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46화 (346/366)
  • 외전 8화

    “고, 고, 공략 담당했던 노블레스 길드 소속 알렌 빅토리아입니다! 지금 던전 비어 있죠?”

    “네? 아, 그렇긴 한데 무슨 일이시죠?”

    “지금 많이 급한 상황이라서요. 재공략하겠습니다!”

    알렌이 우리에게 신호를 주자마자 어린 레일리를 옆구리에 끼고 게이트 안으로 몸을 날렸다. 다행히 담당 관리자는 알렌에게 시선이 뺏겨 나와 레일리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잠깐만요! 저기, 선생님들?!”

    “형제님께 신의 축복이 가득하길!”

    ―콰앙!

    당혹스러워하는 관리자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라파엘라가 게이트를 닫아버렸다. 순간 고요해진 던전 내부는 곧 레일리의 목소리로 정적이 깨졌다.

    “여긴 던전 아니야?! 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걱정 마, 레일리. 네가 다칠 일은 죽어도 없을 테니까.”

    바락바락 화를 내는 레일리를 땅 위에 내려놓곤 알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렌 씨, 데리고 와 주세요.”

    “네! 후우…….”

    알렌이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웜홀로 들어가더니 곧 반가운 얼굴과 함께 나타났다.

    “욱, 던전 밖에 있는 사람을 데려오려니 멀미가…….”

    하지만 몸에 무리를 줬는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잠시 멀리 떨어졌다. 그런 알렌에게서 시선을 뗀 후 공략을 도와줄 동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와줘서 고마워, 조슈아.”

    “별말씀을요. 신지의 헌터 부탁은 거절할 수 없죠. 마침 벤자민도 유치원 시간이고, 하원도 비서한테 부탁했으니 시간은 많아요.”

    시간제한이 걸려 있다 보니 나 혼자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S급 공격계 스킬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 더 필요했다.

    세빈이를 가장 먼저 떠올리긴 했지만 자고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슈아라도 시간이 돼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이 꼬맹이가 레일리 씨라…….”

    조슈아가 고개를 한쪽으로 꺾으며 어린 레일리를 바라보았다. 레일리는 부루퉁한 얼굴로 조슈아를 빤히 노려보다 고개를 쳐들었다.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 네 이름은?”

    “허.”

    “비웃는 거야?”

    “오, 그럴 리가요. 조슈아 체스터입니다, 폐하… 악!”

    “레일리!”

    조슈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과장된 인사를 하자 레일리의 구두 끝이 그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돌발 행동에 레일리를 뒤에서 끌어안다시피 내 쪽으로 당겨왔고, 레일리는 여전히 분이 안 풀린다는 듯 내 팔 안에서 버둥거렸다.

    “폐하가 멀쩡히 살아계시는데 나한테 그딴 소리를 하다니, 이건 모욕이다!”

    “아오씨, 어떻게 된 게 저 성질머리는 어렸을 때도 똑같냐…….”

    조슈아는 차마 지금의 레일리에게 뭐라 하지도 못하고 손으로 종아리를 싹싹 문지르기만 했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레일리는 내 팔을 뿌리치곤 이번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안 물어봤네. 내가 각성했다는 걸 제일 처음 알아본 녀석이니 네 이름을 제대로 알아놔야겠어.”

    “신지의. 지의라고 부르면 돼.”

    “지의.”

    “응. 발음 잘하네.”

    “어린 애 취급하지 마라. 아마 20년 후면 감히 네가 볼 수도 없는 사람이 될 테니 말이다.”

    레일리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말랑한 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릿한 조소가 그의 입에 걸렸다.

    ‘이땐 아직 레일리가 국왕 후계자였나?’

    본격적으로 후계가 레일리의 동생 쪽으로 넘어간 건 그 뒤의 일인지, 레일리는 자신이 왕이 될 거란 걸 너무나 확신하고 있었다.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진 한편, 어느새 알렌과 라파엘라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알렌 씨, 여기 어떤 던전인지 설명 좀 해주세요.”

    “아, 네. 이동하면서 설명할게요.”

    “잠깐만요. 길드장님 혹시 뛸 수 있나요?”

    라파엘라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레일리에게 꽂혔다. 그러고 보니 꽤 중요한 질문이었다. 메데이아가 있는 곳까지 한참 달려가야 할 테니 어린 레일리의 현재 체력 상태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레일리는 어이없다는 듯 자신의 두 다리를 가리켰다.

    “뛸 수 있어. 어쩌면 네 녀석보다 더 빠를지도 모르지.”

    “전속력으로 1시간씩 달릴 수 있어요?”

    “1시간?! 가, 가능해. 그 정도도 못 뛸 것 같아?”

    레일리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대답했다. 난 주위를 눈으로 슥 훑은 후 알렌을 향해 이야기했다

    “알렌 씨가 레일리 업고 일단 메데이아부터 만나게 해주세요. 그다음에 웜홀로 저희를 한 명씩 데려오고 바로 보스전 가죠.”

    “아, 그것도 방법이네요.”

    “그렇게 하면 한창 보스전 하고 있을 때 못 해치운 일반 몬스터들이 밀려올 텐데… 자매님, 그건 괜찮으신 걸까요?”

    “어쩔 수 없지. 일단 지금은 레일리의 상태 이상부터 풀어야 하니까. 아, 그리고…….”

    ―키잉.

    나무 구슬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녹두가 땅을 디디며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녹두에게 마음속으로 빠르게 상황을 전달한 후 다시 알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녹두랑 같이 가세요. 알렌 씨가 저희를 데려올 동안 얘가 레일리를 보호할 거예요.”

    “후, 알겠어요. 길드장님! 일단 저한테 업히시죠!”

    “싫어.”

    레일리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알렌을 똑바로 가리켰다.

    “이딴 비리비리한 녀석이 날 보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비리비리…….”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

    알렌이 상처받은 얼굴로 레일리를 빤히 바라보는 동안 난 레일리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이름을 전부 불렀다.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황]

    그러자 레일리가 몸을 움찔 떨며 내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애한테 성 붙여 부르면 주눅 드는 건 만국 공통이구나.

    투정 부리는 지유를 타이를 때 쓰던 말투였는데, 레일리에게도 효과가 있었나 보다. 레일리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내 시선을 피했고 난 그런 그의 팔을 가볍게 잡은 채 말을 이어갔다.

    “다들 너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야. 네가 다치면 엄청 슬퍼할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왕이 되려면 20년은 더 있어야 해. 벌써부터 로비를 하는 거야?”

    “네가 왕이 될 사람이라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냥 레일리 너라서 도와주는 거야.”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레일리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동안 레일리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 씁쓸해지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일 수 없는 환경에서 큰 탓이리라. 난 고개를 쭉 빼 레일리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난 사실 미래를 볼 줄 알거든?”

    “미, 미래? 헙.”

    레일리가 무심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자 스스로 입을 틀어막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여기서 말 잘 들으면 궁금한 거 전부 알려줄게. 너 좋아하는 감자 칩도 한 박스로 사주고. 어때?”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레일리에게 있어 미래를 알게 되는 건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일 것이다. 레일리와 눈을 맞춘 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욕]

    내 예상이 적중했는지 레일리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의 얼굴만 보고도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대충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레일리 너랑 나만의 비밀이야.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그 정도는 지켜줄 수 있어. 그러니 너도 그 약속을 꼭 지켜라.”

    “알았어.”

    내가 먼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레일리가 손가락을 단단하게 걸었다.

    ―탁.

    그러곤 알렌 앞으로 발을 옮겼다.

    “뭐 해? 얼른 업어라.”

    “네? 아, 네!”

    알렌은 레일리를 업은 채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그의 옆으로 녹두도 함께 날아갔다.

    “그럼 보스 포인트로 먼저 이동할게요!”

    ―휘이잉.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알렌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남은 사람들도 시선을 교환한 후 곧바로 달려 나갔다.

    “길드장님을 어떻게 구슬리신 거예요?”

    “저 나이대 애들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거든. 비밀 만드는 거랑 평소에 잘 못 먹는 과자 먹는 거 싫어하는 애들은 없을걸.”

    “아하하, 더 기고만장해 있겠네요.”

    뼈가 느껴지는 조슈아의 발언을 뒤로 한 채 계속해서 보스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크로노스의 궁 같은 모습이네.’

    던전 내부는 신전처럼 꾸며져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기둥 뒤로 몬스터의 그림자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난 라파엘라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빠르게 말문을 텄다.

    “라파엘라, 던전 설명 좀.”

    “네~ 일단 여긴 메데이아의 궁이에요. 나오는 몬스터들은 전부 인간형이고 메데이아한테 살해당한 사람들이 일반 몬스터로 나오죠.”

    ―쾅!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흰 기둥의 옆에서 웬 젊은 남자의 형체들이 튀어나왔다.

    “마침 나왔네요~ 일반 몬스터 중 하나인 압시르토스입니다.”

    ―탕, 탕, 탕.

    녀석들의 머리에 탄환을 하나씩 박아 넣자 머리가 그대로 터져나갔고, 감전된 것처럼 몸을 파르르 덜었다. 조슈아의 용암이 부서진 머리의 틈을 파고들어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공격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다리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보스 몬스터는 메데이아고, 총 2페이즈로 구성되어 있었답니다~ 난도가 낮긴 한데, 덜 해치운 일반 몬스터들까지 합세한다면 한 중상급 정도의 S급 던전이 되겠네요.”

    ―콰그작.

    라파엘라가 설명을 덧붙이며 들고 있던 십자가로 압시르토스들의 두개골을 부쉈다. 우리가 메데이아가 있는 곳과 가까워질수록 일반 몬스터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쌓여 갔고, 숨이 턱 끝까지 차 가슴이 욱신거렸다.

    ‘한 시간 좀 지났나?’

    핸드폰으로 시간을 살짝 보자 다행히 제한 시간까지는 꽤 남은 상황이었다. 알렌이 무사히 레일리를 메데이아 앞까지 데려갔기를 믿으며 달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