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8화
<광화문 연애 조작단>
“이제 다 망했어요오~ 어헝, 헝헝…….”
대한민국 헌터 협회 본부 지하. 직원 전용 카페 구석에서 진우가 엉엉 울고 있었다.
아자디바르 남매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난처한 얼굴로 그를 위로했고, 미나가 케이크를 진우 앞으로 밀어 넣으며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다.
“마, 마, 망하긴요~ 일단 케이크부터 좀 드시고 생각하세요~”
“킁, 흡, 우으…….”
진우가 휴지로 눈을 대충 닦은 후 초코케이크를 우물거렸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초콜릿 향이 입 안을 감쌌지만 울적한 진우의 기분을 단번에 나아지게 할 순 없었다.
그는 케이크를 한 입 먹고 눈물을 닦기를 반복하다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야이 씨, 이 인간 어떻게 할 거야, 무하……!”
“내가 말실수했다, 말실수했어…….”
미나가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제 쌍둥이 오빠를 질책하자, 무하는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밀크티를 들이켰다.
진우가 이렇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선 지금으로부터 약 3시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우에게 있어 오늘은 특별하다면 특별한 날이었다. 바로 그의 짝사랑 상대인 미래를 오랜만에 보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주문한 특별 기력 회복제를 찾으러 가는 것일 뿐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우는 잔뜩 들뜬 상태였고 본부로 들어가는 길에 유명 제과점에 들러 수제 쿠키 세트도 샀다.
―탁.
진우는 미래의 개인 연구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스스로 되뇌었다.
“하아… 나만 잘하면 돼, 나만 잘하면 된다고.”
아무리 진우가 미래 앞에서 버벅댄다고 해도 그동안 봐 온 세월이 2년이었다. 차 한잔하면서 같이 쿠키를 나눠 먹는 사이 정도는 된다는 뜻이었다.
미래 앞에만 서면 그대로 얼음이 되어 버리는 자신의 행동만 고친다면, 충분히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삑.
진우는 호출 버튼을 누른 후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핸드폰으로 얼굴을 몇 번이고 살피며 10분 같은 10초가 흐르자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왔냐?”
“어, 어어… 안녕하세요, 미래 씨!”
“깜짝이야, X발. 귀청 떨어지겠네…….”
“앗, 죄송합니…….”
“들어오기나 해.”
메인 보컬 발성으로 힘차게 인사하자 미래가 몸을 파르르 떨며 인상을 찌푸렸다. 진우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그는 한 손으로 제 입을 가린 채 연구실 안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한진우 헌터님~”
“아,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그… 미나 씨랑 무하 씨 맞죠?”
연구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아자디바르 남매가 진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쪽잠을 자다 일어난 듯 머리가 한껏 헝클어져 있었다. 진우는 허겁지겁 통역기를 귀에 끼우며 그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희 이름 기억하고 계셨네요!”
“기억할 수밖에 없죠. 두 분의 배리어 겔 덕분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요.”
진우의 말에 악수를 나누던 아자디바르 남매가 헤벌쭉 웃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으하핫! 너무 띄워 주시는 거 아니에요?”
“저희만 한 것도 아니고 소장님도 같이 하신 건데요, 뭘~”
“너희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소장니임~”
칭찬에 완전히 녹아내린 아자디바르 남매를 향해 미래가 말을 툭 뱉었다. 그리고는 발을 돌려 진우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한진우, 그나저나 손에 그거 뭐냐.”
“쿠, 쿠, 쿠키를 좀 사봤어요……! 같이 먹, 으려고…….”
“오, 초코.”
미래는 봉투 안을 흘긋 보곤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슬슬 당이 필요하던 때였기에 간식이 반가웠다.
‘미래 씨가 너무 앞에 있어……!’
평온한 미래와 달리 진우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심장 소리가 들릴 것 같아 숨까지 참아봤지만, 전력 질주를 한 듯한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미래는 쿠키로 손을 뻗다 곧 몸을 돌려 연구실 안쪽으로 향했다
“아, 일단 회복제부터 줘야지. 좀만 기다려라.”
“네, 네에…….”
“쿠키 이쪽으로 주세요~”
“저희가 세팅하겠습니다~”
미래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연구실 안쪽 창고로 향하는 동안 아자디바르 남매가 쿠키를 향해 양손을 쭉 뻗었다.
‘응?’
아자디바르 남매는 쿠키를 건네는 진우의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발견했다. 두 사람은 봉투 안에 든 쿠키를 꺼내며 시선을 슬쩍 교환한 후 진우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진우의 신경은 온통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창고를 흘긋 보며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고 잘 세팅된 머리카락을 여러 번 매만졌다. 그를 가만히 관찰하던 미나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헌터님.”
“네?”
“혹시 애인 있으세요?”
“응? 아니요!”
미나의 질문에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에 미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한 번 더 질문했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요?”
“어, 어, 없, 없는, 아니 없는 건 아닌데, 그게…….”
‘와, 진짜 못 숨기는구나.’
아자디바르 남매는 허둥대는 진우를 보며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진우가 좋아하는 대상이 미래인 것까지 눈치챈 남매는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와… 한진우 헌터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너무 궁금한데요?”
“저희도 아는 사람인가요?”
“네? 아, 그…….”
남매가 두 눈을 반짝이자 진우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했다.
‘아예 이 사람들한테 털어놓고 도와달라고 할까?’
진우의 머릿속에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아자디바르 남매는 누구보다 미래와 보내는 시간이 긴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미래와 자신의 접점이 늘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다, 저희가 한번 맞춰볼게요!”
“네?!”
하지만 진우가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미나가 입을 열었다.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거예요~ 아셨죠?”
“네, 네!”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남매의 행동에 진우는 저도 모르게 기합이 들어간 대답을 뱉었다. 지루했던 연구 생활에 간만에 재밌는 일이 생기자 남매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질문을 쏟아낼 준비를 했다.
“한진우 헌터보다 연상이에요?”
“네에…….”
“몇 살?”
“거, 거의 열 살……?”
“우와~ 저희도 아는 사람이에요 혹시?”
“그걸 말하면 들키잖아요~”
진우가 울먹거리자 남매는 더욱 즐겁다는 듯 꺄르르 웃었다. 이번엔 무하가 창고 쪽을 흘긋 본 후 입을 열었다.
“어쩌다 좋아하게 된 거예요?”
“어…….”
진우의 머릿속에 슬리퍼로 휘연의 머리를 후리는 미래의 모습이 그려졌다. 휘연이 화를 냈지만 기죽지 않고 윽박지르는 모습이 진우의 눈엔 그 어떤 사람보다 멋있었고, 히어로물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때를 떠올린 것만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진우는 양손으로 제 볼을 감싸며 웅얼거렸다.
“저를 곤란하게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그 사람을 내쫓아 줬거든요…….”
“우와. 되게 옛날 영화 같, 웁…….”
“로맨틱하네요!”
무하가 생각나는 대로 뱉은 미나의 말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으며 반응했다. 진우는 무하의 말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게 수긍했다.
“성격은 어때요?”
“음… 친절한 성격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건 확실해요.”
“아~ 그렇…죠가 아니라, 그렇군요!”
진우가 말하는 대상이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무하가 무심코 고개를 진우의 말에 동조할 뻔했다. 무하가 바로 말을 바꾼 탓에 진우는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창고만 흘긋 바라보았다.
“거의 열 살 연상이고 한진우 헌터에게 꼬인 이상한 사람을 내쫓을 정도로 용감하며…….”
“친절하진 않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인물…….”
미나와 무하가 말을 한마디씩 주고받다 곧 동시에 진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희 소장님이죠?”
“네, 네, 네?! 그럴 리가요?”
진우는 양손을 내저으며 온몸으로 부정했지만 그럴수록 그가 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쐐기를 박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짜요?”
“그게…….”
“진짜로 저희 소장님 아니에요?”
‘도망가고 싶어……!’
남매의 능글맞은 행동에 진우는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 정도였다. 무하가 잔뜩 신난 얼굴로 천천히 입을 뗐다.
“아~무리 봐도 저희 소장님 얘기 같은데~”
“제, 제, 제가 미래 씨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어, 나도 너 딱히 안 좋아하는데.”
―우당탕.
그때였다. 진우가 두 눈을 꼭 감고 대답을 빽 지르자 어느새 미래가 나타나 있었다. 미래의 연구실엔 한겨울의 칼바람보다도 차가운 정적이 흘렀고, 발언의 주인공인 진우는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사고쳤다…….’
아자디바르 남매도 입을 쩍 벌린 채로 미래와 진우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달그락.
미래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진우의 양팔에 기력 회복제 봉투를 걸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초코 쿠키를 집어 먹었다.
“음, 먹을 만하네.”
“소, 소, 소장님 저희 혹시 딱 한 시간만 쉬고 와도 괜찮을까요?”
“엉? 마음대로 해. 어차피 저거 분석 결과 나오려면 한참 남았어.”
미나가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미래에게 이야기하는 사이 무하가 진우의 옆으로 슥 다가갔다. 진우는 완전히 넋이 나가 그가 옆으로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저희 커피 마시러 갈 건데… 아, 한진우 헌터도 같이 가신다고요?”
“저희야 좋죠! 그럼 갔다 올게요~”
미나와 무하가 진우의 양팔을 잡고 빠르게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미래는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으로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이 지금 진우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초코케이크를 먹게 된 사연이었다.
원인 제공자인 미나와 무하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미래는 연애의 ‘연’ 자에도 관심이 없는 인간인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에게 연애 감정을 가질 리 없기 때문이었다.
“훌쩍, 저 이제… 완전 끝이겠죠? 이제 미래 씨가 절 미워하겠죠?”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예요… 아하하, 하하…….”
“이렇게 마음도 한 번 전해보지 못하고 끝날 줄은 몰랐는데…….”
진우는 또다시 테이블 위로 얼굴을 묻으며 훌쩍거렸다. 아자디바르 남매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슬쩍 바라보더니 곧 진우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아!”
“깜짝이야… 왜 그래, 미나?”
“한진우 헌터, 일어나 봐요!”
“킁… 네?”
그때 미나가 무언가 생각난 듯 진우의 어깨를 빠르게 두드리자 진우가 팅팅 부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진우 헌터가 소장님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