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43화 (343/366)
  • 외전 5화

    <홈 스윗 홈>

    “침대는 안방에 두시는 거죠?”

    “아, 네! 부엌 옆쪽 큰 방이에요!”

    로봇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새집을 가구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과 로봇들을 피해 마당으로 나오자 맑은 공기가 폐부에 스몄다.

    커다란 마당이 딸린 1층짜리 단독주택, 내 인생에서 만나는 두 번째 집이자 내 명의로 된 첫 번째 집이었다.

    지유에게 진짜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야 살고 있던 집을 나올 용기가 생겼다. 집 곳곳에 밴 지유의 흔적을 두고 나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지만 새 출발을 위해 큰 결심을 한 것이다.

    “네 집 생긴 소감이 어때?”

    그때 세빈이가 마당으로 나오며 말을 걸었다. 자기 집도 아닌데 묘하게 들떠 있는 세빈이가 웃겨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좋아. 약간 떨리기도 하고.”

    집을 고를 때 가장 신경 쓴 건 마당의 크기였다. 녹두가 한창 뛰어놀며 교감해야 할 유체와 아성체 때 좁은 집에서 생활하게 했던 게 여전히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만하면 녹두가 다섯 마리 더 있어도 거뜬하겠네.’

    만족스러울 정도로 넓은 크기의 마당을 보니 마음이 다 든든했다.

    “집은 좀 마음에 드세요?”

    “아, 네! 이제야 실감이 좀 나네요.”

    집 내부를 살피던 부동산 직원이 우리를 향해 걸어 나왔다.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아무래도 여기가 두 분이 살기엔 딱 알맞은 집이죠~”

    부동산 직원의 말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입을 떼려는 순간 세빈이가 먼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하하, 그러게요.”

    “아니, 저 혼자 살 예정입니다.”

    ‘얘는 왜 해명을 안 해……!’

    세빈이는 부동산 직원의 말에 별다른 설명 없이 웃기만 했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빠르게 말을 덧붙이자 직원이 의아하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래요? 사장님한테 같이 집 보러 다니셨다고 들어서 두 분이 사시는 줄 알았네요.”

    ―우웅.

    그때 직원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곤 전화를 받으러 발을 옮겼다.

    ―툭.

    “아야.”

    세빈이의 팔을 팔꿈치로 찌르자 세빈이가 엄살을 부리며 불쌍한 얼굴을 했다. 돌덩이 같은 몸에 기별도 안 갔을 텐데 뻔뻔하긴.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우리 둘이 부동산 들어가는 사진 찍혀 가지고 해명하느라 고생했잖아.”

    “난 별로 고생스럽지 않았는데.”

    “홍보실 직원들이 방금 그 소리 들었으면 너 한 대 쥐어박으러 왔을걸.”

    “아하하!”

    난데없는 열애 기사가 뜨고 나서 협회 홍보실 직원들이 잔뜩 지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던 게 아직도 생생했다. 아마 헌터부나 연예부 기자들에게 잔뜩 시달려서 그랬겠지.

    세빈이는 한참을 웃다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난 오해 받아도 상관없어.”

    “왜? 귀찮을 텐데.”

    “전혀. 오히려 내가 원…….”

    ―우우웅.

    세빈이가 입을 열기 전에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아, 잠깐만. 네, 하미준 헌터?”

    ―우리 신지의 헌터, 이사 때문에 정신없지?

    “어,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내가 또 귀여운 사람 소식은 빠르거든.

    하미준 헌터에게 온 전화였다. 협회장이 된 후로 굉장히 오랜만에 온 연락이라 특유의 느끼한 멘트도 반가울 지경이었다.

    ―강세빈 헌터 집 주변이라고 했지?

    “네. 걸어서 5분 거리예요. 그나저나 무슨 일이에요?”

    ―오늘 집들이 파티 안 하는지 궁금해서.

    “…저 오늘 이사 왔는데요?”

    전화기 너머로 하미준 헌터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핑곗김에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래. 사실 오늘 말고는 시간을 못 낼 것 같거든.

    ‘집들이라…….’

    이사를 간 적이 없다 보니 집들이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에서나 할 법한 일처럼 느껴져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냥 되는 사람들 전부 불러서 밥 한 끼 먹자고. 어때?

    “그러죠, 뭐.”

    ―좋아. 그럼 문자로 주소 좀 보내줘.

    ―뚝.

    통화가 폭풍처럼 지나갔다. 세빈이는 통화 내용이 궁금했는지 날 빤히 쳐다보았다. 하미준 헌터에 의해 강제 성사된 집들이 파티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그냥 요점만 이야기했다.

    “어… 오늘 집들이할 건데 올래?”

    “어? 응. 당연하지.”

    세빈이도 얼결에 대답하곤 머쓱한 듯 목을 매만졌다.

    ‘연락을 한번 돌려봐야겠네.’

    하미준 헌터에게 집 주소를 보내준 후 헌터넷 전화번호부를 열어 대충 떠오르는 사람들부터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 * *

    “오~ 마당 넓네. 아, 이쪽에 차려 주시면 됩니다.”

    “접시랑 식기류는 이쪽에 세팅해도 될까요?”

    “네~”

    “하미준 헌터, 이게 대체…….”

    하미준 헌터와 함께 들어온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능숙한 솜씨로 마당에 테이블을 설치하더니, 곧 음식이 든 쟁반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어느 틈에 바베큐 그릴까지 놓이자 마당은 순식간에 고급 뷔페 같은 모습을 갖췄다.

    “그냥 밥 한 끼 먹자는 거 아니었어요?”

    “응. 케이터링 하면 간단하잖아. 따로 치울 것도 없고. 이건 내 집들이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해.”

    “고, 고맙습니다.”

    너무나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음식 시키는 것도 일이었는데 오히려 잘됐지, 뭐.

    “아, 하미준 헌터. 오랜만이에요.”

    “이야, 강세빈 헌터. 어떻게 지냈어?”

    “그냥 잘 지냈죠. 취임식 이후로 처음이네요.”

    “그땐 정신없어서 제대로 얘기도 못 나눴지. 오늘이라도 짬이 좀 나서 다행이야.”

    ―딩동.

    마당으로 나온 세빈이와 하미준 헌터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거실 인터폰보다 대문으로 직접 가는 게 빨라 바로 문을 열자 이번엔 차도윤 헌터와 한진우 헌터가 들어왔다.

    “같이 왔어요?”

    “오다가 여기 앞에서 만났어요.”

    “이사 축하드려요! 아, 그리고 이건 선물이에용.”

    “그냥 오셔도 되는데. 감사합니…….”

    “우와, 마당 넓다~”

    한진우 헌터에게 감사 인사를 채 끝내기도 전에 그가 마당 안쪽으로 쌩 가버렸다. 차도윤 헌터와 어색하게 마주하기도 잠시, 얼마 안 있어 다시 대문이 열렸다.

    “엉? 둘이 뭐 하냐?”

    “미래 씨! 일찍 오셨네요.”

    “어우 씨, 마당이 왜 이렇게 넓어. 월드컵 열어도 되겠네.”

    “마당 때문에 이 집으로 계약한 거예요. 아, 대문 그냥 열어 주세요. 사람들 곧 올 것 같거든요.”

    “그래.”

    ―툭.

    미래 씨가 심드렁한 투로 말을 뱉고는, 한진우 헌터에게 받은 박스 위로 백화점 로고가 박힌 봉투를 얹었다.

    “이건 내가 주는 거.”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꼬맹이들이 보낸 거. 귀찮게 진짜…….”

    “고마워요. 둘한테는 제가 따로 연락할게요.”

    아자디바르 남매에게도 초대 전화를 걸었더니 가족을 보러 미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끊고 올 기세였던 두 사람을 겨우 말렸는데, 못내 아쉬웠는지 미래 씨를 통해 선물을 보낸 것이다.

    받은 선물들을 거실 안에 밀어 넣자 음식 세팅이 다 됐다. 때마침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클랜의 김민숙 헌터와 곽민호 헌터가 과일을 들고 나타났고, 지호 언니도 휴지며 세제며 할 거 없이 지금 당장 필요한 생필품들을 내게 안겨 주었다.

    넓은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자 제법 복작거렸고, 정말로 파티하는 기분이 들었다.

    “야, 이거 음식 누가 불렀냐.”

    “나. 어때? 입맛에 좀 맞아?”

    “어. X나 맛있네.”

    “역시 하미준 헌터…가 아니라 우리 회장님 미식가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그 호칭엔 언제쯤 적응되려나 몰라.”

    하미준 헌터가 어깨를 으쓱이며 지호 언니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언니도 천연덕스럽게 반응하며 식사에 열중했다.

    처음엔 좀 과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다들 잘 먹는 걸 보니 하미준 헌터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진짜로 요 근래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기도 했고.

    “근데 참 신기한 일이야. 그 김강희 회장이 도주 후 실종이라니.”

    “그러니까요. 그렇게 비겁한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김민숙 헌터와 곽민호 헌터가 한 마디씩 주고받자 나도 모르게 손이 멈췄다. 눈을 굴려 주위를 보니 김강희의 끝을 알고 있는 S급들이 저마다 미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조용히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김강희의 처분을 조율자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그 상황을 지켜본 전 사도들과 최민 헌터와 세빈이, 그리고 나중에 전달받은 국내 S급들뿐이었다.

    그 밖의 사람들에겐 김강희가 지옥도 사태 발생 후 무책임하게 도망치다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시기에 모든 CCTV가 마비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뭐, 그 사람에 대한 진상 조사는 제가 나중에 철저히 해 볼게요. 일단 지금은 신지의 헌터의 독립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거니까요.”

    “맞아요! 신지의 헌터, 독립 축하드려요.”

    “다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싱긋 웃는 곽민호 헌터에게 대답할 때쯤 미래 씨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근데 최민은 안 오냐?”

    “아, 좀 늦는다고 했어요.”

    ‘대문 다시 닫아놔야겠네.’

    금방 올 줄 알고 문을 안 닫아놨는데 최민 헌터의 등장이 생각보다 늦어졌다. 난 대문 쪽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바스락.

    “왁?!”

    그러자 갑자기 눈앞에 꽃다발이 들이밀어졌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동시에 꽃다발에 있던 장미만큼이나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늦었습니까?”

    “아, 아니요! 지금 막 식사 시작했어요.”

    “다행이군요.”

    최민 헌터는 숨을 한번 고르더니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붉은 장미와 분홍색 수국이 함께 엮인 화려한 꽃다발이었다.

    ‘졸업식 때도 못 받아봤는데.’

    품에 한가득 안기는 꽃다발의 느낌이 좋아서 한참 끌어안고 있었더니, 최민 헌터가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당연히 마음에 들죠. 너무 감사해요.”

    “아, 그리고 집들이 선물은 내일 오후 중으로 갈 겁니다.”

    “뭐가 또 있어요?! 이미 큰 선물을 받았는데 또…….”

    몸 둘 바를 몰라 버벅대자 최민 헌터가 살풋 웃었다. 그는 양 볼에 보조개를 띄운 채로 꽃다발을 톡 건드렸다.

    “그럼 이건 선물이 아니고 제 마음으로 생각해주세요.”

    “알겠어요. 진짜로 고마워요…….”

    다정한 시선에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눈동자를 올려 그를 보니 최민 헌터도 머쓱한 듯 충분히 단정한 머리만 정돈하고 있었다.

    “어, 최민 헌터 왔어?”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 덕에 최민 헌터와 나 사이에 흘렀던 미묘한 정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바로 몸을 돌리자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짓하고 있었다.

    그 미소에 안정감을 느끼며 나와 그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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