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45화 (345/366)

외전 7화

<상태 이상: 어린 탕자>

―우우웅.

“으으…….”

난데없이 새벽에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눈도 못 뜬 채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알렌]

‘이 인간이 무슨 일이지?’

알렌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평소에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다. 자동 통역기를 귀에 꽂은 후 통화 버튼을 누르자 금방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지의, 씨! 혹시 주무시고 계셨나요? 죄송합니다…….

알렌은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려는 건지 이름 한 음절 한 음절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한껏 미안해하는 알렌의 목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길드장님 상태를 아무래도 한번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레일리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하아… 네.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순간 레일리가 쓰러졌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자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라파엘라 씨도 원인을 못 찾았거든요. 혹시 신지의 헌터라면 알 수도 있을지도 몰라서…….

“지금 바로 레일리가 있는 곳으로 보내주세요.”

―네? 아, 네! 잠시만요!

―타다닥.

잠옷 위로 아이테르의 로브를 걸치며 신발장 쪽으로 달려갔다.

알렌의 말을 들어 보니 일단 레일리가 죽은 건 아니었다. 숨만 붙은 채로 의식을 잃었거나 원인 불명의 상태 이상에 걸렸을 확률이 높겠지.

S급 치유계 스킬을 가진 라파엘라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내게 연락했을 것이다.

‘만약 이것도 김강희의 짓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어.’

순간 눈앞이 캄캄해져 몸이 휘청거렸다. 신발장에 양손을 지탱한 채로 호흡을 골랐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치지직.

억지로 정신을 붙잡으며 샌들을 대충 구겨 신을 때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자 검은 균열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알렌과 눈이 마주쳤다.

“새벽에 죄송해요…….”

“아니에요. 바로 가죠.”

―후우웅.

알렌의 웜홀 안으로 발을 들이자 몸이 어딘가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다리가 땅에 닿았고 노블레스 길드의 본부 내부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자매님, 오셨어요?”

“레일리 어디 있어.”

내 말에 라파엘라가 잠시 멈칫하더니 곧 미소가 가신 얼굴로 오른쪽으로 턱짓을 했다. 그가 가리킨 곳엔 반쯤 열려 있는 나무 문이 있었다.

‘도대체 상태가 어떻길래 저렇게 표정이 변하는 거야…….’

가슴이 순간 철렁해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발을 옮겼다.

―끼익.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문 너머로 발을 들였다.

“…응?”

커다란 침실이었다. 분명 가운데 있는 침대에 레일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침대는 누운 흔적도 없이 깔끔했다.

“넌 또 누구지?”

그때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린 채 감자 칩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잘 다려진 흰 셔츠와 검은색 반바지가 과자 부스러기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새하얀 단발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그 속의 황금색 눈은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와삭.

아이가 과자를 먹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아이는 처음 보는 상대를 보며 놀라거나 낯설어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내가 누군지 설명하라는 듯한 눈치였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아이에게 이 정도로 박력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하아…….”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온 라파엘라가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라, 라파엘라. 지금 얘가 설마…….”

“네. 맞습니다~”

―툭.

라파엘라가 아이의 어깨 위에 양손을 올렸다.

“길드장님 되시겠습니다~”

“진짜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지르자 레일리가 인상을 쓰며 먹던 감자 칩을 던졌다.

“시끄러워! 그리고 내가 알아듣게 얘기해!”

“아차, 길드장님 이거 귀에 끼우세요~ 그럼 저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으실 수 있답니다.”

“흥. 그런 건 진작 줬어야지.”

레일리는 라파엘라의 손에 들린 자동 통역기를 뺏다시피 가져오곤 거칠게 귀에 쑤셔 박았다.

‘저 꼬마가 레일리라니…….’

물론 겉모습은 누가 봐도 어린 레일리였지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레일리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며 감자 칩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어제 그리스 신규 S급 던전에 갔다 왔거든요…….”

“거기서 당한 거예요?”

“네. 보스 몬스터인 메데이아가 클리어 직전에 갑자기 기습했어요. 그 자식이 뭔 액체를 뿌렸는데 길드장님이 그걸 정면으로 맞고 나서 갑자기 어린아이가 됐죠.”

알렌은 방문에 기댄 채 내게 말을 건넸다.

“그럼 몇 살로 돌아간 거예요?”

“7살이요. 한창 궁에서 말썽 피우셨을 때죠.”

어린 레일리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알고 있는 레일리와 비슷한 분위기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앳된 얼굴과 목소리 때문에 그저 조금 씩씩하고 개구쟁이 아이처럼 보였다. 그는 다 먹은 감자 칩 봉지를 아무 데나 휙 버리더니 그대로 소파에 누워버렸다.

“궁에 연락은 했어?”

“네. 일단 여기서 지내시랍니다~”

“매니큐어 칠한 신부의 말은 못 믿겠어. 내 눈앞에서 다시 전화 걸어.”

라파엘라가 레일리를 향해 손톱을 내보이며 이야기했다.

“매니큐어가 아니고 속성 전염이에요, 길드장님.”

“그리고 난 길드장이 아니야. 왜 자꾸 날 그 호칭으로 부르는 거야?”

정신까지 어려졌으니 자신이 길드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죽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일단 구원자의 눈동자로 좀 볼까.’

오른쪽 눈을 감고 레일리를 내려다보자 눈앞에 잠시 노이즈가 생기더니 곧 레일리의 이름과 함께 그의 정보가 떴다.

“으, 웬 윙크지? 불쾌해.”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런 거야.”

얄팍한 핑계를 대며 정보를 전부 다 읽었다. 아쉽게도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레일리, 너 각성했네?”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황]

“누, 누가 각성했다는 거야? 안 했어.”

“그런데 왜 눈을 피해?”

“안 피했거든?”

‘역시 몸이랑 기억만 옛날로 돌아간 거네.’

어린 레일리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현재의 레일리의 나이와 기억만 바뀐 것이 확실해졌다. 그럼 어쩌면 본인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각하는 것만으로 상황이 해결될 수도 있다.

‘자각의 탄환, 사출’

―탕.

내 귀에만 들리는 발포 음과 함께 자각의 탄환이 레일리의 몸을 관통했다. 레일리는 눈을 깜박거리며 날 빤히 들여다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각성 같은 건 안 했어. 감히 나를 의심하지 마라.”

자각의 탄환으로도 레일리를 돌려놓을 순 없었다. 내게 완전히 등을 보인 채로 누운 레일리를 뒤로 하고 라파엘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각성한 상태는 맞아.”

“흠, 그럼 몸이랑 기억만 어려진 거네요. 길드장님이 각성한 건 성인이 되고 나서니까요.”

“응, 그렇지.”

‘어쩌면 레일리가 보는 상태창엔 뭐가 나와 있지 않을까?’

던전에서 얻은 상태 이상이 평생 지속되는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 레일리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서가 레일리의 상태창이나 인벤토리 속에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끼익.

레일리의 소파에 살짝 걸터앉은 채 그의 등에 대고 입을 뗐다.

“레일리, 네가 각성한 걸 왜 감추는 건진 모르겠지만 여기선 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아.”

“……”

“진짜로 비밀 지켜줄게.”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심]

레일리가 고개만 살짝 돌려 나를 째려보았다.

“왕실의 귀에 들어가면 너희들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 알겠어.”

레일리는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해라.”

“으, 응…….”

진지한 말투와 달리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새끼손가락을 걸자 그제야 레일리가 안심한 듯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각성을 한 상태였어. S급 방어계 스킬이라더군.”

“상태창 열어서 확인한 거야?”

“상태창? 그게 뭐야?”

“길드장님만 볼 수 있는 신분증 같은 거죠~”

라파엘라가 레일리의 옆에 앉으며 말을 덧붙였다.

“머릿속으로 길드장님의 정보를 한번 떠올려 보시겠어요? 뭐, 이름이라든가 스킬명이라든가.”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네.”

입으론 툴툴거렸지만 레일리는 눈을 꼭 감은 채 라파엘라의 지시를 따랐다.

“아.”

“뭐가 좀 보이시나요?”

“응. 내 이름, 속성, 스킬 이름 그리고…….”

기억이 날아갔어도 각성자의 감각은 살아 있는지, 다행히 레일리가 상태창을 한 번에 열었다. 레일리는 신기하다는 듯 두 눈을 반짝거리며 제 상태창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읽어내려갔다.

“이건 뭐지?”

“왜 그래?”

레일리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췄다.

“메데이아의 주술…이라는 게 맨 밑에 있다.”

“네?!”

“자, 자세하게 얘기해 봐!”

어느새 알렌까지 소파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의 반응과 내 말에 레일리가 화들짝 놀라더니 곧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펠리아스 왕의 딸들에게 보여준 메데이아의 주술. 제한 시간 내에 메데이아와 다시 대면하지 않으면 평생 풀 수 없다.”

“제한 시간……? 어, 얼마나 돼요?”

“10…….”

“10일?! 오늘 중으로 준비해서 빨리 가야겠…….”

“시간.”

레일리의 말에 순식간에 방 안이 고요해졌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발언에 나도 두 눈을 크게 떴고, 의문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레일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10시간이라고. 왜 그렇게 놀라?”

10시간 안에 S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만나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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