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39화 (외전) (339/366)

외전 1화

<그 소꿉친구의 아흔여덟 번째 악몽>

“욱, 커헉……!”

더 이상 게워낼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이 나왔다. 목구멍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고통이 퍼졌고 호흡이 흐트러져 머리가 어지러웠다.

‘뭔가 토해내야 한다면 이 끔찍한 꿈을 토할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눈을 감을수록 그 꿈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고, 마치 내가 직접 겪은 일처럼 생생했다.

“우읍…….”

또다시 토기가 끼쳐 변기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위액을 쏟았다. 하마터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머리를 박을 뻔했지만 팔로 지탱한 덕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오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꿉친구가 죽는 꿈을 꿨다.

* * *

꿈을 꾸기 시작한 건 지의가 각성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안 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지의의 아버지로부터 지의가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각성했어. S급 빛 속성이고 공격계야.

그날 병실에서 본 지의는 너무나 태연했다. 아니, 평소보다 차분했고 담담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지의의 부모님은 ‘역시 지의가 정신력이 강해서 멀쩡한가 보네.’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그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지의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으니까.

각성자 등록부터 무기를 받는 것까지 지의는 모든 게 익숙하다는 듯 행동했다. 내가 가르쳐 주려 해도 시간 낭비라며 내 도움을 거절했다.

고작 그걸로 서운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헌터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안심했던 점은 지의가 최소한의 파견만 다닌다는 것이었다. 지의는 정의로운 사람이니까, 앞뒤 안 가리고 자신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줄 알았는데 다행히 몸을 사렸다.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애초에 다칠 일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잠깐, 지의도 헌터가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헌터로서 같은 삶을 공유하고, 고충을 늘어놓고, 남는 시간엔 함께 어울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안일하게 생각한 벌일까, 지의가 각성한 이후로 그가 죽는 꿈을 수도 없이 꾸기 시작했다.

죽는 방법은 정말 다양했다. 몬스터에게 당했을 때도 있었고, 웬 괴한에게 맞아 죽었을 때도 있었다. 그 수많은 죽음들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꿈은 꿈일 뿐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지의의 죽음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했다. 하다못해 지의에게라도 괜찮다는 소리를 들으면 좀 나아질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억지로 같은 파견팀에 배정하지 않으면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것이 일상이었고, 가까스로 연락이 닿으면 하는 소리는 전부 똑같았다.

―다음에.

―지금은 안 돼.

―미안.

지의는 저 세 문장이 없으면 대화를 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지의를 그렇게 몰아붙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파견을 나가지 않을 때도 지의는 항상 바쁘게 움직였고 심지어 외국에도 자주 나갔다. 언론에서 지의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여기면 귀신같이 출국을 자제했다.

그러다 자신에 대해 관심이 조금 식으면 다시 외국에 나갔다 일주일 후에 들어왔다. 그럴수록 지의는 야위어 갔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강세빈 헌터, 지의 양 원래 저렇게 무뚝뚝해?”

“…….”

“강세빈 헌터가 이야기했던 거랑 조금 달라서 실망했잖아~ 얘기만 들었을 땐 귀여운 공주님인 줄 알았는데.”

하미준 헌터의 저급한 이야기를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던 지의와 각성 이후의 지의는 거의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널 그렇게 만든 걸까.’

변했다고 해서 지의가 아닌 건 아니었다. 변했다고 해서 지의가 싫어진 것도 아니었다.

난 그저 무엇이 지의를 변하게 만든 건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뀐 지의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인지 증명받고 싶었다.

하지만 내 질문은 지의에게 묻기도 전에 대답을 먼저 듣게 됐다. 지의의 옆에 항상 서 있는 붉은 머리, 지의가 각성했을 때 지의를 구해준 은인, 최민 헌터가 있었으니까. 그의 존재는 꼭 내가 지의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인간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하루가 계속될수록 지의가 죽는 꿈도 더욱 살을 붙여 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의 나도, 꿈속에서의 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의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대로 그냥 손 놓고 지켜볼 거야?’

문득 세수를 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원인은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의를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데도 미움받는 게 두려워 지의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나는 이 두려움을 마주할 필요가 있었다.

“가서 뭘 하고 온 거야?”

“강세빈, 너…….”

그래서 지의가 난데없이 네팔에 다녀온 날, 난 결국 공항에서 지의를 붙잡았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시간을 골라 귀국을 한 건지 새벽의 공항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지의의 한숨 소리가 크게 들렸다. 피로와 괴로움이 느껴지는 얼굴, 지의가 그곳에서 뭘 하고 온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지의는 인상을 찌푸리며 최민 헌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민 헌터, 먼저 들어가세요. 얘랑 얘기 좀 하다 갈게요.”

“잠깐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말씀 나누시다…….”

“아니요. 안 그러셔도 될 것 같습니다.”

최민 헌터의 말을 끊었다. 검붉은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응시했고 나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말을 덧붙였다.

“지의는 제가 데려다줄게요.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시죠.”

“…….”

“…제가 나중에 연락할게요, 최민 헌터.”

“알겠습니다.”

지의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가 먼저 자리를 피했다. 그가 문밖으로 나서는 걸 확인한 후 다시 지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왜 날 그런 얼굴로 보는 거야……?’

지의는 완전히 빛을 잃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행동에 짜증이 났거나, 아니면 질렸기 때문에 만들어진 경멸의 눈빛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어? 어, 그게…….”

지의는 단 한 번도 날 그런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 고집과 행동에 분노했을 게 분명한데,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과 목소리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없으면 가도 돼?”

“네, 네팔엔 왜 간 거야?”

힘겹게 첫 질문을 뗐다. 지의는 눈을 깜박이다 곧 대답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누군데?”

“너는 알려줘도 모를 사람.”

“그래도 알려줘.”

“어차피 모른다니까.”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나는 물었고, 지의는 피했다. 누구 하나 기를 꺾지 않는 무의미한 대화가 오갈 뿐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언젠가 다 알게 된다고.”

“그때가 오긴 해?”

“하.”

지의가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표정을 싹 굳히며 다시 입을 열었다.

“빌어먹게도 오긴 오더라.”

“…….”

“집에 가자. 데려다준다며.”

지의는 말없이 밖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언제? 뭘 알게 되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도대체 요즘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내가 그 일에 도움이 될 순 없는 거야?”

“나는 안 되고 왜 최민 헌터는 되는 거야?”

절대 전할 수 없는 마지막 말까지 뱉어내자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지의는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그대로 공항 밖으로 나갔다.

이래선 나를 통해 지의와 친해지려고 한 애들을 전부 막았던 고등학생 강세빈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다. 난 그때보다 훨씬 성숙한 인간이어야 했다. 지의가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인간 말이다.

‘최민 헌터, 역시 기다리고 있었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뭘 해도 ‘진짜 어른’은 될 수 없었다. 지의 네가 언제든지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었는데, 공항 밖에서 다정한 눈으로 널 바라보는 저 사람을 절대로 밀어내지 못할 거란 걸 알아챘다.

* * *

―쿠구구궁.

그리고 지옥도가 열렸을 때, 나는 여전히 지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이트를 쏟아내는 게이트, 처음 보는 형태의 게이트였다. 상태창에서 말한 대로 그것은 '재앙' 그 자체였다. 회장님은 실종, 헌터넷은 먹통. 모두가 혼비백산한 상황에서 침착했던 건 오직 지의뿐이었다.

“총 다섯 페이즈. 후반으로 갈수록 상급 게이트가 나오니까 체력 잘 안배해서 클리어해.”

“잠깐, 지의야, 그걸 네가 어떻게……!”

침착하게 헌터들에게 지시하는 지의에게 묻자, 지의의 고개가 천천히 내 쪽으로 돌아갔다.

“…언젠가 다 알게 된다고 했잖아.”

“아…….”

지의는 각성 이후 처음으로 날 보며 웃었다. 마치 이렇게 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두근, 두근.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한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상황 역시 지의가 바라던 상황이었던 것 같고, 어쨌든 지의가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그 미소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지의의 바람대로 소환된 게이트들을 전부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나는 게이트를 있는 대로 처리하고 악착같이 몬스터를 썰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던전에 뛰어들었고 주변 사람이 죽어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목적은 던전을 없애는 것이지 사람을 지키는 게 아니었다.

이 지옥도가 사라지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는 희망이 날 그렇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세상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워질 것이고, 그러면 변했던 지의도 내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지의의 옆에 서는 것도 최민 헌터가 아닌 나로 바뀔 것이다.

그게 제자리니까.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의를 봐온 건 나니까.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많은 희생을 낳긴 했지만 지옥도는 소멸했고 지의도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후련한 듯 웃는 지의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의가 나를 밀어내며 차갑게 굴던 게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치지직.

[회귀자의 업이 재앙 ‘지옥도’를 재창조합니다.]

[재창조까지 남은 시간 : 6시간]

[회귀자 사망 시 ‘지옥도’ 완전 소멸]

저 미친 상태창이 나타날 때까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회귀자인지 뭔지를 없애지 못한다면 겨우 소멸시킨 ‘지옥도’가 다시 나타난다는 말에 모두가 현실을 부정했다.

―쿵, 쿵, 쿵.

누군가 내 심장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등 뒤로 땀이 흘러내리는 느낌과 동시에 숨이 가빠왔다. 이 불쾌한 현상이 한참 지속되고 나서야 내가 공포에 떨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각성 이후로 공포심을 처음 느껴봤기에, 이 감정의 원인부터 찾아야 했다.

또다시 그 지옥 같은 것들을 상대해야 해서? 죽을 것 같아서?

아니, 전부 아니었다.

―바스락.

그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지의가 몸을 일으켰다.

“지의야……?”

지의는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지의의 미소였는데, 이 상황에서 마주하니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가슴이 저렸다.

“허어, 허억…….”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덜덜 떨렸다. 힘겹게 호흡을 이어나갈 때마다 숨이 불규칙적으로 들이마시고 내쉬어졌다. 나는 그제야 이 공포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저예요.”

지의였다. 아니, 정확히는…

“회귀자라고요.”

지의가 상태창이 이야기하는 회귀자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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