금 다른 사람에게 핀잔을 주었다. 입이 거칠긴 했지만,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진우 헌터가 안 소장 옆을 엄청 기웃거렸지.’

    그리고 그런 미래의 옆엔 그의 옆을 서성거리며 음식을 깨작거리던 진우가 있었다. 민숙이 진우 쪽으로 고개를 흘긋 돌렸다. 그는 미래의 이야기를 꺼낸 것만으로 귀가 새빨개져 있었다.

    “하하…….”

    “응?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그냥 뭐 좀 생각하느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우를 보며 민숙은 씩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A급 던전에 기꺼이 들어오는 그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힘내세요, 한진우 헌터.”

    “네! 같이 파이팅해요!”

    힘내라는 말의 속뜻을 눈치채지 못한 진우는 그저 양손을 꽉 쥐어 보이며 민숙을 향해 대답했다.

    “또 옵니다.”

    ―콰과광!

    그때 민의 경고와 함께 일반 몬스터 무리가 또다시 등장했다.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였기에 공격 태세를 제대로 갖췄고 민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진우 헌터, 아까 쓰셨던 그 함정계 스킬 다시 한번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최민 헌터가 먼저 공격하시면 그다음에 제가 이어가겠습니다.”

    민은 고개를 끄덕인 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전원 돌격하라!”

    “와아아아!”

    보병 몬스터들이 소리를 지르며 세 사람을 향해 달려가자 곧바로 진우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쿠구궁!

    보병들을 전부 집어삼킬 정도의 진흙이 바닥을 뒤덮었다. 발이 빠진 몬스터들이 옴짝달싹 못 했지만 그사이에 적응을 한 건지 느릿느릿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휘잉!

    녀석들이 공중에 있던 민을 향해 창을 날리기까지 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민이 몸을 움찔 떨었지만, 곧바로 더 높게 날아올라 창을 유유히 피했다.

    ―퍼버벙!

    곧이어 그가 폭발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몸에 불이 붙은 보병들은 우왕좌왕하며 진흙에 몸을 파묻었다. 하지만 민의 불꽃은 완전히 수그러들지 않았다.

    “두심아.”

    “휘요오오!”

    그때 두심이 보병을 향해 저공비행을 시작했다.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두심을 보며 보병 중 하나가 소리쳤다.

    “다들 방패를 들……!”

    ―콰과과광!!

    방패를 들기도 전에 모든 상황이 끝났다. 두심이 몬스터들 사이를 빠르게 관통하자 돌풍이 불어 녀석들의 목을 순식간에 꺾었고, 녀석들의 몸에 붙어 있던 불꽃을 더욱 타오르게 했다.

    ‘이번엔 아무것도 안 나왔네…….’

    성곽의 파편이 보이지 않자 진우는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을 얼굴에 비쳤다.

    “한진우 헌터는 안미래 씨의 연구를 돕고 있는 겁니까?”

    “네?! 아… 그냥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그냥?”

    민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진우는 미래를 향한 제 마음을 들켰을까 싶어 민의 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민숙이 말을 얹었다.

    “가끔 사람들은 그냥 의욕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죠. 저도 그랬거든요.”

    “아! 김민숙 헌터도 그러신 적 있으시군요!”

    “하하하, 네.”

    민숙이 대화 주제를 자신 쪽으로 돌리자 진우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고 싶을 때 그랬죠.”

    “히끕.”

    정곡을 찔린 진우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마음을 숨기지 못한 자의 고해성사나 다름없는 딸꾹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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