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40화 (340/366)

외전 2화

머릿속으로 지의가 그동안 내게 보여준 모습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각성 이후 모든 게 처음이었을 지의의 침착한 얼굴, 스킬을 자유자재로 쓰며 어떤 몬스터가 나타나도 당황하지 않는 모습, 그리고 지옥도라는 전무후무한 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아무렇지 않게 모든 작전을 진두지휘한 것.

이 모든 일을 이미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최민 헌터와 손과 발처럼 함께 다녔던 것도, 어쩌면 지의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거라면, 지의가 골랐던 정답은 최민 헌터였구나.’

내가 아니었다. 지의의 옆이 내 자리라고 생각했던 건 역시 나의 오만이고 욕심이었다. 애초에 지의는 내게 옆을 내줄 마음이 없었다.

허탈한 마음이 들기를 잠시, 나는 주위로 슬쩍 눈을 돌려보았다. 헌터들은 전부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시선만큼은 지의에게 고정된 채였다. 그리고 그 시선은 함께 싸우던 동료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유일한 탈출구를 찾은 이기적인 인간의 눈이다.

“으아아악!”

황지원 헌터가 검을 들고 지의를 향해 뛰쳐나갔다. 주변 헌터들도 비명만 지를 뿐 큰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자기 대신 손을 더럽혀줄 이가 나타났음에 안심하고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의가 죽고, 이 길었던 재앙과의 전쟁이 끝난다면 저 사람들은 지의의 죽음을 숭고한 희생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자기들이 지의를 죽인 것이 아니니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겠지.

―콰그작.

‘아.’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그림자가 먼저 나갔다. 달그림자는 황지원 헌터의 목을 부러트렸고, 그는 바닥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

“…얘기가 좀 필요할 것 같네요.”

―콰드득.

그들의 그림자를 이용해 전부 움직임을 막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분명 누군가는 지의를 죽일 것이다. 주위를 슥 보니 다들 겁에 질린 눈을 하고 있었다.

“강, 세빈……?”

그때 지의가 나를 불렀다. 지의도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 얼굴을 보자마자 네가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꽃이 지의와 나를 갈라놓았다. 최민 헌터의 방공호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나로부터 보호한 것이다.

“…소용없을 텐데.”

난 무아를 시전하며 유유히 방공호 쪽으로 걸어갔다. 제아무리 모든 걸 막는 안전지대일지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막을 순 없었고, 난 보란 듯이 방공호 안으로 들어갔다.

“신지의 헌터가 회귀자라고?”

“그럼 신지의 헌터만 죽으면…….”

방공호 내부는 역시 개판이었다. 저마다의 생존 욕구가 칼이 되어 지의를 향하고 있었다. 불쌍한 지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숨기고 싶어.’

아무도 지의를 찾을 수 없게 지의를 숨겨버리고 싶었다. 그래, 우리 집 지하 벙커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

―쿠구궁.

갑자기 나무뿌리가 지의를 옭아맸다. 그 스킬의 주인은 하미준 헌터였다. 그는 도끼를 고쳐 쥐며 지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늘 여유로운 얼굴이 저렇게 절박하고 추악해질 수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쾅!!

그가 지의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며 도끼를 높이 든 순간 무아를 해제했다. 지의의 머리를 향했던 그 도끼는 내 검에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공호 안까지 들어올 줄은 몰랐네.”

“제 스킬 다 아시잖아요.”

“알지.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그 또라이 같은 스킬.”

―쾅!

“그거 오래 쓰면 정말로 존재가 사라진다며.”

“…….”

“기왕 쓰는 거 아예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네.”

―챙!

날붙이끼리 맞부딪혔다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난 그림자로 그들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그림자로 움직임을 막고, 검으로 벴다. 내게 오는 공격은 피하고, 헌터들에게 다시 검을 휘둘렀다. 칼 끝이 누군가의 뼈와 근육을 끊어놓을 때마다 터지던 고성, 새빨간 피 분수, 그리고 통제를 벗어난 몸의 떨림까지.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고 지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외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

‘아, 달빛이다.’

그때 들어본 적 있는 클래식 음악이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분명 예전에 듣던 것이 자동으로 재생된 것이리라.

―촤아악.

아름다운 선율과 적나라한 절개 소리가 한데 섞였다. 비명에 묻혀 가끔 음악이 들리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조용해졌기 때문에 피아노의 선율이 더 크게 들렸다.

“하아아…….”

숨을 길게 내쉬며 손등으로 얼굴을 닦자 주위가 고요해졌다. 방금 전까지 살아서 나와 지의를 노리던 사람들은 전부 바닥에 널브러졌고, 연주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쯤 목숨이 붙어 있던 사람은 최민 헌터뿐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검붉은 눈동자의 초점이 사라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스윽, 스윽.

최민 헌터는 지의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몸으로 지의를 지키려 했다.

―콰그작.

난 그런 그의 손을 밟은 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최민 헌터는 어떤 마음으로 지의의 옆에 있는 거예요?”

“…….”

“지의를 좋아해요? 연인이라도 되고 싶은 거예요?”

“…….”

“그게 아니라면 내가 모르는 다른 거래라도 있었나?”

그는 내 질문에 조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손등뼈가 부러져 팅팅 부은 손으로 방공호를 열려 애쓰고 있었다.

“도대체 최민 헌터에게 있어 지의가 어떤 사람이길래 그렇게 거머리 같이 달라붙는 거냐고요, 네?”

“신지의 헌터가… 절 원했을 뿐입니다.”

결국 그가 입을 뗐다. 최민 헌터는 지의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옮겨 나를 올려다보았다.

“전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간 것이고요.”

“하, 겨우 그런…….”

“겨우 그런 이유로 신지의 헌터 옆에 있으니, 당신과 저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한 겁니까?”

그의 말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초점이 흐려진 검붉은 눈동자가 조용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만난 세월이 유대감을 그대로 대변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맺은 기간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는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최민 헌터에겐 그런 게 있었어요?”

그가 씩 웃었다.

“뭐, 어느 정도.”

“…….”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필연이었다는 걸 신지의 헌터를 통해 확인받았거든요.”

‘이 인간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지의한테서 무엇을 확인받은 건지, 왜 그렇게 기고만장한 건지, 단 하나도 알 수 없었다. 평소엔 존재감이 없던 인간이 지의와의 관계에서 이토록 당당해질 수 있다는 게 화가 날 뿐이었다.

“지의가 당신보고 운명이라고 해요?”

“비슷한 거라고 하죠. 그리고 굳이 운명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화륵.

최민 헌터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내 손가락 끝에 불꽃을 터트렸다. 날카로운 고통에 손을 털며 인상을 찡그리자 곧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쪽으로 고개를 내리자 얼굴에 잔뜩 그늘이 진 채 그가 입을 열었다.

“결국 신지의 헌터가 원한 사람은 저였으니까요.”

―콰그작.

드디어 조용해졌다.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모든 것들을 치웠다. 최민 헌터의 목을 움켜쥔 그림자를 거둔 후 몸을 돌려 지의를 향했다. 지의 위에 덮어두었던 검은 뱀의 허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

허물을 걷자 지의가 텅 빈 눈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 곧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목 아파 보이네…….’

자결을 시도하려 하길래 부러트렸던 손목이 부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지의와 같은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우리 외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쿵, 쿵.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지의와 단둘이 있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드디어 내 바람이 이루어진 거나 마찬가지인데 기분이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

―툭.

지의를 품으로 끌어당겨 보았다. 품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온기가 잠깐 기분 좋게 했지만 금세 사라졌다.

“우리 집 지하에 벙커가 있어. 일단 거기로 가자.”

“…….”

“몬스터가 주변까지 오면 한 마리씩 처리하면 되고. 어때?”

“…….”

“혹시 몰라서 독립할 때부터 조금씩 만들어 둔 건데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난 이유 모를 불쾌감을 밀어내 보려 애써 행복한 미래를 그려 보았다. 지의와 늘 함께하는 미래를 말이다.

―쿵, 쿵.

하지만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어 위장이 꿈틀거렸다. 침을 꿀꺽 삼키자 지의가 날 살짝 밀어냈다. 지의와 시선이 맞닿자마자 지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응. 전부 다 내 잘못이야.”

“…….”

“미안해. 진짜 미안해.”

지의의 눈물에 견디기 힘든 죄책감이 나를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그제야 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지의의 등을 토닥이며 몇 번이고 사과했다. 이미 사과를 들어야 할 이들은 전부 죽어버렸는데도, 고장 난 기계처럼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탁.

내 품으로 깊게 들어오던 지의가 갑자기 나를 강하게 밀어냈다. 완전히 긴장을 놓은 탓에 몸이 뒤로 밀렸고 난 눈을 크게 뜨며 지의를 바라보았다.

‘어?’

지의의 손에 영이 들려 있었다. 검날을 내 쪽을 향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지의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지의…….”

―푹.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지의가 스스로 자신의 배에 영을 꽂아 넣고 쓰러지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지의야!”

―촤아악!

무심코 검을 뽑아버렸다. 지의에게서 뿜어져 나온 피가 얼굴과 옷에 튀었다. 땅에 떨어진 지의의 몸을 끌어당겨 내 무릎에 올려놓았다.

“지의야, 정신 차려 봐. 어? 제발, 제발 내가 잘못했어…….”

허겁지겁 인벤토리를 열어봤지만 지의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검은 뱀의 허물을 덮어 봤지만 지혈도 되지 않았다.

벌이다. 벌을 받은 것이다. 지의의 목숨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던 내게 내리는 천벌.

“때마다… 초기…….”

“지의야, 조금만 버텨줘. 제발, 내가 금방 지혈제 갖고 올 테니까, 응? 지의야…….”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지의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죽지 말라고 빌었다. 하지만 지의의 피부는 점점 차가워졌고 몸은 굳어만 갔다.

―툭.

결국 지의의 팔이 힘없이 바닥 위로 떨어졌을 때 나는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았다.

“하하, 아하하하…아하, 하, 아아악!!!”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다. 함께 싸웠던 동료도, 지의의 숭고한 희생정신도, 그리고 지의 본인도.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차라리 지의가 찌른 게 자신이 아니라 나였다면 이렇게까지 후회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내 죽음으로 인해 지의가 살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죽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았고, 지의는 죽었다. 단 한 순간도 바란 적 없는 결과였다.

―바스락.

딱딱해진 지의의 몸을 안아 올린 채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에 가면 일단 지의를 내 침대에 눕히고, 나도 그 옆에 누워 영으로 나 자신을 찌를 것이다. 지의가 없는 삶은 내게 전혀 의미가 없으니까

―치지직.

“어……?”

그때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처음 보는 색의 상태창이었다.

[비정상적인 활동이 감지되었습니다]

[각성자 ‘강세빈’]

[업의 여부를 판단합니다]

―파스슥.

“지의야!”

갑자기 지의가 모래가 되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황급히 바닥에 쌓인 걸 모아봤지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때문에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결국 내게서 지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학살자의 업]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도 무자비하게 벴던, 잔인한 학살자의 업.]

[당신은 세상의 적입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회귀자 한 사람의 목숨으로 세상을 지킬 수 있었으나, 당신이 너무 많은 생명을 앗아갔기에 이번 시간선은 폐기합니다.]

―쿠구궁.

지의가 죽어서 지켜낸 세상은 결국 세상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책이 접히듯 하늘과 땅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세상의 적이라…….’

지의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한, 난 평생 세상의 적일 것이다. 난 점점 가까워져 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널 죽이려 하는 세상을 내가 어떻게 가만히 두겠어.”

―쿵.

[학살자를 세상의 틈에 편입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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