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48화 (348/366)
  • 외전 10화

    ―쨍그랑!

    “녹두야!”

    “아우우―!”

    내 외침에 녹두가 레일리를 물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방금까지 레일리가 있던 곳엔 몬스터들의 손톱이 꽂혀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저 날카로운 끝이 땅이 아닌 레일리를 향했을 것이다.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동시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며 레일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행히 긁힌 상처 하나 없는 어린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길드장님! 자매님!”

    “괜찮아! 레일리는 무사해!”

    라파엘라에게 대답한 후 곧바로 녹두와 레일리 쪽으로 달려갔다. 레일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덜덜 떨리는 몸까진 숨기지 못했다.

    ―탁.

    그런 레일리를 끌어안았다. 레일리는 놀란 듯 숨을 들이켜더니 저도 모르게 내 목과 허리에 팔다리를 둘렀다.

    “무서웠지? 이젠 괜찮아.”

    “…안 무서워.”

    “그래, 그래.”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안심]

    오기에 가까운 레일리의 거짓말을 들으며 그의 등을 천천히 토닥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두드려주니 몸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고, 곧 일정한 속도로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했다.

    ‘녹두야 네 스킬로 저 몬스터들 좀 정리해줘.’

    ‘알겠어.’

    녹두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쩍 벌렸다.

    “아우우―!”

    녹두의 울음소리가 메데이아의 궁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새하얀 빛줄기가 벼락처럼 꽂혀 바닥에 있던 몬스터들을 한 번에 쓸어버렸다. 그동안 난 자아에 목소리를 주입하며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일반 몬스터는 전부 정리됐고, 메데이아도 금방 해치울 것 같네.’

    라파엘라의 저주로 메데이아의 움직임을 제어, 그리고 이어지는 알렌과 조슈아의 공격. 예상외로 세 사람의 전투 합이 맞았다.

    “헌터가 되면 매일 저런 것들과 싸우는 거야?”

    그때 레일리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는 내 어깨 너머로 눈을 빼꼼히 내민 채 땅 밑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응. 매일까진 아니지만 꽤 자주 싸우지.”

    “헌터가 되면 목숨은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구나.”

    적나라한 표현에 말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레일리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쾅!

    “라파엘라 씨!”

    “라파엘라 씨!”

    갑자기 조슈아와 알렌이 동시에 소리쳤다. 깜짝 놀라 고개를 내리자 라파엘라의 주위로 불기둥이 수십 개가 치솟아 그를 완전히 가둬 버렸다.

    ‘하필 충전도 다 안 됐는데……!’

    기둥이 겹겹이 겹친 탓에 화상 입을 각오를 한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뛰어나올 수 없는 두께였다.

    “알렌 씨! 웜홀로 구조해 주세…”

    ―콰과광!

    알렌을 향해 외친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불기둥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열기 때문에 화끈거리던 피부도 갑자기 식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불기둥이 사라지기만 한 게 아니었다.

    “아, 아더의 방패?”

    불기둥 대신 아더의 방패가 튀어나와 있었다. 방패는 형체를 잃고 다시 바닥으로 흩어졌고 그 속에 있던 라파엘라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살갗이 살짝 붉게 익어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았다.

    “우와…….”

    내 품에 안겨 있던 레일리가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반짝거리는 황금색 눈과 마주쳤다.

    “방금 레일리 네가 한 거야……?”

    “그, 그런 것 같은데?”

    레일리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이 스킬을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길드장님!”

    그때 라파엘라가 크게 소리쳤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레일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네요~”

    “……”

    ―툭.

    레일리는 그런 라파엘라를 빤히 바라보다 갑자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 부끄러워한다.’

    새하얀 귀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가 아는 레일리와 다르게 어린 레일리는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툰 모양이었다.

    ―콰과광!

    “쳇.”

    레일리의 스킬에 잠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메데이아가 다시 공격을 이어갔다. 불의 소용돌이가 생성되기 무섭게 그것들은 조슈아를 맹렬하게 쫓았다.

    ―탕, 탕, 탕.

    조슈아가 미끼가 된 동안 난 소리 탄환을 메데이아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민첩하게 피한 탓에 큰 상처는 줄 수 없었지만, 볼의 일부가 움푹 파였다.

    메데이아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인상을 찡그렸고 다른 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하늘이 어두컴컴하게 물들었고 당장이라도 엄청난 공격이 퍼부어질 것 같았다.

    “날 방해하지, 으악?!”

    ―콰과광!

    하지만 비장했던 외침도 잠시, 메데이아가 서 있던 곳에 다시 아더의 방패가 치솟았다.

    메데이아는 방패 때문에 몸이 잠깐 위로 올라갔지만, 곧 중심을 잃고 밑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에 조슈아가 녀석의 머리 위로 용암을 소환했다.

    “아아아악!”

    뜨거운 액체가 메데이아를 집어삼키자 녀석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녀석이 땅에 처박히기 무섭게 나와 알렌의 탄환이 비처럼 쏟아졌다.

    ―퍼버벙!

    탄환이 용암을 뚫고 녀석의 몸을 관통할 때마다 폭발이 일었다. 난 한 손으론 레일리의 몸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며 메데이아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공격을 이어갔다.

    “후우…….”

    새로 충전한 목소리까지 다 쓴 후에야 자아를 다시 피어싱으로 돌려놓았다. 메데이아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졌고 그 주위로 새카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까 엄청 잘했어, 레일리.”

    “…….”

    “네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엄청 힘든 싸움이 됐을 거야.”

    “별거 아니었어.”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기쁨]

    어깨에 얼굴을 묻은 탓에 레일리의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상태창으로 그의 기분이 잘 전해졌다.

    ―타닥.

    그대로 녹두와 함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라파엘라가 기도를 중얼거리며 자신과 조슈아의 상처를 치료했고, 알렌은 메데이아의 잔해를 헤집으며 해독제를 찾는 듯했다.

    “찾았다!”

    ―달그락.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렌이 주홍빛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안심한 듯 활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주술 해독제, 메데이아의 주술을 풀 수 있는 만능 통치약…이라고 쓰여 있어요!"

    “다행이다…….”

    “하아아… 길드장님을 키우게 될 일은 없어서 다행이네요.”

    라파엘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레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감히 내 머리에 손대지 마라.”

    “네, 네~ 길드장님 일단 이것부터 드셔주시겠어요?”

    라파엘라가 알렌의 손에 들린 유리병을 가리켰다. 레일리는 고개를 들고 유리병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곧 얼굴을 홱 돌렸다.

    “저게 무엇일 줄 알고 내가 먹어야 하지?”

    “해독제야. 메데이아의 주술을 풀려면 해독제 먹으라고 상태창에 나와 있다며.”

    내 말에도 레일리는 쉽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알렌은 무해한 얼굴을 하며 잔뜩 경계하는 레일리에게 병을 내밀었고, 레일리는 뺏다시피 그것을 가져왔다.

    “…진짜네.”

    아이템 획득 창이 떴는지 레일리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문을 텄다.

    “먹어 주도록 하지. 그리고 마시기 불편하니까 좀 내려놔라.”

    “알겠어.”

    ―탁.

    레일리는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유리병을 열어 해독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레일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긴장한 채 그를 바라보았고 변화가 생기길 기다렸다.

    “주술이 해제됐다고 한다.”

    “진짜요?!”

    “그럼 가짜겠냐?”

    레일리의 타박에 알렌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아무리 7살이어도 느껴지는 카리스마엔 큰 차이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원 상태로 바로 돌아오는 건 아닌가 보네요.”

    조슈아의 말대로 레일리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약효가 돌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하나.’

    “이봐.”

    “응?”

    그때 레일리가 손짓을 하며 나를 불렀다. 허리를 숙여 레일리에게 귀를 내주자 그가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많으니, 돌아가면 내 침실로 와라.”

    “그, 그래…….”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레일리의 미래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한 것 같다.

    * * *

    ‘여기서 자고 갈 줄은 몰랐네.’

    레일리의 명령 아닌 명령에 노블레스의 임시 본부에서 하루 동안 더 머무르게 됐다. 레일리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 확인하고 가는 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딱히 급한 일도 없어서, 지금의 난 레일리의 침실 앞에 서 있는 상태였다.

    ―똑똑.

    “레일리, 들어갈게.”

    “그래.”

    던전에 들어가기 전 어려진 레일리를 처음 만난 그 방이었다. 레일리는 감자 칩과 함께 이미 침대에 반쯤 누워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그 모습이 꼭 지유를 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진실만 답해라.”

    “알았어.”

    침대에 앉기 무섭게 레일리가 쏘아붙였다. 이불 안으로 발을 밀어 넣으며 대답하자 그는 내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린 채 질문을 이어나갔다.

    “미래의 나는 이 나라의 왕이 돼?”

    “…….”

    “솔직하게 말해라.”

    본인이 왕이 될 거라고 믿고 있는 어린 레일리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알렌과 라파엘라가 ‘길드장’이라고 줄기차게 말한 탓에 아마 레일리라면 자신이 왕이 아니라 길드장이 됐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다.

    “아니. 왕은 네 동생이 돼. 넌 영국, 유럽의 제1길드를 이끄는 길드장이 되고.”

    “…역시 그랬구나.”

    의외로 레일리의 반응은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후련해 보였다.

    “왕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니었어?”

    “되고 싶긴 했어. 근데 아까 던전에 가서 마음이 좀 바뀌었거든.”

    레일리는 감자 칩을 우물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궁 안에서 나는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야. 그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두 내 말을 들어주고, 대우해주지.”

    “…….”

    “하지만 던전에선 내가 레일리든 피터든 에이미든 상관이 없었어.”

    레일리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입가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피로 물려받은 권력이 아니라 진짜 내 힘으로 누군가를 도왔으니까.”

    자신감에 찬 어린 레일리의 눈빛은 내가 알고 있는 레일리의 것과 똑같았다. 창조자로 인해 잠깐 욕망에 눈이 멀었지만, 그의 천성은 정의롭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따뜻함까지 지녔다.

    ―톡.

    레일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너무 철들었어. 어린 애답게 굴어.”

    “무시하지 마라.”

    레일리는 신경질을 내며 내 손을 쳐냈다. 하지만 곧 궁금한 게 생겼는지 눈동자만 굴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근데 나는 어떻게 길드장이 된 거야? 저 사이비 신부랑 비리비리한 꽁지머리는 길드원이야? 그리고 이 건물은…….”

    “자, 잠깐만 하나씩 대답해 줄게.”

    레일리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꽤 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으으…….”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몇 시간 내내 쉼없이 쏟아지는 레일리의 질문에 답해 주느라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전투로 인한 피로와 오랜 대화 때문에 목이 칼칼했다.

    ―끼익.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레일리는 일어난 건지 침대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침실 밖으로 나오자 향긋한 홍차 향이 코를 찔렀다.

    “일어났나?”

    “응. 어……?!”

    익숙한 목소리에 무심코 입을 열고 나서야 내가 누구에게 대답했는지 알아차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여유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레일리와 시선이 맞닿았다.

    “라파엘라에게 들었다. 네겐 신세 좀 졌군.”

    “알면 됐어.”

    “허, 제법 뻔뻔해졌네.”

    기쁜 마음을 숨기려 괜히 짓궂게 대답하자, 레일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달그락.

    그는 곧 찻잔에 차를 따랐고 제 맞은편 테이블에 두었다.

    ‘역시 왕보다는 이 자리가 더 어울리네.’

    문득 원 상태로 돌아온 레일리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지? 와서 마셔라.”

    “알았어.”

    길드장이자 내 동료인 레일리에게 다가갔다. 오늘 같은 날이 평생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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