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47화 (347/366)

외전 9화

알렌이 메데이아를 마주하기 전까지 일반 몬스터의 수를 하나라도 더 줄이려고 몬스터를 잡으면서 들어가다 보니 체력적으로 슬슬 한계가 왔다.

펠리아스 왕, 글라우케 공주, 크레온 왕, 그리고 메데이아의 자식들까지 전부 몬스터로 나타났다

‘참 다양하게도 죽였네…….’

―타앙!

불꽃에 휩싸인 크레온 왕이 내게 달려들자 곧바로 방아쇠를 당겨 녀석을 터트려 버렸다. 몸의 잔해는 녹아내린 촛농처럼 진득하게 굳더니 곧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하아, 하… 죽겠네…….”

“얼, 얼마나 지났죠?”

“5시간 정도…….”

넘어갈 것 같은 숨을 몰아쉬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겨우 진정시켰다.

정석대로 공략하면 던전 내 시간으로 4일이 걸린다고 했다. 벌어지는 모든 전투와 휴식을 건너뛰고 메데이아를 만난다고 해도 10시간 안에 가는 건 아무래도 좀 빠듯하겠지.

‘만약 레일리가 이대로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진짜로 큰일인데…….’

하루아침에 7살이 되어버린 왕실의 첫 번째 자식과 유럽 제1길드의 길드장,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치지직.

불안함이 살을 붙여가는 한편 갑자기 허공에 검은 균열이 생겼다.

“알렌 씨!”

“알렌 형제님!”

금색 꽁지머리를 보자마자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레일리랑 메데이아랑 만났어요?”

“네에… 길드장님한테 물어보니까 10시간 제한 시간은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다행이다…….”

일단 한시름은 놓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동안 알렌이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 클리어하면 메데이아의 해독제를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걸 마시면 길드장님도 원래대로 돌아오시겠죠?”

“그러길 바라야지.”

알렌은 완전히 녹초가 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자, 일단 지의 씨부터 빨리 이동하시죠.”

―탁!

그의 손을 잡고 웜홀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시야가 돌아오기도 전에 뜨거운 공기가 피부에 먼저 닿았다.

“윽… 벌써 1페이즈에 돌입했나 보네요.”

주위를 둘러보니 검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불타는 마차에 탄 채로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다. 녀석이 날아다니는 궤적을 따라 생긴 불씨가 땅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저게 메데이아예요?”

“콜록, 콜록! 네… 제가 다른 분들 데려올 테니까 잠시만 버텨주세요!”

“알겠어요!”

―치지직.

알렌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균열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쿵, 쿵.

그때 왼쪽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녹두의 배리어 안쪽에서 주먹으로 벽을 탕탕 두드리는 레일리가 있었다. 불꽃을 피해 레일리를 향해 달려가자 한껏 창백해진 레일리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미안, 놀랐지.”

“여기 진짜로 던전이야?!”

“응. 아까 들어올 때 얘기했잖아.”

레일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야기했지만, 레일리는 여전히 불안한 눈치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메데이아를 흘긋 보며 인상을 썼고, 불덩이가 운석처럼 땅에 처박힐 때마다 몸을 움찔 떨었다.

난 아예 배리어 안으로 들어가 레일리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레일리,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거 얘기했지?”

“응.”

“내가 방금 보고 왔는데 너 여기서 절대 안 다쳐.”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심]

레일리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노려보았고, 난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죽으면 왕실과 영국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런 소리하지 마. 너 절대로 안 죽어. 내가 생채기 하나 안 만들 거니까.”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황]

‘아, 너무 몰아붙였다.’

아직도 사도들이 죽었던 모습이 눈에 선해서 죽음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 신경이 자꾸 곤두섰다. 나도 모르게 굳었던 표정을 다시 웃는 얼굴로 바꾼 후 레일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었어.”

“……

“그리고 레일리 너도 어쨌든 S급 각성자잖아. 네 스킬로도 저 몬스터의 공격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걸?”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기쁨]

레일리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걸렸다.

“그래? 얼마만큼 확신하지?”

“100%. 아, 그렇다고 해서 이 배리어 밖으로 나올 생각은 하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 대신 아까 약속한 것만 제대로 지켜라.”

“당연하지.”

다행히 레일리는 내 칭찬 덕에 금방 기운을 차렸다. 아까보다 훨씬 편한 얼굴이 된 레일리를 두고 배리어 밖으로 나왔다.

“읏차, 끝! 우웁…….”

알렌이 모든 사람들을 데려오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속이 뒤집혔는지 헛구역질을 했다. 그를 안쓰러워할 틈도 없이 모두 하늘을 날아다니는 메데이아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자매, 형제님들께서 모두 보고 계시다시피, 1페이즈의 메데이아는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일정 체력 밑으로 떨어지면 지면에서 전투를 이어가죠.”

“알겠어. 빠르게 해치우자.”

―철컥.

자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그대로 녀석을 향해 길게 당겼다.

―쿠구구궁.

새하얀 소리의 파도가 메데이아의 궁전 전체를 집어삼켰고, 파도에 닿은 녀석의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녀석이 휘청거린 틈을 타 조슈아의 용암 폭포가 녀석의 마차 위로 쏟아졌다.

“아아악!”

메데이아의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마차의 일부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메데이아는 분노했는지 마차와 용을 연결한 고삐를 꽉 잡았고 한 손을 높이 들어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했다.

―콰과과광!!

얼마 지나지 않아 시뻘건 불이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쉴드를 든 채 불을 피해 다녔지만, 워낙 빽빽하게 떨어지는 탓에 불꽃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팔과 다리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일어,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우우웅.

방아쇠를 길게 당겨 일단 메데이아의 움직임부터 막았다. 그러자 엄청난 기세로 떨어지던 불꽃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다들 이쪽으로 오세요!”

―쾅!

라파엘라가 십자가를 땅에 꽂은 후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한 글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귀에 들어올 때마다 통증이 줄어들었고, 손등에 생겼던 물집들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메데이아는 소리 공격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아까보다는 훨씬 빠른 움직임으로 우리를 향해 불덩어리를 떨어트렸다. 알렌과 조슈아가 그것들을 쳐내는 동안 난 라파엘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라파엘라, 전에 나한테 걸었던 그 저주를 쟤한테 걸어. 안 끊기게 계속.”

“이야… 그것까지 기억하고 계셨나요? 자매님 보기보다 뒤끝이 있으시네요.”

“잔말 말고 빨리 해.”

“하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를 놀리던 라파엘라가 메데이아를 향해 역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사방팔방으로 불꽃을 들이붓던 녀석의 마차가 밑으로 훅 내려왔다. 나와 알렌이 동시에 메데이아의 마차로 무기를 들었다.

―탕!

두 개의 탄환이 동시에 마차의 바퀴를 맞혔다.

“안 돼!”

용이 끌던 마차가 순식간에 박살이 나 메데이아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용은 그런 메데이아를 도와줄 생각도 없는지 그대로 메데이아의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메데이아는 손톱으로 땅을 긁으며 표독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우리를 찢어 죽일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제 2페이즈예요! 그냥 싸우시면 되는데, 메데이아가 워낙 마법을 잘 다루는 몬스터니까 그 점만 주의해 주세요!”

“알겠어요. 그래도 생각보단 빨리 끝나겠네.”

“으음, 아쉽게도 그렇진 않을 것 같네요.”

찬물을 끼얹는 조슈아의 말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조슈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용이 날아간 방향을 가리켰다.

―두두두두.

해치우지 못한 일반 몬스터 무리가 말 그대로 떼를 지어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로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몬스터 무리 쪽으로 자아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저 몬스터들은 내가 해결해 볼게. 다른 사람들은 메데이아를 상대해줘.”

“괜찮으시겠어요?”

―끼리릭

자아를 박격포로 바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슈아는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이내 몸을 돌려 메데이아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일단 박격포로 최대한 많이 쓸어놓고 상황을 봐야겠네.’

자아의 포구를 몬스터들 쪽으로 확실히 돌려놓은 후 무기 위에 손을 올렸다.

―콰과광!!

얼마 안 있어 엄청난 진동과 함께 소리 포탄이 녀석들을 향해 날아갔다. 포탄이 날아간 방향을 따라 땅이 움푹 파였고, 가장 앞에 있던 펠리아스 왕에게 포탄이 꽂히자마자 주위에 있던 몬스터들까지 함께 가루가 되었다.

포성이 터질 때마다 몬스터들의 무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이미 몸이 너덜너덜해진 탓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마자 박격포를 바주카로 바꿔 양손으로 단단히 쥐었다. 그러곤 포탄을 피해 끈질기게 살아남은 메데이아의 자식과 글라우케 공주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퍼버벙!

날카로운 손톱이 내게 닿기 전에 녀석들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후우…….”

전부 해치운 건 아니지만 한숨 돌린 것 같았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는 녀석들을 향해 포탄을 날렸고 일단 눈에 보이는 녀석들은 전부 제거했다.

‘조슈아네도 잘 싸우고 있는 것 같고…….’

뒤를 흘긋 돌자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메데이아가 불로 된 구체를 던질 때마다 조슈아의 용암이 그것들을 집어삼켰다. DF 랭킹 2위답게, 조슈아의 공격력이 훨씬 우세인 느낌이었다.

‘언니!’

‘어?!’

그때 녹두의 다급한 외침이 귀에 꽂혔다. 반사적으로 배리어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크레온 왕 둘이 온몸에 불을 두른 채 녹두의 배리어를 들이받고 있었다.

―쩌적.

녹두의 방어력으론 녀석들의 공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는지 배리어에 자잘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녀석들을 향해 곧바로 자아를 들었다.

―틱.

“어?!”

하지만 방아쇠를 당겨도 탄환은 발사되지 않았다. 박격포 공격으로 주입해둔 목소리를 전부 다 쓴 것이다.

―쨍그랑!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녹두의 배리어가 깨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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